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학성선원·경주 함월사 조실 우룡 스님
이번 호 지상법문은 울산 학성선원·경주 함월사 조실 소임을 맡고 있는
우룡 스님의 법어집 ‘불교신행의 주춧돌’에 수록된
‘해탈의 길, 성불의 길’ 내용을 요약 정리했다.
스님은 “부처님의 말씀이 좋다면 목숨이 떨어져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확고히 믿어야 한다”며 굳건한 신심을 강조하고 있다.
정리=김현정 기자
“부처 될 수 있다는 확신 속 더욱 정진해야”
불교는 ‘무조건 믿는’ 종교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무조건 듣고, 무조건 믿어라’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처님께서는 남의 말을 따라가기 이전에 똑똑히 보고,
똑똑히 듣고, 자세히 생각해 볼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첫째, 바로 보고〔正見〕 바로 생각하라〔正思〕.
둘째, 바로 보고 바로 생각하여 ‘틀림없는 가르침이다’라고 판단되면 믿어라.
셋째, 믿음을 일으켰거든 흔들리지 말아라.
이것이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믿음’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 흔들리지 않으면 갈등이 없습니다.
흔들리지 않으면 원(願)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어떠합니까?
진실로 부처님이 좋고 부처님 말씀이 좋다면 목숨이 떨어져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확고히 믿어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불교의 궁극적 목표인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신심(信心)이 굳건해야 합니다.
그럼 신심은 무엇입니까?
“나에게는 부처님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마음자리가 있고,
그 마음자리를 개발하면 나도 틀림없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는 것입니다.
단순한 믿음, 부처님께 의지만 하는 믿음으로는
절대로 불교의 최종목표를 이룰 수 없습니다.
‘부처가 되겠다’는 서원과 ‘나의 마음만 개발하면
나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없으면 어떠한 수행을 하더라도
결실을 맺을 수 없습니다.
진실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주위의 모든 존재는
불성종자(佛性種子)를 지닌 부처님들입니다.
다만 살아 있는 부처가 번뇌에 의해 가려져 있을 뿐입니다.
“내게 부처님과 다를 바 없는 마음자리 있고
마음자리 정성껏 개발하면 부처 될 수 있어”
우리는 번뇌로 인해 가려진 산 부처님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실상은 어떻습니까?
매일 같이 살아있는 부처는 괄시하고,
죽은 부처에 대해서는 두려워하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당장 눈으로 볼 수 없고, 있는지 없는지조차
분명히 확인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느끼고 존경하면서
함께 생활하고 있는 산 부처님은 무시하고, 속이고, 대들지는 않는지….
옛 스승들은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보라.
부처님께서 욕하신다면 배울 일이요 깨우쳐 볼 일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을 부처님 대하듯 할 수 있는 불자라면
결코 깨달음이 멀리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이는 쉽게 ‘나’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계(戒)·정(定)·혜(慧) 삼학(三學)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이유에서 저는 “부처님께 절을 하듯이
배우자·자식에게 기꺼이 절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말을 즐겨합니다.
정녕 내 부모, 내 형제, 내 배우자, 내 자녀를 생불(生佛)처럼
받들고 존경하며 살아보십시오. 좋지 않은 모든 업이 저절로 녹고
아름다운 인연이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물론 우리들 속에는 깊은 이기심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주위 사람들을 부처님처럼 대하기가 무척 어려울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만큼 인간 몸 받았을 때
허송세월말고 부지런히 마음공부 매진 필요”
하지만 어렵더라도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을 바꾸어 보십시오.
자꾸 노력하다보면 반드시 이룰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보는 것, 이것이 대승보살 불교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깊이 명심하고 꾸준히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정녕 신심이 확고한 사람이 성불의 길, 해탈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해탈, 그것은 불교의 목표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불교는 벗어나는 종교입니다. 생사윤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고,
번뇌망상 속에서 벗어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업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교입니다.
