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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1 2 3차 선교여행 순서
■ 바울의 제1차 전도여행: (행 13:4-14:28)
1. 선교사로서 바울과 바나바
성령께서 함께 하셨고, 온 교회는 금식하며 기도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바울과 바나바에게 안수하여, 전도 여행을 보냈다. (행 13:3)
요한 마가는; 조수로 함께 동행하였다.
2. 1차전도 여행 지역
1) 안디옥(시리아)에서 출발→ 실루기아(시리아 항구) → 구브로의 섬 (키프러스) 살라미→ 바보 → 밤빌리아 의 버가 → 안디옥 (비시디아) → 이고니온 → 루가오니아의 두성 루스드라 → 더베 → 다시 더베로 → 루스드라 → 이고니온 → 안디옥 (비시디아) → 밤빌리아의 버가 → 앗달리아 → 안디옥 (시리아) 도착.
[***]
1) 안디옥(수리아) >실루기아(수리아 항구) 16마일 떨어진 거리 :
바나바와 바울은 교회에서 안수받고, 선교사로 파송 출발,
실루기아에서 배를 타고, 160마일 떨어진 먼거리인 구브로 섬으로 갔다. (행13;4)
2) 구브로의 섬 살라미 : 구브로는 상업도시로 편리한 곳,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회당에서 전했다.
마가 요한은; 어머니는; 마리아였고, 바나바의 생질로, 바울을 수종들었다.
구브로에는 스데반의 일로 흩어진 유대인들 얼마가 살고 있었다. (행11;19)
3) 구부로의 섬 바보 : 바보는 구브로의 수도였다.
총독 서기오 바울은 이달리아 총독으로 구브로를 지배하는 것이었다.
그는 지혜있는 사람으로 바울과 바나바를 청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복음을 받아들였다.
바예수(예수의 아들)는; 구브로 섬에 있는 유대인으로 거짓 선지자였다.
그는 엘루마 (박수)라는 공적 이름을 가지고 마술사로 알려 졌다.
바울의 전도를 방해하고, 총독으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게 방해했다.
그러한 바예수를 바울은 주목하여 보고, 눈이 멀도록 저주했다.
이 사실을 보고 총독은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
4) 버가 : 밤빌리아 지방. 동행한 요한이 떠남. 가장 위험한 곳, 강도의 출몰 (행13;13)
바울은; 요한이 떠나는 것을; 즐거워 하지 않았다. (행15;38)
바울의 마가에 대한 고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딤후4;11)
바울과 바나바는; 버가에서 전도하지 아니하고,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갔다.
5) 안디옥(비시디아) : 안디옥으로 가기 위해 두로산맥을 횡단해야 했고, 안디옥은; 중요한 군사도시였다.
바울은 안식일에 회당에서 설교하도록 초대를 받았다. (행13;15) 회당에서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어 가르쳤다.
바울의 설교 요지:
서론 (이스라엘의 역사로 다윗왕의 시대를 추적하였다) 하나님은 그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 약속된 메시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전했다 십자가의 도를 전했다.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복음이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다. 예수의 부활은; 조상들에 의해서 예언되었다. (시2;7, 사553, 시16;10등)
설교의 결론: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행13;38)
즐겨 듣고 순종하여 구원 얻는 이들도; 있었지만,
일부 유대인들은 시기, 비방, 선동, 핍박하고, 바울과 바나바 두사람을 그 지경에서 쫒아냈다. 담대히 설교함으로 핍박당했다.
바울과 바나바는; 발을 티끌을 털어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갔다. (행13;51)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행13;48)
6)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80마일 떨어진 이고니온에 도착, 유대인의 회당에서 가르침,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음 (행14;1)
순종치 아니한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선동하여 악감을 품게함, 두 사도가 오래 머물러 있는 동안 유대인을 좇는 자들도 있고, 두 사도를 좇는 자도 있어 서로 나누어짐.
이방인과, 유대인과, 관원들이; 두 사도를 능욕하여 돌로 치려하자 도망함.
7) 루가오니아의 두 성인, 루스드라와 더베 :
나면서 앉은뱅이 된자가 말씀을 경청함을 보고 바울이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음을 보고 병을 고쳐줌.
그 사람이 두 사람을 신들의 형상을 입은 자라하여, 바나바(쓰스), 바울(허메)은 말하는 자임으로 허메로 칭함.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이심을; 설교했다. (행14;15-17)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사람들을 모아 돌로 바울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밖에 버렸다.
8) 더베 : 죽은 줄 알았던 바울이; 다시 돌아갔다.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았다. (행14;21)
9) 이고니온과 안디옥: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격려하고, 교회의 장로를 택하고 금식, 기도. 많은 환난이 있을 것과, 교회를 그 믿은 바 주께 부탁 (행14;23)
10) 비시디아 지역. 버가 → 앗달리아
11). 안디옥(시리아) 도착: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전도여행을; 보고했다.
3. 바울의 전도 방침
이 여행의 처음에는, `바나바와 사울'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구브로 섬 바보 전도 이후는, 거의 `바울과 바나바' 또는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로 고쳐 기록되어 있다.
바울이; 바보에서, 서기오 바울을; 개종시킨 때부터, 누가는; 히브리 이름 사울을 라틴 이름 바울로 바꾸어 놓았다.
3) 바울의 메시지의 요약
대체적으로 유대인에 대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구약 예언의 말씀의 성취와 완성, 이방인에 대해서는 유일하시고,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실재를 역설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파하였다. (행13:16, 14:15-17)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전하는 것” (행14;38)
4) 바울은 설교만 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조직하고 새웠다
바울은 교회를 조직하고, 장로를 세우고, 성도의 교제를 유지시키는 일에도 열심이었다.
바울은 돌아오는 길에도, 안전한 더베와 다소와 안디옥의 코스를 택하지 않고, 지금까지 지났던 길을 다시 순회한 것은; 이와 같은 교회 조직을 촉진시키고 굳건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바울은; AD 35쯤 회심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행9;1-7)
1차 전도 여행은 AD 48년 봄쯤 떠나서, 49년 가을에 전도 여행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돌아왔다.
그는; 50-52년쯤에, 데살로니가전서를; 기록한 것 같다.
바울의 13개의 서신 중에서,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가; 고린도에서, 제일 먼저 기록되었으며,
신약 성경 27권 중에서도, 제일 먼저 쓰여졌다.
■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행 15:36-18:22)
1. 바울의 2차전도 여행의 시작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은 사도행전 15장 끝부분에서 시작되었다.
애석하게도 2차 전도여행은 바나바와 헤어졌다. 그 이유는 마가 요한 때문에 의견 충돌이 있었기 때문이다. (행15;37-38)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갔고,
바울은실라를 데리고 형제들의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시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했다. (행15;40-41)
바울은; 실라와 함께 유럽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루스드라에서 바울은 자신의 전도 여행을 돕도록 디모데를 데리고 떠났다. 루스드라는; 바울이 1차전도 여행 때 돌에 맞았던 곳이다.
2. 바울의 2차전도 여행의 지역:
수리아 → 길리기아 → 더베 → 루스드라 → 이고니온 → 갈라디아 → 무시아 → 비두니아 → 드로아 → 사모드라게 → 네압볼리 → 빌립보 (마게도냐) → 암비볼리 → 아볼로니아 → 데살로니가 → 베뢰아 → 아덴 → 고린도 → 에베소 → 가이사랴 → 수리아 안디옥
1) 수리아 (Syrias) :
유다 북부에 있는 큰 나라로서, 유브라데 강 지중해 길리기아까지를 경계로 하고 있었던 큰 나라.
예수님이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시고 모든 병을 고치시니 그 소문이 수리아 온 땅에 가득히 전해졌다.(마4:23-24)
2) 길리기아:
소아시아 동남 지중해 동북 안에 있는 도시. 길리기아의 수도는 다소이며, 다소는 바울의 고향이다(행22:3, 23:34). 바울은 2차전도 여행시 다소에서 더베로 갔다.
이 도시 사람들이 처음에는 스데반과 변론하고 훼방하였으나 바울이 회개 후에 여러 교회를 설립하고 2차 선교 여행시에는 수리아와 이 도시에 있는 교회들을 굳게 하였다(행15:41).
3) 더베:
성서시대의 이 도시는 로마령 갈라디아 땅 루가오니아 지역의 동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현재 라란다 카라만(Laranda-Karaman)북동쪽 약 24km지점.
바울은 제1차전도 여행 시 이곳 더베까지 왔다가 다시 되돌아갔다.(행14:19-21).
2차 선교 여행 시 바울과 실라가 처음 기착지인 더베와 루스드라지방에 이르렀을 때 거기에서 디모데를 만나게 되었다.
디모데의 어머니는 유대인이었으나 아버지는 헬라사람으로 그 근방 교회에서 디모데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칭찬받는 착실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는 할례 받지 않은 유대인, 다시 말해 전통적인 유대인의 눈으로 보면 순수하지 못한 유대인이었다. 디모데가 바울의 전도 팀에 합류하여 같이 다녔다 (행16;1-2)
*디모데는 어떤 사람인가? 뜻 : 하나님을 공경한다 소아시아의 루가오니오 사람
1) 모친 유니게와 외조모 로이스는 다 경건한 신자로 디모데를 어릴 때부터 성경으로 잘 가르쳐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듣는 모범 청년이 되었다(행 16:1, 딤후 1:5, 3:15).
2) 주후 48년에 바울이 루스드라에 처음 갔을 때에 믿었고, 51년 두 번째 전도 여행 때 바울의 전도 팀에 합류해서 함께 했다
3) 디모데가 할레를 받게 된 이유는 혈통이 반은 유대인이기 때문에 믿지 않는 유대인들 사이의 언약을 지키기 위해서 할례를 받게 되었다. 후에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간 디도는 헬라인임으로 할례를 받지 않았다. (갈2;3)
4) 장로들의 안수로 목사직을 받음(딤전 4:14).
