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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와 은혜 (고후9:6-15절)
인간사회는 그 어떠한 제도 하에 살든지 부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 또 지위가 높은 사람과 천하고 낮은 사람이 섞여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믿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큰 성공과 풍성한 축복을 주셔서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병든 사람들을 구제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레25:35-37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빈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거류민이나 동거인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되 너는 그에게 이자를 받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 것인즉 너는 그에게 이자를 위하여 돈을 꾸어 주지 말고 이익을 위하여 네 양식을 꾸어 주지 말라.
*신15:11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그러므로 축복의 은혜를 받은 이유는 바로 구제를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 구제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풍성한 축복의 은혜를 우리가 담대하게 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일이 잘 되는 사회는 평안하고 질서가 있고 축복 받은 사회가 됩니다.
그러나 부자는 자꾸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자꾸 가난하게 되어 빈부의 격차가 벌어지며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과 좋은 것을 함께 나누기를 싫어하면 그러한 사회는 불안한 사회가 되고 혼돈의 사회가 되고 고통과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오는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고후9: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 하나님께서는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넉넉하고 풍성한 축복을 주셔서 믿는 자들이 모두 다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구제와 착한 일을 넘치게 하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인 것입니다.
오늘 날 주를 믿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구제하는 대신에 자신이 구제를 받으려고 하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대신에 자기가 도움을 받으려고 하고, 다른 사람을 붙잡아 주는 대신에 도리어 자신을 붙잡아 달라고 손을 내밀게 된다면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신앙인 것입니다.
*창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부하고 막강하게 넘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우리 삶의 자원으로 삼고 하나님 앞에서 입을 넓게 열어서 하나님의 축복을 넘치게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모든 생활과 환경에서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병든 사람들을 도와주는 축복의 근원이 되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이와 같은 성도들이 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축복의 근원이 될 수 있을까요.
그 문제에 대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의 뜻과 방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무궁하신 자원을 넘치는 축복으로 받기 위해서는 심고 거두는 법칙을 알고 실천해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본격적으로 바쁜 농사철이 다가왔습니다. 모든 농부들은 심고 거두는 법칙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농부라도 붙잡고 물어보십시오. ‘당신은 왜 땅에 씨앗을 심습니까.’ 그러면 농부가 대답하기를 ‘심지 아니하고 어떻게 거둘 수가 있나요.’ 그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농부들은 모두 다 하나님의 자연법칙인 심고 거두는 법칙을 알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손바닥만한 땅이라도 갈아서 거름을 주고 심어야만 됩니다. 벼농사도 못자리를 만들고 모를 논에 심어야만 가을에 곡식을 거둘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자연의 법칙과 영적인 법칙이 동일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법칙이 자연의 법칙과 동일하지 않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을 가끔 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자연의 법칙에 심고 거두는 것처럼 영적인 법칙에도 반드시 심어야 우리가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히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고후8: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갈6:7-8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그래서 콩을 심으면 반드시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적인 것을 심으면 썩어질 육체의 것으로 거두고 영적인 것을 심으면 신령한 것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연의 법칙에도 보면 농부가 옥토에 씨를 뿌릴 때 인색한 사람이 있고 넉넉한 사람이 있습니다. 씨앗을 과도히 아껴서 인색하게 씨앗을 파종하면 큰 수확을 기대할 수 없게 됩니다. 땅이 아무리 좋아도 씨앗을 적당히 뿌려 주지 않으면 그 해 농사는 흉작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잠11:24-25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사람이 인색한 마음을 가지고 씨를 뿌린다든지 억지로 하는 마음으로 씨를 뿌린다면 하나님께서 믿음의 기적을 일으켜 주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서 연보를 드릴 때나 가난한 사람을 도와줄 때 마음이 인색해서 아까워하는 생각으로 도와주고, 그러고 난 다음에 늘 마음에 괴로움을 가진다면 그 씨는 발효가 되지 못하고 말라 버릴 것입니다.
