|
■"이‘간호사가 간병’ 보호자 없는 병원 만든다
○ 간병인 중심의 보호자 없는 병원 모델 대신 간호사가 포괄적인 간병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의 보호자 없는 병원 시범사업이 오는 7월부터 실시된다. 그동안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실험해 온 ‘보호자 없는 병원’은 대개 간병인이 맡는 방식이었지만 시행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자 ‘포괄 간호시스템’으로 방향을 바꾼 셈이다.
○ 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시범사업은 간호인력을 크게 늘려 간호사 1인당 환자수를 7명 수준으로 줄이고, 팀 간호체계를 도입해 가족이나 친·인척이 병원에 상주하며 환자를 간병해야 하는 부담을 없애도록 할 방침이다. 전국 평균 간호사 1인당 환자수는 약 17명이다. 기존에 간병인이나 보호자가 제공하던 모든 간병서비스를 간호사와 간호보조 인력이 담당하도록 하고 사적으로 고용한 간병인이나 보호자가 병실에 상주하는 것은 제한한다. 복지부가 간병인이 아닌 간호사 중심 모델을 채택한 것은 간병인이 대부분 민간업체를 통한 위탁이다 보니 ‘질 나쁜 일자리’만 양산하고 관리 소홀과 의료사고 문제가 발생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 복지부는 올해 130억원의 예산을 들여 병원급 이상 15개 이내 의료기관 2500병상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실시한다. 이를 위해 최대 400여명의 간호사, 최대 300여명의 간호보조인력 충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임신순번제, 인건비 아끼려는 병원의 꼼수
○ 간호사 업계처럼 임신순번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절대다수가 여성이라는 특성에, 구조적인 인력부족 탓이 크다.
○ 전국보건의료노조가 지난해 6월 조합원 2만여명을 대상으로 ‘모성보호 실태’를 조사한 결과 국립중앙의료원, 보훈병원, 산재병원 등 특수목적 공공병원 간호사 중 임신순번제를 겪었다는 응답률은 26.5%에 달했다. 특수목적 공공병원은 유·사산율이 27.6%로 심각한 상태였다. 82.5%는 육아휴직도 못 썼다고 했다. 앞서 순천의 한 민간병원은 2004~2006년 신입 간호사에게 ‘2년이 지나야 결혼이 가능하고, 혼전 임신 시 사직을 원칙으로 한다’는 각서를 받아 물의를 빚었다.
○ 가임기 간호사의 경우 출산휴가·육아휴직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어야 하지만, ‘인건비 절약’을 앞세우는 병원 측의 논리에 임신순번제는 불가피한 선택처럼 적용된다.
○ 어느 곳보다 모성보호가 필요한 간호사들이 모성보호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2009년 한국의 인구 1000명당 간호사 숫자는 2.2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6.89명의 3분의 1 수준이다.
○ 지난해 결혼한 대학병원 최순영 간호사(28·가명)는 “임신순번제라도 운용하는 곳은 그래도 나은 곳이다. 우리 병원은 2~3년 전부터 간호사들이 사직을 너무 많이 해 임신은 엄두를 못 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 여성이 많이 일하는 호텔, 출판사 등에서도 여성들이 한꺼번에 임신하는 바람에 곤란을 겪는 일이 생긴다.
○ 월간지를 만드는 ㄴ출판사는 최근 심각한 인력난에 처했다. 지난 약 2년 동안 정원 10명 중 여직원 5명이 출산·육아로 휴직을 반복했다. 2011년에는 1~2개월 사이 2명이 출산했고 지난해는 유산 경험이 있는 여성이 아이를 갖기 위해 회사를 떠났다. 프리랜서를 3명 뽑았으나 한 명은 나갔고, 또 한 명은 12월 출산 뒤 육아휴직 상태다. 다른 한 명도 결혼한 지 얼마 안돼 임신을 앞두고 있다. 출산한 3명 가운데 한 명은 아기 봐줄 사람이 없어 최근 3개월 추가로 휴직에 들어갔고, 6개월을 쉰 여직원도 6개월 더 육아휴직을 하기로 했다. 나머지 한 명은 계속 육아휴직 중이다. 김모 편집장(48)은 “임신은 당연히 축하할 일인데 인력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 걱정이 태산 같다”면서 “육아 문제는 사회적으로 뒷받침됐으면 좋겠다”며 답답해했다. 외부에서 직원을 충원하지 못하면 남은 직원들의 업무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 이런 분위기 때문에 여성들은 자연히 눈치를 보고 임신순번제를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된다. 법에 출산휴가·육아휴직을 보장하고 있지만 비용을 우선시하는 기업논리는 현실에서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 제주대병원, 의료수익 성장률 가장 커
○ 제주대학교병원이 전국 10개 국립대병원 중 2012년도 의료수익 규모 증가 폭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 제주대병원은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인 ‘알리오’가 전국 국립대병원의 지난해 요약 손익계산서를 분석한 결과 16.5%의 의료수익 규모 증가폭을 기록하며 가장 큰 폭의 성장률을 보였다고 7일 밝혔다.