5) 바울과 함께 소아시아, 헬라, 마게도냐, 로마 등지에 순회 전도하니 바울이 그를 가리켜 나와 함께 수고하는 자라 하였고(롬 16:21)5) 내 귀하고 신실한 아들이라고 하였다(고전 4:17).
6) 바울의 영적 아들로 형제라(고후 1:1)
7) 믿음의 참 아들이라(딤전 1:2)
8) 사랑하는 아들(딤후 1:2)
9) 바울과 함께 로마 옥에 갇혔다가 풀려남.(히 13:23)
10) 바울의 후임으로 에베소에서 사역하였다.(딤전 1:3)
4) 루스드라: 이고니온 남서쪽 32km 지점.
1차 선교여행 때,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사람을 일으키는 이적을 바울이 행한다.
그러자 이곳 사람들이 이 두 사도를 신이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났다하여 이들에게 제사를 드리려하자 바울과 바나바가 이를 말리고 복음을 전한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선동하여 바울을 돌로 쳐 성 밖에 내치게 된다.
이 일후에 바울과 바나바는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제자를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며,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했다. 바울은 2차 전도여행 때 이곳에서 '디모데'를 얻는다 (행16:1).
5) 이고니온:
소아시아 평원 서남쪽 자두와 살구나무가 많은 오아시스 가운데 있던 옛 도시로서, 당시 통상 요로로 알려졌다.
바울이 1차 선교 여행 시에 이 성에서 전도하여 많은 신도를 얻고 오랫동안 있어 이적과 기사를 많이 행하니 완악한 유대인들이 관원과 이방인을 선동하여 능욕하고 돌로 치려하여, 루가오니아 지방으로 피하였다 (행14:1-6).
이때에 세웠던 교회는 주후 850년경에 회회교가 침입할 때에 없어졌으며, 지금 이름은 코니아인데 터키국의 큰 성이다.
6) 갈라디아
소아시아 중앙의 고원에 있는 도시. 갈라디아는 지금의 중앙 터키에 해당하는 하나의 큰 주였다.
바울이 1,2,3차 전도여행에 매번 들려 전도한 곳(행14:1, 16:1, 18:23).
베드로도 이곳 교회에 서신을 보냈다(벧전1:1).
갈라디아 지방은 우리들에게 매우 친숙한 이름이다. 특별히 사도바울이 초대교회 당시 갈라디아 지방의 성도들에게 유대주의의 거짓 교사에 현혹되지 말고 하나님의 진리의 빛에 거하라는 내용의 갈라디아서를 보낸 곳이기도 하다. 바울은 교회 내부에서 '유대당'이 잘못 가르치는 것에 도전하는 편지를 썼다.
그래서 로마서와 갈라디아서가 신약의 교과서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말씀으로 자유의 대 헌장이라고 할 수 있다.
갈라디아서는 신앙적인 바른 교훈과 복음에 대한 진실을 밝힘으로 성도들에게 진리를 가르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말씀이다.
7) 무시아:
소아시아 서북부 지역의 현재 마르마라 해와 헬레스폰트 해협의 남쪽에 위치해 있다.
바울이 2차 선교여행 때 지난 곳(행16:7-8)
8) 비두니아:
흑해 남안 브르기아 북쪽에 있는 지방. 베드로가 서신을 보낸 곳.
바울이 이곳에서 전도하려 하였으나, 성령이 허락지 않으시고, 밤에 마게도냐인이 환상 중에 나타나 마게도냐를 도우라 하므로 마게도냐로 건너 갔다. (행16:6-12)
9) 드로아: 고대 트로이에서 약 10km 지점.
소아시아 서북 무시아 도에 있어 마게도냐와 거래하는 중요한 항구로 터키 서쪽 에게해 항구,
2차 전도여행 중, 아시아로 가려했으나 꿈에 마케도니아 사람의 간절한 호소를 듣고 에게해를 건너 그리스 지역으로 행선지를 돌린 곳이기도 하다. 이 사건으로 복음이 서쪽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실로 역사적인 분기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사도 바울의 강론 중에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죽은 유두고라는 청년을 살린 곳이기도 하다.
바울이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보고 유럽에 건너가니 이것이 유럽 전도의 첫 시발이었다(행 16:8-9).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과 가죽에 쓴 책을 가지고 오라고 부탁하였다(딤후4:13).
사도 바울은; 제 3차 전도여행을 마무리하면서, 드로아에서 남쪽으로 40km떨어진 앗소까지 걸어가기도 하였다.
10) 사모드라게: 뜻: 드라게의 높은 봉우리
소아시아의 드로아에서 마게도냐의 네압볼리로 가는 에게해 상에 있는 작은 섬.
도시는 섬의 북쪽에 있으며 이 섬은 산이 많은 섬인데, 섬 중앙에는 5,577피트(약 168m) 높이의 펜가리(Fengari)산이 우뚝 솟아 있으며, 북 에게해 바다에서 가장 눈에 잘 띄이기 때문에, 육표의 역활을 한다.
바울이 제2차 선교 여행에 들렸던 곳이다 (행16:11).
11) 네압볼리:
에게해의 북쪽에 있는 해변도시로 빌립보 남동쪽 14km 지점 이곳은 바울이 환상을 보고가서 그의 동역자와 처음 도착한 유럽의 땅이다(행16:11).
12) 빌립보 (마게도냐): 뜻: 빌립의 도시
마게도냐 스트림몬강과 네스토스강의 경계 에게해 내륙 약 16km 지점 깊은 급류의 간지테스(Gangites)강의 강변 근처에 있었다.
바울과 실라가 2차 선교 여행 시에 이곳에 첫발을 디뎌, 구라파 전도의 문 을 여는 첫 발이; 되었다.
그 첫 열매의 그리스도인은; 자주 장사하는 루디아라는 자매다(행16:14).
바울과 실라가 귀신들린 여점장이에게서 귀신을 쫓아 고쳐 주었다. 주인이 자기의 수입이 없어진 것을 원통히 여겨 군중을 충동하여 송사하여 법관에게 매를 맞고 옥에 갇혔다.
이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송할 때 지진이 나서 문고리가 벗겨지고 문이 스스로 열려 놀라 자결하려 는 간수에게 전도하여 온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였다(행16:16-34).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바울을 대단히 존경하였으며 바울에게 받은 신앙을 감사하며 마게도냐를 떠날 때와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 여러 차례 물질로 도와주었다 (빌4:15-16).
로마 옥에 갇혔을 때에는 에바브로디도를 통하여 위문품을 보냈으므로 감사의 서신을 보냈다(빌4:18).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세웠다.
유대인이 적어 강가에서 혹은 루디아의 집에서 모여 예배를 드렸다.
인생의 최대의 질문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겠느냐”는 간수장에게,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다
13) 암비볼리:
마게도냐의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중간에 있는 성으로 스드루먼강이 둘려 있으므로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바울이 제 2차 전도여행 시에 이 성을 통과하였다(행17:1).
14) 아볼로니아:
마게도냐의 마을. 엑나티아 가도에 인접해 있고 암비볼리에서 서쪽으로 약 50km 떨어진 곳.
바울은 두 번째 전도여행 때에 이곳을 통과하였다(행17:1).
15) 데살로니가: 뜻: 하나님의 승리
신약시대 로마령 마게도니아 지방의 수도였다. 자유시로서 시장이 모든 일을 처리 하였다(행17:1-13).
바울이 2차 여행 때 이곳에서 얼마동안 전도하였고(행17:1-13).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 빌립보 교우들이 몇 차례 비용을 보내 왔다(빌4:16).
유대인들이 바울을 핍박함으로 베뢰아로 피난하였다(행17:1-10).
바울은 이곳에서 3주간 머물며 전도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말씀을 사람의 말로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
16) 베뢰아:
데살로니가 서편 18마일 지점 마게도냐의 남서쪽 도시.
바울의 2차전도 여행 시, 데살로니가의 어려운 사건을 피하여, 이곳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었고, 헬라의 귀부인 들을 신자로 얻었다(행 17:10-14).
후에 바울의 동반자가 된 소바더는; 이 도시 출신이다(행 20:4) 베뢰아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신사였다.
17) 아덴 (아테네): 뜻: 아데나의 성읍
그리스 고린도 동쪽 현재의 그리이스 수도 아테네(Athenai) 이다. 옛적부터 헬라국의 제일 유명한 성이었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시에 이르러보니 우상숭배(처녀신)가 너무 심하여 알지 못하는 신의 단까지 있으므로
매일 거리에서 유대인 헬라인을 막론하고 만나는 대로 변론하고 유명한 철학사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와 쟁론하고 아레오바고 회의소에서 부활의 진리를 전하매, 관원인 디오누시오와 다마리 여사와 여러 사람이 순종하여 구원을 받았다(행17:16-34).
바울 당시 이 성에는, 플라톤의 이상주의, 에피큐러스의 향락주의, 스토익의 금욕주의가 유행하여, 교회를; 세우지 못했었다.
* 아덴에서의(아레오바고) 바울의 설교 (행17:16-21)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믿고 따르는 신사적인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반대로 비신사적인 사람들이 바울을 핍박하고 괴롭혔다. 특히, 유대인들이 바울을 쫒아 다니며 많은 고난과 고통을 주었다.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베뢰아 지경까지 따라와 바울은 신사적인 베뢰아 사람들의 보호를 받으며, 긴박하게 당시의 철학의 도시인 아덴으로, 피하게; 되었다.