*고후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하나님 앞에 믿음의 씨앗을 심을 때 내 마음에 즐거운 마음으로 심어야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스스로 우러나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심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왜 나는 믿음의 씨앗을 심었는데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지 않나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음의 씨앗을 심을 때 인색한 마음으로 심는다든지, 억지로 심어놓고 난 다음에 마음에 원망 불평을 가지고서 기다리면 잡초만 무성해지고 열매를 맺지를 않습니다.
내가 진실한 마음으로 심을 때 내 마음에 즐거운 마음이 있어서 심었느냐, 내 마음에 자원하는 마음이 있어서 하나님께 심었느냐, 이 사실을 단단히 살펴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적게 내고도 굉장히 인색한 마음이 생기고 억지로 하는 마음이 생기면 그는 믿음의 그릇이 적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많이 내고도 마음이 즐거움으로 넘치고 더 내고 싶은 자원하는 마음이 생길 때 이는 믿음의 그릇이 큰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의 분량을 좇아서 축복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하고 통하면 기적이 일어나지만 사람하고 통하면 흥이 납니다. 교회가 자꾸 사회와 통해야지요.’
정성진 목사가 담임을 맡고 있는 거룩한빛광성교회는 지역에서 사회사업을 많이 하기로 이름난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강좌 150여 개,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무료진료소, 노인복지센터, 재활용품 매장 ‘천사들의 가게’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돋보이는 사업은 ‘한국판 그라민 은행’이라고 불리는 소액대출 지원 활동입니다. 그라민 은행은 2006년도 노벨 평화상을 받은 방글라데시 무함마드 유누스가 설립한 빈민구제를 위한 소액대출 전문 은행입니다.
정 목사는 1997년 이 지역에서 목회를 시작하면서부터 빈민구제 활동을 벌였습니다. 처음에는 절대빈곤층에 소액을 무상 지원했지만 빈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2007년부터는 저소득 여성 등 취약계층의 창업을 돕는 소액대출을 시작했습니다. 교회복지법인 ‘해피월드’에 들어온 후원금으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간 21명에게 100만∼1000만 원씩 1억4500만 원을 지원했습니다.
무이자, 무담보 조건이며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고 대출 받은 사람 중 희망자에 한해 연 3% 이내의 후원금을 받았습니다. 2009년부터는 휴면예금과 대기업 등의 출연금으로 조성한 ‘미소금융 중앙재단’에서 기금을 지원받아 소상공인에게 1인당 평균 2000만 원씩을 지원하는 소액대출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2009∼2010년 상반기에 105명에게 약 21억 원을 지원했습니다.
정 목사는 ‘2006년 당시 유누스가 그라민 은행으로 노벨상을 받았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빈곤 구제의 실마리를 찾았다면서 예수 초기의 교회처럼 끊임없는 사회활동이 한국 기독교를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는 1980년대 초 충북 음성군 금왕읍의 폐광촌에서 전도사로 사역 하면서부터 빈곤의 문제를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그곳에서 빈곤과 무지와 범죄가 한 형제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빈곤 해결을 위해 목사로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게 되었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는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대출받은 이들 중 때로는 상환을 안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주다가 망해도 성공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회 속으로 계속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한국 교회가 1970, 80년대 부흥기에 신자 수를 늘리면서 교회 안으로만 들어가고 사회와 유리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교회가 내부에 안주해서 비판의 대상이 됐어요.’
그는 예수 초기의 교회처럼 끊임없는 사회활동이 한국 기독교를 살리는 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를 찾아간 기자가 ‘너무 사회활동에 매달려 정작 목회에는 소홀한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은 마음속에 선한 마음이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른다.’며 ‘그 마음을 맡아 써주는 사람이 목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광성교회는 여러 사업으로 부채가 300억 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래도 교인들이 행복해하니 별 걱정은 없습니다.’라며 목사님은 호탕하게 웃는답니다.
그의 사회구제 활동 종착지는 북한 돕기라고 합니다. 그는 외국 선교단체를 지원해 북한에 생리대 공장과 노인요양원을 세워 동포들을 돕고 있습니다. ‘현 남북관계상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중단하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북한 지원을 강조합니다.
그의 집무실 책상 위에는 ‘아사교회생(我死敎會生)’이라고 쓴 편액이 있습니다.‘내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라는 뜻이며 ‘교회와 사회를 위해 살아야겠다는 자신의 신학적 믿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잠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리라.
