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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의 강천산(剛泉山)을 다녀와서!
당신은 지금 어떠한 이름으로 세상을 살고 있습니까라는 어느 성직자의
물음에는 유명무실(有名無實)한 사람과 명실상부(名實相符)한 사람과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떤 차이가 있느냐고 합니다. 유명무실이란 이름만 있고 실속이
없는 것을 의미하고 명실상부란 알려진 것과 실제 능력에 차이가 없는 것을 의미
합니다. 유명무실한 사람은 할 일은
▼ 정암휴게소 풍경
▼ 강천산 들머리 주차장 부근
강천산(剛泉山) 583.7m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八德面)과 전라남도 담양군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 583.7m이다. 원래는 생김새가 용이 꼬리를 치며 승천하는 모습과 닮았다 하여
용천산(龍天山)이라 불렸다. 노령산맥에 속하며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의 퇴적암이다.
광덕산(廣德山:565m)·산성산(山城山:603m)과 능선으로 이어진다. 깊은 계곡과 맑은
물, 기암괴석과 절벽이 어우러져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리기도 한다.
1981년 1월 7일 한국 최초의 군립공원(순창군)으로 지정되었다. 비교적 높지는 않지만
병풍바위·용바위·비룡폭포·금강문 등 이름난 곳이 많다. 또 광덕산·산성산에 이르기
까지 선녀계곡·원등골·분통골·지적골·황우제골 등 이름난 계곡만도 10여 개나 된다.
정상 근처에는 길이 50m에 이르는 구름다리가 놓여 있다. 가장 좋은 볼거리는 11월
초순에 절정을 이루는 단풍과 4월 초순에 만개하는 산벚꽃이 유명한데, 산 입구의
강천호 주변뿐 아니라 등산로 어디에서나 즐길 수 있다. 산 암봉 아래에는 887년
(신라 진성여왕 1)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세운 강천사가 있다. 이 곳의 석탑은 전라
북도 유형문화재 92호로 지정되었고, 절 입구의 모과나무는 전라북도기념물 97호이다.
그 밖에 순창 삼인대(三印臺:전북유형문화재 27), 금성산성
(金城山城:전북기념물 52) 등의 문화유적이 있다. 내장산(內藏山:763m)
·백양사(白羊寺)·담양댐 등과도 가깝다.
출처: (두산백과)
병풍폭포[屛風瀑布]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 강천산 군립 공원 내에 있는 인공 폭포.
2003년 병풍 바위에 조성된 인공 폭포로, 병풍 폭포는 폭포수가 흐르는 병풍
바위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전설에 의하면 강천사(剛泉寺)를 찾아가는 사람
이 병풍 바위 밑을 지날 때, 전생에 죄를 지은 사람은 바위가 자기에게로 넘어
질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지은 죄를 뉘우치고 사죄하는 마음이 든다는 이야기
가 전해오며, 따라서 이 병풍 바위 밑을 지나온
사람은 죄진 사람도 깨끗해진다는 것이다.
병풍 폭포가 있는 바위는 큰 바위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고 하여 병풍 바위
또는 바위가 편평하게 누워 있다고 하여 편평 바위, 볼록한 등에 목을 쭉 빼고
있는 모습이 거북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여 거북 바위라고도 한다. 경위도
상의 위치는 북위 35° 24′, 동경 127° 04′ 지점이다.
높이 약 40m, 폭 약 15m, 낙수량이 분당 5톤에 이른다. 병풍 폭포는 관리
사무소에서 약 100m 상류 쪽에 위치하는 폭포이다. 관리 사무소를 지나
약 100m 지점에 위치하는 강천산 군립 공원 내 6개의 폭포 중 첫 번째
폭포로, 이 지점에서부터 맨발로 걷는 코스가 시작된다.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 강천산 금강 계곡에 있는 바위 문.