아덴의 도시는;
1) 온 성이; 우상으로, 가득하였다.(16:2) 많은 철학자들이; 있었다.(18:3)
아레오바고라는 종교재판소가; 있었다.(17:19, ?19:4) 새로운 교리에 호기심이 많았다.(20-21: 5)
종교성이; 많았다.(17:22)
아덴에서의 바울은;
1) 바울의 마음이 분하였다.(16:2) 철학자들과 변론과 쟁론을 하였다.(17-18) 3) 말쟁이로 오해를 받았다.(18:4)
예수와 몸의 부활을 전하였다.(18:5) 아레오바고로 끌려갔다.(17:19)
18) 고린도: 뜻: 뿔
그리스 반도와 대륙을 연결하는 지협 남단에 있으며, 겐그리아 항구와 로마의 레기온 항구를; 연결하고,
지중해의 동서를 연결하는 묘한 지형으로 상업과 물질적인 변영을 누린 도시요, 잡다한 인종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어, 동서 문화와 종교의 혼잡을; 이루었다.
고린도의 종교 중에, 여사 프로디트라는 우상이 있어, 600피트나 되는 산상에 무녀가 무려 1,000명이나 있고,
이로 인하여 고린도인들은; 음탕한 풍습에 젖어 고린도라하면 음행한 사람의 대명사가 되었다.
바울이 아덴을 떠나서, 본도에서 난 유대인 아굴라와 그의 부인 브리스길라를 만나 동업하며 성령 충만하여 함께 전도하여(1년 6개월) 교회를 세웠다.(행18:1-8) 성도의 전체의 수가 상당히 많은 것으로 예상된다(고전1:26).
바울의 동역자 그리스보(행18:8) 가이로 에라스도(롬16:23) 스데바나(고전1:16) 등의 거주지다.
바울은; 고린도에 1년 6개월동안 머물러 전도하는 동안에, 데살로니가전서와, 연이어서, 데살로니가후서를; 기록했을 것이다.
갈라디아서를; 기록했을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1) 저자 : 사도 바울이다.
2) 장소 : 바울이 2차전도 여행 중에 동역자 실루아노와 디모데와 함께 고린도에 머무르면서(1:1, 3:6, 행 18:1, 5) 쓴 것이다.
3) 시기 : 이 책은 주후 54년경이다.
4) 주제 : 교회 생활을 위한 거룩한 생활―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고, 거룩한 생활을 하며, 주님의 오심을 기다림.
데살로니가후서
1) 저자 : 사도 바울이다.
2) 장소와 시기 : 데살로니가후서는 전서와 같은 장소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연이어 기록되었다.
즉, 주후 54년경 바울이 2차전도 여행 중에 동역자 실루아노와 디모데와 함께 고린도에 머무르면서(1:1, 3:6, 행 18:1, 5) 쓴 것이다
3) 주제 : 교회 생활을 위한 거룩한 생활에 관하여 격려하고, 교정함.
갈라디아서
1) 저자 : 사도 바울이다.
2) 장소 : 기록 장소는 고린도이며, 바울이 일 년 반 동안 거기에서 머무는 중에 썼을 것이다(행 18:1-11).
3) 시기 : 이 책은 대략 주후 54년경(?) 바울이 두 번째 전도 여행을 하는 동안, 곧 갈라디아를 통과하여 여행하고, 고린도에 도착한 후에 썼을 것이다
4) 주제 :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을 대치하시며, 종교와 전통에 상반되심.
두 번째 편지인 고린도후서는; 첫째 편지를 발송한 다음에
1) 고린도 교회에 거짓 교사들이 들어와서,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부인하였다.
2) 사태가 다급함을 인식한 바울은; 직접 고린도 교회를 찾아 갔지만, 이미 대부분의 신자들이 바울을 반대하는 자들에게 동조하여 그를 맞아 주지 않았다.
3) 바울은 비통한 마음을 안고, 에베소에 돌아와 '번민과 비통한 마음을 안고 울면서' 매우 격앙된 어조로 편지를 썼는데, 이것이; 고린도 교회로 보낸, '눈물의 편지'이다. (고후2:4).
4) 바울은; 디도를 고린도로 보내어 이 눈물의 서간을 보내고, 그 사이에 마케도니아로 건너가서, 디도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5) 마침내, 디도를 만나, 고린도 신자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사도에게 순종하고, 모든 적들을 엄하게 다스리겠다는 약속을 들었다.
6) 이에 대한 바울의 답신으로 나온 편지가 고린도후서이다.
19) 수리아: [윗부분 참조]
20) 에베소:
소아시아의 수도. 게스터 강구에서 5마일 상류에 있는 산유지다. 현재의 이즈미르에서 80KM 위치한 도시.
로마국의 행정상, 교통상의 중심지이며, 아시아 7교회 중의 하나가 있었던 곳이다.
기원후 1세기에 에베소는 신자들에게는 중요한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37-42년 사이에 전도에 주력하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추방당하게 되자,
사도 바울(PAUL)은; 그의 2차와, 3차 전도여행 때 에베소를 방문하여 교회를; 세웠다.
1) 바울이 2차전도 여행 시에 이 성에서 전도하였다(행18:16).
2) 바울은 3차 여행 시에 이곳에서 세례를 주고 안수할 때 성령이 강림하여 방언과 예언을 하여 놀라운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3) 요술객들이 가지고 있던 요술서 은 5만 어치를 소각하고 믿었다 (행19:1-20).
4) 바울이 마게도냐 선교에서 귀로 시에 밀레도에 이르러 에베소 장로들을 청하여 교회를 부탁했다
"너희는 깨여 내가 3년이나 쉬지 않고 눈물로 훈계한 것을 기억하라" (행20:17-31).
5) 사도 요한이 이 성에 오랫동안 감독으로 있었으며 요한복음과, 세 서신을 발송하고, 밧모섬에서 계시를 받아 이곳 교회에 보냈다(엡1:1).
6) 디모데, 아굴라, 브리스길라, 아볼로, 두기고 등이; 이곳 교회의 교역자였다 (댐전1:3,행18:18,19,24,20:4,21:29 딤후4:12).
7) 세례요한의 제자 오네시모 그리고 <?>알렉산더 에베드리오 스게와의 아들 후메내오 부겔로 허머네게 등의 고향이다(행19:10,14,24, 딤후1:15-18, 4:14,딤전1:20).
8) 바울이 이곳에서 3년간의 머물렀던 기간이 끝나갈 무렵, 고린도전서를; 기록했다
고린도전서
1) 저자 : 이 책의 저자는 사도 바울(1:1, 9:1-2)이다.
2) 장소 : 기록 장소는 에베소(행 19:21-22, 고전 16:3-8, 19)이다.
3) 시기 : 부르심 받은 지 25년 후(행 9:3-6, 15-16), 이방인들에게 보내심을 받은 지는 14년이 지났을 때(행 13:1-4, 9) 이 서신을 썼다. 대략 주후 59년경이라고 보는데 그 시기는 바울이 에베소에 머물렀던 삼 년간의 기간이 끝나갈 무렵이다(행 20:31, 고전 16:8)
4) 주제 :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는 교회 안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임.
성경의 모범: 에베소 교회
1)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3년 가까이(행 20:31) 머물면서 목회했던 교회
2) 다른 초대 여러 교회보다 더 우수했던 교회였다.
3) 승천하신 주님이 사도 요한에게 제일 먼저 언급한 교회가 이 에베소 교회다
4) 에베소 교회에 대한 칭찬 :
첫째는 복음을 위한 많은 수고와 박해가운데서 인내의 믿음을 지킴
둘째는 윤리적으로 깨끗하여 악한 자들이 함께 하지 못한 경건한 교회
셋째는 진리를 옳게 분변하여 거짓 된 자들을 물리친 정통교회임을 칭찬
넷째는 매우 부지런하게 복음을 전파한 교회
5) 이러한 교회이지만 책망도 있었다.
처음 사랑이 식어져 가는 것이 그것이었다. 처음 행위를 회복하지 못하면 촛대를 옮기시겠다고 하셨다.
에베소 교회의 기초
1) 믿을 때에 성령을 받은 교회 (엡1;5-7)
2)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곧 죄 사함 받은 교회
3) 성령의 인침이 있는 성령이 충만한 교회
4) 바울은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넘게 말씀을 강론하여 아시아에 사는 사람은 다 들었다.
5) 말씀을 가르치고 배움으로 성장하고 성숙한 교회가 되었다.
6) 말씀으로 훈련된 성도가 많아지자 그 도시에 변화가 일어났다.
7)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은 교회가 되었다.
이 땅에 주의 말씀이 힘 있게 역사하여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고 변화시키는 일은 교회의 몫이다.
주님의 몸인 교회는 신령할 뿐만 아니라 현재적 하나님 나라의 특징이 의와 희락과 평강이 넘치는 생활로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교회는 사람에게서도 칭찬을 받는 것이다.
21) 가이사랴:
팔레스타인의 해안 도시로 갈멜산에서 남쪽으로 약 37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백부장 고넬료와 집사 빌립의 거주지(행10:1, 21:8). 바울이 예루살렘 소요 중에서 이곳에 이르러 2년간 구금되었던 곳(행18:22, 21:8, 23:23-33, 24:27, 25:11, 26:1).
가이사랴는 규모 면에서 아주 큰 항구도시이다.
헤롯이 이렇게 큰 항구도시를 건설한 이유는 자신이 이스라엘의 위대한 통치자임을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함이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의 항구로는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때에 북쪽 레바논으로 금과 백향목을 수입하던 항구 욥바가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항구를 건설함으로서 로마의 문물을 신속히 받아들이고 사마리아의 농산물을 로마에 수출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과시하고자 했다.
