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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낙동강시대-스토리가 흐르는 마을] (20)고령 오사마을 (2) 현대사 질곡 지켜본 100세 할머니 “일제, 해방, 6`25…마을엔 일도 참 많았지” | ||||||||||||||||||||||
고대 대가야가 중국 및 왜(倭)와 교류했던 통로이자, 신라와 대립하는 국경이었다. 고려 말과 조선 초 사이 낙동강 물길 따라 올라온 팔만대장경 경판이 뭍에 첫발을 디딘 곳이자, 임진왜란 당시 의병과 왜병이 맞붙어 피를 뿌린 곳이기도 하다. 이 물길은 세월을 넘어 세곡을 옮기고 소금을 날랐다. 나루터에는 물품과 사람이 쉴 새 없이 드나들었고, 주막은 흥청거렸다. 세곡과 소금이 시간을 타고 감자, 무, 배추, 수박, 마늘로 바뀌고, 나루터가 다리로 바뀌었을 뿐 그 물길은 여전히 역사를 품고 흐른다. 서창덕(73) 씨는 “1970년대까지 오사나루터에는 사람들이 북적댔고, 나루터 옆 버드나무 많은 곳에 자리한 주막 ‘유목정’이 번창했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설립한 개진초등학교는 나루터와 함께 오사마을에 어른과 아이들이 몰려드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제석산 기슭 옛 절터에 초등학교가 자리 잡으면서 개진면 전역에서 학생들이 몰렸고, 이발소와 문방구, 교사 사택 등이 들어섰던 것. 오사 주민은 한때 400명이 넘었다 지금은 50여 명으로 줄었지만, 낙동강과 더불어 드넓은 들판에서 곡식과 채소를 가꾸며 공동체를 잇고 있다. 마을역사와 80여 년을 함께 한 할머니, 고객을 위해 30여 년 업소를 지켜온 이발사, 밭일에 허리가 휜 할아버지와 대를 잇는 농사꾼 등이 오사 공동체의 주역이다. ◆100년 현대사를 안은 박실댁 1910년 음력 4월 25일. 고령 박실댁, 장영분 할머니가 태어난 때다. 고령 쌍림면 신곡2리 박실마을에서 태어나 ‘박실댁’이다. 10대 때 오사마을로 시집온 뒤 80여 년 동안 마을을 지키고 있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던 해 태어나 해방, 6`25전쟁, 이승만 정권부터 지금까지 10명의 대통령을 거쳤으니 한국 현대사의 산 증인이라고 할만하다. 마을에서 해방을 맞았고, 6`25 때도 마을을 떠나지 않았다. 장 할머니는 관솔 공출, 처녀 징용 등 일제강점기 마을상황을 회고했다. 장 할머니는 “일본이 비행기 기름에 쓴다며 집집마다 소나무 관솔을 따게 해서 거둬갔다”고 말했다. 또 일본이 1930년대 각 마을마다 젊은 여성들을 전쟁터로 강제 동원하던 때, 시누이를 만주로 급하게 시집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일본이 동네마다 처녀를 전쟁터로 끌고 간다고 하는 바람에 시누이를 이웃마을(개진면 구곡2리 봉골) 총각에게 급하게 시집보냈다”며 “시누이는 남편과 함께 만주로 가 살다 남편이 죽자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4, 5년 전 숨졌다”고 했다. 그는 6`25 당시 상황도 생생하게 기억했다. 장 할머니는 “인민군 1개 대대병력이 대구로 마지막 진격을 하기 전 우리 집과 뒷산(제석산) 대나무밭 등에서 3일 동안 머물렀다”며 “인민군들은 직접 밥과 음식을 해먹었는데, 동네 사람들에게 크게 해를 끼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 5월 마을회관 앞에서는 한바탕 잔치가 벌어졌다. 장 할머니의 101세(만 100세)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오사마을 전체 주민이 50여 명인데, 이날은 장 할머니 가족과 주민 등 150여 명이 모였다. 아들과 딸, (외)손자와 손자며느리, 증(외)손자와 증손녀 등 4대에 걸친 친인척들이 함께했다. 한적한 농촌마을이 모처럼 시끌벅적했다. 장 할머니의 큰 딸은 81세, 고향에서 할머니를 모시고 있는 아들 서창덕 씨는 73세로 모두 노인이다. 서 씨와 부인 조금옥(67) 씨는 마을에서 효자, 효부로 소문나 있다. 서 씨 부부는 온종일 장 할머니의 진자리, 마른자리를 살피고 있다. 아들과 며느리의 보살핌으로 장 할머니는 최근까지 귀만 조금 어두울 뿐 말도 잘 하고, 날마다 마을회관에 나갈 정도로 건강했다. 요즘 정신은 멀쩡하지만,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형편이다. 서 씨는 “이번 추석 때까지만 해도 날마다 마을회관에 나가 할머니들과 어울리고 말씀도 잘하셨는데, 추석 이후 곡기를 끊고 계신다”며 “특별한 질병 없이 의식도 또렷하지만, 최근 미음을 잘 못 드시고 물만 드신다”고 말했다. 