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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복음신학원 화요산상기도회 설교>
1. 일시: 2022년 9월 27일 화요일 오후 4:30
2. 장소: 아멘산 정상
3. 신학원 주소: 서울시 은평구 은평로 187-1(이화빌딩6층)
4. 설교제목: 엘리야가 하나님의 산에서 받은 응답
5. 설교 본문: 열왕기상 19:8~18
6. 설교 목적:
매주 화요산상기도회를 갖는 신학생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사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기회를 갖도록 돕기 위함이다. 엘리야가 호렙산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에서 나는 두 가지를 발견한다. 하나는, 엘리야가 하나님을 위해 염려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이 자신의 계획을 계시하신다는 점이다.
기도는 결국 하나님과의 만남이며, 하나님과의 만남은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고 그 위대한 계획에 자신을 드리는 결단을 고백하는 것이다.
나는 이 설교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계시되는 하나님의 뜻은 결국 하나님이 이 세상을 어떻게 경영하시는지에 대하여 보여주는 위대한 계획이라고 강조할 것이다. 그 위대한 계획이 바로 하나님의 경륜이다. 그리고 그 위대한 경륜에 동참하라고 우리는 부르심을 받았음을 확인하는 작업이 바로 기도다.
7. 준비물: 도서(하나님의 경륜) 100권
8. 설교 개요
① 엘리야의 인생목표
② 나만 남았나이다!
③ 엘리야가 하나님의 산에서 받은 응답
④ 세상을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
……………………………
1. 엘리야의 인생목표
25년 전, 1997년 저는 군포에 있는 한세대신학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한세대학교의 원래 학교명은 순신대학교였습니다. 순복음신학을 가르치는 대학교요 신학대학원이라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제게 신학생이 된다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었습니다. 비록 변두리에 있지만 신학교 강의실에 앉아서 수업을 받는 자신을 생각할 때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일이 이제 이루어지는구나’ 하는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부터 잘 배워서 꼭 주님이 기뻐하시는 목회자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것은 제 인생 최대의 목표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3년 동안의 신학생 시절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25년의 세월이 지나 이렇게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 앞에서 함께 기도하고 기도를 돕는 자리에 선다고 하니 다시 한번 주님의 부르심과 인도하심에 대하여 경외하는 마음이 듭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메시지는,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신학생으로서 이 산에 올라와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응답에 대한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하나님의 산에 올랐던 일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엘리야는 누구입니까?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기도를 드릴 때 불로써 응답을 받은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갈멜산에 올라간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대적자들과 일전을 벌이기 위함입니다. 엘리야 시대에 하나님의 대적자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우상숭배자들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잘못된 길로 이끈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과 싸우기 위해서 엘리야는 자신의 목숨을 걸었을 것입니다.
엘리야가 이처럼 목숨을 건 싸움에 임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이스라엘의 문제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의 원인이 백성의 지도자인 아합왕과 그의 부인 이세벨에게 있다는 것을 엘리야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그 메시지를 들고 엘리야는 아합왕 앞에 가서 전했습니다.
엘리야의 메시지는 앞으로 수년동안 우로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재난과 심판 예고였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엘리야는 산속 은밀한 곳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그는 이방 나라 시돈 땅의 사르밧 과부에게 가서 피신하고 돌봄의 섬김을 받았습니다. 엘리야가 이처럼 고통을 겪으며 모험을 하는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 그것은 엘리야의 인생목표였습니다. 그리고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에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우상숭배를 완전히 몰아내고 그 백성을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는 일입니다. 바로 그 일을 위하여 엘리야는 자신의 삶을 걸었습니다.
여기에 올라온 여러분과 저도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삶을 바치겠다는 결단을 한 점에서는 엘리야와 같은 인생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지금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을 받습니다. 오늘 저는 엘리야가 하나님의 산에서 받은 응답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 전에 먼저 엘리야가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의 산에 올라왔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2. 나만 남았나이다!
엘리야는 지난 3년간 이스라엘 나라에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우상숭배를 몰아내고 참 이스라엘을 세우기 위해서 열심히 사역을 했습니다. 고생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대로 하늘에서는 지난 3년 6개월동안 우로가 내리지 않았으며, 그의 기도대로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도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과연 살아계심을 분명히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갈멜산에서 신앙의 대결을 승리로 이끈 후에 구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알과 아세라 제사장 850명을 모두 죽이라고 명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에서 우상숭배를 완전히 몰아내고 참 이스라엘 백성이 되기를 엘리야는 바라고 또 바랐을 것입니다. 그것이 그의 인생목표요 기도제목이니까요. 그것은 이스라엘의 완전한 복음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알과 이세벨은 꿈쩍 하지 않고 사람을 보내와 엘리야를 반드시 죽일 것이라고 알렸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아직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고 있는 이스라엘의 복음화가 좌절되었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엘리야는 그 길로 왕궁으로부터 멀리 달아났습니다. 그는 남쪽으로 달아나다가 광야에 이르러 한 로뎀나무 아래서 더 이상 갈 수 없었습니다(왕상 19:4).
