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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운동- 폐광촌에서 동화 마을로
벽화와 꽃밭으로 꾸며진 동화(童話) 속의 나라
태백 지역을 중심으로 정선, 영월, 삼척은 이 땅의 대표적 탄광지대다. 고을 어디를 가나 흙 한 줌만 걷어내면 검은 노다지가 펑펑 쏟아지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이야 대부분의 난방시설이 석유와 전기로 바뀌었지만, 가난하고 어려웠던 지난날 연탄은 우리들 삶에서 에너지의 근간이었다. 배는 곯을지언정 불을 때지 않고 살아갈 방법은 없다. 아랫목 방구들을 따뜻하게 데워줄 연탄불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의 난방 수단이었다.
1980년대 말,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각지의 광산들이 하나 둘씩 문을 닫으면서 성시의 영화를 먼 추억 속으로 묻어버린 곳이 어디 한두 곳뿐이랴. 황지, 장성, 도계, 사북, 고한 등등, 그 이름만 들어도 금방 떠오르는 이미지는 한 마디로 석탄이다. 초등학생들이 그림을 그려도 개울물을 검은색으로 칠한다는 탄광지대였다. 영월의 모운동 역시 저무는 하늘 한 점 구름으로 태고의 적막 속에 다시 묻혀버린 이른바 폐광촌 마을이다.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주문2리 모운동 마을. 해발 1,088m 망경대산 8부 능선쯤에 들어선 산 첩첩 물 겹겹의 오지 마을이다. 그야말로 세속으로부터 단절된 두메산골. 영월읍에서 남한강 물줄기를 따라 고씨동굴을 거쳐 경상도 봉화로 빠지는 88번 국도를 타고 옥동천을 거슬러 오르다 보면 하동면 와석리 김삿갓 계곡 입구. 삿갓 시인의 안내판 직전에서 왼편으로 주실다리를 건너 급경사의 오솔길 4km 정도를 숨가쁘게 오르다 보면 산 중턱 자그마한 평원지대에 마을 하나가 나타난다. 마을이 있으리라고는 감히 상상도 못할 산허리쯤에 그렇게 큰 동네가 있을 줄이야. 흔히들 '하늘 아래 1번지'라 하더라만, ‘구름 위 하늘 동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싶다. 마을 위치가 해발 700m이니 모운동(募雲洞) 이름 그대로 구름이 모여들어 머무는 곳이다. 석탄을 무한정 캐내던 호시절엔 이 산중에 1만여 명의 주민이 북적거렸다 했다. 이발소, 목욕탕, 양장점도 있었고 큰 상점에다 다방과 당구장, 요정, 극장까지 있었다. 물론 학교도 있었다. 그 이름도 귀에 익은 별표 연탄이 생산되던 곳이 여기 옥동광산이었다니 가히 짐작이 갈 만하다.
예쁜 우체통과 '나뭇꾼과 선녀' 이야기 그림
석탄 산업이 한창 흥청거릴 때는 광산 지역의 아이들은 수표를 접어 딱지치기를 하고, 심지어는 강아지들까지도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과장된 우스개소리도 흔히 듣던 이야기다. 유랑극단이 영월읍은 안 들려도 모운동만은 빠짐없이 찾았단다. 웬만한 도시 부럽지 않은 곳이었다고 마을 노인 한 분이 자랑을 한다. 그러던 것이 1989년 옥동광산이 문을 닫으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 곳을 찾아 이리저리 떠나갔다. 빠져나가는 썰물과 함께 마을도 스러져 가고 지금은 고작 20여 가구에 50여 명만이 달랑 남아 산골 마을을 지키고 있다. 진폐증이나 노환으로 짐을 꾸리지 못한 이들의 한숨만이 산골 아라리 가락으로 흩날리고, 세월의 변화와 함께 그 옛날의 번성했던 영화는 일장춘몽이 되고 만 것이다.
