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중석 / 성균관대 사학과교수>
1월부터 활동을 하게 될 때에는 아주그냥 무슨 큰 경사나 중요한 일이 지금 전개되고 있는 그런 식으로
신문들이 연달아서 크게 보도를 해나가고 있어요.
그래서 이제야 말로 정말 민족이 제대로 풀리는것 같다.
친일파가 청산돼 가지고 우리사회가 맑고 깨끗하게 그래서 민주주의라든가 국민화합이 제대로 될 것 같
다 라는 식의 그런 구호들을 계속 내보내는걸 볼 수가 있습니다.
국민들의 마음을 신문들이 읽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또 국회에서 그렇게 활발하게 반민법을 운용할려
고 하는것도 역시 국민들의 마음을 읽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죠.
전국 곳곳에 설치된 제보함에는 친일파청산에 대한 국민들의 염원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국민들은 친일파청산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과 피해경험을 제보함에 넣었다.
특위가 활동한지 18일 제1호 검거자가 생겼다.
화신백화점 총수인 박흥식이었다.
그는 정부의 비호를 받아 해외로 도피하려다 잡혔다.
*박흥식
박흥식은 당시 조선최고의 재벌로 군수회사인 조선비행기회사를 운영했고 '조선임전보급단'의 임원으로
일제말 총동원체제에 봉사했다.
1월 10일에는 일제밀정 대동신문사장 이종형이
13일에는 33인의 대표자였던 최린.
21일에는 인촌 김성수의 동생 김연수가 체포됐다.
그는 경성방직사장으로 만주국명예총영사, 조선임전보국단의 이사로 활동했다.
2월7일에는 친일문학의 거두였던 최남선과 이광수가 체포됐다.
김상덕에게 이광수는 2.8독립선언을 함꼐한 동지였다.
하지만 그런인연으로 그의 변절을 눈감을 수는 없었다.
<김정육 / 김상덕선생의 아들>
아무래도 2.8독립선언때 서로 그 일본식민지시대의 동경이라고 하는 심장부에서 대한민국독립을 선언하
는 운동이거든요.
그거 상당한 각오를 함께 한 동지들이었고 거기다가 또 이광수씨는 문필에 대해서 아버지가 상당히 애착
을 가지신거고 그래서 이광수씨가 체포된 것을 매우 마음 아파한것은 사실입니다.
(21:24)
하지만 이광수는 자신의 반민족행위에 대해 뉘우치지 않았다.
"나의 발자취"...(생략)
정철용씨는 현재 생존하고 있는 유일한 반미특위 조사관이다.
그는 이광수를 직접 체포했다.
<정철용 / 반민특위 조사관>
난 그래도 미안하다 이런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하는 이야기가 해방이 1년만 늦었어도 우리는
전부 황국신민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같은 사람들이 신사참배안하고, 창씨개명 안 한 사람이 어디있느냐
말이지... 그 사람한테 좀 실망을 했어요.
지식인이고, 배운분이고, 유명한 분인데...
그래도 민족정신이 있어서 조금이나마 마음속에 뉘우치면, 참으로 내가 그 당시 일제의 강압에... 미안
하다 이런 걸 기대했다 이겁니다.
그런데 엉뚱한 소리가 나오길래 좀 기분이 좋지 않더라구.
그래서 내가 화딱지가 나서 그 양반 이름이 가야마 미쓰로에요. 창씨개명이.
그래서 내가 이랬어요, 가야마!
했더니 이광수가 일본말로 '하이' 이렇게 대답해...
(22: 44)
친일파들의 변명도 다양했다.
'전 국민이 친일할 수 밖에 없지 않았으냐' 강변하기도 했다.
박중양 중추원참의, 조선보국단 고문
하지만 이런 변명은 독립운동가를 욕되게 하는 것이었다.
<박한용 /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왜? 자기네들이 친일을 했느냐에 대해서, 우리들은 일제시기에 한 시대의 선각자로 있었다.
우리는 사회지도층이었고 우리는 일제식민지시기에 문명개화의 선구자였고 사회지도층이어기 때문에 일
제가 우리를 표적으로 삼아서 친일을 강요했다.
따라서 지도자였기 때문에 당해야 했던 수난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수난!
그런데 제가 묻고 싶어요.
그들이 친일을 해서 어떤 고통을 당했는지를 묻고 싶습니다.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의 고통을, 재산도 없고 자식들은 뿔뿔히 흩어져 있었는데... 저들은 친일을 해가
지고 돈벌었지 기득권을 유지했지 과연 어떻게 그들이 그 수난을 당했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만 하여튼 그런것은 그 엘리트의식과 결합되어 있는 사회선각자들의 수난이라는 것으로... (중략)
친일파들의 조직적인 반발은 반민법제정떄부터 있었다.
반민법이 공포된 바로 다음날엔 일제 밀정이었던 이종형이 주최한 반공대회가 열렸다.
이날의 집회는 경찰이 인원을 동원한 관제데모였다.
이들은 반민법을 만드는 것을 국회안에 공산당소행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이종형은 반민법은 온 국민을 그물로 얽어매는 법이라며 온 국민이 친일파라는 물타기식 궤변을 늘
어 놓았다.
그러면서 진짜 민족반역자는 빨갱이니 이들을 자방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공을 무기로 반민법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서중석 교수/ 성균관대 사학과>
당연히 친일파들한테 반공이라는건 여의주와 같은 역할을 했다.
여의봉... 여의주... 그래서 자기마음대로 상대방을 치고, 말하자면은 자기들은 애국자로 만들어 놓으면
서 자기들을 탄압하는 세력을 오히려 몰아치는 그런 논리로서 반공을 많이 사용하는걸 볼 수 있습니다.
근데 사실은 이건 일제말 사회에 있었던 행태와 거의 같은거라고 볼 수 있어요.
일제말에 반공운동이라는건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전쟁을 수행하면서 대대적으로 벌여나가거든요.
말하자면 적을 만들어가지고 그쪽으로 사람들 마음을 쏠리게 하는 그런 방식이었는데 이런 반공운동에
친일파들... 경찰을 포함해가지고 친일파들이 적극호응을 하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임영신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위원), 윤치영
이날의 집회는 내무장관 윤치영, 상공장관 임영신등이 관련을 맺고 있었다.
이들은 일제말 친일단체인 조선임전보국단출신의 친일경력자였다.
주한 미국대사관의 반민특위 보고서
반민특위의 활동진행상황을 미국본국에 보고하는 주한 미대사관의 보고서에는 이종형의 방패막이로 윤치
영 내무부장관을 지목하고 있다.
첫댓글 가야마! 했더니 이광수가 일본말로 '하이' 이렇게 대답해..." 참 슬픈 역사입니다...
저런 썩은 뿌리가 자랑스럽다는것이 지금 뉴라이트들 아니겠습니까...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