엘리야는 어쩌면 탈진했을 것입니다. 그 로뎀나무 아래서 엘리야는 이제 절망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의 기도를 공동번역성경은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야훼여, 이제 다 끝났습니다.
저의 목숨을 거두어주십시오.
선조들보다 나을 것 없는 못난 놈입니다.”
열왕기상 19:4, 공동번역성경
엘리야의 기도를 들어보면 그가 얼마나 상심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자기 선조들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의 선조들은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습니다. 여로보암은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온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의 길로 접어들게 한 장본인입니다. 엘리야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잘못과 악습을 고쳐 바르게 세우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확신했던 것 같습니다.
엘리야라는 이름을 보아도 우리 하나님은 야훼시라는 뜻이 아닙니까? 다른 신들이 어떻게 우리 하나님이 되겠는가! 오직 하나님 여호와만이 우리 하나님이시라고 선포하고 증명하여 온 이스라엘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 그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토록 인내하고 그토록 열정적으로 사명을 위해 일했지만 헛일이 되었다고 엘리야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 조상들처럼 자기도 이런 상황을 어쩔 수 없다고 낙심하는 것 아닐까요?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셔서 탈진한 엘리야를 먹이고 마시게 하셨습니다. 기운을 차린 엘리야는 사십주야를 걸어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습니다. 어쩌면 엘리야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산에 가서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산에서 엘리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의 기도는 한마디로 말해서 ‘나만 남았나이다’는 것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종들을 죽이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제단을 헐어버리고 우상숭배의 길에 빠져버렸다는 것입니다. 그가 열심히 일했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고 하소연합니다. 엘리야의 기도는 정말로 하나님의 백성을 염려하는 것이며, 어쩌면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 염려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엘리야가 처한 상황은 오늘 우리들의 상황과 유사합니다. 오늘 우리도 민족복음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무너져가는 교회들을 다시 일으키고 싶습니다. 다음 세대에서도 복음이 든든하게 세워지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바람이 무효가 되는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때에 신학공부를 하는 자신이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우리들도 교회를 위해 기도하면서 동시에 염려합니다. 우리의 염려는 엘리야처럼 ‘하나님, 이제 어떻게 하시렵니까?’ 하고 기도하는 것과 유사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기도는 자신의 문제로부터 출발하지만 때로는 그 기도가 하나님까지 걱정해드리는 ‘오지랖’으로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기도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기도의 산으로 인도하십니다. 엘리야의 경우에는 먹을 것을 제공하시면서까지 하나님의 산으로 안내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산에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사실 예수님도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을 산에서 기다리셨습니다. 예수님이 장사되신 후에 무덤에 간 여인들은 천사를 만났습니다. 그 때 천사가 여인들에게 전해준 말은 제자들에게 전하는 말이었습니다:
5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마태복음 28:5~7
그 이후로 열한 제자가 예수님이 명하시던 산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서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처럼 말입니다.
3. 엘리야가 하나님의 산에서 받은 응답
하나님은 엘리야를 하나님의 산으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갈릴리에 있는 그 산으로 오라고 명하시고 거기서 기다리셨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자기 종들을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종들을 기다리시는 이유는 그들에게 무언가 보여주시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보아야 하나님의 종들은 자신들의 사명을 완수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보여주신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는 강력한 바람입니다. 그것은 땅을 흔드는 지진과 활활 타오르는 불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모든 일이 지나고 잠잠해질 때 하나님은 미세한 음성으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산에서 기도의 사람이 받을 응답은 어떤 것일까요? 오늘 설교 제목은 ‘엘리야가 하나님의 산에서 받은 응답’입니다. 그 응답은 첫째로 하나님이 어떤 권세와 능력을 가지신 분인지를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산에서 산이 갈라지고 땅이 흔들리며 바위가 부셔지며 불이 활활 타오르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주는 성경의 표현입니다. 야곱으로 말하면, 하늘로 이어진 사닥다리와 하나님의 보좌를 본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의 산에서 제자들을 기다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시기 전에 그들에게 부활하신 자신의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셨다!’(마 28:18). 이 말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대권을 받으러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로마제국의 강철통치 아래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로마 황제의 보좌보다 더 크고 위대한 하늘의 보좌에서 지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으로 통치하고 계신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세상에 대리인으로 보내실 때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지를 먼저 보여주십니다. 그렇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자기 종들을 하나님의 산으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거기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산에 와서 받을 첫번째 응답은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위대하신 분인지를 기도 가운데 깨닫는 것입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자신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교회가 그렇게 하나님을 만나라고 기도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16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에베소서 1:16~19
사도 바울이 교회를 향하여 기도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도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부르신 소망을 알고, 우리가 물려받을 기업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며,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베푸시는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아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도 가운데 깨달아야 성도는 성도답게 살 수 있을 것이며, 주의 종들은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기도 가운데 우리가 받는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산에서 그 응답을 받고 다시 나머지 사역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갈릴리의 산에서 기다리시던 예수님을 뵙고 그 권세가 어떤 것인지 확인했기에 세상에 담대하게 예수는 주님이시며 그리스도시라고 선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들도 그래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권세가 있습니다. 그 권세 앞에서 때로 우리는 아주 미약한 존재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시내에 있는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들에 비하면 작고 볼품없는 예배당과 월세를 내는 교회를 생각해 보면 그런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대학로와 야구장에 수많은 청춘남녀들을 보면서 교회 안에 찾기 힘든 청년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초라하고 미약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아니 자신이 가진 것과 능력을 생각하면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엘리야를 하나님의 산으로 부르시고, 예수님도 제자들을 갈릴리의 그 산으로 오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이 자신을 보여주시려는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기도의 산입니다. 오늘 우리가 와 있는 바로 이곳입니다. 주님이 벌써부터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4. 세상을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
하나님의 응답은 첫째로 하나님을 보여주시는 것이며, 두번째로는 구체적으로 할 일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엘리야에게는 세 사람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세 사람은 누구입니까? 하나는 다메섹에 있는 아람 사람 하사엘입니다. 다른 한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 님시의 아들 예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은 엘리사입니다(왕상 19:15~17).