강천산 계곡을 따라 걷다가 금강교를 지나 100m 거리에 이르면 왼쪽
상봉에 투구봉과 금강문, 범바위가 보인다. 3개의 큰 바위가 탑을
이루고 있다 하여 탑상골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투구봉은 장군봉이라
고도 하고, 범바위는 호랑이가 하늘을 향하여 울부짖는 형상이라 하여
호두암이라고도 부른다. 금강문은 신의 조화가 아니면 뚫을 수 없고
절대로 부서지지 않는 문이라 하여 금강문이라 하였다. 금강문은 통천
문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통천문은 사람의 마음이 하늘로 통할 수 있는
관문이고, 그 금강문을 통해서 하늘을 바라보면
잡스런 생각이 없어진다고 믿어왔다.
강천산은 예부터 소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기암괴석과 단풍이 아름답고
계곡물이 깨끗하여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강천사의 금강문은
기암괴석이 자연스럽게 바위 문처럼 형성된 곳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금강문은 사찰의 입구에 금강역사상을 모신 전각이다. 금강역사상은
사찰의 수호신 역할을 하여 금강문 양쪽에 배치하는 방식인데, 강천산
에 있는 금강문은 일반적인 사찰의 금강문과는 별개로 인공이 가미되지
않는 자연 암석으로 형성된 바위 문을 가리킨다. 강천산 능선에 위치하여
접근하기 쉽지 않으나 멀리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강천산 군립 공원 관리소장을 맡았던 장영환의 말에 따르면, 금강문 아래
계곡을 금강 계곡이라 불러왔고, 금강문은 강천사 사찰의 금강문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한다. 강천사 경내에 금강문을 조성하지 않은 것도 강천사
입구에 자연 암석으로 조성된 금강문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금강 계곡을
따라 100여m를 거슬러 올라가면 산길 좌우에 관음암과 사천왕상 형상의
바위가 있는데, 그곳을 사천왕문으로 불러왔다. 아래쪽에 금강문이 있고
그 위쪽에 사천왕문이 있어 굳이 강천사에 금강문과 사천왕문을 세울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실제 강천사 경내에는
관음암을 향한 망배단의 기도처가 있다.
『순창 향지(지명고)』(순창 향지사, 1998)
인터뷰(전 강천산 관리소장 장영환, 남, 67세, 2014. 6. 10)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강천사(剛泉寺)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강천산(剛泉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887년(진성왕 1)도선
(道詵)이 창건하였다. 혹은 1482년(성종 13)에 작성된 『강천사모연문』에 보면 신령
(信靈)이 광덕산(廣德山) 가운데서 명승지를 골라 초암을 짓고 지낸 것에서부터
유래한다고 나와 있다.1316년(충숙왕 3)덕현(德賢)이 오층석탑과 12개 암자를
창건하여 사세(寺勢)를 확장하였으며, 1482년(성종 13)중조(中照)가 신말주(申末舟)
의 부인 설씨의 시주를 얻어 중창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이 절과 12개의
부속암자가 전소되었으며, 1604년(선조 37)태능(太能)이 중창하여 강천사만은
이전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 뒤 1855년금용당(金容堂)이 중창하였으나 6·25전쟁
으로 보광전(普光殿)·첨성각(瞻星閣)·칠성각의 당우들이 불타버렸다.
그 뒤 주지 김장엽(金奬燁)이 1959년에 첨성각을, 1977년 관음전을, 그리고 이듬해
보광전을 신축한 뒤 비구니의 수도도량으로 전승되고 있다. 근래에는 1992년 보광전
을 대웅전으로 바꾸었고, 1997년 첨성각을 헐고 복원하였다. 역사적으로 이 절에는
비구승보다 비구니들이 많이 머물렀는데, 그 까닭은 창건자 도선이 “머리카락과
수염이 없는 사람이 있어야 빈찰(貧刹)이 부찰(富刹)로 바뀌고 도량이 정화된다.”고
한 예언에 따라 절을 유지하여 왔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문화재로는 대웅전 앞에 있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2호인 오층석탑과
금강문(金剛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7호인 삼인대(三印臺) 등이 있으며, 오층
석탑은 1316년(충숙왕 3)덕현이 중창할 때 건립한 탑이다. 이 탑 북쪽 약 1m 지점
에는 중대석(中臺石)과 보주(寶珠)만이 남아 있는 석등이다. 금강문은 1316년
덕현이 절 주위의 풍치가 금강산과 비슷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 전한다. 자연암석
으로 된 사각문으로 높이 8m, 너비 4m이다. 또한, 이 절에는 천년을 살아 온 지네가
인간으로 변신하려다가 법당에서 피우는 향내음이 너무 독해서 인간이 되지 못하
였기 때문에, 그 앙갚음으로 요괴가 되어 매일 밤 승려 한 사람씩을 죽였다는 전설과
거지·승려 그리고 돈에 얽힌 전설 등이 전해지고 있다.