가이사랴에는 신전, 궁궐, 경마장, 야외극장 등 최고의 건축물이 있었다.
사천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로마식 야외극장은 배우가 무대 중앙에서 말을 하면 객석의 구석구석에서 잘 들릴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헤롯은 가이사랴 항구 개막식을 기념하며 음악회, 짐승과 사람과의 경기, 경마와 쇼 등 화려한 축제를 개최했다.
22) 안디옥:
수리아에 있는 안디옥 :
1) 예수당시에는 로마 제3도시였고 스데반이 순교를 당할 때에 신도가 4방으로 흩어져 이성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교회를 설립하였으니 이것이 곧 이방 교회의 시초가 되었다.
이 소문을 들은 예루살렘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그곳에 보냈다(행11:20-23).
2) 바울이 이 성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행11:26)
3) 이 교회에서 구제 사업을 창시했다 (행11:29-30).
4) 이 교회에서 전도 사업에 알려진 유명한 교역자는 니골라 아가보 바나바 니게르 시므온 루기오 마나엔 사울(바울) 등인데 그중에서 바나바와 바울을 선발하여 파송하니 이것이 곧 선교 사업의 시초다 (행6:5, 11:28, 행13:1-4).
5) 선교사로 파송 받은 바나바와 바울은 구브로를 비롯하여 아세아 마게도냐 헬라 로마에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하여 교회를 많이 설립한 것이 전 세계 복음을 전파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누가에 의하면, 안디옥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했던, 처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불리던 곳이며, 초대교회 선교의 출발지라 할 만큼 중요한 곳이었다.
성서 시대 이후에도 상당 기간 동안 안디옥은 선교의 중요한 근거지 였다.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안디옥에 파견 하였는데 바나바는 먼저 고향인 다소에 피신해 있는 바울에게 찾아가서 그와 함께 1년간 안디옥에 머물며 선교 활동을 한다. 그 후 이곳은 이방인 선교사인 바울의 선교 활동의 거점이 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AD 45-47년 팔레스티나에 기근이 들어 예루살렘 교회가 어려워지자 안디옥 교회는 성금을 모아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도 한다.
비시디아 지역에 있는 안디옥
수리아의 안디옥과 다른 곳이다. 지금은 터키 소도시 얄바츠로 불리운다.
이곳에서 사도 바울과 바나바 일행은 복음을 전하였고 이는 서아시아 지역에 복음이 퍼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바울은 이곳에서 처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는 설교를 했으며 이방인 선교에 헌신키로 결정한 곳이다. 갈라디아서는 이 지역에서 복음을 받은 자들을 위해서 기록하였다. 갈라디아인들이 이곳에 주로 많이 살았다.
3. 바울의 2차전도 여행을 통해서 얻은 결론
주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 같이 그리스도에게 충성했으며 또한 그들에게 주신 사역에 충실했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이 그렇고 실라 디모데 아굴라 브리스길라, 아볼로 등이 그렇다.
바울은; 얼마간의 휴식을 취한 후, 천하 보다 귀한 영혼들을 위하여 또 다시 전도의 여행을 떠날 것이다.
■ 바울의 3차 전도 여행:(행18;23-21;14)
바울의 2차전도 여행을 통해서 얻은 결론
주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 같이 그리스도에게 충성했으며 또한 그들에게 주신 사역에 충실했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이 그렇고 실라 디모데 아굴라 브리스길라, 아볼로 등이 그렇다.
바울은 얼마간의 휴식을 취한 후 천하 보다 귀한 영혼들을 위하여 또 다시 전도의 여행을 떠날 것이다.
1. 바울의 3차전도 여행의 시작
바울의 3차전도 여행은 2차 전도여행의 연속이었다.
2차 여행 때 금지 되었던 소아시아 지역에 들어가 전도를 했으며 특히 에베소에 3년이나 머물며 그 지역 전도에 전력을 집중시켰다.
바울은 일찍부터 대도시의 중요성을 생각하고 전도를 전개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이제 숙원인 교회를 세우는 일에 동역자들과 힘을 합하여 오래 기간 동안 머물며 전도했다.
바울이 한 곳에 오래 머물며 전도하는 일은 드문 일이었다. 그 기간동안 인근의 여러 곳에 전도하여 교회를 세웠는지는 알 수 없다
가까운 인근인 골로새와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에는 에바브라를 통하여 복음을 전했다. (골4;12-13)
다른 도시에도 바울은 동역자들을 보내어 전도했을 것이다.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행19;10) 고 기록했다. 그러나 바울을 거의 에베소에 머물러 전도에 전념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나님께서 희한한 능력으로 바울과 함께 하셔서 앞치마나 손수건 같은 것을 병든 자에게 얻으면 병이 나았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을 비롯해서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이 많았다.
바울은 하나님께 붙잡힌 도구가 되어 말씀을 전했고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행19;20) 복음은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전파되며 구원을 얻는다.
1) 그리스도 복음을 위한 문이 열렸지만 (고후2;12)
바울의 전도의 생애는 순탄치 만은 않았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로 디도를 만나지 못했을 때 복음을 전할 수 없었던 때도 있었다.
2) 대적하는 자가 많았다 (행23-41)
바울은 대적하는 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힘을 얻었다.
에베소의 아데미(Artenus) 출산의 여신의 직공들이 소동을 일으켰다. 그 신전에 있었던 아데미 신상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라고 소문이 났었다. 에베소 사람들은 그 우상을 숭배했다. 그 도시의 은 세공업자들은 아데미 여신의 작은 형상과 신전의 모형을 만들어 이교도들에게 팔았다.
바울을 통해서 복음이 전해지자 그들의 사업은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세공업자의 우두머리인 “데메드리오”는 모든 세공업자들을 모아놓고 바울이 복음을 계속전하면 믿는 사람들이 많아 질 것이고 결국에는 우리의 직업만 천하게 될 것이라고 역설하여 무리 충동시키자 많은 군중들은 흥분하여 폭동을 일으켰다. 문제의 원인은 돈이었다.
3) 젊은 설교가 아볼로 (행18;24-28)
아볼로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출생한 유대인이었다 그는 구약 성경을 잘 알고 있었고 달변가였다.
그러나 복음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고 있지 못했다. 단지 침례 요한이 설교했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요1;29) 라고 선포된 말씀은 알고 있었지만 어린 양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 장사됨, 부활하심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아볼로를 대려다가 복음을 자세히 풀어 주었고 아볼로는 그 가르침을 잘 받아들였다.
4) 육체가 편치 못하여 (고후7;5-16)
고린도 교회와의 관계가 좋지 않아 많은 염려를 했다. 바울은 육체가 편치 못하여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고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 있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5) 3차에 걸친 전도 여행으로 (롬15;14-19)
바울은 복음의 제사장이 되어 이방인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일에 그의 일생을 헌신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해서 일루리곤(마게도냐 북부) 까지 복음을 편만하게 전했으며 더 이상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을 정도였다. 전도에 지칠줄 모르는 바울은 로마와 로마의 서쪽 나라까지 가서 복음 전하기를 소원했다.
6)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바울의 염려
바울은 전도하면서 틈틈이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연보에도 힘을 쏟았다. 각교회 대표자들을 통하여 보내기도 하고 자신이 직접가지고 교회에 가기도 했다. (고전16;, 롬15;25-28).
오랜 전도의 생활에 그는 피로에 지쳤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와 죄인들의 구원과 성도들의 믿음의 성장을 위한 일이라면 그의 생명도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나의 달려 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20;24)
2. 3차 전도여행 지역
안디옥 ⇒ 갈라디아 ⇒ 브루기아 ⇒ 아가야 ⇒ 두란노 ⇒ 마게도냐 ⇒ 아가야 ⇒ 예루살렘 ⇒ 마게도냐 ⇒ 드로아 ⇒ 빌립보 ⇒ 앗소 ⇒ 미둘레네 ⇒ 기오 ⇒ 사모 ⇒ 밀레도 ⇒ 고스 ⇒ 로도 ⇒ 바다라 ⇒ 베니게 ⇒ 구브로 ⇒ 수리아 ⇒ 두로 ⇒ 돌레마이 ⇒ 가이사라 ⇒ 예루살렘
3.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지도
4. 바울의 3차 각 지역 전도
1) 안디옥 (병거 혹은 전사) 수리아에 있는 안디옥 :
1) 예수당시에는 로마 제3도시였고 스데반이 순교를 당할 때에 신도가 4방으로 흩어져 이성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교회를 설립하였으니 이것이 곧 이방 교회의 시초가 되었다.
이 소문을 들은 예루살렘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그곳에 보냈다(행11:20-23).
누가에 의하면 안디옥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했던, 처음으로 그리스도인 들이라고 불리던 곳이며, 초대교회 선교의 출발지라 할 만큼 중요한 곳이었다.
성서 시대 이후에도 상당 기간 동안 안디옥은 선교의 중요한 근거지 였다.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안디옥에 파견 하였는데 바나바는 먼저 고향인 다소에 피신해 있는 바울에게 찾아가서 그와 함께 1년간 안디옥에 머물며 선교 활동을 한다.
그 후 이곳은 이방인 선교사인 바울의 선교 활동의 거점이 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AD 45-47년 팔레스티나에 기근이 들어 예루살렘 교회가 어려워지자 안디옥 교회는 성금을 모아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도 한다.
2) 갈라디아
소아시아 중앙의 고원에 있는 도시. 갈라디아는 지금의 중앙 터키에 해당하는 하나의 큰 주였다.
바울이 1,2,3차 전도여행에 매번 들려 전도한 곳(행14:1, 16:1, 18:23). 베드로도 이곳 교회에 서신을 보냈다(벧전1:1).
