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루묵 보관법 찾다가 도루묵 구이까지

[원푸리]

도루묵 보관법 찾다가 도루묵 구이까지

도루묵 소금구이

난데 없는 도루묵이 떼로 몰려왔다. 이웃집에서 속초/양양 인근 바닷가에서 도루묵을 잠깐 동안 줏었는데 승용차 한 트렁크(!)를 가득 채워와서 몇 집에 한 함지박씩 돌렸기 때문이다.

마침 며칠 전 이웃집에서 도루묵찌게를 먹어봤는데 담백한 맛 외에는 살도 먹잘 게 없었고, 산란 직전의 알은 생고무구슬처럼 질겨 잘 씹히지도 않던 기억이 생생하던 차였다. 엉거주춤 걱정 반 고마움 반으로 받아놓고 나서는 고민에 빠졌다. 이를 우짜노~

첫 번째 아이디어. 간수 뺀 굵은 소금도 넉넉히 있으니 젓갈담자! 이웃에 사는 해안마을 출신 주부에게 전화하니 "맛 읎서라" 하신다. 맥없이 포기.

이웃집마다 전화를 돌려보니 다들 난리가 났다. 다들 고민하다가 도루묵 머리 쳐내고, 내장 긁어낸 뒤 꾸덕꾸덕하게 말려두는 방향으로 수렴되는 듯 했다. (산란기 도루묵이라서일까? 그냥 매운탕? 찌게? 끓이니 쌉싸름하더라) 내가 그런 꼼꼼함이 있을 수도 없거니와 어디에 꾸덕꾸덕 말려? 천지가 고양이인데.

그래 쉽게 가자! 잡은 그대로 20~30여 마리씩 투명비닐에 담아 냉동시켰다가 해동할 때 손질하던가 그냥 끓이던가 하기로 결정. 담아도 담아도 줄어들지가 않는다. 험악한 세상에 아름다운 호의가 고맙지 않은 경우도 다 있다. 비닐봉지 10꾸러미가 만들어졌는데도 100여 마리가 남았다.

그래, 오늘 잡은 거라 신선하니 구워먹자! 전기 팬을 꺼내와 초겨울 추운 날 데크에서 왕소금 흩뿌려 구운 도루묵 구이! 팬 가득 채운 첫판이 대충 익었다. 머리 속에서는 30여년 전 먹어봤던 연탄불 석쇠에 올려져 있던 밴뎅이구이를 연상하면서 (지금도 그 맛이 생생하다. 추억의 밴뎅이 생물 구워먹으러 강화도에 한 번 가야 하는데)

먼저 찔끔 맛보던 여자아이가 "제가 열심히 구울께요" 한다. 헐~ 머릿속 추억의 밴뎅이는 미리 지웠다. 한마리 먹어봤다. 이 맛을 어떻게 표현하지? 담백한 생조기나 밴뎅이살처럼 쉽게 흩어지는 담백한 맛이 있으나 살이 부족하고, 약간 비린내도 있는 듯 하고, 쌉쌀한 맛도 약하지만 있는 듯하고, 소금 닿은 자리는 짜고 안닿은 자리는 싱겁다. 한 마디로 맛이 알록달록 아리송하다. 먹자니 그렇고 안먹자니 아깝다.

이번엔 도루묵 소금구이로 전환. 작년인가 먹어본 새우 소금구이 맛이 죽이더라. 굵은 소금 잔뜩 깔고 약간 굳었다 싶었을 때 구웠다. 결과는 대참패! 소금을 팬에 굳혀두지 못해 소금절인도루묵구이가 돼버렸다. 투입비용이 아까워 겨우겨우 두 판 구워먹고 남은 도루묵은 음식물 쓰레기장에 버렸다.

나를 따라 끝까지 젓가락을 놓지않은 두 남자아이의 노고에 이 자리를 빌어 고마움을 전한다. 나는 도루묵이 싫다. '도로묵' 하게 해라!

[은성]

처음 도로묵을 소금구이해서 먹을때 먹을만하네 하고 계속 먹었는데 먹다보니까 점점 짜지더라고요..
도로묵찌게를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었는데 이번일로 도로묵이 맛없는 음식이 되버린 것 같아요...ㅠㅠ

[형원]

소금구이도 나쁘지는 않았는데 쉽게 질리는... 추억 하나 생겼어요 ㅎㅎ 그래도 과거 조선시대 때는 이 맛이 꿀맛이었을 거에요 ㅋㅋ

[윤영 :)]

두 소년의 노고ㅋㅋㅋㅋ
글 너무 재미있어요. 이웃집 덕분에 유쾌한 추억을 하나 갖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