○ 이어 A병원 16.1%, B병원 13.2%, C병원이 10.9%로 두자리 수 성장을 기록했다. 성장률이 5%에 미치지 못하는 병원도 2곳인 것으로 조사됐다.
○ 제주대병원 측은 높은 성장률에 대해 전문 의료진 확충과 환자에 대한 의료서비스가 향상됐기 때문으로 더욱 안정적으로 병원 운영이 이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 "공공의료기관, 복지부·지자체 공동책임제로 운영해야"
○ 공공의료기관이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소유 및 관리 조직인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산하 공공의료기관의 구체적인 발전 계획을 수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 현재 공공의료기관은 복지부 산하의 국립대병원, 교육부 산하의 국립의대, 광역자치단체인 시도 산하의 지방의료원 등으로 분류돼 있는데, 담당 기관의 요구 사항이 불명확해 구체적인 미션과 비전이 부재한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 서울시 공공보건의료지원단 이건세 단장은 지난 10일 연세의대 강당에서 개최된 한국병원경영학회 춘계학술대회 중 ‘공공의료기관의 혁신’을 주제로 한 세션에서 이 같이 주장했다.
○ 이 단장은 “공공의료기관이 각 기관의 산하조직이다 보니 불필요한 개입이나 간섭이 문제가 되고 있다”며 “관리 기관이 요구사항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문제로, 공공의료기관에 ‘이걸 해줬으면 좋겠다’는 미션과 목표가 없다보니 지엽적인 문제에 간섭하는 경향이 발생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 이 단장은 “장관이든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든 재임기간 동안 공공의료기관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야겠다는 마스터플랜을 갖고 있어야 한다”며 “재임한 뒤 며칠 고민해서 어떤 사업을 할지 정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 그는 현재 정부기관과 공공의료기관의 소유 및 관리 형태에 대한 개선 필요성도 역설했다.
○ 복지부가 국립대병원의 담당 기관으로 돼 있지만 지방 국립대병원의 경우 현실적으로 복지부에서 병원의 운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 단장은 현재 공공의료기관을 담당 기관만이 관리하고 책임지는 형태에서 중앙정부·광역자치단체·기초자치단체에서 공동으로 책임지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이 단장은 “중앙정부인 복지부가 경상남도의 경상대병원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자세히 파악할 수 없다”며 “해당 지역의 기초자치단체에서도 책임을 지고 소유뿐만 아니라 재정적인 면에서도 참여할 수 있어야한다”고 설명했다.
○ 한편 이날 세션에는 전국의 지방의료원장들도 참석해 공공의료기관 혁신 방안에 대한 의견을 내놓았다. 이들은 공공의료기관의 혁신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 배기수 경기도의료원장은 “제대로 된 정부지원이 필요하다. (공공의료기관이라는 이유로) 족쇄를 채워놓고 있다가 진주의료원처럼 폐업 발표를 하면 의료원 입장에서는 배신당한 기분이 든다”며 “필연적인 적자 구조를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며 정당한 적자는 정부가 부담하는 방식으로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 권용진 서울시 북부병원장은 “공공의료기관 혁신 논의에서는 역사적인 고찰이 필요하다”며 “현재 한국의 선진 의료시스템이 있기까지는 해방 이후 80년대까지 시민의 건강을 지켜온 공공병원이 있었다”며 “이를 인정하고 미래에 대한 투자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외면하는 것은 노인을 길거리에 버리는 것과 똑같다”고 비판했다.
○ 공공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인력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서영준 삼척의료원장은 “공공의료를 전문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의료인력을 양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공공의료 사관학교와 비슷한 개념으로 충분히 의사를 공급할 수 있어야한다”고 강조했다.
■ 허리띠만 조이다 허리 부러지는 공공의료
○ 전국 지방 공공의료원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떠오른 경기도의료원이 정작 수 년째 열악한 예산 지원에 허덕이고 있다. 9일 경기도의료원에 따르면 최근 충남도의회가 도의료원에 견학차 방문하는 등 전국적인 공공의료 롤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 도의료원은 지난 2005년 전국 최초로 도내 수원ㆍ의정부ㆍ파주ㆍ이천ㆍ안성ㆍ포천 등 6개 공공의료원을 통합 운영하면서 치과ㆍ산부인과ㆍ정신과 등 각 지역상황을 고려한 특성화로 성과를 거뒀다. 실제로 도의료원 총 6개 병원의 의료수익은 2010년 728억8천400만원에서 2012년 863억8천300만원으로, 54억여원 늘었다.