기름을 붓는다는 말은 하나님이 그대를 통하여 자기의 뜻을 이루시려고 택하셨다고 알려주는 행위입니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를 택하여 이스라엘을 인도할 목자가 되게 하시려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고레스 왕을 택하셔서 포로생활하던 이스라엘을 해방하시고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사 45:1).
하나님은 기름부으시는 분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경영하실 때 어떤 사람들을 택하셔서 자기의 일을 이루신다는 뜻입니다. 그 사람들은 왕이나 제사장, 또는 선지자일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두 명의 이스라엘 사람에게 기름을 붓게 하시고 한 사람의 이방인에게 기름을 붓게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만인의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하사엘과 예후와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명하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지금 심하게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아합과 이세벨,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을 심판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예언대로 하사엘은 훗날 아람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침공하였고 그 전쟁에서 아합왕은 활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때 아합은 자신을 일반 병사로 변장했어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왕상 22:29~37). 예후는 이세벨을 죽여 그의 시체를 개들의 밥이 되게 했습니다(왕하 9:30~37). 그리고 엘리사는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들을 지키시는 분임을 자국의 백성들과 이웃 나라들이 분명히 알 수 있게 보여주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발견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하나님은 온 세상을 지으셨고 만물을 붙드시고 만국을 통치하시는 분입니다. 만국을 통치하시는 분이시기에 우리는 그런 분을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한 시도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에만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만을 생각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만물과 만국을 생각하시고 다스리십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만물은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하나님이 완성하실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경이 세상을 통치하시고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깨닫고 설교를 하고 책으로 엮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저의 첫번째 책, ‘성경이 보여주는 위대한 서사시,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유는 그의 나라와 민족을 크고 위대하게 세우시며 그를 통해서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신 까닭도 그들을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을 경배하며 세상을 축복하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사람을 가리켜 화목하게 하는 직분과 말씀을 받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고후 5:18~19).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부르신 까닭은 세상을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세상을 경영하시고 마침내 그 경영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농부로 말하면 씨를 뿌리고 가꾸다가 마침내 풍성한 소출을 거두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세상을 생명 가득한 곳이 되게 하시려고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담 부부와 노아 가족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를 통하여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이라고 소개했습니다(엡 1:23).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를 통하여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려면 그 복이 얼마나 충만해야 하겠습니까?
또한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로 살수 있도록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집을 짓게 하시고 함께하셨으며 그들에게 율법을 주셔서 세계의 모델국가가 되는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이 세상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시고 그 사랑이 만백성에게 전달되도록 교회를 대리인으로 세우셨습니다.
이렇게 보면 교회가 맡은 일은 하나님의 위대한 경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였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우심을 입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때때로 이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경륜과 계획을 잊어버리고 이 세상의 권력에 눌려 좌절할 수도 있습니다. 엘리야가 그랬고 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한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도 냉엄한 시장의 원리가 작동되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그렇게 주눅들어 살 때가 많습니다.
바로 그런 우리를 하나님이 하나님의 산으로 부르십니다. 신학교를 선지동산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하나님의 경륜을 성경을 통해 배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곳 여러분이 기도하는 동산이 하나님의 산인 까닭은 이곳에서 하나님이 기도 가운데 여러분을 만나시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좌절한 사람이라야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고대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엘리야처럼 절감했기에 하나님의 산에 오릅니다.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을 다시 만나며 하나님이 어떻게 온 세상을 통치하시며, 장차 어떻게 하실지를 깨닫고 기도의 자리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그는 기도하러 올 때 지치고 낙심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늘 그렇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에는 더 이상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경륜을 발견했고 그 뜻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 일에 자신이 부름 받았으며 자신이 할 일이 있음을 감사하며 하산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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