예수 믿는 사람은 남에게 꾸어 줄지라도 남에게 꾸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무궁무진한 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심고 거두는 법칙을 주셨는데 왜 우리가 낭패와 실망을 당하겠습니까.
문전옥답을 가지고서 먹을 양식이 없는 사람은 자기가 게을러서 심고 거두지 않기 때문에 가난한 것이요, 이러한 사람에게는 동정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땅마지기가 없어서, 심을 곳이 없어서 헐벗고 굶주려야 동정이라도 할 것 아닙니까.
이와 같이 우리가 만유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축복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심고 거두는 법칙을 가르쳐 준 이상 우리가 심어서 거두지 못한다면 하나님 앞에 무슨 변명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모두 다 심어서 30배, 60배, 100배로 생명을 얻되 넘치게 수확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2. 물질의 축복은 은혜냐, 저주냐, 이 사실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너무나 오랜 세월동안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설교하기를 축복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복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것은 기복신앙이다. 그러므로 축복을 받고 성공을 받으면 그것은 일종의 죄를 짓는 것과 같다. 라고 공격을 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은 마음에 오히려 복을 받았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잘 깨닫지 못하고 설교를 잘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축복은 하나님의 은혜이지 저주가 아닌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부요와 성공은 저주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 믿지 않고 물질을 많이 가지고 크게 성공해서 '나는 하나님이 필요 없다. 하나님을 믿지 말고 내 주먹을 믿어라.'고 하는 사람은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부귀영화 공명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모든 인생은 풀과 같고 그 영화는 풀의 꽃과 같아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지고 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살면 70이요, 강건하면 불과 80인데 그 동안에 이 육신의 장막 속에 살다가 이 장막이 무너질 때 우리는 하나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다 얻고도 자기 목숨하나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자기 목숨과 무엇과 바꾸겠냐.’ 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 없이 부귀영화 공명을 누려서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다는 것은 그 부귀영화 공명이 가장 처참한 저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 믿고 순종하면서 부귀와 영화와 공명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잠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겸손함으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재물과 영광과 생명으로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시103:1-3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하늘에서 은택의 비가 임하면 메마른 땅이 다시 살아나고 모든 생물들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비는 하늘에서 은택으로 임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말씀하기를 '하나님의 은택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잊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죄를 모두 용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용서해 준다고 하니까 무조건하고 용서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의 죄는 용서해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고 하셨음으로 회개하는 사람에게 용서해 주시지 회개를 안 하는 사람을 무조건으로, 일방적으로 용서해 주지는 않는 것입니다.
말기 암으로 길어야 1∼2년 살게 될 것이라는 진단을 받은 분이 있었습니다. 그와 그의 가족들은 크게 낙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 마음을 추스르고 남은 시간을 후회 없이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제일 먼저 그는 그동안 이런저런 일들로 마음 상하거나 상처를 주었던 이웃들을 만나 화해를 하였습니다. 용서하기도 하고 용서를 구하기도 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관용과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두 번째로 그는 믿음 생활에 힘을 썼습니다. 모든 예배와 기도, 교회 봉사를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세 번째로 그는 남을 돕는 일을 했습니다. 도움을 받다가 죽지 말고 도움을 주며 보람 있게 죽음을 맞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의 삶의 자세는 진지했고 모든 사람이 그의 변화된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는 당초 진단보다 훨씬 긴 5년을 더 살다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그의 장례는 모든 성도, 이웃들의 눈물과 축복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지금도 그의 아름다웠던 마지막 삶은 교회와 성도들의 가슴속에 잔잔한 감동으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본문에는 나의 모든 병을 고쳐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크고 작은 병을 고쳐주시겠다고 이미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의학이 아무리 발달되어도 인간의 힘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므로 주님을 잘 섬기고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매달리면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서 크고 작은 모든 병을 고쳐주겠다고 약속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이상 우리는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매달릴 수 있는 근거가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믿고 하나님께 엎드려서 기도할 때 이 말씀을 통하여 믿음이 생기고 믿음을 통하여 병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에는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해 주겠다'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쁜 것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자식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자가 있겠는가.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식에게 좋을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지 않겠느냐.’ 고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택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은택을 우리보고 잊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잊어버리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지 않고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시고 못 살게 구는 하나님이라고 잘못 전도하고 또 잘못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고후9: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넉넉함은 죄가 아닌 것입니다.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해야 우리가 남을 도와줄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너무 오랜 세월동안 교회는 성공과 축복을 세속적이고 죄악시 해왔습니다. 모든 일에 항상 가난한 것이 도덕적이요 신령한 것이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진실로 마귀가 교회를 파멸시키려고 전도를 못하게 하고 사랑의 실천을 못하게 하기 위해서 잘못 가르친 것입니다.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는 것이 죄는 아닙니다. 또 그 가운에 낙심하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나가는 것도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로 하나님의 뜻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개인이 자기의 만족적 경건은 교만이요 악입니다.
