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최진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 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아리랑과의 인연은 68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을에 있는 단 하나뿐인 작은 상점에서 축음기로 처음 들었다. 문명의 혜택을 거의 받지 않던 때라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아리랑은 신기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측음기속에 작은 사람이 들어가 있어서 노래를 부르는 줄 알고, 사람이 얼마나 작아야 저속에 들어가 노래를 부를 수 있을 있을까? 어린 나이에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 후 예순이 넘어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아리랑을 듣곤 한다. 조용한 밤 아리랑을 들으면 감칠 맛 나는 가락이 삶의 피로를 풀어주는 회복제 같아 마음이 편안해 진다.
아리랑의 뜻은 여러 학설이 있지만 노랫말의 참 뜻은 “참 나를 깨달아 인간완성에 이르는 기쁨을 노래한 깨달음의 노래”라고 한다. 그래서 아리랑은 참된 나(眞我)를 찾는 즐거움이라는 뜻이라니 오묘하고 깊은 의미를 지닌 민요인 것이리라.
곡의 종류도 다양하다. 전문가들은 남북을 통틀어 약 60종 3천6백 여곡이 있다는 추정이다. 그 가운데 정선아리랑,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은 3대 아리랑이고, 요즘 대중적으로 부르는 경기아리랑은 1930년대 신민요이다.
오랜 세월 우리 선조들이 불러온 아리랑의 흔적을 삶의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영화, 뮤지컬, 연극, 대중가요, 잡지, 택시, 열차, 식당, 담배, 위성, 방송국이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을 보면 아리랑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끼게 한다.
아리랑은 단순히 민요로서의 역할을 넘어 다양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 나라가 어려울 때 민족을 하나로 묶는 겨레의 노래였다. 일제강점기에 민족의 비애와 항일정신을 그린 영화 ‘아리랑’이 1926년 개봉 되었다. 그 때 일본인은 영화 주제가인 아리랑이 불온한 가사를 담고 있다는 이유로 개봉첫날부터 홍보전단지를 압수했고, 나중에는 아리랑음반까지 판매금지를 당하는 수난을 겪었지만, 나라 잃은 국민을 단합시키는 역할을 했다.
세계어디에 거주하든 ‘한국인과 대한민국’, ‘한국인과 다른 한국인’ 사이를 이어주는 탯줄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20세기 초 일제강점기에 고향을 떠나 이주한 중국, 러시아, 중앙아시아와 비교적 최근에 이민을 통해 이주한 브라질, 독일,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지에 살고 있는 한국인 사이에 감정적 연결 끈이 되어 전승되고 있다.
6.25전쟁 때는 아리랑이 새겨진 스카프, 손수건, 라이터, 인형 등이 기념품으로 나와 참전용사들의 사기를 진작시켰다는데, 그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기념품은 아리랑악보와 가사가 실린 스카프였단다. 우리나라를 방문한 유엔참전용사의 인터뷰에서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아리랑은 친근한 노래였다”고 술회하는 것을 보면 생과 사의 위험에서도 아리랑이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짐작이 간다.
지금은 남북의 동질성을 아우르는 끈이 되고 있다. 1991년 일본자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처음으로 남북단일팀이 실현되어 우승을 하자 시상대에서 양국국가 대신 단가로 아리랑을 제창했다. 2002년 호주시드니 올림픽에서 한반도기를 앞세운 남북선수단이 함께 입장할 때 선수단이 아리랑을 불렀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남북이 공동입장 때도 아리랑이 울려 펴졌다.
구전해 오던 아리랑을 세계에 최초로 소개한 사람은 1886년 근대식공립학교인 육영공원외국인 교사로 부임한 미국인 호므 헐버트(1863-1949)이다. 그는 부임한지 4개 월 만에 이웃집 뜰에서 아이들이 부르는 아리랑을 듣고 감동을 받았단다. 그 후 오랜 기간 채집한 가사에 1896년에 최초로 영문가사와 악보로 기록함으로써 전 세계에 아리랑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아리랑은 한국인에게 쌀과 같은 존재” 라며 아리랑에 담긴 애환을 풀어냈고, 한국 사람들이 아리랑가사와 박자를 즉흥적으로 바꾸는 것을 두고 “한국인은 즉흥곡의 명수”라고 했다.
외국에서 아리랑을 듣고 감격했던 기억이 있다.
한 25여 년 전 일본 동경 신주쿠에서 밤12시가 되자 스피커에서 아리랑이 흘러나와 눈물이 핑 돌았다. 36년간 민족말살정책을 쓴 일본 땅에서, 그들이 불온가사라 판매금지를 했던 아리랑을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오스트리아를 방문해서 저녁을 먹으려고 빈의 작은 식당을 찾았다. 골목 안 단층식당입구에 세워진 대형 패널 살펴봤다. 식당을 다녀간 외국대통령, 미스월드, 영화배우, 가수, 세계적인 재벌 등 유명인의 사진을 촬영해서 전시해 두었다. 혹시 한국인이 있는지 살펴보니 없었다. 겉보기에는 허름해 보였지만 식당내부는 편안한 분위기여서 만족스러웠다. 종업원이 추천한 돼지고기 수육은 지금까지 먹어본 돼지고기 요리 가운데 가장 맛이 좋았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아코디언 연주자 2명이 들어와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와 ‘아리랑’을 연주했다. 어둠이 짓게 깔리는 초저녁 붉은 커튼이 드리워진 음악의 도시 빈의 한 식당에서 아리랑을 감상하니 형언 할 수없는 뭉클한 감동을 받았다.
연전에 본 방송에서 흑인 색소폰 연주자가 뉴욕지하철역에서 독주하는 아리랑을 수십 명이 감상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서서히 세계로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리랑은 한국을 넘어 해외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2001년 제31차 유네스코총회에서 세계에서 가장아름다운 노래로 선정하고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에 대해 시상하는 ‘아리랑상’을 제정해서 시상하고 있다. 2002년 독일에서 열린 한 음악대회에서 세계 100대 노래 중 으뜸을 차지했고, 2012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 7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인류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유네스코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미국연합장로교회에서 발간하는 찬송가집에 실린 “Christ, you Are the Fullness" 란 제목의 찬송가 멜로디가 아리랑이어서 찬송가로 애창되고, 시진핑 중국국가 주석이 주중 한국대사에게 아리랑의 뜻을 물었다니 아리랑에 대한 관심이 국제적으로 높아 가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 민요가 세계인의 애창곡으로 부르고 있다. 이탈리아 민요 ‘산타루치아’, 미국의 민요 ‘메기의 추억’. 아일랜드의 민요 ‘아! 목동아’ 등 수 없이 많다. 아리랑도 세계인이 애창하는 한국 민요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아리랑의 세계화는 한국인 의식의 세계화이리라.
첫댓글 아리랑이란 노래도 많기도 합니다. 아리랑 민족의 노래요, 가곡이지요. 감사합니다. 건강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