『전통사찰총서 9』(사찰문화연구원, 1997)
『한국(韓國)의 명산대찰(名山大刹)』(국제불교도협의회, 1982)
『한국사찰전서(韓國寺刹全書) 상(上)』(권상로,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 하(下)』(文化財管理局, 1977)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강천산 현수교(剛泉山懸垂橋)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 강천산 군립 공원 내에 있는 현수교.
강천산 현수교는 강천사에서 서남쪽으로 400m 거리에 위치하며, 해발 250m의
능선을 양쪽으로 연결하고 있다. 강천산 계곡을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연결하고
있으며, 북동쪽에 위치하는 강천산[왕자봉, 584m]과 남서쪽에 위치하는 신선봉
[425m] 능선을 연결하고 있다. 경위도 상의 위치는 북위 35° 23′, 동경 127° 04′이다.
강천산 군립 공원 안에 있어서 강천산 현수교라고 부른다. 강천산 현수교는 강천산
의 명물로서 사랑받고 있으며, 높은 곳에 위치하다 보니 ‘구름다리’,
흔들린다고 ‘출렁 다리’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강천산 현수교는 신선봉 전망대를 올라가기 위해 건립한 다리로, 1980년 4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1980년 8월 2일에 완공하였다. 설계는 전북 대학교 박춘혁
교수가 맡았고 시공은 전주 동진 공업사에서 진행하였다.
길이 78m, 높이 50m, 폭 1m이다.
강천산 현수교는 강천산 계곡을 연결하고 있으며, 동쪽에 강천사가 위치하고
상류인 서쪽에는 용머리 폭포가 바로 아래에 위치한다. 강천산과 신선봉
전망대를 연결하는 다리로,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용머리
폭포의 모습이 장관이다.
『순창군 행정 지도』(순창군, 2011)
자료 제공(순창군청 문화 관광과 김영진, 2014)
순창군 문화 관광(http://tour.sunchang.go.kr)
인터뷰(전 강천산 관리소장 장영환, 남, 67세, 2014. 1. 22)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구장군 폭포(九將軍瀑布)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 강천산 군립 공원 내에 있는 인공 폭포.
구장군 폭포는 9명의 장군이 결의했다는 전설에서 유래하였다. 삼한 시대에 혈맹으로
맺어진 9명의 장수가 전쟁에서 패한 후 이곳에 이르러 자결하려 하였다. 그런데 죽으
려던 순간, 이렇게 죽을 바에는 다시 한번 전장으로 나가 싸워 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시 굳은 마음을 먹고 출전하여
승리를 거두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구장군 폭포는 강천산 군립 공원 내 강천사에서 서남쪽으로 약 1.2㎞, 강천산 현수교
에서 약 800m 상류에 있는 폭포이다. 경위도 상으로는 북위 35° 23′, 동경 127° 03′에
위치한다. 바위 사이로 두 줄기의 폭포물이 흘러내리는 3단
폭포이며, 아래에는 소가 형성되어 있다.
높이 약 120m의 구장군 폭포는 2005년 조성된 인공 폭포이다. 현수교와 연대암(連臺庵)
터 사이에 위치하여, 현수교에서 금정산성의 동문과 북바위로 연결되는 등산 코스 2번
[병풍바위~강천사~구장군 폭포~북바위~산성산~송낙바위~강천사~관리 사무소]
상에 위치한다. 반대편에 관찰 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순창군 문화 관광(http://tour.sunchang.go.kr)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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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유수/이미자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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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4 작성자 상산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