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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여행자료 스크랩 경남 남해군 홍현리 가천 다랭이마을[이종호의 과학문화유산답사기]
이장희 추천 0 조회 31 14.05.31 15:1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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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갓으로 가릴 만큼 작은 논이 있다? 없다?

[이종호의 과학문화유산답사기 제3부]<7-1>

 

경남 남해군 홍현리 가천 다랭이마을(농촌전통테마마을)

 

낙안읍성을 떠나 남해 다랭이 마을로 가는 길은 전라남도가 자랑하는 ‘바래길’이다. 마을 사람들이 갯벌로 가던 길을 이어 만든 코스인데, 남해 사투리로 바다에 조개를 캐거나 해조류를 채취하러 가는 것을 뜻하는 ‘바래 간다’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사람들의 생계를 위한 길이 남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환상적인 바래길을 한껏 음미하면서 달리다 보면 어느덧 경상남도 남해군에 도착한다. 남해는 통영과 여수로 이어진 한려수도의 중심지다. 남해를 육지와 연결하는 남해대교를 지나 남쪽으로 가면 망망대해가 펼쳐지는데, 벼랑에 걸려있는 마을이 바로 남해군 ‘다랭이마을’, 즉 가천마을이다. 이 마을의 유래를 살피다 보면 ‘새옹지마가 바로 이런 경우를 뜻하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경남 남해군 바닷가 쪽에 자리 잡은 ‘가천 다랭이마을‘의 전경. 경사가 가파른 땅에 좁고 길다란 논을 만들어 놓아 전체적으로 오선지를 그린 종이를 휘어놓은 느낌을 준다. 이종호 제공

 

 

새옹지마(塞翁之馬)는 사람이 살아가는 일 자체를 이르는 고사성어로, 전화위복(轉禍爲福)과 같은 말이다. 세상만사(世上萬事)는 변화(變化)가 많아 어느 것이 화(禍)나 복(福)이 될지 예측(豫測)하기 어려우므로 재앙(災殃)도 슬퍼할 게 못 되고 복도 기뻐할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인생(人生)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은 늘 바뀌기 때문이다. 새옹지마라는 말이 나오는 중국의 ‘회남자(淮南子)’의 일화가 그를 잘 보여준다.

 

‘옛날 중국의 북쪽 변방에 살던 한 노인이 기르던 말이 멀리 달아나 버렸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慰勞)하자 노인은 “오히려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 라고 말했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말이 한 필의 준마(駿馬)를 데리고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축하하자 노인은 “도리어 화가 될는지 누가 알겠소” 라며 오히려 불안해했다. 그런데 어느 날 말 타기를 좋아하는 노인의 아들이 준마를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걱정하며 위로(慰勞)하자 노인은 “이것이 또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 라며 태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나 대부분의 마을 젊은이들은 전쟁터로 불려 나가 죽었으나 노인의 아들은 말에서 떨어져 절름발이였기 때문에 전쟁에 나가지 않아 죽음을 면했다.’

 

●‘손바닥만한 땅도 논으로 만든다’

 

가천마을의 옛 이름은 간천(間川)이었으나 조선 중기에 이르러 갈대가 많은 냇가에 자리 잡고 있다 해 가천(加川)으로 바뀌었다. ‘다랑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산골짜기의 비탈진 곳 따위에 있는 계단식의 좁고 긴 논배미’라고 나오는데 지역에 따라 ‘다랭이’ 또는 ‘달뱅이’라는 사투리로 불린다.

 

남해군 홍현리 가천마을은 손바닥만한 다랑이 논이 언덕 위부터 마을을 둘러싸고 바다까지 이어진다. 정확히 말하자면 45도 경사 비탈에 108개 층층계단, 3평밖에 안 되는 작은 논부터 300평의 논까지 680여 개의 논이 펼쳐진다. 이곳에서는 길과 집, 논 등 모든 것이 산허리를 따라 구불거리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마치 곡선 위에 오선지를 그린 것 같은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다랭이마을이 생긴 이유는 간단하다. 선조들이 산기슭에 90도로 곧추 세워 쌓은 논둑으로 한 평이라도 더 논을 내고, 쌀을 확보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작은 논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옛날 남해군 남면 홍현리에 위치한 다랭이 마을에 한 농부가 일을 하다가 논을 세어보았다. 그런데 논 한 배미가 모자랐다. 아무리 찾아도 없기에 포기하고 집에 가려고 삿갓을 들었더니 그 밑에 논 한 배미가 있었다.’