폐광촌으로 전락한 지 20여 년 동안 마을은 날로 쓸쓸해져 갔다. 마을을 가득 채웠던 광부 사택들도 대부분 헐려 나가고 모든 시설물들이 하나 둘씩 문을 닫아 버렸다. 광산촌 아이들의 떠들썩한 함성으로 붐비던 초등학교까지 문패를 내리면서 모운동은 다시 태고의 정적 속으로 잠겨가고 있었다. 날로 쇠락해가는 마을을 살려보고자 부락의 이장 부부가 마을 가꾸기에 나선 것이 두세 해 전. 마을 주민들을 설득시키고 낡은 건물이지만 담장과 건물벽에 페인트를 다시 칠하고 동화 속의 그림을 그려 넣기 시작했다. 어린이집 교사 경험이 있던 부인이 밑그림을 그리고 색깔 이름을 적어놓으면 마을 사람들이 붓을 들고 색칠을 해 나갔다.
형형색색의 화초와 해바라기가 가득한 마을 풍경
개미와 베짱이,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 미운 오리 새끼, 토끼와 거북이 등, 눈에 익은 친근한 캐릭터들로 벽면을 채워나갔다. 허접한 쓰레기들로 몸살을 앓던 골목길도 말끔히 청소하고 형형색색의 갖가지 꽃들을 심고 예쁘게 가꾸어 나갔다. 백일홍 종이꽃을 심고 코스모스와 해바라기도 심었다. 계절따라 다양한 꽃망울이 터지도록 다양한 꽃씨를 뿌렸다. 건물도 새로 짓지는 못하지만 낡고 추레했던 것을 손질했다. 온 동네가 그야말로 하루가 다르게 꽃대궐 차린 동네로 그 모습이 변해가는 것이었다. 주민들은 금시에 생기가 돌고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마을엔 활기가 넘쳐흘렀다. 마을 대표들이 영월군청을 찾아가 마을 가꾸기 계획을 얘기하며 재정 지원까지 얻어냈다. 마을 회관 1층엔 공동 구판장을 열어 부락기금을 마련하고, 2층엔 산골 사람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민구류와 탄광에서 사용하던 각종 연장들을 모아 생활사 박물관도 꾸며 놓았다. 그 뿐만 아니라 구세군 시설도 끌어들이고, 폐교되었던 초등학교 자리엔 마을을 찾아오는 이들이 묵어갈 수 있는 펜션 숙박시설을 마련했다. 석탄을 실어나르던 운탄로 산협길과 모운동의 그랜드 캐년 계곡을 황홀한 트레킹 코스로 바꾸는 계획도 이미 준비되어 있다.
광부들이 사용하던 장비를 모아둔 마을 박물관
대처로 떠나간 이들에게 연락하여 고향 사랑 운동에 호응해 줄 것을 부탁하고 고향 방문 행사도 열었다. 내 손으로 고향 마을을 가꾸겠다는 의지로 온 주민들이 하나가 되면서 짙은 구름 속에 잠들었던 마을이 짧은 시간에 깨어나기 시작했다. 이른바 제2의 새마을 운동의 불꽃이 점점 화염을 더하며 타오르자, 마을 소식이 입소문으로 번지면서 급기야 언론에까지 몇 차례 보도되었다. 그러더니 2008년 행자부가 선정한 '참 살기 좋은 마을 가꾸기'에서 대상 수상 8마을에 들어가는 기적을 보였다. 모운동 소식이 매스컴을 타면서 사라져가던 마을 이름이 세인들의 귀에 익숙해지고 찾는 발길들이 하나 둘씩 늘게 되었다. 마을 구경을 하고자 찾는 발길은 나날이 늘어가고, 더욱이 이곳에 터를 잡고 눌러 살겠다는 이도 짐을 싸들고 찾아왔다.
모운동 뒤산 김재에서 바라본 중첩한 산줄기
이제 모운동은 그 이름처럼 구름도 모여들고 사람들도 늘어난다. 떠나는 마을이 아니고 돌아오는 마을, 정을 붙이고 끌어안아 살을 맞대고 싶은 마을이다. 일본 후쿠시마현의 탄광촌 이와키시가 온천 휴양지로 바뀌고, 태백시가 고원 관광도시로 탈바꿈했듯이 모운동은 요정들이 모여 사는 동화의 마을로 새롭게 태어난다. 검은 노다지의 꿈이 황금 노다지로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예밀리로 넘어가는 김재 고갯길에서 겹겹의 연산들을 바라보며 저문 하늘의 구름을 손짓해 모운동으로 몰려오라고 나직나직 불러본다.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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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