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19:31~43)
다윗이 어려울 때 도왔던 바르실래는
막상 다윗이 다시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되어
그의 곁에서 영광을 누릴 수 있음에도
다윗과 동행하는 그 성공의 길을 겸손히 거부한다.
세상 성공과 권력보다는 고향에서 그가 생각하는
평안과 행복을 택한 것이다.
치열한 지분 싸움 같은 것은 그에게 없었다.
다윗이 곤경에 처했을 때
그와 대적하고 압살롬과 함께 반란세력에 있던
유다지파에 대해서
다윗이 애매한 유화, 수용정책을 베푸는 바람에
억울한 이스라엘 지파와 의기양양한 유다지파 사이에
지분 싸움이 치열해졌다.
첫째는 앞서 바르실래처럼 세상의 기세와 관계 없이
진정한 평안과 행복을 쫓는 것이 아니라
치열하고도, 일면 아비규환 같은 지분 투쟁을 하는
이스라엘 지파와 유다 지파의 세속적 마인드가 대조된다.
이스라엘 지파의 공적에 대한 요구나
유다 지파의 다윗의 조처를 등에 업고 나서는 것이나
어떤 이유와 상관 없이
그들에게는 욕심을 버리고 진리에 따르려는 마인드와는 동떨어져 있다.
둘째는
다윗이 국가 지도자로서 취해야 했던 공적 조처가 지금의 분란의 씨앗이다.
유다지파는 반란 세력인데 어줍잖은 유화정책을 한 것이
문제를 결말짓지 못하고 갈등을 양산했다.
세상에 딱딱하고 냉철한 공적조치 같은 것을 하지 않고
당장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감정 충실한 조처를 하고 살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지위가 높은 리더일수록 공적 조처에 충실해야 할 의무가 있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자유와 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한 사람의 자유가 공동체의 자유와 의를 훼손하고 위협할 때, 필요한 것이
공적 조치, 공의를 세우는 일이기에 리더가 해야 할 가장 엄중한 의무이다.
이런 공적 조치를 두고,
리더가 단호하지만 옳지 못한 조처를 하게 되면 공동체는 망한다.
리더가 단호하지 못해 흐지부지한 조처를 하거나 조처를 하지 못하면
갈등이 지속되어 어느 시점에서 그 폐해가 드러난다.
오늘 본문에서 유다와 이스라엘 지파의 싸움이 그런 것이다.
마지막으로 리더가 단호하면서도 지혜롭고 바른 판단과 조처를 하면 공동체는 흥한다.
이렇게 리더가 옳은 조처를 찾아 행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리더는 아무나 해서는 되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도
아버지의 후광 아래에서 상징적 인물로 남았으면 좋았을 사람,
공동체를 유익하게 할 수 있는 기술적 탁월함을 사용하여 공동체를 유익하는 일을 하면서
좋았을 사람... 등 등은 자신의 본분을 잊고 자신과의 싸움, 욕심 있는 타인의 부추김에 속아
방황의 시간을 보내는 예시들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봄이 지나고 따가운 여름이 옵니다.
여름은 여름대로 은혜가 넘치는 시간입니다.
그 은혜를 더욱 발견하며 살게 해 주십시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 주시고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베푸신 환경 속에서, 또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과 호흡하게 해 주십시오.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