 

 

 

다랭이마을을 유명하게 만든 ‘다랑이 논‘의 모습. 가난한 선조들은 가파른 경사지를 개간해 계단식으로 논을 만들고 벼를 심었다. 이종호 제공

 

 

이처럼 다랑이 논은 작은 삿갓을 씌우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논이라 해 ‘삿갓배미’나 ‘삿갓다랑이’라고도 말했다. 또 죽이나 밥 한 그릇과 바꿀 정도로 작다 해서 ‘죽배미’나 ‘밥배미’라고 불린다.

 

다랑이 논은 이곳이 아니면 살 수 없었던 주민들의 눈물과 땀으로 만든 땅이다. 위정자나 지주들의 착취와 전쟁 등을 피해 오지 중의 오지로 이주한 가난한 농민들은 돌투성이의 가파른 비탈을 개간해 논을 만들었다. 걷어낸 돌로 논둑을 쌓고 물이 쉬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점토나 흙으로 마감했다. 모든 일이 사람 손으로 이뤄졌는데 이들은 ‘손바닥만한 땅도 논으로 만든다’는 집념으로 일했다.

 

수백 년 동안의 눈물겨운 노동으로 일궈낸 계단식 논은 생태 가치가 높다. 토양침식을 막고 물을 머금어 홍수를 줄이며, 산속에 습지를 조성해 생물 다양성을 높인다. 이곳 남해는 태풍이 종종 부는데도 인간이 개간한 다랑이 논이 태풍에 의한 유실된 적은 없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민초들의 고단한 삶이 예술로 승화돼 계단식 다랑이 논이 되었다고까지 극찬한다. 현재도 기계가 들어갈 수 없어 여전히 소와 쟁기로 농사를 지어야 하지만 바로 이 열악한 환경이 오히려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명소로 변했다.

 

 

 

물고기 안 잡히는 건 ‘남근바위’ 때문?

[이종호의 과학문화유산답사기 제3부]<7-2>

 

경남 남해군 홍현리 가천 다랭이마을(농촌전통테마마을)

 

계단식 다랑이 논의 가장 큰 문제는 ‘물 확보’다. 천수답이 해답이지만 이것만으로는 필요할 때 물을 제대로 공급할 수 없다. 선조들은 이 문제 역시 슬기롭게 해결했다. 마을 자체가 설흘산과 응봉산, 두 산을 등에 업고 있으므로 위에서부터 물이 내려와 논마다 고루 물을 댈 수 있도록 수로를 연결한 것. 이를 만들기 위한 고통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다랭이마을 사람들을 어렵게 만든 또 하나의 이유는 마을 위치가 어촌인데도 남다른 환경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랭이마을은 바로 앞에 푸르른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으므로 분명히 바닷가 마을이다.

 

 

다랭이마을은 앞에 바닷가가 펼쳐졌지만 거친 파도와 바위 때문에 고기잡이를 할 수 없다. 논밭도 척박한 데다 어업도 할 수 없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사는 주민들의 삶은 고단했을 것이다. 이종호 제공

 

 

흔히 바닷가 마을이라고 하면 어업이 주를 이룰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 마을에는 포구가 없다. 그 이유는 마을 아래쪽 해변에 내려오면 금방 알 수 있다. 거친 파도와 많은 바위 때문에 조각배조차 정박할 공간이 없다. 더구나 태풍도 잦아 배의 쉼터가 될 수 없다.

