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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혜문학서에 영향받은 잠언
인생을 살아가는 참 지혜를 찾겠다고 성경을 펼치는 기독교인들에게 잠언은 훌륭한 인생의 지
침서 쯤으로 여겨지고 있다.
잠언은 과연 어떤 경전인가? 솔로몬이 기록했다고 알려지는 잠언은, 실제로는 수많은 유대인
저자에 의해서 주변국들의 지혜문학서의 영향 아래 기록된 것임이 분명하다.
고고학자들이나 비교문헌 학자들은 구약성경의 지혜서가 완성되기 수세기전부터 이웃 나라들
에서 다양한 지혜서들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을 발견했다. 아울러 그 내용이나 형태에 있어
서 구약성경의 지혜서와 유사한 점이 많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이형원 / 잠언, 전망성서주
해 / 전망사 1993 / P.15]
잠언은 31장으로 구성된 솔로몬의 격언(mishelei shelomoh)으로 불리는 일종의 금언(金言)의
모음으로 알려져 있는데, 유대인들은 예로부터 아랍, 이집트, 에돔, 바벨론, 시리아 지방에 정
착하면서 그들의 지혜 문학서에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일상 생활에서 당하는 불의한 일들과
인간의 운명에 대한 성찰, 그리고 대화를 담은 일련의 작품들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문
헌과 유대인들의 문헌에서 모두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다. [박요한 영식 신부 / 이스라엘의 지
혜와 교훈,잠언 / 성바오로 출판사 1998 / P.32]
잠언의 형식을 살펴보면 "내 아들아" 하는 식의 표현(1:8, 15, 2:1, 3:1, 11, 21, 4:1,10, 20, 5:
1, 7, 20, 6:1, 6:20, 7:1, 8:32, 20:27, 23:15, 23:19, 23:26, 24:13, 21, 27:11, 31:2)들이 계
속되고 있는데, 이러한 형식은 바빌론과 이집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잠언의 문체는 시문체로 기록 되었으며, 주로 동의형(synonymous: 7:1,8:1), 대조형(antitheti
c: 10:5, 12:28), 종합형(synthetic: 1:10,18:13)의 세가지 형태의 것으로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잠언의 저자는 여러명 이다. 지혜에 대한 부분과 일부 솔로몬의 잠언으로 알려진
것은 솔로몬이 창작하거나 수집한 것이 아니며, 8~9장은 페니키아나 우가릿 문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22장에서 24장에 이르는 부분은 이집트의 지혜서와 유사한 형태를 갖
추고 있으며, 기타 잠언으로 알려진 아굴, 르무엘왕의 잠언들은 팔레스틴 이동 맛사의 아랍족
일 것으로 추정된다. 잠언의 대부분은 바빌론 유배 이전에 전승으로 형성되었고, 완성은 바빌
론 유배 후기인 400여년 경으로 잡고 있다.
이집트의 지혜문학은 이스라엘에 들어와서 크게 유행을 하기도 했으며, 이스라엘의 지혜문학
이 고대 이집트의 지혜문학으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문희석 編 /오늘의
智慧文學硏究 / 대한기독교서회 1976 / P.58~59]
이집트의 지혜문학에는 일상적인 경험으로부터 전통적인 도덕률과 실제적인 교훈을 가르치려
고 애쓰는 스보예트(sboyet : 가르침)라는 특별칭호를 가진 본문들과, 삶을 크게 위협하는 급
격한 사회변화로 인하여 기존의 것들에 도전하는 염세주의적인 문헌들로 나뉘어 진다.
스보예트에 속하는 지혜의 가르침들은 BC 2800년에서 BC 100년에 이르기까지 등장 했으며
고대 이집트의 종교적이고 사회적인 가치 체계들을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자료로 평가받고 있
다.
이집트의 지혜문학은 마아트(ma'at)라는 관리양성을 위한 쓰기학교에서 장려되었다.
이집트인들이 지혜문학을 장려한 취지는 '마아트'(ma'at), 즉 "질서와 규칙을 가르쳐서 생도들
에게 살 수 있는 길, 행복을 누리고 성공할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집트
에서 지혜문학이 장려된 이유는 다분히 실리적인 것이었다. [ H.링그렌 / 잠언,전도서 / 국제
성서주석 / 한국신학연구소 1992 / P.18]
프타호텝(Ptahhotep)의 교훈은 제5왕조의 바로 이씨시가 고관 프타호텝가 그의 아들에게 준
교훈을 모은 것이다. 제일 오래된 사본인 프리세 파피루스(Papyrus Prisse)가 파리 박물관에
있다.
프타호텝은 올바른 화술과 더불어 신실함(Truthfulness)을 가르킨다. 사기행각을 통해서 일시
적으로 많은 부를 얻을 수도 있지만 악행은 결코 올바른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프타호텝은 올바른 식탁 예절을 강조하며, 여자들을 가까이하는 것을 강하고 경고하
고 있다.[장일선 / 구약세계의 문학 / 대한기독교서회 1981 / P.86~98]
직급이 낮은 서기관에 의해서 쓰여진 아니의 가르침도 있는데, 복종, 거룩함, 종교적인 의무
등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으며, 또한 잠언과 마찬가지로 이방 여인들에 대한 경고가 나타나 있
다.
아멘엠오페트(amen-em -ope)의 가르침은 제12왕조 아멘엠헤트가 즉위 20년에 그의 아들
세소스트리스 I세에게 섭정으로 자리를 물려주면서 전해준 교훈이라고 전해진다. 아멘엠오페
트의 가르침은 모두 30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구약성경 잠언과 유사한 점을 많이 가지고 있
다. 그리고 이 문헌은 아니의 가르침과 같은 일반 문헌보다 훨씬 더 경건 의식과 예배와 도덕
성을 강조한다. [장일선 / 구약세계의 문학 / 대한기독교서회 1981 / P.98~120]
이외에도 '카겜니'(Kagemni)를 위한 가르침,'메리카레'(Merikare)를 위한 가르침등이 있으며,
서기관 전승에 속하는 '케티'(Khety)의 가르침, '박식한 서기관들을 찬미하며'(In Praise of Le
arned Scribes), '자기 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가르침'(The Instruction of a Man for His Son)
등이 당시 이집트 귀족계층에서 많이 읽혔다.