○ 병원 운영과 환자 수요 측면도 타 시ㆍ도 공공의료원과 비교해 모두 높은 수준이다. 지난 2012년 도의료원의 병상가율은 82.6%, 100병상당 입원환자 점유율은 82.6명, 100병상당 외래환자 점유율은 394.2명으로 서울과 인천보다 각각 높다.
○ 하지만 도가 서울보다 101억여원이나 적게 예산을 지원하는 등 보조금 부족으로 도의료원은 공공의료 사업 확대와 최신 의료 시설 확보, 진료 과목 확장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3년간 보조금 지원예산 현황을 보면 도의료원은 평균 41억3천300만원에 그친 반면 서울의료원은 145억8천400만원, 인천의료원은 43억1천200만원이다. 도의료원 6개 병원 진료과목도 18개로 서울(23개)과 인천(19개)에 뒤쳐져 있으며 병상수도 6개 병원 평균 164병상으로 서울(459)과 인천(201)보다 적은 수준이다.
○ 인건비 부족으로 의료진을 추가 채용할 수 없어 새로운 진료 과목을 개설하지 못하는 등 악순환을 되풀이 하는 꼴이다. 도의료원의 한 관계자는 “최근 외래환자 비율은 늘고 입원환자 증가 비율은 낮은데 의료진과 입원 시설 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전국에서 벤치마킹차 오지만 실상은 지원 예산이 부족해 도민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 채 곪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 이에 대해 도 건강증진과는 “도의료원은 6개 병원 총 986병상으로 전국에서 가장 크고 지원금도 시설비나 무료이동진료비 등 추가예산을 따지면 늘었다”며 “진료과목은 점차 확대하겠다”고 해명했다.
■ 성남교육청 비정규직 430여 명 ‘무기 전환’
○ 성남교육지원청은 기간제 교육실무직원 430여 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다고 12일 밝혔다. 교육지원청은 이를 위해 최근 대회의실에서 관내 유·초·중·고, 특수학교 행정실장 및 업무담당자 약 300명을 대상으로 ‘2013 교육실무직원 무기계약직 일괄 전환 추진회의’를 개최했다.
○ 회의는 경기도교육청 교육실무직원 운영 규정의 시행에 맞춰 계속근로기간이 1년을 초과한 교육실무직원의 무기계약직 일괄 전환을 위해 마련됐다.
○ 현재 관내 학교에 근무하는 교육실무직원은 총 2천351명으로 이 중 상시·지속적인 근무인원은 2천54명(87%)이며, 무기계약직 전환인원은 1천404명(60%)이다. 297명(12%)은 일시, 간헐적 직종 근무인원으로 법령상 무기계약 미전환 대상자다.
○ 기간제 교육실무직원의 고용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행정실무사·조리실무사 등 32개 직종의 교육실무직원 430여 명이 인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전환될 예정이다. 이번 전환 이후 계속근로기간 1년이 초과되는 직원들은 내년 3월 1일자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다. 이로써 전체 무기계약직 인원은 1천834명(89%)으로 늘어난다.
■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흐름에 역행하는 총액인건비제...문제는?
○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의 역할이 커짐에 따라 공공부문의 고용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마련한 총액인건비제가 오히려 공공부문의 인력 고용 과정에서 여러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어 대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 총액인건비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인건비 총액 안에서 조직 정원 관리와 인건비 배분을 기관 특성에 맞게 운영하도록 각 기관에 조직.보수.예산 상의 자율권을 부여하고 기관별 특성을 살려 성과 중심으로 조직을 운영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이는 안전행정부 소관이며 대통령령으로 규정돼 있다.
○ 도입 취지만 보면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면밀히 따져보면 2007년부터 각급 지자체와 공공기관에서 추진되고 있는 공공부문 고용 안정화 계획에 역행하고 있는 제도라는 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한 지난 2010년 이후 각급 지자체는 서울시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흐름에 자극받은 듯 대대적인 비정규직 전환 계획을 내놓고 있지만 실제로는 계획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지난달 노동부가 발표한 2012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실태조사에 따르면 당초 목표로 했던 2만2천914명의 96.3%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으나, 전체 고용인원 중 6.3%를 차지하고 있는 간접고용 노동자는 대부분 제외됐다. 이에 따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지 않은 비정규직은 25만여명이나 됐다.
○ 또 전체 고용인원 중 50%도 못 미치는 인원을 전환하거나 아예 한명도 전환하지 않은 곳이 중앙행정기관 3곳, 지자체 36곳, 공공기관 55곳, 교육기관 5곳에 달했다.