 

이 때문에 다랭이마을은 남해에서 선착장이 없는 유일한 갯마을이다. 이런 환경은 마을 지붕이 나지막하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매서운 바람에 번뜻한 집들이 남아나지 못한다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날씨가 좋을 때 마을 뒤 설흘산에 오르면 남해도의 바다와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였던 늑도가 수평선 위로 아득하게 보인다. 더불어 어촌인데도 어업을 할 수 없었던 마을에서 사는 사람들이 고단하게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한국 최고의 ‘남근석’ 있는 性 신앙의 메카

 

삼천리 방방곡곡 마을마다 대개 한두 개의 ‘남근’이나 ‘여근’을 뜻하는 이름들이 있다. 이런 이름들은 대개 고대 성기 숭배 신앙의 흔적, 아들을 바라는 기자(祈子) 신앙이 결합한 형태가 대부분이다.

 

반면에 풍수지리상 여자의 기, 곧 음기가 강한 곳에는 남근석을 세워 음기와 양기의 조화를 이루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무덤을 여근의 상징으로 인식하고, 묘 앞에 세우는 망주석은 남근을 상징한다고도 한다. 이 둘이 교합하여 자손들이 번창해지고 복 받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다랭이마을은 우리나라의 ‘성(性) 신앙의 메카’라고 불리며, 2005년 명승으로 지정되기 이전부터 민속학자들에게는 매우 유명했다. 현지에서 ‘미륵바위’로도 통하고 공식적으로는 ‘가천암수바위(경상남도 민속자료 13호)’로 불리는 대형 성기바위가 있기 때문이다.

 

이 바위는 우리나라의 성기바위 중 가장 큰 것으로 추정된다. 숫바위는 높이 5.8m, 둘레 약 1.5m로 발기한 남자 성기의 모양으로 서 있고 암바위는 높이 3.9m, 둘레 약 2.5m인데 잉태해 배가 부른 여인의 모습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다.

 

 

 

‘미륵바위‘라고도 불리는 가천암수바위의 모습. 숫바위는 발기한 남자 성기의 모양으로 서 있고, 암바위는 잉태해 배가 부른 여인의 모습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다. 이종호 제공

 

 

두 바위는 바다를 등지고 마을을 향해 비스듬하게 짝을 이룬 형상을 하고 있다. 화강암으로 이뤄진 자연석이지만, 숫돌은 인공의 힘을 빌렸다고 착각할 정도로 귀두와 힘줄이 사실적이다. 안내문에는 이 바위가 영조 27년(1751) 땅속에 묻힌 것을 캐냈다고 전한다.

 

남해 현령 조광진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내가 묻혀 있는 곳에 사람과 짐승의 통행이 잦아 일신이 불편해 견디기 어려우니 나를 일으켜주면 필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조광진이 아전을 데리고 가천을 가보니 꿈에 본 것과 똑같은 지세가 있어 땅을 파자 수바위와 암바위가 나왔다고 한다.

 

●풍요·다산 기원하는 신앙으로

 

조광진은 암바위는 누운 그대로 두고 수바위는 일으켜 세워 바위 이름을 미륵이라 붙였다. 이후 다섯 마지기 논을 제답으로 바쳐 해마다 미륵이 발견된 음력 10월 23일에 마을의 안녕을 빌기 위해 제사를 올리게 했다.

 

동민 중에서 제주와 집사를 선정해 제를 올리는데, 미륵에 대한 제사이므로 어육과 술을 일체 쓰지 않고 과일과 떡, 나물 등을 큰 그릇에 담아 제사를 지낸다. 제의의 목적은 마을의 무사태평과 풍농풍어의 기원이다.

 

미륵불의 영험함이 소문에 소문을 타고 펴져나가자 마을 사람뿐 아니라 미륵불의 영험을 믿는 남해와 사천, 통영 등지의 사람들도 참여해 미륵계(彌勒契)를 만들어 제를 주관했다. 어부들은 처음 잡은 고기를 이 바위 앞에 놓고 빌면 고기가 많이 잡히며, 해난사고를 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제의를 행할 때 계원의 이름을 부르면 이들의 집안이 무사하고 소원이 성취된다고 알려진다. 제를 마치면 제물을 조금 사방에 흩뜨리고 땅에 파묻은 뒤 나머지는 가지고 와서 다음날 동민들과 음복을 한다.