귀족계층이 아닌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통속적인 지혜문학도 존재했는데, '온크세숀키'(Onch
sheshonqy)의 가르침, '파피루스 인싱어'(Papyrus Insinger)의 가르침등이 있다.
그외에 논쟁문학이라고 불리는, '네페르'(Neferti), '카케페레-손베'(Khakheperre-sonbe), '이
푸베르'(Ipuwer),'어떤 사람과 그의 영혼 사이의 대화'(the Dispute of a Man with His Soul)등
이 있다.
수메르의 서기관들은 이집트인들과는 달리 격언들을 독립된 시선집 형태로 정리했다.
이들중에 적어도 24개의 수집물은 남아 있으며, 대표적인 것으로는 슈루파크(Shuruppak)의
가르침이 있다. 이 문헌의 가르침은 문학 형태의 동일성 이외에도 여러 면에서 이집트의 가르
침과 유사한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문학작품들은 주로 에둡바(edubba : 점토판의 집)라
는 학교에서 장려되었다. [박요한 영식 신부 / 이스라엘의 지혜와 교훈, 잠언/ 성바오로 출판
사 1998 / P.33]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징조문학(Omen Literature)이 발달 했는데, 상서로운 징조들과 불길한
징조들을 구분하여 왕권을 안전하게 지키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메소포타미아의 지혜
문학에는 '샤마쉬 찬양시'(The ama Hymn), '나는 지혜의 주를 찬미하리라'(I Will Praise the L
ord of wisdom)등이 있다.[제임스 L.크렌쇼 / 구약지혜문학의 이해 / 강성열 역 / 한국장로교
출판사 1993 / P.314~325]
테이트(Marvin E. Tate, Jr)교수는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의 지혜문학들 뿐만 아니라, 가나안
이나 동방나라의 지혜문학들도 구약성경의 지혜문학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구약성경안에서 단편적으로나마 가나안의 현인들이나 동방 나라 사람들의 지혜에 대
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의 예로는 사사기 5:28~29, 에스겔 28:1~10, 12~17, 열왕
기상 4:30, 5:1~18, 7:13~14, 욥기 1:1~5절 등을 들 수 있다. [이형원 / 잠언, 전망성서주해
/ 전망사 1993 / P.16]
한편, 잠언은 신앙적인 면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인간사에 있어서의 추잡한 처세술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신앙적인 면은 제쳐두고 삶에 있어서의 처세술적인 면으로서 잠언은 분명 지혜와
정직을 가르치고 있지만, 그 수준은 초등학교 바른생활 교과서 수준이라고 말해 두고 싶다.
더욱이 추잡한 처세술까지도 간간히 포함 되고 있다.
"뇌물은 임자의 보기에 보석 같은즉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케 하느니라." [잠언 17장 8절]
"선물은 그 사람의 길을 너그럽게 하며 또 존귀한 자의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 [잠언 18
장 16절]
"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 하고 품의 뇌물은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하느니라." [잠언 21장 14절]
뇌물에 관한 구절들이다. 오늘도 성경속에서 인생의 지침을 찾겠다고 잠언을 펼치는 당신은
고대인의 지혜문학서를 펼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 가나안의 신 케루빔
언약궤의 금덮개(Kapporet :속죄판)위에는 두 개의 케루빔(개역한글판에는 그룹)이 마주 보고
있는 조각이 있었다.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에도 두 개의 케루빔과 성전의 내부 벽과 문짝에
도 케루빔들을 부조로 새겼다고 한다. 특히 언약궤와 성전의 장식을 비롯해, 성경의 곳곳에서
등장하는 케루빔에 대해서 그 기원이 가나안에 있다는 주장은 거의 확실하다.
디벨리우스(M. Dibelius)의 주장에 따르면 언약궤가 사무엘상 3~5장에서는 '엘의 궤'로 표기
했다가, 이후에 '야훼의 궤'로 바뀌었고, 사무엘하 6장 2절에서는 '엘의 궤이자 만군의 야훼의
궤'로 통합되어 버린다. [M. Dibelius / Die Lade Jahves ( FRLANT 7 )/ Gttingen 1906] (이
것은 오경 이외의 경전에 문서설로 접근했기 때문에 반론도 만만치 않다.)
특히 유대인들의 점진적 이주설(W. Thiel)이 크게 호응을 얻으면서 언약궤의 케루빔의 기원이
가나안에 기원했다는 설이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현재 발굴되는 가나안의 유적을 통해서도 그
기원이 가나안에 있음을 분명히 확인시켜 주고 있다.
두산세계대백과의 케루빔에 대한 내용을 옮겨보자.
"거룹(cherub)이라고도 한다. 하느님의 보좌나 성스러운 장소를 지키는 것으로 믿어, 계약의
궤(법궤)에는 황금의 이것이 배치되어 있었다. 아시리아의 신전을 지킨 사람의 얼굴에 수컷 소의
몸, 사자의 꼬리와 날개를 가진 케루빔이 도입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스도교 특히 가톨릭
에서는 지천사(智天使)로 번역되어 천사의 하나로 되어 있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케
루빔 cherubim항목]
케루빔(Cherubim)은 히브리어는 케루브(Cherub)로 학자 중에는 중재자라고 번역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지식이라고 번역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 단어의 원형인 칼리브는 수메르나
바빌론의 신전 및 궁전의 무서운 반인반수(半人半獸)모습의 수호자를 가리키는 단어였다.