○ 이처럼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방침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공공부문 인력 고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총액인건비제라는 정부 규정 때문이다.
○ 경기도는 이에 따른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대표적인 지자체 중 하나다. 지난해 비정규직 정규직화 비율이 낮았던 지자체 중 한 곳인 경기도의 경우 직접고용 비정규직 456명 중 30명, 26개 산하기관 비정규직 593명 중 114명에 불과했다.
○ 경기도청에서 무기계약.기간제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기획담당관실 관계자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할 때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국고보조사업에 종사하는 무기계약직의 경우 국비보조가 끊기면 인건비로 지출하는 예산이 막혀버린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총액인건비제도다. 총액인건비가 정해져 있는데 무기계약직을 늘리게 되면 총액인건비를 초과하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많다"고 말했다. 총액인건비제를 초과할 경우 해당 지자체는 이듬해 총액인건비 산정에 불이익을 받는다.
○ 이 관계자는 "경기도의 경우 생활폐기물 처리 등 대규모 상시 인력이 필요한 영역이 대부분 기초단체가 관장하기 때문에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이 많지 않다"고 했으나, 정작 기초단체들은 지난해 무기계약직 전환 계획을 내지 않거나 10명 내외 전환 계획을 밝히는 데 그쳤다. 그나마 성남시는 정규직 전환 대상 123명 중 122명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99%의 목표 달성률을 보였다.
○ 총액인건비제는 또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종진 연구위원은 "안행위에서 할당된 총액인건비 내에서 무기계약직 전환 비용을 활용해야 하는데, 제도적으로 기간제 계약직이나 간접고용은 총액인건비 T.O(정원)에 안 잡혀 있다"며 "그렇게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기간제나 간접고용으로 필요한 인력을 활용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 예를 들어 올해 경기도에 총액인건비로 100억원이 책정돼 있고, 고용된 인력에 들어가는 인건비가 98억원일 경우 나머지 2억원을 무기계약직 전환 예산으로 사용할 수 있다. 만약 경기도가 추가로 필요한 인력에 대한 비용이 10억원이라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할 수 있는 총액인건비 2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인건비 8억원에 해당하는 인력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한다.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구호가 자칫 비정규직 양산의 촉매제로 작용할 수 있는 셈이다.
○ 김 위원은 "우리나라 공공부문은 1990년대 이후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으로 구조조정과 효율화 방침에 의해 다양한 업무들이 민간위탁이라는 형태로 외주화됐다"며 "이로 인해 주로 청소, 경비, 식당 조리배식 등 업무는 파견용역과 같은 간접고용으로 활용됐다"고 설명했다.
○ 이러한 구조는 곧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 문제로 연결된다. 지자체와 공공기관은 간접고용을 할 경우 하청업체의 이윤과 일반관리비, 부가가치세 등 순용역원가가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비용절감 효과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는 그만큼 간접고용에 따른 인건비가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 이 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고자 정부 관계부처들은 지난 1월 총액인건비와 무관하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합동 지침을 마련했다. 하지만 지자체별 의지에 따라 이 같은 지침에 대한 인식 정도가 다르다. 말 그대로 지침에 불과해 법적 강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 홍연아 통합진보당 경기도의원은 "서울시 같은 경우는 적극적으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적극적으로 하면 일단 가능하다는 것"이라며 "지침의 시한이 명확하지 않고 법제화되어 있지 않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지자체의 경우 총액인건비제가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과 공무원 정원이 충돌하는 요인이라는 점도 공공부문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방침에 소극적인 이유다.
○ 공무원보수규정에 따르면 안행부에서 하달되는 총액인건비에 공무원 인건비와 무기계약근로자 보수가 함께 포함돼 있어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할 때 드는 비용 만큼 공무원 인건비나 무기계약직 보수에 영향을 미친다. 무기계약직 보수를 기존 대로 유지하려고 하면 공무원의 인원이 감축되고, 공무원 정원을 유지하려고 하면 무기계약직 보수를 대폭 감축해야 하는 딜레마가 생기는 것이다.
○ 이에 따른 부작용의 대표적 사례가 경상남도 진주시 방문간호사 사태다. 정부가 지난해 말 지방자치단체에 공문을 보내 방문간호사는 무기계약 전환 대상이라고 밝혔으나, 진주시는 총액인건비제를 이유로 방문간호사 13명에 대해 계약만료 통보를 했다.