 

 

 

 

성기 형상·밥무덤에 복을 빌다

[이종호의 과학문화유산답사기 제3부]<7-3>

 

경남 남해군 홍현리 가천 다랭이마을(농촌전통테마마을)

 

다랭이마을의 제의는 민속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보물창고나 마찬가지다. 이 행사는 풍요와 다산을 위해 숭배해 오던 민간의 성기신앙에 불교가 융합된 형태다. 또 그 신격이 민중구제의 미래불인 미륵으로 격상되면서 종교적 기능이 확대되고 신체(神體)의 신성성도 계속 유지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남해 현령이 땅에서 파내어 미륵불로 봉안했다’는 전설은 관의 권위로 가천암수바위에 미륵불이라는 품위를 부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덕분에 성기 형상석이 계속 숭배됐는데 그 신격이 성기숭배 대상물에서 미륵불로 변했지만 불교의 신으로 변하지 않았다.

 

대신 본래 한 쌍의 바위가 지니고 있었던 풍요와 다산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마을 수호, 기복, 치병, 소원성취, 태평무사 등으로 기능이 확대됐다. 민속학자들은 이런 변화가 성숭배신앙의 추이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하고 있다.

 

사람들은 암수바위를 손가락질하거나 개인적으로 욕심을 부려 이 바위 가까이에 작물을 심으면 화를 입는다고 믿었다. 상여도 반드시 이 바위 아래로 지나가야 변고가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며, 심지어 새가 암수바위에 앉으면 죽을 정도로 영험이 있었다는 말도 전해진다. 마을 앞바다에서 고기잡이 하는 어부들은 고기를 많이 잡고, 해난사고를 방지하기 위하여 처음 잡은 고기를 이 바위에 걸기도 했다.

 

미륵바위가 영험하다는 소문이 나자 다른 지역 사람들도 찾아와 촛불을 밝히고 기자(祈子), 치병, 소원성취 등을 기원했다. 멀리서 아들을 못 낳은 여자들도 미륵바위에 소원을 빌러 오는데, 그 중에는 무당을 데려 와서 푸닥거리까지 하는 이도 있다고 한다.

 

●“이 밥 드시고 풍요를 내리소서”… 남해안 ‘밥무덤’ 제사

 

가천마을에는 또 다른 특별한 민속자료가 있는데 바로 ‘밥무덤’이다.

 

밥무덤은 가천마을의 중앙과 동쪽, 서쪽 3군데에 있다. 마을 중앙에 있는 것은 삼층탑 모양의 조형물인데 밑변이 180㎝, 높이가 162㎝나 된다. 마을의 동쪽 언덕과 서쪽 언덕에 있는 밥무덤은 모두 돌을 쌓아 감실처럼 만들었다.

 

 

다랭이마을에 있는 ‘밥무덤‘. 마을 중앙과 동쪽, 서쪽 세 군데에 있는 이 유적은 풍요를 빌고 바다에서 죽은 혼령을 위로하는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이종호 제공

 

 

굴뚝처럼 생긴 밥무덤 안에는 실제로 밥을 묻는다. 제사를 지낼 때 밥을 정갈한 한지에 서너 겹으로 싸서 정성껏 묻고, 흙으로 덮은 다음 그 위에 반반한 덮개돌을 덮어 두는 것이다. 이렇게 꽁꽁 싸 두는 이유는 밥을 쥐나 고양이, 개 등의 짐승이 해치지 못하게 하려는 데 있다. 만약 그렇게 되면 불길한 일이 생기거나 신에게 바친 밥의 효력이 없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음력 10월 15일이면 주민들이 마을 중앙에 있는 밥무덤에 모여 풍작과 풍어를 기원하고 마을의 안녕과 태평을 축원하는 동제를 지낸다. 일주일 후인 음력 10월 23일 밤 12시경에는 남근바위로 가서 미륵제를 올린다. 밥무덤 동제가 남근바위 미륵제를 지내기 위한 식전행사쯤 되는 셈이다.

 

이밖에도 밥무덤 제사가 가지는 의미는 다양하다. 우선 먼 거리까지 항해를 나갔다가 죽어 제삿밥을 얻어먹지 못하는 혼령들을 위해 준비한 몫이다. 유독 남해안 일부 지역에서 밥무덤 제사가 전해지는 까닭은 상대적으로 경작할 논이 적어 쌀에 대한 애착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신앙으로 변모해 오늘날까지 전승된 것이다.