유대인은 바빌론에서의 노예 생활 중에 성소의 입구에 조각된 복수의 몸과 날개를 가진 전설의
동물에 익숙해져 버렸음에 틀림없다.
유사한 수호신은 근동 전역에서 발견된다. 키스카누라는 수메르 신화에 따르면 독수리의 머리
와 날개를 가진 신이 이미 앗시리아의 영생의 나무를 수호하고 있었다. 바빌론에 유배당했던
유대인들이 바빌론의 영생의 나무와 그 수호자를 차용해, 에덴동산의 선악과와 화염검(火焰
劍)을 들고 인간의 출입을 막는 케루빔으로 이식 시킨 것이다.
그리고 두 개의 케루빔이 날개로 궤의 지붕을 덮고 있는 언약궤의 모티브역시 이집트 카이로
박물관에 소장중인 투탕카멘의 미이라를 담고 있는 도금한 나무제단과 흡사하다. 거기에서 도
금한 두 여신이 양팔을 벌려 제단을 덮고 있다. [제랄드 메싸디에 / 모세3 / 바다출판사 / 임헌
옮김 / P.349]
또 대영박물관의 메소포타미아관 입구에는 5m쯤되는 반인반수(半人半獸) 조각이 좌우 양쪽
에 진열되어 있다. 수메르나 앗시리아에서 라마수라고도 불린 이 유물은 머리는 인간이고, 앞
다리는 사자며, 몸 뒷통은 황소이고 독수리의 네날개를 가진, 동물 중에 최고의 완벽함과 강대
함을 모아놓은 토템신의 모습 이라고 할수 있겠다.
십계명에서 다른 신을 섬기지 말고, 우상숭배 금지를 분명히 언급 하였지만, 이스라엘인들은
가장 상징적인 언약궤의 뚜껑과 성전의 지성소에 토템신의 조각을 세워놓았으며,
케루빔은 성경 곳곳에 신의 대리자로써 중요하게 등장한다.
이에 대해서 이스라엘 벤구리온 대학의 후로비츠(V.Hurowitz)교수등은 언약궤와 지성소의 케
루빔은 비록 메소포타미아의 라마수나 이집트의 스핑크스등를 닮았지만 여호와가 금지시킨
것은 일반적인 인물이나 동물상이 아니라 신으로 숭배되는 신상들 이므로 유대인 이것을 신으
로 숭배하지 않았기 때문에 십계명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후로비츠의 이러한 견해는 12세기
스페인 출신의 유대교 대학자인 마이모니데스의 십계명 해설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에스겔서를 보고 펼쳐보면 그러한 것은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케루빔은 자신의 말을 "여호와의 명령이다"라고 수도 없이 반복하고 있으며, 에스겔은 케루빔
의 엄청난 위용에 엎드려 경의를 표했다. 에스겔서의 저자도 케루빔의 말을 여호와 말씀이라
고 기록하고 있다. 다시말해, 케루빔은 여호와의 대리자, 혹은 여호와의 또 다른 모습으로, 케
루빔이 당시 유대인들에게 숭배대상이 아니었다고 하는 주장은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가나안의 종교와 문화가 유대인들의 여호와 신앙에까지 깊숙이 파고들었음을 반증해주
는 것이라 하겠다.
▶ 조로아스터교에서 받은 영향
기독교인들에게 조로아스터교라는 이름은 매우 낮선 종교일 것이다. 조로아스터교는 일반적
으로 불을 숭배하는 배화교(拜火敎)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기독교의 뿌리 부터가 조로아
스터교에 근원을 두고 있다. 현재의 기독교와 유대교의 사후세계, 천사개념, 메시아 신앙등은
바빌론 유수당시에 조로아스터교로부터 유입된 것이다. 조로아스터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뒤에 등장하는 예수신화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고, 이번 단락에서는 조로아스터교가 유대교
에 미친 영향을 설명하겠다.
이란 종교를 대표하고 있던 조로아스터교는 이란 지역의 동쪽이나 남 중앙 아시아 지역에서
시작되었다고 추정한다. 전설에 따르면, BC 7세기(일설에 의하면 BC 1400년)경 이란의 북부
에서 양치기를 하던 조로아스터(그리스 식 표기, 짜라투스트라-Zarathustra-가 원래 페르시
아 발음임)는 40세때 신의 계시를 받고 진리를 선포 하기 위해 하산 했다고 한다.
조로아스터교는 기본적으로 철저한 일신론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엄격한 이원론을 신봉 했는
데, 이러한 흐름은 후에 영지주의의 강력한 뿌리가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조로아스터교는 그
동안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내려오던 여러 이란 종교들을 하나의 사상 체계로 발전시켰다고
평가할수 있다.
역사적으로 북쪽 지역에 있던 이스라엘은 BC 722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하고, 남유다는 BC
587년에 바빌론에 의해 멸망 당했다. 유대인들은 바빌론으로 끌려가서 노예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빌론 유수이다. 그러나 BC 539년 바빌론은 신흥 강대국이었던 페르시아 왕 사이
러스(개역한글판에는 고레스로 표기)에 의해 곧 무너 졌으며, 유대 민족의 운명은 페르시아(개
역한글판에는 바사로 표기)제국으로 넘어갔다. 그들은 피정복자들에게 조로아스터교를 강요
했으며, 이사야서에서는 유대인들에게 막강한 사이러스의 통치에 순종 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이사야 44장에서 사이러스왕을 신에 의해 임명 된 목자로 부르며, 45장에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 칭하고 있다. 사이러스왕 14번, 다리오 13번, 아하수에로왕과 아닥사스다왕은 7번 씩이
나 언급 하고 있다. 또, 학개 2장 23절에서는 여호와가 페르시아 총독 예룹바벨을 그의 택하심
을 입은 자라 부르고 있다. 그리고 페르시아 왕들이 유대 제사장을 임명 했으며, 이사야 66장
21절에는 마기들이 유대 제사장으로 행세 하기도 했다.