○ 당시 경남도 보건행정과 관계자는 "행정안전부의 '총액인건비 제도'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데 주요 걸림돌"이라며 "무기계약직 근로자가 늘면 그만큼 공무원 정원은 준다. 일반직 공무원과 달리 이들은 한시적이거나 한정적인 업무만 맡아 이들이 늘어나면 인력 운용을 하기 곤란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 서울시의 경우 상황이 조금 다르다. 총액인건비제의 부작용을 우려해 안행부에서 책정하는 총액인건비에 따른 기준 인력보다 적은 인력을 배치해놓고 무기계약직을 적시에 배치하는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
○ 서울시 기획조정실 조직기획팀 관계자는 "서울시 같은 경우 안행부에서 잡아준 총액인건비에 어느 정도 여유를 둔다. 그렇지 않고 총액을 꽉 채워서 인력을 배치해놓으면 향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시의회에 의견을 내 매년 조례를 통해 행안부에서 잡아준 기준 인력보다 낮게 정원을 재조정한다"고 말했다.
○ 결국 총액인건비제로 인해 발생되는 부작용들은 개선된 지침의 법적 강제성 여부나, 해당 지자체나 공공기관의 의지에 따라 충분히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 홍 의원은 "무기직 전환시 총액인건비 부담이 없도록 한 정부 지침이 법제화되면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라며 "국회 논의를 통해 제도화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통상임금, 임금체계 개편 도화선 될까
○ 노동계와 경영계가 통상임금 소송을 놓고 전면전에 나선 가운데 전대적인 임금명세서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통상임금 논란이 시간외 노동을 비롯한 법정수당에 대한 임금지급 기준 문제에서 비롯된 만큼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시급·일급제를 월급제로 개편하는 논의를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 통상임금은 각종 법정수당을 계산하는 기준임금이다. 통상임금이 오르면 연장·야간·휴일 수당, 연차유급휴가 수당, 산전후휴가 수당 등 각종 수당이 인상된다.
○ 7일 법조계에 따르면 기본급 외에 수당이 줄줄이 붙은 한국형 임금명세서는 장시간노동과 임금억제의 산물이다. 정부가 물가안정이라는 이유로 임금인상을 억제하자, 노동계는 기본급을 올리기보다는 수당을 신설하는 방식으로 우회하고, 사용자는 장시간 노동을 시키면서 기준임금인 통상임금을 올리지 않는 방식으로 대응하면서 기형적인 임금체계가 나타난 것이다.
○ 따라서 통상임금을 둘러싼 노사갈등은 임금체계와 노동시간 개편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 실제로 2003년 서울시내버스노조에서 시작한 통상임금 줄소송으로 전국 시내버스업계에 호봉제가 도입되기도 했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사용자를 대상으로 통상임금 산정범위를 변경하고 임금체계 개선을 위한 교섭을 요청했으나 사측이 외면해 어쩔 수 없이 소송에 나선 것라며 "전근대적인 일급제와 시급제 관행의 임금체계를 월급제로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 노동계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전면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법률사무소 새날)는 "통상임금 문제를 바로잡으려면 노동계가 노동시간단축과 임금체계 개편을 연계해서 전면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하지만 개별노조들의 산별적인 소송으로 이어지면서 노조가 임금체계 개편에서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 '상여금 통상임금 반영' 노사간 최대 쟁점 부상
○ 노사정이 6월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반영할 지를 놓고 본격적으로 공식 논의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문제가 올해 노사간 최대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통상임금에 대해 법률상 정의는 없지만 정부는 1982년 근로기준법 시행령에 정의 규정을 도입했다.
○ 통상임금이란 = 10일 근로기준법 규정에 따르면 1임금 지급기(한달 주기)내 정기적, 일률적, 고정적으로 소정 근로의 대가로 지급하는 금품을 의미한다. 근로자가 제공하는 노동력에 대한 가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통상임금은 따라서 근로자의 초과 근로 수당과 향후 퇴직금 정산 등에 큰 영향을 미친다.
○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반영되면 초과 근로 수당은 물론 퇴직금 규모가 크게 늘어나기 때문에 재계 및 사측은 강한 반대 입장을 표명해왔다. 이에 맞서 노동계는 상여금을 정해진 달 또는 분기별로 주는 사업장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 예를 들어 근로자가 1시간 당 1만원꼴로 정해진 기본임금을 받을 경우 소정 근로시간(8시간) 외에 2시간을 더 일하면 연장근로 가산수당률 50%를 더해 총 11만원을 받게 된다. 만일 8시간 근로시 추가되는 가족 수당을 통상임금으로 반영한다고 치면 초과 근로시 11만원 보다 더 많은 금액이 지급된다. 더욱이 상여금의 통상임금 반영 여부는 초과 근로 수당 뿐 아니라 향후 퇴직금 산정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 문제를 놓고 노사간 뜨거운 공방전이 벌어져 왔다.