 

귀한 제물인 밥을 땅속에 넣는 것은 마을을 지켜 주는 모든 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풍요를 점지해 주는 땅의 신인 ‘지모신(地母神)’을 위한 것이다. 지모신에게 밥을 드려서 그 기운이 땅속에 스며들어 그 몇 십 배 또는 몇 백 배의 풍요를 되돌려 받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의 표출됐다고 풀이할 수 있다.

 

우리나라 도처에 동제 또는 당산제를 지내는 곳은 많지만 밥무덤 제사를 지내거나 밥을 묻는 제의를 행하는 곳은 많지 않다. 예부터 이런 제의가 전해지는 곳으로는 남해군 본 섬과 창선도, 남해군과 사천시 사이 해협에 있는 섬인 신수도·초양도·마도·늑도와 사천시의 사남면 화전리·용현면 용치리·곤양면 환덕리 등이다. 이들 마을행사인 암수바위 미륵제와 밥무덤 동신제는 문화재청이 지정하는 자연유산 민속행사로 지정됐다.

 

 

 

 

‘가장 가난한 땅’에서 ‘꼭 가봐야 할 마을’로

[이종호의 과학문화유산답사기 제3부]<7-4>

 

경남 남해군 홍현리 가천 다랭이마을(농촌전통테마마을)

 

 

다랭이마을은 미국 뉴스전문채널 CNN에서 운영하는 ‘CNN GO’에서 선정한 ‘한국에서 가봐야 할 아름다운 50곳’ 중 하나다. 탁 트인 바다와 잘 보존된 다랑이 논이 이유다. 동아일보DB 제공

 

 

큰 틀에서 보면 다랭이마을은 ‘과학이 있는 한국 전통마을’ 범주에서 다소 벗어난다. 마을이 형성된 역사는 길지만 전통마을을 구성하는 ‘집성촌’처럼 양반이 구성하던 씨족마을과 거리가 멀고, 주민 거주지가 문화재로 지정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랭이마을을 ‘과학문화유산답사기’에서 거론하는 이유는 이 마을이 갖고 있는 독특한 환경에 삶의 애환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또 이 애환이 현재 한국에서 그 어느 곳보다 빛을 발한다.

 

다랭이마을은 얼마 전만 해도 연평균 소득이 한국에서 가장 낮은 지역 중의 하나였다. 현재 이 마을은 58가구 150여 명의 주민이 사는데, 여자가 남자보다 약 1.5배 많아 노동생산력도 남다르게 떨어진 오지였다.

다랑이 논 자체가 열악한 환경을 뜻하는데다 마을과 인접한 바닷가에서 식량을 생산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조의 땀이 밴 한 뼘의 역사가 다랭이마을에서 큰 희망이 됐다. 2002년 환경부는 가천마을을 ‘자연생태보존우수마을’로 선정했고, 2005년 문화재청은 마을 전체를 포함한 다랑이 논을 명승 제15호로 지정했다. 농림수산식품부도 다랭이마을을 ‘Rural-20’이 선정하는 ‘색깔 있는 마을’로 뽑았다.

 

 

다랑이 논에 벼가 심어진 모습. 요즘에는 벼 대신 마늘을 많이 심는다. 동아일보DB 제공

 

 

그뿐이 아니다. 미국 뉴스전문채널 CNN에서 운영하는 ‘CNN GO’는 ‘한국에서 가봐야 할 아름다운 50곳’ 중 하나로 다랭이마을을 선정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남해군 서쪽 최남단에 있는 작고 잘 보존된 다랭이마을은 탁 트인 바다 뒤에 있는 가파른 산비탈에 셀 수 없이 많은 아주 작은 계단식 논의 기이한 광경이 특징이다.’

 

 

●‘인생사’뿐 아니라 ‘마을역사’도 새옹지마

 

한마디로 다랭이마을은 국내외를 통해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다. 빈한했던 바닷가 마을에 2011년 한 해 동안 찾아온 사람이 30만 명에 이를 정도였다. 결국 다랭이마을은 살기 어려운 척박한 땅이란 이름을 벗어 던지면서 이름난 명승지로 자리 잡았다. 조상 대대로 가난을 면치 못하던 좁은 다랑이 논이 하나의 상품으로 변형돼 마을 자체를 유명하게 만든 것이다.