이렇게 유대인들이 페르시아에게 순종하자, BC 532년 일부 순종 하는 유대인들을 귀환 시켜
서 대형의 조로아스터 식의 사원을 짓게 했으며 이것은 BC 516 년에 완공되었다. 바빌론 유수
를 당했던 때에 페르시아의 왕이 유대인의 귀환을 허락하고 파괴된 성전의 재건을 도와주면서
유대교에 미친 페르시아 왕들의 영향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페르시아의 멸망 후에도 종교, 사상적 영향력은 매우 크게 작용했다. 느헤미야와 다니
엘서도 처음에는 페르시아의 공식적인 언어인 아람어로 쓰여졌고 현존하는 유대 경전에도 페
르시아어 단어가 100개 이상이 나온다. 특히 페르시아의 이원론적 사상은 유대 묵시 문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페르시아왕이 유대 제사장을 임명했듯이 유대 제사장에는 페르시아인 마기들이 다수 포함 되
어 있었으나, BC 332 년에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이 예루살렘을 정복 하고서 페르시아의 영
향 력은 현저히 감소 되었다. 이 때 부터 AD 73 년까지 종교의 자유가 허용 되었는데, 특기 할
것은 이 기간에 산헤드린이 창설 되었다. 이것은 유대인 종교 회의로 종교적, 사법적, 형법 구
속력을 갖는 기관 이었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이 기관은 두 붕당이 관장 하였는데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 이었다고 한다. 신약속에서도 자주등장하는 바리새(Pharisee)인은 페르시아의 영
향으로 부활과 영혼불멸을 믿었다.
그렇다면 조로아스터교와 구약의 사후개념을 비교해 보도록 하자.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인간이 죽으면 흔들리는 신바트의 다리(Chinvat Brigde)를 건너는 데, 생
전에 죄가 많은 자들은 떨어져 지옥으로 가고 선한 자들은 세단계의 천국으로 인도 된다고 하며
천국의 목적은 찬양이라고 한다. 한편 천국도 지옥도 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중간 상태
가 있는데, 선한 행동과 악한 행동을 저울질 했을 때에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루는 사람들이 가
는 곳으로 혼합된 지역이라는 뜻을 가진' 하밍스타간'(Hamingstagan)이라는 곳이 있다. 이것
은 오늘날 천주교가 인정하고 있는 연옥설과 유사하다.
또한 조로아스터교는 마지막 심판이 있을 것이며, 마지막 날에 심판의 책에 기록된 대로 지상
천국에 다시 부활 할 것을 믿었다. 그리고 심판 이전에 사망한 사람들은 세상의 역사적인 진행
이 끝날 때까지 '잠정적인 상태'(provisional state)로 남아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이 세상의 역사를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에 의해 이끌어지는 빛이 세력과 앙그
라 마인유(Angra Mainyu)에 이끌어지는 어두움의 세력이 투쟁하는 과정으로 보았으며, 종국
적으로 아우라 마즈다가 승리할 것이라고 믿었다. 이 때 악은 영원히 파멸 당하고 죽었던 사람
들은 다시 부활하게 된다. 그들은 아후라 마츠다가 이 세상을 지배할 궁극적인 역사의 종말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다. 구원자는 첫 조상과 전 인류의 뼈를 일으켜 세우
고 생명과 살을 붙여 주실 것이라고 보았다. 죽은 자는 다시 살아나고 영광 속에서 다시는 파
괴되지 않을 육체를 받는다. 구원자에 의해 신성한 의식이 치러지고 마지막 변형과 함께 육체
가 부활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유대인들은 누구나 죽으면 쉐올(She'ol), 즉 땅 밑의 세계로 간다고 믿었다.
"왕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신이 땅
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사무엘상 28장 13절]
율법을 거역하고 사무엘의 영혼과 만나 보려고 했던 사울에게 무녀(巫女)가 한말이다. 여기서
언급한 신(엘로힘)은 여호와를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사무엘의 영혼을 가르키는 것이다. 무녀
는 사무엘의 영혼이 땅밑(쉐올)에서 올라 온다고 말하고 있다.
구약시대의 사후개념은 신약시대와 같이 분명하지 않았다.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은 사후에 의
인과 악인이 구분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그것을 확실하게 신학적으로 정립하지는 못했
다. 다만 사후에 일종의 '지하세계'(Underworld)로 인식 되었던 쉐올(음부)에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곳에 들어간 사자(死者)들은 무의식 상태에 있게 되며, 따라서 여호와에게 감사할
수도 없게 된다고 생각했다. (시편 16장10절에도 다윗이 자신의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말도록
호소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죽은 후 사자가 가서 거하는 곳이 반드시 있다고 믿었으며, 그곳을
가르켜 '음부'(陰府)라고 일컬었다.
킹 제임스 성경(KJV)은 히브리 단어인 쉐올을 무덤(grave :31회), 지옥(hell :31회), 구덩이(pit
:3회)로 다양하게 번역했지만, ASV나 RSV에서는 번역하지 않은채 쉐올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쓰고 있다. 헬라어로 번역된 70인역에서는 '하데스'로 번역하고 있다.
구약시대 유대인의 음부 개념은 다분히 고대 근동인들의 개념과 엇비슷 했다.
즉, 의인과 악인 간에 약간의 구별이 있긴 하지만 두 종류의 영혼이 함께 기거하는 어두침침한
지하 세계가 곧 음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곳에 거하는 자들은 일명 '르바임'(Rephaim)이
라고 하는 망령(亡靈)들로서 살아 있을때의 인간 형체가 희미하게 남아있는 '그림자적 존재'라
고 생각했다. 아무튼 이러한 기본 개념하에 구약 성경에서 묘사하는 쉐올의 다양한 개념을 살
펴보면 다음과 같다.