○ '상여금 통상임금 반영' 놓고 행정해석·판례 엇갈려 = 현행 정부 규정에 따르면 통상임금으로 인정받으려면 1임금 지급기 내 정기성, 일률성·고정성, 소정근로의 대가성 등 크게 3가지 기준에 부합돼야 한다.
○ 일률성·고정성과 관련해 정부는 상여금이 '전체 근로자에게 지급되지 않더라도 일정한 조건 또는 기준에 달한 모든 근로자에게 지급돼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한다는 입장이며 판례도 대체로 이와 동일하다. 그러나 1임금 지급기 내 정기성 항목에서 행정해석과 판례의 입장이 엇갈린다. 행정해석은 '(상여금이) 1임금 지급기 내에서 계속 지급돼야 정기성이 인정된다'고 보고 있고 대법원은 이를 충족시키지 않아도 통상임금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판례를 내놓았다.
○ 지난해 3월 금아리무진 노사 소송과 관련해 대법원이 분기별로 지급되는 상여금도 통상임금으로 인정한 것이다.
○ 고용부 "노사정 협의로 갈등 해소" = 고용노동부는 경제 위기 상황에서 핵심 국정 과제인 일자리 창출 및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통상임금' 논란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고용부는 이에 따라 5월 한달간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 회의체'를 가동하면서 '통상임금'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기구를 만들어 6월부터 본격 가동할 계획이다.
○ 그러나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기간 미국 GM 본사의 댄 애커슨 회장이 향후 5년간 상여금을 포함하는 통상임금 문제 해결을 전제로 한국에 8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지자 노동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노동계는 특히 외국 기업 CEO가 자사의 이익을 위해 제시한 방안을 우리 정부가 받아들일 경우 이는 특정 외국 기업의 민원을 들어주기 위한 조치에 불과하기 때문에 대화의 장에 나서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 박 대통령을 수행한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 애커슨 회장의 발언을 놓고 `법원이 보너스 등이 통상 임금에 포함된다는 결정을 내려 수출 경쟁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데 대해서는 '국가적 자존심을 훼손하는 발언'이라고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 고용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통상임금 문제는 이미 쟁점으로 부각된 상황이기 때문에 노사정이 시급히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해야 하는 중대 사안"이라고 말했다.
■ 근로시간 세계 1위 한국
○ ‘공휴일과 일요일이 겹치면 평일에 하루를 더 쉰다’는 개념의 대체휴일제 도입을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직장인들에게는 희소식이지만 기업을 운영하는 이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찬반이 뜨겁다. 제도 도입을 찬성하는 쪽은 국내 근로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높기 때문에 근로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휴일이 더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반면 재계는 현재도 우리나라 공휴일 수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충분히 많다는 점을 앞세워 반대한다. 인건비 상승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 대체휴일제를 둘러싼 논쟁은 한국 직장인들의 휴가 문화와도 그대로 이어진다. 한국 기업은 근로시간은 많고 휴가 사용 빈도는 낮은, 전형적인 개도국형 직장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인의 ‘여가’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업무와 휴가에 대한 접근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할 시점이라는 주장을 내놓는다.
○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대체휴일제를 찬성하는 분위기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국민의 80% 이상이 찬성한다고 밝혔다. 한 취업 포털에서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94%의 찬성률이 나오기도 했다. ‘찬성’ 입장의 요지는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대체공휴일제와 요일지정공휴일제를 시행하고 있다는 점과 여가 문화와 관련된 새로운 업종과 일자리가 생겨나 내수 진작에도 도움이 된다는 근거를 든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측은 “근무시간을 기준으로 봤을 때 연평균으로는 약 18일을 더 일하고 있는 셈이다. 장시간 근로로 인해 업무 스트레스와 근로 관련 질병이 증가하고 업무 집중도 하락, 일과 생활의 심각한 불균형으로 국민 행복까지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주장한다.
○ 반면 기업과 재계 단체들은 떨떠름한 분위기다. 재계에서는 우리나라의 법정 공휴일은 16일로 선진국 평균(11일)보다 많고 연월차 휴가 또한 뒤지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당장 대체휴일제 얘기가 나오자마자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는 연간 32조4000억원이라는 경제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경총은 법안이 개정됐을 때 각 기업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인건비가 연간 4조3000억원, 조업일 수 감소로 인한 생산량 감소액이 최대 28조1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이호성 경총 상무는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이 선진국의 절반에 불과한 상황에서 휴일 확대는 업무는 똑같이 하고 임금만 더 받는 현상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 대체휴일제로 논란이 된 휴가일수만 놓고 보면 한국과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은 실제 큰 차이가 없다. 경총 집계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의 실질 공휴일(토·일요일과 겹치는 날 제외)은 14일로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의 평균 공휴일 11일보다 3일이 많다. 법정 연차휴가 역시 한국 기업은 평균 15~25일(경총 기준)로, 미국(10~25일), 영국·독일(20일), 프랑스(30일)와 비슷하거나 조금 적은 수준이다.