불자들은 헛된 굴레를 벗어버리고
다른 사람을 ‘나’와 다를 바 없이 생각하는 자비심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깊은 산중에 홀로 정진하는 수행자라고 할지라도
이와 같은 자비심을 잊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자비심이 깊어질수록 ‘나’의 굴레는 옅어지고,
‘나’의 굴레를 완전히 벗어버려야 해탈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해탈은 절대로 방종이 아닙니다.
마음대로, 마구잡이로 하는 것은 해탈이 아닙니다.
참된 해탈인은 진리에 입각하여 일을 판단하고 실천합니다.
내가 하는 일의 원인과 결과를 분명히 알고 행동합니다.
그런데 공부가 어느 정도 익으면
정진의 강한 기운에 휩싸여 거침없이 행동하는 경우 또한 없지 않습니다.
공부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절대로 방종해서는 안 됩니다.
불교가 벗어버리는 해탈의 종교라고 해서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평등 무차별한 진리의 세계에도 맞고 개개의 현상계 속에서도
조그마한 오류를 범하지 않는, 진정한 자유인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공부인은 지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여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진리에 어긋나지 않고 대우주의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는 이사무애(理事無碍)의 경지까지 도달해야 합니다.
모름지기 마음공부를 하는 분들,
특히 부처가 되겠다고 발원한 분들은 깊이 명심하십시오.
“나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확신 속에서 정성을 다해 정진할 것.
이(理)에도 사(事)에도 어긋남이 없도록 할 것.
언제나 자비심을 품고 굴레를 벗으며 살 것.”
이렇게만 산다면 어떠한 난관도 쉽게 극복할 수 있고,
해탈의 세계로 곧바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영원하고, 행복하고, 자유롭고, 깨끗한 불국정토에서 살 수 있게 됩니다.
부디 명심하십시오. 좋으나 싫으나 공부는 이 몸뚱어리 있을 때 해야 합니다.
이 몸뚱어리 떨어지고 나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생명이 소중하지만 특히 인간의 몸은 매우 소중합니다.
“시방의 부처님께서는 성불을 할 때 모두 인간의 몸을 가지고 하였느니라.”
석가모니 부처님의 이 말씀처럼 부처를 이룸에 있어서는
그토록 소중한 것이 이 인간의 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구속과 모든 얽힘과 고민·걱정·고통은
인간의 몸을 가졌을 때 가장 쉽게 벗어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지옥·아귀·축생·아수라·천상계의 중생과 인간의 다른 점입니다.
지금 인간의 몸을 받았을 때 참되게 발원하고, 정성껏 공부해야 합니다.
다음 생으로 미룰 일이 아닙니다.
다음 생에 또다시 인간의 몸을 받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생에서 부지런히 지혜를 기르고 자비로써 복을 닦아야 합니다.
적어도 숨이 끊어질 때 금생의 맹세와 서원이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수행은 해야 합니다. 적어도 신심의 주춧돌은 굳건히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부디 인간의 몸을 받았을 때 허송세월하지 마십시오.
인간의 몸으로 있을 때 부지런히 공부하십시오.
이 목숨이 다한 후에는 원인과 결과의 무서운 칼날만이 번뜩일 뿐입니다.
내가 심은 대로 거둘 뿐입니다.
시간과 공간이 일치하는 자리에서 정성껏, 정성껏 살아 해탈의 세계,
성불의 길로 나아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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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룡 스님은
1932년 일본에서 출생해
1947년 해인사에서 고봉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55년 동산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하고
해인사 학봉 스님으로부터 사집을 수학하고
고봉 스님 문하에서 대교과를 수료했다.
1963년 김천 청암사 불교연구원에서 전강을 시작으로
화엄사·법주사·범어사 강원의 강사를 지냈다.
이후 수덕사 능인선원, 직지사 천불선원, 쌍계사 서방장,
통도사 극락선원 등 제방선원에서 정진했으며
20여 년 전부터 울산 학성선원에 주석하고 있다.
현재 스님은 울산 학성선원 및 경주 함월사 조실을 맡고 있다.
2009. 11. 04
제주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