갈라디아 지방은 우리들에게 매우 친숙한 이름이다. 특별히 사도바울이 초대교회 당시 갈라디아 지방의 성도들에게 유대주의의 거짓 교사에 현혹되지 말고 하나님의 진리의 빛에 거하라는 내용의 갈라디아서를 보낸 곳이기도 하다. 바울은 교회 내부에서 '유대당'이 잘못 가르치는 것에 도전하는 편지를 썼다.
3) 브루기아 (박토)
소아시아 중앙에 위치한 지역으로 경계선이 분명하지 않다. 인도 유럽 말을 쓰는 아리아 족으로 마게도냐에서 소아시아로 옮겨왔다. 브루기아의 다섯 도시는 이고니엄, 라오디게아, 골로새, 히에라폴리스, 비시디아 안디옥이다.
브루기아 전도의 효과가 좋아 교회가 일찍부터 흥왕하여 제2세기 기독교 비문들이 많이 발굴되었다.
(1) 이 지방에서 사는 유대인들이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올라와 성령 강림을 목격했다(행2:10).
(2) 바울이 제3차 선교 여행시 이곳을 통과 하였다(행16:6, 18:23).
4) 아가야 (형제 )
로마제국 때의 식민지로 그리이스 남부의 펠레폰네수스 전체와 클라데스의 여러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1) 현재 그리스의 암반부로 예수 당시에는 로마국이 점령하여 한 도를 만들고 고린도를 수도로 삼고 갈이오 총독이 치리하였다(행 19:1
(2) 스데바나의 고향(고전 16:15).
(3) 이곳 신도들이 마게도냐인과 함보하여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를 구제 하였다(롬 15:25).
5) 에베소 (두란노 서원)
소아시아의 수도. 게스터 강구에서 5마일 상류에 있는 산유지다. 현재의 이즈미르에서 80KM 위치한 도시. 로마국의행정상, 교통상의 중심지이며 아시아 7교회중의 하나가 있었던 곳이다.
기원후 1세기에 에베소는 신자들에게는 중요한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37-42년 사이에 전도에 주력하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추방당하게 되자 사도 바울(PAUL)은 그의 2차와 3차전도 여행 때 에베소를 방문하여 교회를 세웠다.
에베소 시(市)는 이교 문화권에 속한 도시로 도덕적 타락과 온갖 부정적인 영향력이 만발해 있는 곳이었다.
또한 여신 다이아나 (아데미) 를 숭배하며 의식(儀式)으로 매춘을 행하기도 하여 이것이 에베소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 도시는 또한 살인자들, 도적들, 강도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피란처이기도 했다.
에베소 교회는 정서적인 면으로나 물질적인 면으로나 부정적인 면으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교회는 이에 대항하여 적극적인 생활로 즉 말씀으로 전신 갑주를 입고 악의 세력과 대항해서 싸워 승리해야만 했다. (엡6;14-17)
(1) 바울이 2차전도 여행 시에 이 성에서 전도하였다(행18:16).
(2) 바울은 3차 여행 시에 이곳에서 세례를 주고 안수할 때 성령이 강림하여 방언과 예언을 하여 놀라운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3) 요술객들이 가지고 있던 요술서 은 5만 어치를 소각하고 믿었다 (행19:1-20).
(4) 바울이 마게도냐 선교에서 귀로 시에 밀레도에 이르러 에베소 장로들을 청하여 교회를 부탁했다.
"너희는 깨여 내가 3년이나 쉬지 않고 눈물로 훈계한 것을 기억하라" (행20:17-31).
(5) 사도 요한이 이성에 오랫동안 감독으로 있었으며 요한복음과 세 서신을 발송하고 밧모 섬에서 계시를 받아 이곳 교회에 보냈다(엡1:1).
(6) 디모데 아굴라 브리스길라 아볼로 두기고 등이 이곳 교회의 교역자였다 (댐전1:3,행18:18,19,24,20:4,21:29 딤후4:12).
(7) 세례요한의 제자 오네시모 그리고 알렉산더 에베드리오 스게와의 아들 후메내오 부겔로 허머네게 등의 고향이다(행19:10,14,24, 딤후1:15-18, 4:14,딤전1:20).
(8) 바울이 이곳에서 3년간의 머물렀던 기간이 끝나갈 무렵 고린도 전서를 기록했다
성경의 모범: 에베소 교회
(1)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3년 가까이(행 20:31) 머물면서 목회했던 교회
(2) 다른 초대 여러 교회보다 더 우수했던 교회였다.
(3) 승천하신 주님이 사도 요한에게 제일 먼저 언급한 교회가 이 에베소 교회다
에베소 교회에 대한 칭찬 :
(1) 복음을 위한 많은 수고와 박해가운데서 인내의 믿음을 지킴
(2) 윤리적으로 깨끗하여 악한 자들이 함께 하지 못한 경건한 교회
(3) 진리를 옳게 분변하여 거짓 된 자들을 물리친 정통교회임을 칭찬
(4) 매우 부지런하게 복음을 전파한 교회
(5) 처음 사랑이 식어져 가는 것을 책망받은 교회이다 처음 행위를 회복하지 못하면 촛대를 옮기시겠다고 하셨다.
에베소 교회의 기초
(1) 믿을 때에 성령을 받은 교회 (엡1;5-7)
(2)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곧 죄 사함 받은 교회
(3) 성령의 인침이 있는 성령이 충만한 교회
(4) 바울은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넘게 말씀을 강론하여 아시아에 사는 사람은 다 들었다.
(5) 말씀을 가르치고 배움으로 성장하고 성숙한 교회가 되었다.
(6) 말씀으로 훈련된 성도가 많아지자 그 도시에 변화가 일어났다.
(7)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은 교회가 되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에베소 교회의 모범
(1)이 땅에 주의 말씀이 힘 있게 역사하여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고 변화시키는 교회가 되자
(2) 주님의 몸인 교회는 신령할 뿐만 아니라 현재적 하나님 나라의 특징인 의와 희락과 평강이 넘치는 생활로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가 되자
(3)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 한데까지 자라서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사람에게서도 칭찬을 받는 교회가 되자
에베소서를 살펴보자 (핵심 사항)
(1) 저자 : 바울 기록연대 : AD62년경 바울의 1차 투옥 중에 로마에서 에베소 성도와 세계 모든 성도를 위하여 기록했다
(2) 기록한 배경 : 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보다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목적을 설명하고 교회를 바른 믿음위에 세워주고 격려하기 위함이 목적이다.
바울은 에베소에 3년이나 있었음으로 성도들과 친숙해졌다. 에베소 교회에서는 논쟁이 없었고 그곳의 장로들과 헤어질 때 슬픈 눈물이 있었다
에베소서는 몸, 성전, 새 사람, 신랑, 군인, 성찬식 등의 표현으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교회를 제시했다.
(3) 요절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엡4;4)
(4) 교회는 주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다 (엡2;20-22)
(5) 에베소서는 우리에게 교회라는 비밀을 보여 주고 있다. 참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다 (엡4;11-16)
지금은 폐허가 된 옛날의 에베소
6) 마게도냐
그리스 반도 북쪽지방의 빌립보, 데살로니가, 뵈뢰아 등이 위치해 있는 전체지역를 말한다.
(1) 다니엘 선지자가 그 지방을 외뿔염소라 하였다(단8:5).
(2) 로마에게 멸망당하고 네 지방으로 분활 되었다(행16:12).
(3) 바울이 그 지방에 와서 네아볼리, 빌립보, 아볼로니아, 데살로니가, 베뢰아 등의 교회를 설립하였다(행16:19).
(4) 거의 모든 마게도니아 신자들은 이 세상 물질에는 가난하였으나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과 주의 진리에 대한 사랑으로 넘쳐흘러 복음 사업을 유지하기 위하여 기쁘게 바쳤다.
(5) 유대인 신자들의 구제를 위하여 이방인 교회들을 상대로 전체적으로 모금 운동을 벌였을 때에 마게도니아에 있는 신자들의 관대함은 타 교회들의 모범이 되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니아 교인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이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고후 8:1-4).
7) 아가야 (형제 )
로마제국 때의 식민지로 그리이스 남부의 펠레폰네수스 전체와 클라데스의 여러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1) 현재 그리스의 암반부로 예수 당시에는 로마국이 점령하여 한 도를 만들고 고린도를 수도로 삼고 갈이오 총독이 치리하였다(행 19:1
(2) 스데바나의 고향(고전 16:15).
(3) 이곳 신도들이 마게도냐인과 함보하여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를 구제 하였다(롬 15:25).
8) 예루살렘 :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 (시편 132:13
예루살렘
(1) 황금의 도시
영원한 도시, 평화의 도시인 예루살렘은 3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채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역사의 중심에서 아직도 꿋꿋하게 살아 숨 쉬는 이스라엘의 수도이다. 아무런 보잘 것 없는 풍경과 전무한 상태의 부존자원을 가진 유대 광야의 동편 가장자리에 우뚝 솟아있는 이 도시를 성경은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시 125:2) 하였다.
이런 아무 쓸모없는 땅이 하나님께 선택함을 받았고, '일신교의 보루로서', '세계인의 성도' 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2) 신앙의 확신을 심어준 도시
불모의 언덕에서 유명한 철학자들과 선지자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설교와 도덕적 계율들, 그리고 한 형제로서의 사랑을 가르치셨고 실수와 우상숭배로 인해서 눈 어두워진 이 땅의 사람들에게 바른 판단의 기준과 신앙적인 확신을 심어준 신앙의 틀을 짠 곳이 바로 이곳이다.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 (미 4:2)
(3) 유대인의 장래의 희망
이곳은 전 인류의 절반이 종교적인 수도로 믿고 있고,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옛날의 영광이요 미래 희망의 상징이며, 기독교인에게 있어서는 예수님의 마지막 사역이 펼쳐진 곳이며,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생생하게 지켜본 도시이다. 또한 회교도들은 이곳이 선지자 모하마드가 승천한 곳이라 믿고 있다.