‘나는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하지만 거룩, 거룩, 거룩하게 산다. 과부들이 굶주리고 고아들이 길거리에 쏘다녀도 내가 상관할 것이 없다. 나 혼자만 거룩, 거룩, 거룩하게 살다가 천국 간다.’
이러한 것은 교만이요 악인 것입니다. 내가 뼈 빠지게 일을 해서라도 하나님께 복을 받아서 과부를 돌보아 주고 고아를 도와주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 참된 경건인 것입니다.
*잠14: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
우리 한국 속담에도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 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참된 경건이란 야고보서의 과부와 고아를 그 환난 가운데 도와주는 것 이것이 참된 경건이지 남을 도와주기는커녕 늘 달라고 손이나 내밀고 자기 잘난 체 하고 사람들 비난이나 공격이나 하고 자기 혼자 거룩, 거룩하면 이것은 죄악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참된 하나님의 은혜란 여러분이 축복을 받아서 도와주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지금 급속도로 산업화되고 도시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어느 나라든지 피할 수 없는 하나의 몸부림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은 부한 자는 많이 부해지고 가난한 자는 지극히 가난하고 중산층이 대단히 얇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진실로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부한 자가 더 많이 가난한 자와 나누어주는 사회가 되어야 이 사회가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부한 자는 자꾸 부하게만 되고 가난한 사람은 자꾸 가난하게 되면 이 사회는 나중에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그렇습니다.
교회는 부한 자와 가난한 자의 사이에 서서 어찌하던지 예수 그리스도를 말로만 전할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나아가서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자들을 직접으로 먹이고 입히고 돌보아 주고 예수 사랑을 전달해야 되는 것입니다.
말로만 주의 사랑을 전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너 배 불러라, 너 옷을 따뜻하게 입어라 하면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교회와 성도들은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받아서 많은 연보를 드리고 많은 헌금을 해서 그 돈으로 우리 사회에 저소득층에 있는 소외당하고 버림받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하여 도와주고 협조하는 일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위해서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3. 구제는 은혜요, 감사요, 아름다운 신앙의 미덕인 것입니다.
*고후9:9 기록된 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가난한 자들을 돕는 것이 하나님의 의가 된다는 것입니다.
*시112:9 그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히 있고 그의 뿔이 영광중에 들리리로다.
의인은 궁핍한 자의 필요를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것을 과감하게 나누어 주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의인의 행위를 기쁘게 보시고 그들의 위치를 더욱 높여서 권세와 영광으로 보상하십니다.
그런데 재물을 흩어서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려면 무엇이 있어야 나누어 주지 내게 아무 것도 없는데 무엇을 흩어서 가난한 사람에게 줄 수 있겠습니까.
옷이 두 벌 있어야 한 벌 나누어 줄 수 있고, 쌀도 두 되 있어야 한 되 나누어 줄 수 있지 아무 것도 없는데 어떻게 나누어 줍니까.
그러므로 나누어 주는 미덕이란 내가 하나님께 복을 받아 가지고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서 하나님의 의를 넘치게 하는 것입니다. 구제는 이와 같이 할 때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고후9:11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하나님께서 교인들을 부요하게 해주시는 것은 그들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돕게 하기 위함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후한 구제 연보를 한다면 그것은 자신들에게 의가 되고 구제를 받는 사람에게 유익이 되며 감동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왜냐하면 연보의 수혜자들이 그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고후9:12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로 말미암아 넘쳤느니라.