의인과 악인, 신자와 불신자가 함께 거하는 장소(창37:35;시9:17), 어둡고 그늘진 장소(욥10:
21,22;시143:3),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장소(욥10:21), 침묵의 장소(시94:17;115:17), 여호
와를 찬양할수도 없는 장소(시6:5;88:10-12), 아무것도 알수 없는 세계이며 일도 계획도 없는
장소(욥14:21;전9:5-10), 모든 생물들이 필연적으로 들어갈 집(욥30:23), 땅밑에 존재하는 장
소(민16:30), 망각의 장소(시 88:6), 지상의 비통한 삶보다도 더 가련한 삶(전 9:3~6), 사람의
운명은 짐승의 운명과 다를바 없으며 모두 다 티끌에서 왔다가 티끌로 돌아간다.(전 3:18~21)
그리고, 유대인들은 여호와가 그들 백성을 음부에서 구해 낼날이 있을 것으로 믿었던것 같다.
시편저자와 욥의 간구는 바로 이런 소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쉐올의 개념은 헬라적 '영혼불
멸'의 관념과는 대립된다.
의인은 죽어서 천국으로 가고 악인은 지옥으로 간다고 생각하는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의 생각
과, 모든인간이 죽으면 일단 지하세계로 간후에 여호와가 음부에서 구원 한다는 것은 다르다.
구약성경의 쉐올사상은 메소포타미아의 지하세계의 신화의 영향을 입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
를수록, 특히 바빌론 유배 이후의 문서들, 즉 시편과 제 2 이사야에서 조로아스터교에 의한
새로운 구원관이 도입된다. 영혼불멸이나 부활을 믿지 않았던 사두개파와 다르게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은 바리새인들이 등장한것도 이때였다. 이런 쉐올의 개념은 연옥설이라는 개념으로
아직도 카톨릭에서 인정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의 죽은자들의 부활은 그야말로 헤브라이즘이
아니라 철저히 조로아스터식이다.
이번에는 악마의 개념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다신론에서는 악마(demon)를 악한 일을 하는
신들로 규정하지만, 일신론을 신봉하는 종교에서는 악마를 신의 심부름꾼으로 정의 내리는 것
이 보편적인 현상이다.(일신론과 유일신론은 다르다)
현재의 기독교인들은 악마를 신에게 거역한 신의 적대자로 규정하지만, 구약시대의 유대인들
이 생각한 악마는 여호와의 하수인에 불과했다.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사무엘상 1
6장 14절]
여호와가 사울에게 악신을 보내어 그를 괴롭게 만든다는 대목이다.
"미가야가 가로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 보좌에 앉
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저로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는 저렇
게 하겠다 하였는데,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저를 꾀이겠나이다. 여호
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가로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 하는 영이 되어 그 모든
선지자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꾀이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열왕기상 22장 19~22절]
여호와가 영들을 불러모아 의전회의를 하는 이대목은 여호와를 사람처럼 취급해 놓았다. 이
회의에서 여호와는 거짓말하는 영을 보내어 아합왕을 파멸로 이르도록 한다.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지 3 년에 여호와가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신을
보내시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 [사사기 9장 22~23절]
여호와가 악한 신을 사람들 사이에 보내어 불화를 일으켰다고 언급하고 있다.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중략)....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단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욥기 1장 6~12절]
욥기에서도 여호와가 의전회의를 진행하는데 사탄이 참여한다. 사탄이 여호와에게 "그에게 재
앙을 내리면 당신을 저주할것 입니다"라고 꼬드기자 여호와는 사탄을 시켜 욥을 시험에 들게
한다.
이렇게 구약의 중반부까지는 악마의 개념은 여호와의 하수인에 불과했으나, 이사야서 이후에
들어오면서 이 세상을 선과 악의 대결로 바라보는 이분법적 사상을 가진 조로아스터교가 급속
하게 유입된다. 악마의 개념은 차차 여호와의 적대자가 되어버리고, 하늘을 지배하는 신의 세
력과 악마가 지배하는 지상의 세계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신약에서 악마가 들어간 곳에 병이 깃들고, 인간의 인격을 타락케 하며, 인간의 행동과 말을
직접적으로 조정하기도 하고, 예수가 악마들을 쫓아 더러운 돼지떼로 보냈다는 이야기와 더러
운 일곱 악마에 대한 비유등은 조로아스터교에서 생각한 악마의 모습들이라고 할수 있겠다.
그리고 민족신의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여호와 신앙이 바뀌게 된것도 조로아스터교의 영
향이라고 볼수 있다. 여호와를 포함한 다른 부족 신들과는 달리 조로아스터교의 아후라 마즈
다는 모든 민족과 인종을 다스리는 보편적인 신 이었다. 역사 학자 헤로도투스는 페르시아인
들은 신의 형상을 만들지 않았고 그런 행위들을 바보 스럽게 생각 했다고 기록 하고 있다.
따라서 아후라 마즈다는 완전 무결한 존재 였기에 인간과 교통 하기 위해서는 중간자와 천사
들이 필요 했다. 반면 유대인의 신 여호와는 직접 선지자와 모세에게 나타났고 천사도 필요 없
었다.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70 인의 장로들과 여호와의 목전에서 먹고 마셨다고 기록 하고 있
다.