(4) 예루살렘은 신앙과 평화의 원천
가장 신성한 도시인 동시에 테러와 전쟁의 피가 끊임없이 흘려진 곳이다.
즉, 칼이 오랜 동안의 역사를 거쳐 오면서 이들의 자손들을 괴롭혀 왔던 것이다. 지구상의 어떤 도시보다도 많은 전쟁을 거쳐 왔고, 사람들의 피로 바다를 이룬 적이 수없이 많았었다.
무려 50차례 이상을 포위 공격당했으며, 36차례에 걸친 정복과 10차례의 심한 파괴를 당했다.
(5) 예루살렘의 시초
고대사 속에 묻혀 있어 알 길이 없지만, '평화'라는 뜻의 '살렘'(salem) 이라는 이름으로 가나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창 14:18),
또 "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네 근본과 난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비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미는 헷사람이라" (겔 16:3) 하였다.
사실상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곳이 된 것은 주전 10세기에 다윗 왕이 여부스 족으로부터 예루살렘을 정복해서 그의 수도로 삼고 (삼하 5:6 ~ 10), 여호와의 언약궤를 이곳으로 옮겨온 (삼하 6:1 ~ 23) 이후라고 말할 수 있다. 이후 다윗성(City of David)이라고도 불리웠으며, 자신을 포함한 역대 왕들의 무덤이 되기도 하였다.
(6) 솔로몬 왕의 성전과 바벨론에 정복당함
BC 965 ~ 922 년에는 예루살렘을 확장 시킨 솔로몬 왕이 성전과 그의 궁전을 짓고 예루살렘을 미화하였다.
본격적으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종교, 정치, 문화, 사회등 무든 분야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화려하여 "은을 돌같이 흔하게" (왕상 10:27) 하던 예루살렘은 남북 분열 이후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BC 586년 바벨론에 의해서 정복당하였으며 성전이 파괴되고 사람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시 137:1 ~ 4)
(7)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과 성전 재건
포로된 그들은 그곳에서도 예루살렘을 향하신 하나님의 미래를 결단코 포기하지 않았으며, 그 꿈은 예언자들의 예언대로 70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귀향하여, BC 516 ~ 515 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였다.
(8) 알랙산더 대왕과 로마 폼페이우스에게 정복 당함
BC 332년 예루살렘은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서 정복당했다가, 마카비 전쟁을 통하여 성전을 재탈환하고, 헤스모니아 왕가에 의해서 잠시 동안의 독립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시 로마의 폼페이우스에 의해서 정복되고 말았다. (BC 63년).
로마의 후광을 입어 BC 37년 유대인의 왕으로 임명 된 헤롯 대왕 (Herod the Great)은 위대한 건축가로서 예루살렘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갔으며, 솔로몬 당시의 성전보다도 더 장대하고 아름다운 성전을 건립하고 성벽을 쌓았다. 이 성전은 46년 동안이나 걸려 건축되었고 (요 2:20), "헌물과 미석으로 꾸며졌다" (눅 21:5).
이 예루살렘이 예수님 당시의 바로 그 예루살렘이다.
(9) 예수님의 예언과 AD70년 멸망
이렇게 화려했던 예루살렘도 예수의 예언 (눅 19:41 ~ 44, 21:6,20,24)대로 "돌 위에 돌 하나가 남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로마의 티투스 (Titus)는 AD 70 년 예루살렘을 불태워 버리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터전이 되지 못하였으며, 세계에 흩어진 그들에게 있어서 이 도시는 다만 과거의 도시일 뿐이었다.
AD 132 ~ 135년 바르 코흐바 (Bar Kokhba) 에 의한 제2차 유대 반란 이후, 하드리안 황제에 의해서 예루살렘은 로마의 도시로 재건되면서 엘리아 카피톨리나 (Aelia Capitolina) 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워지게 됨으로써 그 명성 있던 이름마저 빼앗기게 되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성스러운 장소에는 로마의 제우스 신전이 세워지고 유대인의 출입이 금해지고 만 것이다.
(10) 콘스탄티누스의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후 예루살렘은 다시 세워졌다
AD 332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예루살렘을 비롯한 예수와 관련된 팔레스틴을 '성지'(Terra Sancta)라 하여 곳곳에 기독교 교회를 세우기 시작하였다.
특히 예루살렘의 골고다에 세워진 성묘교회와 베들레헴에 세워진 예수 탄생교회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친어머니인 헬레나에 의해 건립되었다.
그러나 614년 페르샤의 침공으로 대부분의 교회가 파괴되었으며,
636년 아랍에게 예루살렘이 점령되어 약 500여년간 아랍의 통치하에 있게 됨으로써 예루살렘은 더 이상 기독교의 전통을 이어가지 못하게 되었으며, 새로운 아랍문화로 채색되어 갔다.
1099년 예루살렘이 십자군의 휘하에 들어감에 따라 약 200년 동안 라틴제국의 도시가 되었다가,
1187년 살라딘 왕이 이끄는 모슬렘에 의해서 재점령됨으로써 기독교와 모슬렘 사이의 이중구조 속에서 예루살렘은 변모해 갔다.
(11) 터키의 통치
1517년 오토만 터어키 (Ottoman Turkey)의 지배하에 들어감으로써 400년간의 터키 통치가 시작되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영국군은 1917년 이후 예루살렘에 총독부를 두어 위임 통치를 실시하기에 이르렀다.
(12) 시온주의 자들의 열성으로 독립국가로 탄생 수도가 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면서 신생 이스라엘은 시온주의자들의 노력과 국제기구의 승인에 의하여 1948년 5월 14일, 2천년 동안의 유랑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국가로 탄생하게 되었으며, 예루살렘은 다시 이스라엘의 수도가 되어 옛날의 영화를 되찾게 되었다.
현재 예루살렘의 신시가지 (New City)는 불과 150여년 전부터 발전되기 시작하였다.
구도시 (Old City)는 1평방킬로미터에 불과하여 매우 비좁을 뿐만 아니라 매우 오래된 도시이기 때문에 시설이 좋지 못하고 비위생적이었다.
150여년이 지난 지금은 신도시가 구도시의 약 100배가 넘는 신시가지로 발달하였다.
1967년 6일 전쟁 이후 통합된 구 도시는 주로 고적지와 박물관 등을 포함하여 새로운 위생시설을 갖춘 일반 주거지로 사용되고 있으며, 신시가지에는 정부청사 등을 비롯한 행정수도로서 그 면모를 현대화해 나가고 있어 옛것과 새 것의 환상적인 조화가 이루어져 있다.
특히 연한 노란 빛을 띄고 있는 석회암에서 반사되는 아름다움은 이 도시를 '황금의 도시' (The Golden City)라 부르게 한다
9) 마게도냐
그리스 반도 북쪽지방의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등이 위치해 있는 전체지역를 말한다.
(1) 다니엘 선지자가 그 지방을 외뿔염소라 하였다(단8:5).
(2) 로마에게 멸망당하고 네 지방으로 분활 되었다(행16:12).
(3) 바울이 그 지방에 와서 네아볼리, 빌립보, 아볼로니아, 데살로니가, 베뢰아 등의 교회를 설립하였다(행16:19).
(4) 거의 모든 마게도니아 신자들은 이 세상 물질에는 가난하였으나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과 주의 진리에 대한 사랑으로 넘쳐흘러 복음 사업을 유지하기 위하여 기쁘게 바쳤다.
(5) 유대인 신자들의 구제를 위하여 이방인 교회들을 상대로 전체적으로 모금 운동을 벌였을 때에 마게도니아에 있는 신자들의 관대함은 타 교회들의 모범이 되었다.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주의를 환기시켰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니아 교인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이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고후 8:1-4).
10) 드로아 :
소아시아 서북 무시아도에 있어 마게도냐와 거래하는 중요한 항구로 터키 서쪽 에게해 항구, 고대 트로이에서 약 10km 지점.
사도바울은 제 3차 전도여행을 마무리하면서, 드로아에서 남쪽으로 40km떨어진 앗소까지 걸어가기도 하였다.
사도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 아시아로 가려했으나 꿈에 마케도니아 사람의 간절한 호소를 듣고 에게해를 건너 그리스 지역으로 행선지를 돌린 곳이기도 하다.
이 사건으로 기독교 복음이 서쪽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실로 역사적인 분기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사도바울의 강론 중에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죽은 유두고라는 청년을 살린 곳이기도 하다.
(1) 바울이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보고 유럽에 건너가니 이것이 유럽 전도의 첫발이었다(행 16:8-9).
(2)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과 가죽에 쓴 책을 가지고 오라고 부탁하였다(딤후4:13).
이로 보아, 바울은 AD 66-67년경 체포될 당시 이곳에 있었을 가능성이 짙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11) 빌립보 : (빌립의 도시)
마게도냐 스트림몬강과 네스토스강의 경계 에게해 내륙 약 16km 지점 깊은 급류의 간지테스(Gangites)강의 강변 근처에 있었다.
(1) 바울과 실라가 2차 선교 여행시에 이곳에 첫발을 디뎌 구라파 전도의 문 을 여는 첫 발이 되었다.
그 첫 열매의 성도는 자주 장사하는 루디아라는 여신도다(행16:14).