○ 하지만 여기에는 숨은 숫자가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공휴일을 요일제로 지정해 놓고 있다. 대체휴가제도 운영한다. 따라서 실제 ‘빨간 날’은 한국에 비해 2~3일 정도가 늘어나게 된다. 경총 기준에 따른다 해도 한국의 휴일이 많지는 않은 셈이다. 여기에 대부분 선진국 기업들과 공공기관은 크리스마스와 연이은 연말에 5일 정도를 쉬는 재량휴가를 갖는다. 미국과 독일은 연방 공휴일 외에 주 단위의 자체 휴일도 추가된다.
○ 공휴일과 직장의 휴가일수에 대한 단순 비교는 무의미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 휴가 사용빈도가 낮기 때문이다. 글로벌 온라인 여행사인 익스피디아가 전 세계 주요 22개국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 직장인들의 연간 유급휴가일수는 평균 10일로 22개국 중 가장 낮았다. 실제 사용 휴가일수도 평균 7일에 머물렀다. 일본(5일)만 우리보다 유급휴가 사용일수가 적었다. 영국, 프랑스는 100% 휴가를 다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한국 직장인들은 휴가를 쓰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업무 때문(67%)’이라고 답했다. 지난해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에서도 한국 전체 근로자의 연차휴가 사용률은 50%에도 미치지 못했다. 주어진 평균 연차휴가인 15.3일 중 7.1일만 사용했다. 이처럼 휴가 사용률이 낮은 이유는 직장 내 경직된 분위기가 꼽혔다. 업무 압박이 심하고 상사 눈치를 보느라 휴가를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 무엇보다 한국 근로자들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것은 업무시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연간 평균 근무시간은 2193시간으로 조사 대상 국가들 중 단연 1위다(그래프 참조). 정부가 집계한 지난 2011년 주당 평균 노동시간에서도 한국은 44.6시간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길다. 단순 계산으로 OECD 평균에 비해 일 년에 20일 가까이를 더 일하는 셈이다. ‘대한민국은 직장인의 무덤’ ‘한국 직장인은 쉬고 싶다’라는 푸념이 나올 만한 현실이다.
○ 같은 이유로 여가를 늘려야 한다는 쪽에서는 ‘노동시간을 줄여, 여가를 늘리면 생산성 향상과 내수 경기 진작의 선순환 효과가 생길 것’이라고 주장한다. 장후석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노동시간을 계속해서 기록하고 있는 국가로 삶의 질 측면에서도 더 이상 이를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 대체휴일제 등을 적극 도입해 노동시간을 줄이고 근로자의 삶의 여유를 회복시켜 현장에서의 창의성 발현을 가져오고 다시 생산 증가로 연결되는 창의적인 생산성 향상을 추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이 휴가에 인색해 주어진 연차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직원들이 과중한 업무로부터 벗어날 길은 대체휴일제 도입 또는 근로시간 단축밖에 없다는 것이다. 과도한 업무는 창조성 발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도 지목된다.
○ 우리나라 근로자의 노동시간이 다른 나라보다 불필요하게 길다는 점에는 대부분의 경제 전문가가 동의한다. 기업들이 그동안 산출량을 늘리기 위해 수당을 미끼로 노동시간을 늘리는 간편한 방식으로 대처해온 때문이다. 자연히 업무의 효율성은 높을 리 없다.
○ 컨설팅업체 타워스왓슨이 지난해 실시한 ‘글로벌 보상 및 인재 관리 조사’에 따르면 한국 직장인의 88%가 지난 3년 동안 정상 업무시간보다 긴 시간 근무했다고 답했다. 또 81%가 향후 3년도 정상 업무시간보다 연장 근무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타워스왓슨은 “한국 직장인의 일중독 현상이 심각한 수준이며, 개선될 가능성도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 반면 한국 직장인들이 스스로 느끼는 직장이나 일에 대한 몰입도는 상당히 낮은 수준이었다. 매우 몰입하고 있다고 대답한 직장인은 17%에 불과했다. 이는 중국(53%), 인도(48%)에 비해서도 낮은 수준이다. 절반에 가까운 42%가 업무여건도 열악하고 몰입도도 낮아 마지못해 직장에 다니고 있다고 답했다. KDI의 한 관계자는 “근로시간을 늘려 산출량을 늘리는 것은 한계에 봉착했다. 근로시간을 줄이고 여가를 늘리면서 생산성을 개선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 여가를 늘리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내수 진작 효과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첨예하다. 대체휴일제만 당장 실행해도 연간 24조원의 경제 효과에 11만개의 일자리가 생겨난다는 주장과 기업들의 부담만 연 32조원에 이를 것이란 목소리가 맞선다. 찬성 쪽은 “민간 소비가 늘어나 내수가 활성화된다”는 반면, 반대 진영에선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이 늘고 일용직과 자영업자들은 혜택을 누리기 힘들다”고 강조한다.