구약 시대에는 여호와의 명령이나 계시를 예언자들이 받고 전했으나, 중간기에 들어와서는 천
사가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인간의 미래나 세상의 종말, 그리고 예수의 탄생에 대한
예언도 천사를 통해 전달 되어진다. 이러한 천사에 관한 개념은 헬레니즘 시대에 들어온 혼합
주의 사상의 영향에 의해 형성되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조로아스터교는 이 세상을 선과 악의 구도로 보고, 물질세계와 육체는 악한 것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물질세계로 구성된 이 세상은 필연코 멸망할 것이며,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
이라는 조로아스터교의 교리는 묵시 문학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신구약의 중간기에 유대인들
도 묵시문학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특히 역사를 숫자적으로 시대 구분하는 것 역시 페르시아
적 요소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조로아스터교에선 후대로 갈수록 3천년 주기설 이론들(theori
es of three-thousand-year cycles)이 발전 되면서 마지막 때와 인간의 죽음사이의 간격에
대한 묵시적 해석이 늘어갔다.
또한 유대인들은 이집트 의식인 포경수술(할례)를 행했지만, 조로아스터교에서는 물 등으로
세례 의식을 행했다. 세례의식은 신약에서나 등장하게 된다.
조로아스터교의 보편 적인 법도는 아샤르타로(True Prayer :진짜 기도)로써 이는 후에 그리스
의 말씀(Logos)의 기본이 되었으며, 조로아스터교는 믿음이 신앙의 기본 이었고 진짜 기도를
외우면 영생을 얻는다고 했다. 반면에 유대인은 믿음 보다 선한 행실을 강조했다. 후에 "구원
이 믿음에서 오는가? 행함이 없는 믿음은 꽹과리 인가?"라며 바울과 유대 분파의 쟁론을 살펴
보면 바울은 조로아스터 혹은 영지주의(영지주의도 조로아스터에 뿌리를 두고 있음)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그리고, 조로아스터는 처녀가 잉태 하여 샤오샨트라는 구세주가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반면
에 이러한 메시아신앙이 유대인들에게 유입되기는 했지만 구약속의 유대인의 메시아는 그들
을 압박속에서 해방시켜줄 정치적인 메시아였다. 즉, 유대인들의 구약에는 종말론적 사고 방
식이 결핍 되어 있으며, 유대인이 생각한 여호와의 구원은 세상의 종말이 아니라, 그들의 신이
타민족을 제압하고 이스라엘의 번영을 이루는 것이었다.
조로아스터교는 조로아스터의 사후 마기(제사장)에 의해 많은 변질을 겪는다.
마기들은 성부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 성자 미트라와 성령 천사장(Spenta Mainyu)의
삼위 일체를 내세웠다. 후에 미트라 숭배사상은 초기 기독교와 공존하면서 예수에 대해 막대
한 영향을 끼친다.
조로아스터교는 바빌론 유수때 유대인들에게 영향을 끼쳤음은 물론, 주변지역으로 퍼져나가
서 수많은 토착종교와 뒤섞이면서 복잡한 양상을 띄게된다. 크리스마스(동지축제), 부활절(춘
분축제)등의 토착풍습이 조로아스터의 메시아 신앙과 융합되어 버리고(원래 그날들은 메소포
타미아의 고대신들과도 연관이 있는날들인데, 조로아스터식의 메시아들이 그날을 차용 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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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후에 기독교의 예수가 다시 차용해 버린것들이다.), 삼신사상등과 함께 그리스의 철학등이
뒤섞여 버리면서 영지주의가 태동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기독교가 등장하기전에도 이미 정통 유대교와 거리가 먼 에세네 학파 같은 비
밀스러운 집단에서는 메시아, 종말론, 구원론이 매우 발전된 것을 알수가 있다.
초기의 기독교는 수많은 영지주의 종파중의 하나였으며, 영지주의의 뿌리는 조로아스터교에
있다고 정의를 내릴수 있다.
▶ 기타 구약 신화의 이해
앞서 언급했듯이 성경의 천지창조, 에덴 동산, 노아의 홍수,등은 뚜렷하게 수메르인들에게서
영감을 얻었거나 차용한 것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그뿐만 아니라 아브라함과 욥기 등의 신화
도 주변지역에서 그 원형이 발견되고 있다.
(1) 아브라함 신화의 원형
1929년 셰프로를 단장으로 한 프랑스의 고고학자들이 우가릿에서 점토판이 발굴 되었다.
우가릿 문서가 만들어진 것은 BC 1400년경으로 알려져 있다. 우가릿 문학은 유대인이 가나안
에 이주하기 이전의 가나안의 농경 종교의 양상을 아는데 극히 중요한 자료이다. 그리고 우가
릿어는 히브리어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구약성경의 연구에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우가릿 문헌의 아카드 서사시에는 아브라함 신화와 유사한 이야기가 있다.
아카드 서사시에 등장하는 다니엘과 그의 처 사이에는 딸만 하나 있고 아들이 없었다. 그래서
다니엘은 시녀 사이에 아들을 낳는다. 그후 부인 사이에 아들을 낳으면 희생물로 바치겠다고
신에게 약속하고 아들을 얻는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자식을 낳지 못하여 시녀인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고, 후에 신의 계시를 받아 사라에게서 이삭을 낳게 되지만, 신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원하게 되는 것과 유사한 틀을 가지고 있다. 또, 이삭대신 동물을 제물로 바치
라고 명령한 일화에 대해 학자들은 인류학적으로 종교가 인신공양에서 동물공양으로 관습이
바뀌어졌음을 암시하고 있다고 한다.
또,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내 사래(=사라)를 이집트의 파라오에게 잠시 빼앗겼다 찾은 이야기는
케레트(Keret)서사시에서 공정한 임금 케레트왕이 왕비 프르라이를 다른 왕에게 빼앗기자
그녀를 되찾는 이야기와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케레트 서사시는 1930년에서 다음해 1931년에 걸쳐서 발견된 것이며, 3장의 점토판에 기록
되어 있다. 기록된 순서에 따라서 IK, IIK, IIIK라는 약호를 붙였다.