또 “병원에 가서 의사와 상담해 보니 연세가 많고 혈관이 약해 포도당 주사도 놓을 수 없고,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오래 오래 더 살다 평안하게 가시길 기원할 수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시골의 마지막 이용소 오사 입구에서 제석산 기슭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개진초교 못 미처 허름한 간판이 눈에 띈다. ‘오사이용소(친절봉사)’. 이용소 간판 오른쪽 면에는 ‘문방구(신용본위)’란 글씨가 색 바랜 채 남아 있다. 읍내나 면 소재지에서도 쉽게 보기 힘은 시골 이발관이 여태 남아 있는 것이다. 박영필(57) 씨는 31년째 이용소 문을 열고 있다. 낡은 의자 2개, 1980년대 초의 해묵은 포스터와 요금표, 닳고 닳은 손가위와 이발기, ‘업소실천사항’과 ‘고객의 실천사항’을 담은 누런 액자 등등. 옛 향수가 물씬 풍겼다. 약 40가구의 마을에서 손님이 많이 있을 리는 없다. 하지만 박 씨는 ‘고객’을 위해 문을 닫지 않고 있다. 박 씨는 “마을 어르신들이 연로하셔서 읍내로 잘 못나가는 이유도 있지만, 다른 동네 어르신들도 단골이 좀 있다”며 “저의 헤어스타일 때문에 고령읍내나 대구 현풍 등에서도 이따금 찾아오기 때문에 문을 닫을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하루에 2, 3명도 찾지 않을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용소 문은 오전에만 연다. 생계를 위해 오후에는 부업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몇 년 전부터 작은 트럭을 구입해 오후에는 현풍, 구지 등 대구 근교 아파트단지 등을 돌며 뻥튀기 장사를 하고 있다. 박 씨는 “장사가 되든 안 되든 단 몇 분이든 찾아온다면 이용소 문을 닫을 수도 없고. 다만 먹고 살아야 하니 뻥튀기라도 해야지”라고 말했다. 지금은 조용하지만, 한 때는 이용소와 문방구가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학생이 15명에 불과한 개진초교가 30년 전 200명을 넘었고, 1970년대 최고 번성기에는 700명이나 됐다는 것. “처음 마을에 들어왔을 때는 대단했지요. 학생과 어른이 넘쳐났어요. 처음에 문방구를 하러 들어왔는데 이발소까지 하게 됐어요. 그때는 정말 신이 났지요. 차암, 그런 호시절도 있었는데….” 1980년대 초반 박 씨는 이발소를, 박 씨의 부인은 문방구를 하며 쏠쏠한 재미를 봤다고 한다. 하지만 학생들이 급격하게 줄면서 문방구는 문을 닫아야 했다. 시골 이용소는 손님은 뜸하지만, 이발사와 이발장비가 30여 년을 버텨오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농촌마을의 세대교체 낙동강 앞 넓은 땅을 기반으로 오사마을 대다수 주민들은 쌀농사와 무, 배추 등 밭농사를 짓고 있다. 오사마을에는 이제 70, 80대 농사꾼들이 40, 50대 농사꾼들로 한창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최호득(74) 씨는 수리사업 30년, 쌀농사 20년을 거쳐 지금은 토끼 20마리, 닭 10마리, 개 15마리를 키우고 있다. 중풍으로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의료용 전동휠체어에 의지해 사료를 주며 가축을 키우고 있는 것. 30만㎡ 감자밭은 이제 아들이 돌보고 있다. 100세 노모를 모시고 평생 농사를 지어온 서창덕 씨는 1978년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새마을사업기금 150만원을 받아 마을 곡식창고를 지었는데, 그 창고는 지금까지 30여 년을 잇고 있다. 서 씨는 1981년에도 우수새마을특별기금으로 300만원을 받는 등 새마을지도자로서 명성을 떨쳤다. 마을 이장인 서보운(45) 씨는 유기농 친환경자재를 쓰며 비닐하우스 애호박을 재배하고 있다. 그는 “농약 치는 집은 호박이 잘 생기고 하루 70박스 수확하는데, 우리는 하루 30박스 정도 수확하지만 유기농을 고집한다”고 말했다. 서 이장은 “껍질 무늬가 검고 짙어야 하고, 겉면에 흰 분이 나와야 당도가 높다”며 수박 농사에 대한 열정을 보이는 서보협(46) 씨와 함께 오사의 내일을 가꾸는 농사꾼이다.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공동기획: 매일신문 (사)인문사회연구소 ◇마을조사팀 ▷작가 이원규 ▷사진 이재갑 ▷지도 신지혜 Copyrights ⓒ 1995-, 매일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
- 2010년 12월 01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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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상세한 소개 잘봤습니다. 역사가 깊은 중요한 고을 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