(2) 바울과 실라가 귀신들린 여점장이 에게서 귀신을 쫓아 고쳐 주었다. 주인 이 자기의 수입이 없어진 것을 원통히 여겨 군중을 충동하여 송사하여 법관에게 매를 맞고 옥에 갇혔다.
이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송할 때 지진이 나서 문고리가 벗겨지고 문이 스스로 열려 놀라 자결하려 는 간수에게 전도하여 온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였다(행16:16-34).
(3) 그 후 바울이 또 한 번 들렸다(행20:1).
(4) 이곳 성도들은 바울을 대단히 존경하였으며 바울에게 받은 신앙을 감사하며 마게도냐를 떠날 때와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 여러 차례 도와주었다 (빌4:15-16).
(5) 로마 옥에 갇혔을 때에는 에바브로디도 를 통하여 위문품을 보냈으므로 감사의 서신을 보냈다(빌4:18).
12) 앗소 :
소아시아 무시아도에 있는 고래의 항도 였으나 지금은 터키 국의 바이람칼레시 라는 작은 촌락으로 떨어져 있다.
바울이 3차 선교 여행의 귀로에 드로아에서 바울은 육로로 이 촌에 이르러 배를 타고 미둘레네로 갔다(행20:13-14).
앗소는 비잔틴 시대의 요새가 매우 인상적이며 정상에 B.C. 530년경에 지어진 아데나 신전이 있다.
이 신전은 소아시아 지역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도리안 건축양식의 유적이다.
13) 미둘레네 :
소아시아의 본토 서쪽 17㎞ 지점의 에게해의 큰 섬 레스보스(그 수도의 이름을 따라 미둘레네 라고도 부른다)의 동안에 있던 주요 성읍이다.
바울은 제 3차 전도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 항구에서 정박했다
이곳은 일찍부터 에올리아 식민이 행해진 곳 중 하나이며, 시인 알카이오스, 삽포를 낳은 곳이기도 하다.
미둘레네는 본래 작은 섬이었는데, 레스보스 섬에 접합하여 두 양항을 가진 성읍으로 되었다.
14) 기오 :
소아시아 서해 중에 있는 작은 섬. 현재 터키 서안 에개해의 사모스섬 북쪽에 있는 섬으로 바울이 3차 선교 여행때 지나간 곳.
바울이 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 이곳에 들렸다(행20:15).
15) 사모 :
에베소 남서 지점에 있는 에게 바다의 작은 섬으로 길이가 43.2km 이고 그 폭은 22.4km 이다.
바울이 제3차 선교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들렸던 곳이다(행20:15). 사모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16) 밀레도 :
바울은 밀레도의 장로들에게 약탈하는 무리들인 이리떼로부터 그들의 양을 지키는 목자들처럼 그들의 신자들을 돌보라고 다짐하였다.
소아시아 서해안에 있는 요항으로서 옛날 아니오니아국의 수도 였는데 에베소 다음으로 번화한 곳이었다.
(1) 바울이 고린도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도중 이곳에 들려 에베소 장로들을 청하여 권면 하였다(행20:17-35).
(2) 드로비모는 병으로 인하여 이곳에 남아 있었다(딤후4:20).
17) 고스 : (양)
소아시아에서 남쪽 바다 가운데 있는 섬으로 바울이 3차 선교 여행 때 이곳에서 하루 쉬었다(행21:1).
고스의 아스구레오스 신전 : 행21:1에서 언급되고 있는 이 섬은 의학 학교가 있었고 문학의 중심지였으며 고급 피륙 생산지로도 알려져 있다.
18) 로도 :
소아시아 남서안에 있는 섬으로 섬 안에는 같은 이름의 항구가 있다. 수리아나 애굽에서 로마가 항해하는 도중에 들리는 중요한 도시다. 현재 그리스에서는 '로도스'(Rhodhos)라고 부른다.
현재의 터키와 예전에 카리스 서남 해안에서 약 20km 떨어져 있는 큰 섬
바울이 3차 선교 여행중 드로아에서 가이사랴로 여행하는 도중에 이 항구에 들렸었다(행21:1).
19) 바다라 :
아시아, 루시아도의 항구. 로도섬 대안에 있는데 지금은 수심이 얕아 배가 정박하지 못한다.
바울이 3차 선교여행 회로에 이곳에서 배를 갈아타고 두로에 상륙했다(행21:1-2).
20) 베니게 :
지중해 동북 연안에 있는 오늘의 레바논, 갈멜산 북쪽 약200km 사방 30km 의 지역
평야가 적고 토양이 박하여 농사에는 부적당. 두로, 시돈, 비부로스 등 좋은 항구를 가지고 있고 레바논 산맥이 목재로 배를 만들어 지중해 흑해를 중심한 해상 무역과 식민지 활동에 종사한다.
(1) 대서양까지 "열국의 시장이 되었다(사23:3).
(2) 엣바알의 딸 이세벨이 이스라엘왕 아합의 악한 아내였다(왕하16:31).
(3) 솔로몬 시대에 성전 건축의 목재 석재 기술자를 퍼견(삼하5:11, 왕상5:9, 17, 18).
(4) 베니게의 종교가 흘러가 들어가 압도적인 세력을 확보, 엘리야 선지의 출현을 촉진하는 큰 원인이 되었다(왕상16:29).
21) 구브로 :
지중해 동북부에 있는 길이가 224km, 폭이 69km에 이르는 큰 섬(현재:키프러스(Cyprus)).
(1) 박해를 피하여 온 사람들이 교회를 세웠다(행11:19)
(2) 바나바와 나손의 고향(행4:36,21:16).
(3) 바울 바나바 마가 셋이 동반하여 전도함(행13:4).
(4) 바나바와 마가가 2차 전도하였다(행15:39).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형제들로부터 안수를 받은 후에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타고 구브로에" 갔다. 이와 같이 사도들은 그들의 최초의 선교 여행을 시작하였다.
구브로는 스데반의 죽음에 뒤따른 박해 때문에 신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도망한 곳들 중의 하나였다.
어떤 사람들이 안디옥에 와서 "주 예수를 전파" (행 11:20)한 것도 구브로에서 간 것이었다.
바나바 자신도 "구브로에서 난" (행 4:36) 사람인데, 이제 그와 바울은 바나바의 친척인 마가 요한과 함께 이 섬 지방을 방문하였다.
바울의 제 1차 선교 여행의 첫 기착지 구브로(행 13:4-6)
선교사로 파송을 받은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바나바의 조카 마가 요한은 실루기아로 내려가 거기서 배를 타고 구브로(Cyprus)를 향해 떠났다. 이것이 바울의 제 1차 선교 여행의 첫 발이었다.
구브로는 바나바의 고향이었고(행 4:36) 연장자인 바나바가 이 여행을 주도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게 만드는 부분이다.
구브로는 길이가 225 km, 폭이 100 km 에 달하는 섬이었고 시리아와 터어키의 해안에서 각각 100 km 정도 떨어진 지중해 동편의 섬이다.
22) 수리아 (Syrias)
유다 북부에 있는 큰 나라로서 유브라데 강 지중해 길리기아까지를 경계로 하고 있었던 큰 나라.
예수님이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시고 모든 병을 고치시니 그 소문이 수리아 온 땅에 가득히 전해졌다(마4:23-24) 바울이 2차전도 여행 시 실라와 함께 이곳을 지나 길리기아로 들어갔다
23) 두로 :
시돈항구에서 약 40km지점 레바논과 이스라엘에서 약 24km북쪽에 위치해 있다.
(1) 지중해 동해안에 있는 베니게의 유명한 성(겔27:3).
(2) 아셀지파에게 여호수아가 나누어 주었으나 방비가 견고함으로 쳐서 취하지 못함(수19:29, 삿1:31-32).
(3) 공업과 학술이 발달된 곳으로 다윗과 솔로몬 궁을 지을 때 건축 재료와 기술자를 여기서 구하였다(삼하5:11, 왕상5:7).
(4) 아합왕이 그 왕녀 이세벨을 취하고 바알까지 취하여 섬기다가 여호와의 징벌을 받았다(왕상21:23-26).
(5) 조개 종류에서 취하는 고귀한 자색 염료를 생산하여 여러 나라와 무역이 성행되고(겔27:16-25).
(6) 주전 331년에는 알렉산더 대왕이 포위하고 석로를 쌓고 쳐들어가 함락하고 백성 주민을 여러 나라에 노예로 팔고 시가는 불탔다. 후에 로마 국이 점령하고 재건하였다.
(7) 예수님이 그 성에 가셨을 때 가나안 여인의 독실한 신앙을 보시고 그 딸에게 들린 악령을 쫓아 주셨다(마15:21-28).
(8) 바울이 7일간 유하며 전도하는 중에 이곳 주민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권고 하였으나 작별하고 예루살렘으로 향하였 다(행21:2-7).
24) 돌레마이 :
(1) 지중해 연안 악고만 북단에 있는 성읍으로서 구약 시대의 악고(삿1:31).
(2) 바울이 예루살렘 길을 갈 때에 여기서 상륙하였다(행21:7).
25) 가이사라 :
팔레스타인의 해안 도시로 갈멜산에서 남쪽으로 약 37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백부장 고넬료와 집사 빌립의 거주지(행10:1, 21:8).
바울이 예루살렘 소요 중에서 이곳에 이르러 2년간 구금되었던 곳(행18:22, 21:8, 23:23-33, 24:27, 25:11, 26:1). 주후 638년에 회교에 함락 되었다.
가이사랴는 주전 4세기에 시돈의 통치자였던 스트라토가 처음 설립한 도시로 '스트라토의 망대'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 도시는 주전 259년 이집트 프톨레미 2세의 신하인 제논의 문서에 처음으로 그 이름이 언급되었다.