마음으로 드리는 구제 연보는 가난한 자들에게 베푸는 선행의 의미를 넘어 하나님께 드리는 자발적인 봉사 행위라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 대한 봉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의미로 가난한 성도들의 부족을 채워줄 뿐 만 아니라 그 도움을 받는 자들이 하나님께 넘치는 감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살게 되고 풍성하게 쓸 때 이것을 하나님께 드려서 성도들을 도와줄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독일의 사회심리학자 에릭 프롬(Erich Fromm)이 쓴 책으로 『소유냐 존재냐』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서두에서 쓰기를 ‘세월이 갈수록 혼란스럽고 인심이 사나운 이유는 사람들의 생각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잘못된 생각 중에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Having)이 행복인 것으로 그릇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임(Being)을 모르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바른 복에 대한 개념으로 성경이 가르쳐 주는 답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그 분 자체가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는 일이 복이 되는 것입니다.
*딤전1:11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
*딤전6: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오.
둘째로, 복은 ‘하나님께 바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는 영어로 복을 가르치는 단어인 Bless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Bless라는 단어는 피를 나타내는 Blood와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에 짐승을 잡아 그 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복으로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다른 사람의 삶을 도와주는 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르시기를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다른 사람들에게 베푸는 그 자체가 복이라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복이라고 하면 누군가로부터 받는 것으로 그릇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다쳤을 때 너희가 와 보았으며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받아 주었으며 내가 굶주릴 때 먹이고 목마를 때 마시우고 헐벗었을 때 입혔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언제 주님이 그러한 것을 보고 그렇게 했습니까.’ 라고 물었더니 주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 소자들 중에 지극히 작은 자를 위해서 해 준 것이 곧 나를 위해서 해 준 것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교회가 좋은 건물만 짓고 화려하게 내부나 장식하고 장엄한 예배만 본다고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우리가 모여서 예배드릴 수 있는 처소가 있으면 그 다음에 하나님의 축복과 도움을 받아서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다방면으로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을 전심으로 도울 때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성도들에게 축복을 부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축복은 이런 미덕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고후9:13 이 직무를 증거를 삼아 너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그들과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성도들이 하나님께 물질을 드림으로 그리스도 복음을 진실히 믿고 순종하는 증거가 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것은 곧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참 믿음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제 연보 행위는 우리들이 믿는 복음 안에서 믿음을 행동으로 고백한 것이며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을 보여준 것입니다.
*고후9:14-15 또 그들이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를 사모하느니라.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 사랑의 진실함은 하나님께 드림으로 표시가 되는 것이요, 또 타인을 섬기는 연보가 하나님께 영광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은혜를 입은 자가 은혜를 베푼 자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사모하게 되어서 교회 간에 유대가 돈독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에 대한 헌신적인 섬김은 위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고 자신에게는 중보의 기도를 받을 수 있는 동지를 얻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은 인간을 깨뜨리고 순종케 하며 신앙이 자라게 합니다. 그러나 신앙이 자랄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선하신 일을 이루기 위해서 하늘 문을 열고 축복을 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남에게 나누어 주고 꾸어주고 도와주는 일을 하도록 간절히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축복을 받는 것은 풍성한 구제를 하기 위해서 축복을 받는 것이요, 우리가 축복을 받기를 원할 때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풍성하게 연보를 드리고 구제를 하기 원하니 주께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할 때 하나님은 나누기를 원하는 사람을 위해서 하늘 문을 여시고 축복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오늘 예수 믿는 여러분!
여러분과 나는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해서 우리 가정에 짐이 되고, 이웃에 짐이 되고, 나라에 짐이 되는 수치스런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전지전능, 무소부재 하신 부유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습니다.
이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심고 거두는 법칙을 우리는 사용하고 올바른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나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복을 받아 남에게 꾸어주고 나누어주고 도와주는 그러한 삶을 살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시고 또 반드시 그렇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올바른 지식을 알고 올바른 태도에 서서 올바른 신앙으로 생활할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에게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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