○ 가장 비근한 사례는 2004년 7월 주 5일 근무제가 처음 실시됐을 때의 연구가 있다. LG경제연구원은 지난 2004년 7월 1일 주 5일 근무제가 처음 시행된 이후 가계의 여가 관련 소비 지출이 3.4% 증가했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주 5일 근무제 시행 전인 2003년 3분기부터 2004년 1분기까지와 시행 후인 2004년 3분기부터 2005년 1분기까지를 비교한 결과다. 앞의 KDI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현재 거론되는 경제 효과나 기업 비용 증가 부담은 명확한 근거 없이 단순 설문을 통한 결과로 보인다”면서 “민간 소비는 일부 늘어날 가능성이 높고, 기업들 입장에서도 임금 부담은 그대로 지고 산출량은 떨어지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 결국 여가를 통해 경제 효과를 보기 위해선 휴가는 늘리되 생산성 향상을 통해 이를 보완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학계 일부에선 초과 근로시간을 법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는 운수 등 일부 업종에만 제한이 있다. 초과 근로 시 금전보다 대체휴가로 보상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대기업의 한 인사 담당자는 “수당을 낮춰 직원들의 근로시간 늘리기 유인을 줄이고 대신 대체휴가를 지급하면 비용을 늘리지 않고, 삶의 질 향상과 업무 집중도 향상을 이룰 수 있다”고 밝혔다.
○ 기업들은 무엇보다 근무시간 중 불필요한 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업무와 관계없이 느슨하게 보내는 시간을 줄이거나 업무 숙련도를 높이고, 일하는 환경을 개선해 같은 시간을 일하더라도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실제 여가가 임직원 생산성 향상, 분위기 쇄신 등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부정적 효과를 간과할 수는 없다. 자칫 여가가 기업 부담을 가중시키고 국가 경쟁력까지 떨어뜨리는 주범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시리얼 제조업체 켈로그는 여가를 늘렸다가 실패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 회사는 근로시간을 8시간에서 6시간으로 줄여도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란 확신이 있었지만 실제 직원들의 노동이 통제되지 않고 비용 부담만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6시간 근무제를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 2000년대 초반 독일 자동차 메이커 폭스바겐도 직원 복지를 늘리겠다며 근로시간을 줄였다가 심각한 경영난에 처하게 됐다. 당시 해외 공장 이전까지 준비했던 폭스바겐은 노조 합의하에 고용 유연성을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 프랑스는 여가를 늘렸다가 경제 성장에 발목이 잡힌 국가로 유명하다. 1990년대 후반 프랑스는 주 39시간 근무도 버겁다며 35시간으로 단축하는 정책을 펼치면서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인력이 부족해진 기업은 신규 채용을 확대할 것이다”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가 의도한 일자리 창출 효과는 미미한 반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은 증가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 전문가들도 대체휴일제를 포함해 여가를 늘려야 하는지와 관련해서는 입장이 갈린다. 신중해야 된다는 주장을 펼치는 전문가들은 여가가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직원들이 게을러져 현재의 생산성 수준마저도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3월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시행한 현대차는 근무시간이 줄었지만 국내 공장 생산성은 해외 공장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 한 대를 생산하기 위해 투입되는 시간(HPV)이 미국 앨라배마 공장은 14.6시간인 반면 국내 공장은 31.3시간에 달했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어 “국내 연평균 노동시간(2200시간)이 OECD 평균인 1700시간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노동시간은 어떻게 측정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야근, 특근 등을 엿가락 늘리듯이 늘리는 바람에 노동시간이 길어 보일 수도 있다”고 했다.
○ 여가를 양적으로 늘리는 게 의미가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백필규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여가는 물리적으로 쉬는 시간이라는 양적 측면이 아니라 스스로 여가(즐거움)라고 느끼는 시간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해진 근로시간 내에서 자기 통제감을 최대화할 수 있도록 근로자 스스로 시간 배분을 할 수 있게 하는 유연 노동의 정착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 고령화와 저출산 역시 양적 노동 대신 질적 노동으로의 전환을 요구한다.25~49세의 핵심 노동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장시간 근로는 생산성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다. KDI 관계자는 “여가만 무조건 늘리면 생산량과 잠재성장률 하락은 불가피하다. 일하는 시간을 줄이더라도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 사회적 재교육을 통한 노동생산성 증대와 기업의 투자효율성 제고 등을 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