헤롯대왕(주전 37- 주전4)은 이곳에 인공적인 항구도시를 건설하고 로마황제를 위하여 '가이사랴(Caesarea)'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렀다. 가이사랴는 약 12년간의 공사 끝에 주전 13년경에 완성되었다.
가이사랴는 규모 면에서 아주 큰 항구도시이다. 헤롯이 이렇게 큰 항구도시를 건설한 이유는 자신이 이스라엘의 위대한 통치자임을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함이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의 항구로는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때에 북쪽 레바논으로 금과 백향목을 수입하던 항구 욥바가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항구를 건설함으로서 로마의 문물을 신속히 받아들이고 사마리아의 농산물을 로마에 수출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과시하고자 했다.
26) 예루살렘 (윗부분 참조)
바울의 3차전도 여행을 마치면서
바울의 3차에 걸친 전도 여행의 결과로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파되었다 (롬15;19)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을 정도였다
전도에 지칠 줄 몰랐던 바울은 더 넓은 지역 더 많은 이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몸의 부활을 전하여 생명을 얻게 하고 이 세상에서 더 풍성한 삶을 살게 하기를 바랐다
바울의 숙원은 로마에 가는 것이었고 먼저 예루살렘을 가야했다 그것은 가난한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다. 오랜 전도 생활로 이제는 지쳤을 것이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지녀 병약한 몸이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바울의 가는 길에는 환난이 기다리고 있었으나 더욱 주님을 의지하여 위로를 얻고 힘을 얻었다.
바울은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며 전도자로 비겁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그가 남긴 한 마디의 말씀을 나는 평생 마음에 간직하고 전도자로써 그렇게 살기를 원했다.
“나의 달려 갈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20;24)
사도 바울의 전 3차 선교 여행 및 로마 압송 여정
사도행전은 한마디로 사도들에 의한 교회(敎會, Church)의 태동 및 초기 발전사이다.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며 남기신 약속에 따라 오순절 강림하신 성령의 역사에 힘입은 사도들에 의하여, 신약 교회가 태동되고 확장되어 가는 과정의 기록이다.
이와 같은 사도행전의 후반부는 사도 바울의 도합 3회에 걸친 선교 여행(Missionary Journey) 및 로마 압송 여정을 중심으로 전개 된다. 즉 총 28장의 사도행전 중 제13-28장 사이의 후반부가 사도 바울의 선교 행적 중심으로 기록되었다. 이는 곧 사도행전 전체 분량의 반 이상이 사도 바울 한 사람의 이방 선교 사역 중심으로 기록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바울의 이방 선교 사역 이전과 이후에도 여타 사도들과 각급 교회 지도자들에 의한 이방 각처에서의 선교 사역이 있었다. 이들 예수의 여러 종들도 각자 자기가 머문 곳에서 자신의 최선을 다하여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으며 그들 각자는 대부분 순교(殉敎)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럼에도 저자 누가는 거의 전적으로 바울 한 사람의 사역을 중심으로 사도행전 후반부를 기록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다름 아니라 초대 교회의 이방 선교에 대한 가장 열렬한 주창자요 또 그 자신이 직접 가장 광범위한 이방 선교 사역을 수행한 선교사이기도 하였다.
이제 구약에 계시된 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성취되고 새로이 최종적 천국 구원을 위한 신약이 갓 계시되었던 당시로서는 복음의 세계 만민으로의 확장이 최우선의 시대적 과제였다. 그리하여 이제 전반부에서 신약 교회의 태동과 베드로의 고넬료의 선교 사건들을 통한 초대 교회의 이방 선교로의 전환을 보도한 전반부에 이어서 사도행전 후반부는 이방 선교 사역의 첨병으로서 최전방을 담당하였던 바울의 행적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사도행전 후반부에 기록된 바 바울의 전 3회에 걸친 선교 여행과 로마 압송 여정을 지도와 도표 형식으로 요약하여 보다 친근한 이해를 도모하고자 한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울의 행적은 극도로 절제된 사실적 문체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행간에서 낯선 땅 타지에 오직 복음 하나를 들고 각종 난관을 뚫고 찾아다니던 사도 바울의 고뇌와 열정 그리고 그의 눈길과 숨소리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거의 2000년 전 지중해, 로마 지역의 각처를 찾아다니며 헬라와 유대 문화의 전통적 권위에 도전하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던 사도 바울의 발걸음은 지금도 세계 각처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찾아가는 현대 선교사(宣敎師)들의 발걸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1. 제1차 선교 여행
바울의 제1차 이방 선교 여행은 A.D. 47년경에 시작되어 약 2년이 소요되었으며 주로 소아시아의 동남부에서 진행되었다. 이러한 제1차 전도 여행은 복음이 팔레스틴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 본격적으로 이방 세계로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한편 제1차 선교 여행의 결과 이방인의 할례 문제가 대두되어 예루살렘 공의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모든 사람은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기독교의 핵심 진리가 확립되기에 이른다.
• 여행기간 : A.D. 47-49년(약 2년)
• 여행거리 : 약 2,240km
• 동 역 자 : 바나바, 마가 요한
• 관련본문 : 행 13:1-14:28
• 여행경로 : 수리아 안디옥 → 실루기아 → 살라미 → 바보 → 버가 → 비시디아 안디옥 → 이고니온 → 루스드라 → 더베 → 루스드라 → 이고니온 → 버가모 → 앗달리아 → 수리아 안디옥
1. 바보에서 로마 총독 서기오 바울을 전도함(13:6-12)
2.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치유함(14:8-18)
3. 안디옥으로 귀환하여 보고함(14:21-28)
2. 제2차 선교 여행
바울의 제2차 선교 여행은 A.D. 49년경에 시작되어 약 3년이 소요되었다. 이때에는 마가 요한의 동행에 대한 견해 차이로 바나바와 결별함으로써 실라를 동역자로 삼아 여행을 시작한다.
본래는 제1차 선교 여행시 세운 교회를 돌아보고 굳게 하는 것이 여행 목표였으나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로 말미암아 유럽에 속한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에서 주로 사역하게 됨으로써 복음이 소아시아 지역을 넘어 유럽으로까지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
• 여행기간 : A.D. 49-52년(약 3년)
• 동 역 자 : 실라, 디모데, 누가
• 여행거리 : 약 4,500-5,600km
• 관련본문 : 행 15:3-18:22
• 여행경로 : 안디옥 → 더베 → 루스드라 → 드로아 → 사모드라게 → 네압볼리 → 빌립보 → 암비볼리 → 아볼로니아 → 데살로니가 → 베뢰아 → 아덴 → 고린도 → 겐그레아 → 에베소 → 가이사랴 → 예루살렘 → 안디옥
• 주요사건
1.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보고 드로아에서 마게도냐로 건너감(16:6-10)
2.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에서 복음을 전파함(16:11-17:15)
3. 아덴의 아레오바고에서 설교함(17:16-34)
4.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파함(18:1-17).
5. 데살로니가전후서를 기록함
3. 제3차 선교 여행
바울의 제3차 선교 여행은 A.D. 53년경에 시작되어 약 6년이 소요되었다. 이때는 주로 에베소를 중심으로 사역하면서 제2차 선교 여행 지역을 다시 돌아보는 형태로 선교 여행이 진행되었다.
한편, 바울은 제 2차 선교 여행 당시와 마찬가지로 아가야 지방의 겐그레아에서 배를 타고 귀환하려 하였으나 유대인들의 살해 음모로 인해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길을 택하여 귀환하게 되며, 이때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각 지역 교회의 헌금 전달자들과 동행하게 되었다.
• 여행기간 : A.D. 53-58년(약 6년)
• 동 역 자 : 누가, 디모데
• 여행거리 : 약 4,500-5,600km
• 관련본문 : 행 18:23-21:16
• 여행경로 : 안디옥 → 에베소 →고린도 → 빌립보 → 드로아 → 앗소 → 미둘레네 → 기오 → 사모 → 밀레도 → 고스 → 로도 → 바다라 → 두로 → 돌레마이 → 가이사랴 → 예루살렘
• 주요사건
1. 에베소 두란노 서원에서 약 2년간 강론함(19:1-4)
2.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로마서를 기록함
3.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별 설교함(20:17-38)
4. 로마 여행
바울이 그토록 염원하던 로마 여행은 제3차 전도 여행을 마친 후 2년이 경과한 뒤인 A.D. 60년 가을 무렵에 시작되었다. 즉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이후 2년 동안 가이사랴에 구금되었다가 베드로 총독 앞에서 로마 황제에게 상소함으로써 비로소 로마로 가게 된 것이다. 이때 바울은 도중에 광풍을 만나 위기를 겪게 되나 하나님의 은혜로 무사히 로마에 도착하여 성도들의 영접을 받게 된다 .
• 여행기간 : A.D. 60-61년(약 1년)
• 여행거리 : 약 3,800-4,000km)
• 동 역 자 : 누가, 아리스다고
• 관련본문 : 행 27:1-28:31
• 여행경로 : 가이사랴 → 시돈 → 무라 → 미항 → 멜리데 → 수라구사 → 레기온 → 보디올 → 압비오 저자 → 삼관 → 로마
• 주요사건
1. 가이사랴를 출발하여 시돈과 무라를 거쳐 그레데의 미항에 이름(27:1-8)
2. 뵈닉스로 가는 도중 광풍을 만났으나 기적적으로 구원받음(27:9-44)
3. 멜리데 섬에서 독사에 물렸으나 죽지 않음(28:1-10)
4. 2년간 로마 셋집에서 연금 상태로 있으면서 복음을 전함(28:30,31)
5.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기록함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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