 

벼와 마늘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던 ‘오지 중의 오지’인 다랭이마을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99년부터로, 고작 10여년 밖에 지나지 않았다. 이 마을 출신 김종철 씨가 면장으로 부임하면서 마을 뒤쪽의 설흘산 등산로를 개발한 게 계기였다. 등산객들이 산을 오르면서 환상적인 경관을 보고 입소문이 내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 2002년 농촌진흥청이 선정한 농촌전통테마마을에도 선정되면서 마을이 더 많이 알려졌고 2005년에 명승으로 지정됐다. 단 5년 만에 다랭이마을이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로 탈바꿈한 것이다. ‘새옹지마’는 바로 이런 경우를 뜻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붕·담벼락 장식… 다양한 체험행사 마련해 관광 코스 조성

 

 

주민들은 마을이 점차 유명해지자 벽화를 그리는 등 마을을 가꾸기 시작했다. 이종호 제공

 

 

다랭이마을 지붕에는 꽃잎이나 마늘 등을 그려넣어 멀리서 봤을 때 아기자기한 느낌을 준다. 이종호 제공

 

 

그렇다고 다랭이마을 주민이 이런 천혜의 혜택에만 안주한 것은 아니다. 허물어져가던 집을 고쳐 펜션과 민박시설로 바꾸고, 마을 주변 볼거리를 코스로 엮었으며 ‘다랑이 만들기’ ‘농사체험’ 등 사계절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어 몰려드는 관광객을 맞았다.

 

더구나 골목마다 친절한 간판을 세웠으며, 나무 소재를 이용해 산책로도 편리하게 조성했다. 지붕에는 알록달록한 꽃이나 유자, 마늘을 큼지막하게 그렸고, 담벼락은 마을의 일상을 묘사한 각종 벽화로 장식해 탐방객들의 눈을 즐겁게 만들었다.

 

척박한 환경을 탓하며 좌절과 숙명론에 빠지는 대신 약점을 특색과 장점으로 살리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다랭이마을은 ‘천형(天刑)의 땅’에서 ‘천혜(天惠)’의 땅으로 탈바꿈했다. 그렇다고 해서 자연을 훼손시키거나 망가뜨리지 않았다. 깨끗한 자연과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다랭이마을의 원천적인 경쟁력이자 매력이라는 것을 주민들도 잘 알기 때문이다.

 

 

 

 

이 곳이 바로 국가대표 환경마을!

[이종호의 과학문화유산답사기 제3부]<7-5>

 

경남 남해군 홍현리 가천 다랭이마을(농촌전통테마마을)

 

 

남해 다랭이마을에 있는 다랑이 논에 마늘이 심어져 있다. 동아일보DB 제공

 

 

다랑이 논으로 유명한 마을이지만 지금은 벼농사를 짓는 논보다 마늘밭이 더 많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생계용 직종을 민박으로 바꾼 지도 오래돼 마을에서 민박을 안 하는 집을 찾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먼 옛날 농토 한 뼘이 아쉬워 산비탈을 깎아 만든 계단식 논과 마을의 풍광은 여전하고 남쪽 바다는 변함없이 새파랗다.

 

단 10년 정도 만에 과거에 상상도 할 수 없던 변화가 생겼지만, 이 마을은 관광 목적으로 복원한 민속마을과는 엄연히 다르다. 비록 논농사는 적게 하지만 다랑이 논을 훼손하지 않고 과거의 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광객을 위해 현대화 시설을 세웠지만 이 마을이 갖고 있는 핵심조차 벗어난다면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날 것을 주민들이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다랭이마을의 중요성은 ‘사람이 살기 어려운 오지를 천혜의 땅으로 만든 성공적인 변화’에 있다. 이는 과거에 존재했던 마을에게 좋은 범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마을이 과거 그대로 현재까지 변하지 않았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과거 틀을 잃지 않으면서 시대적 변화도 접목해 시시각각 밀려오는 변화에도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 다랭이마을이 바로 이런 사례다.