IK에서는 이야기의 주인공 케레트가 빼앗긴 아내 프르라이를 되찾는 광경이 기록되고, IIIK 에
서는 케레트와 아내 프르라이의 결혼에 대한 신들의 축복과 자손의 약속에 관한 예언이 기록
었다. IIK에서는 IIIK에서 약속된 케레트의 아이가 탄생하고 병을 앓는 케레트가 건강을 회복하
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 문헌을 조사했던 C.H.골든은 아내를 잃은 왕 케레트가 아내 프르라이를 되찾는다는 모티브
는 트로이의 헬레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모티브와 공통된 것으로 보고, 우가릿 문학은 호
메로스의 일리아드와 구약성서의 족장 설화와를 결부시키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아직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서사시들의 공통된 모티브는 BC 2천년대 중엽에서 후반에
걸쳐 미케네, 크레테, 우가릿, 이집트, 힛타이트 등을 포함한 동부 지중해 세계에서 문화 복합
체가 형성 되어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앞장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아브라함이 그의 아내를 넘겨주는 이야기는 창세기에 두 번에 걸
쳐 중복되어 있는데, 이것은 원래 여러가지 종류로 전해 내려오던 전설이 문서화 되면서 생긴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참고삼아 인류학의 대가 프레이저(J. Frazer)의 설명에 따르면 이삭의 막내아들 야곱이 맏아
들 에서에게 장자권을 빼앗은 것은, 원래 차차상속이 관습이었으나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는
장자상속으로 관습이 바뀌어 죽 한 그릇에 상속권을 산 것으로 기록할 필요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James George Frazer / Folklore in the Old Testament Studies in Comparative
Religion Legend and Law / Kessinger Publishing]
(2) 욥기의 원형
구약성경에 기록된 욥기와 매우 흡사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작품이 있다.
수메르어로 기록된 이 글이 쓰여진 연대는 BC 17~18세기로 보인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행복하고 부족함이 없이 살던 젊은이에게 나쁜 운명신이 병(역병)과
고난을 가져왔다. 그에게 고난이 닥쳐오자, 그동안 친하게 지냈던 젊은이의 친구들은 그가 잘못을
범해서 신에게 벌을 받는것 이라며 젊은이의 진실된 말도 거짓말이라고 매도해 버린다.
그러나 젊은이는 신을 원망하거나 저주하지 않고 오로지 그의 자비를 구한다. 그리고 그의 마
음은 결국 신을 감동시켜서, 신은 나쁜 운명신을 치워주고 젊은이에게 착한신을 붙여준다.
수메르의 욥이야기는 세상에서 잘못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으며, 오직 자신의 수호신에게
호소함으로써 그의 자비를 구하는 길이 최선이라고 가르친다.
이미 여러 학자들은 욥기가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을 받은 것을 인정하고 있다. 수메르의 욥(Jo
b)이야기는 성경의 욥기와 거의 완벽하게 동일한 주제, 동일한 구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부
인하기 어렵다. 성경의 욥이야기는 천여년 이상 전에 나온 수메르인들의 이야기에서 그 소재
와 구성을 따왔다고 보아도 틀림없을 것이다. [조철수 / 메소포타미아와 히브리 신화 / 길 출
판사]
(3) 카인과 아벨 이야기의 뜻
질투 때문에 최초의 살인자가 된 카인, 그런데 어째서 여호와는 카인의 제물을 받지 않고 아벨
만의 제물을 받았을까? 성경만으로 판단해 본다면 카인이 무슨 부정을 했는지는 나와있지 않
다. 그는 남의 것을 훔쳐서 제사를 올린것도 아니고, 특별히 나쁜짓을 하지도 않았다.
카인과 아벨 이야기는 당시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자주 등장하는 목자(牧者)와 농부(農夫)의
대결구도로서 이해될 수가 있다. 농부와 목자의 갈등에 관한 이야기도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작품에 자주 나온다. 이것은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농경민족과 유목민족의 투쟁이 그 배경이
되고 있는데 카인과 아벨의 형제 살인 이야기의 원형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두무지(Dumuzi:
아카드어로는 탐무즈-Tammuz-라고도 불렸음)와 농경신 엔키무드의 투쟁 이야기에서 볼수
있다.
이야기는 태양신 우투(utu = Shamash)가 동생인 인안나(Inanna)에게 목자들의 신 두무지와
결혼하라고 권유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인안나는 목자가 아닌 농부의 신 엔킴두(Enki
mdu)와 결혼 하겠다고 한다.
그러자 목자 두무지는 자신과 농부를 비교하면서 자신의 우월함을 주장했고 결국 인안나는 두
무지에게 마음을 돌린다. 그러자 농부 엔킴두와 목자 두무지는 목자의 들판에서 언쟁을 한다.
이 신화는 두무지가 인안나와 결혼하기 위해 고생이 필요했던 것을 보여준다. 동시에 목자와 농부의
싸움에거 목자가 이긴것은 그 지역에서 목축이 농경보다 더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
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구약의 카인과 아벨의 반목에서도 농부와 양치기라는 지역 특유의 대결구도가 잘 나타난다.
양치기 아벨은 선하게 그려진 반면에 농부인 카인은 아벨에게 질투를 느껴 살인을 저지른다.
이것은 농경문화권을 정복한 피정복자인 유목민족의 신화가 반영 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
다. 이것은 또한 이동해온 유목민족 아피루(히브리민족의 시조)와 농경에 기초를 두고 있는 정
착민인 가나안인들의 투쟁을 암시한다는 의미로도 해석할수 있겠다.
구약속에서 가나안의 신 바알(Baal)은 유대인들에게 혐오의 대상이었다.
바알의 경우 번개와 천둥의 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식의 신이기도 하다.
유대민족이 가나안의 신 엘을 아무런 무리없이 잘 받아들였으면서도, 엘의 아들로 알려진 바
알을 혐오했던 이유가 생식의 신이라는 바알의 측면 때문일 것이다. 사실상 농경문화에서의
생식, 즉 자손번영과 다산이라는 측면은 상당히 강조된다. 유목민족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러
한 농경문화가 음란해 보일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중국인들이 우리민족을 바라본 동이전(東
夷傳)에는 우리민족이 음주와 가무를 좋아하며 음란하다고 기록했다.
농경문화의 대표적 산실이 술(酒)이다. 충분히 공급되는 곡물과 과실의 수확에 의해 농경문화
에서는 술과 문화가 발달한다. 또, 다산(多産)을 중요시 여긴다. 수메르에서 여성의 지위는 상
당히 높았으며 모계사회에 가까웠다. 그리스의 농경민족에게서도 박카스예배(Bacchilc Cult :
술의신)이 있다. 가나안의 바알신 축제도 이러한 농경문화의 전형을 그대로 나타냈을 것이다.
이것은 농경문화가 나타내는 보편적 종교양식이다. 유목문화가 농경문화를 접하게 되면서 인
류학적으로 상당한 문화적 충격(culture-shock)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바알신과 여호와신과의 투쟁은 고도로 성숙한 가나안 문화의 유혹과 유목민족으로서의 정체
성 사이에서, 유대민족에게 여호와를 재인식 시켜 정체성을 확립 해야했던 힘겨운 싸움을 암
시한 것이다.
신화가 암시하고 있는 농경민족과 유목민족의 이러한 갈등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채, 카인과
아벨이 실존인물이었다고 생각하면서 성경을 읽는 것은 그리스나 로마신화를 실존했던 신들
의 이야기로 착각하고 읽는 어리석음과 다를바가 없다.
(4) 바벨탑
노아의 방주만큼이나 유명한 것이 바벨탑의 이야기다. 하지만 바벨탑은 성경에만 기록되어 있
는게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다.
바벨(Babel)은 원래 '신의 문'이란 뜻으로 바빌론이란 고대도시 이름도 여기서 나왔다고 한다.
창세기의 저자는 바벨이 혼합된(mixed)이나 혼란된(confused), 혹은 혼동된(confounded)을
뜻하는 히브리어 바벨(babal)에서 유래되었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바벨의 유래는 바빌로니아
언어에서 신의 문(gate of God)을 뜻하는 밥일(Bab-il)에서 유래된 것이다. 수메르의 문명을
이어서 세워진 바빌로니아는 약 BC 2100~1700년대 까지 존재했다.
그리고 바빌로니아에는 탑이 있었다. 사실, 대부분의 수메르인들과 바빌론의 도시에는 탑들이
있었다. 이들 도시의 신들에게 바치는 사원들은 외부에 경사진 면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
형태의 피라미드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들은 지구라트(ziggurat)라고 부른다.
BC 3세기 바빌론의 신관이면서 역사가 였던 베로수스(Berosus : 베로소스-Berossos-라고도
한다)는 시리아의 왕 안티오코스 1세에게 바빌로니아지(誌) 3권을 헬라어로 저술하여 바쳤다.
그가 저술한 책 1권에서 바벨탑 사건을 묘사한 내용이 나온다.
"최초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힘을 너무 믿어 신을 경멸하고 자신들이 신보다 위대하다고 생각
했다. 그들은 오늘날 바빌론이 있는 곳에 높은 탑을 쌓았다. 이 탑이 하늘에 닿으려고 할 때 갑
자기 신이 있는 곳에서 바람이 불어와 탑을 무너뜨렸고 그것을 쌓던 사람들은 땅 위로 떨어졌
다. 탑의 폐허는 바벨(신의 문)이라 불렸다. 사람들은 이때까지 같은 말을 했는데 신은 그들로
하여금 다른 언어로 말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바빌론의 탑이 혼란의 상징이 된것일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추측되고
있다. 바빌론에 있는 거대한 지구라트는 수메르의 왕이 시작한 것이었으며, 아마도 아카드의
사르곤이 남쪽으로 진군해 온 것으로 인해 야기된 혼란의 결과로 공사가 끝나지 않고 남겨졌
을 것이다. 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지구라트는 완성되지 않은 채로 남겨져 있었고, 아마도
그 불완전성 때문에 명성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 피사의 사탑이나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처럼 말이다.
하지만, BC 6세기, 바빌론의 왕인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이 당시까지 지어졌던 것들
중에서 가장 거대한 지구라트를 완성시켰다. 그것은 행성들 각각에 대해 하나씩 일곱 개의 안으로
들어간 단이 있는 형태였다. 가장 밑에 있는 단은 폭 300 피트에 길이 300 피트였으며 전체 구조물은
높이가 325 피트에 달했다. 그러나 이 건조물은 이집트인들이 세운 거대한 피라미드에 비하면
훨씬 작았다. 하지만, 그것은 남서 아시아에서 가장 거대한 구조물이었고 마침내 완성 되어진
탑이었다.
오늘날 바벨탑의 유적이 발견되었다고 기독교인들이 떠벌이는데, 실상은 위에서 소개한 탑의
유적일 뿐이다.
이제 결론을 내보자. 구약속의 바빌론 유수이전의 사건들은 대부분 신화이다. 신화는 진실이
아니라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은유법으로 암시하고 있다는 측면으로 관찰되어져야 할 것
이다.
단군신화를 예로 들어보면 곰이 여자로 변했다는 것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곰을 숭
배하는 샤머니즘 부족의 여자와 환웅이 결혼하여 두 부족이 하나로 뭉쳐졌다는 것을 암시한다
는 측면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구약 앞부분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야기도 이러한 신화의 이해
의 측면으로 이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