 

●다랭이마을, ‘전통마을의 맥’ 인정받다

 

‘과학이 있는 한국 전통마을’이 무엇을 뜻하느냐가 관건이다. 전통마을의 기본은 주거다. 즉 과거부터 선조들이 자신의 틀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려면 주거가 있어야 ‘과학이 있는 한국 전통마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주거를 비롯해 마을이 ‘변하지 않았다’라는 것은 큰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근대를 거쳐 현대라는 급격한 변화기를 거쳤음에도 변하지 않은 마을이나 도시는 낙후된 것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화 유물을 철저하게 보존한다’는 문화재와 같은 의미로 전통마을을 평가할 수는 없다. 전기가 전혀 없는 오지의 산간지역에 화전민이 만든 마을이라고 해서 이 마을을 전기가 없는 형태로 복원한다면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전통마을을 평가할 때 보존만 강조할 게 아니라 시대적 변화도 접목해 슬기롭게 대처하는 과정도 포함해야 한다. 전통마을이라도 하드웨어적 개조는 어느 정도 허용하면서 마을 시설과 주민이 역동적으로 숨쉬는 생명력을 갖고 있는 것이 필요하다.

 

다랭이마을은 주거보다 그들의 터전이 ‘전통마을의 맥’으로 인정받은 특별한 예이다. 한국인의 슬기로운 아이디어 도출이 기대되는 이유다.

 

●금산 보리암·죽방렴·관음포 등 인근 남해 관광도

 

남해에는 워낙 명소가 많기로 유명하다. 인근에 남해대교, 창선삼천포대교, 사촌해수욕장, 상주해수욕장 등이 있으며 금산 ‘보리암’도 빠뜨릴 수 없는 유명한 장소다. 금산(681m)은 삼남 제일의 명산으로 불리며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공원이다. 보리암은 강화도 보문사, 낙산사 홍련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도처의 하나다. 한마디로 기도발이 잘 들어 수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 때마다 찾는 곳이다.

 

 

2010년 명승으로 지정된 ‘죽방렴’의 모습. 참나무와 대나무를 주재료로 발처럼 엮어 고기를 잡는 도구로 물때를 이용해 고기가 안으로 들어오면 가뒀다가 필요한 만큼 건지는 재래식 어항이다. 이종호 제공

 

 

 

 

 

죽방렴 구조도. 이종호 제공

 

 

2010년 명승으로 지정된 ‘죽방렴’이 창선교 옆의 지족해안에 있다. 죽방렴이란 ‘참나무와 대나무를 주재료로 발처럼 엮어 고기를 잡는다’는 의미에서 비롯됐다. 물때를 이용해 고기가 안으로 들어오면 가뒀다가 필요한 만큼 건지는 재래식 어항이다. 죽방렴을 보면 한국 특유의 고기 잡는 법에 놀랄 것이다.

 

충무공의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이 열린 ‘관음포’와 충무공이 전사한 후 유해가 제일 먼저 육지에 안치된 ‘이락사’가 있고 임진왜란 때 사명당의 뜻을 받은 승병들이 용감하게 싸운 ‘용문사’도 인근에 있다.

용문사에서는 숙종이 호국사찰을 표시하기 위해 내린 수국사 금패도 볼 수 있다. 서포 김만중이 유배됐던 ‘노도’는 벽련항에서 배가 출발한다.

 

 

참고문헌:

『우리고향산책』, 김선규, 생각의나무, 2002

『땅에 새겨진 문화유산』, 김기빈, 한국토지공사토지박물관, 2006

『우리나라 최고의 가족여행지』, 유연태 외, 시공사, 2006

『김봉렬의 한국건축 이야기(1)』, 김봉렬, 돌베개, 2006

「남해 가천 다랭이마을」, 이다일, 네이버캐스트, 2009.07.01

「바닷가에 펼쳐진 수채화, 남해 바래길」, 시사IN, 2011.05.13

「아무리 가팔라도 산사태 모르는 다랭이 논의 지혜」, 윤순영, 한겨레, 2011.08.15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 부회장/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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