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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구비전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예예
성 경 : 마 17:14-20절
제 목 : 믿음에도 법칙이 있습니다
일 시 : 2024. 5. 5.
마태복음 17:14-20/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18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19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불신 때문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 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제가 전하는 말씀은 드라마와 같이 시리즈로 연결되기 때문에 과거에 들은 말씀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 오늘의 말씀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들은 말씀을 다시 요약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마17:20) 사람들이 병을 고치지 못하는 이유는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불신(앙) 때문입니다. 불신의 종류는 세 가지라고 말씀드렸습니다. ① 첫 번째는 복음과 말씀에 대한 무지 때문이며, ② 두 번째는 잘못된 교리 때문이며, ③ 세 번째는 자연적인 불신 즉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오감 때문입니다. 오감이 진리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감이 주는 자연적인 정보를 마치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진리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불신을 쉽게 받아들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오감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생각하는 참된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육체를 쳐서 복종시킴으로 오감이 주는 정보를 믿지 않고 말씀이 주는 참된 정보를 믿는 참된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금식과 기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자연적인 불신을 극복할 수 있음을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믿는 자에게 하나님과 동일한 질과 양의 믿음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병을 고침받거나 자신이 소원과 기도가 응답받는 기적을 체험하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의 차이는 믿음이 없거나 믿음이 작아서가 아닙니다. 불신(앙)이 자신에게 들어오는 통로를 활짝 열어 놓아서 병을 고침받지 못하고 기적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초자연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더 큰 믿음을 가지고 더 큰 능력을 받아야 되는 것이 아니라 불신(앙)을 줄이고 굶기는 일을 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여기까지가 지난 주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중의 한가지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섯 가지의 완전한 구원을 주십니다. 시103:2-5/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3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4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다섯 가지 완전한 구원이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고, 모든 병을 고쳐 주시고, 우리의 생명을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 주시고, 좋은 것으로 우리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시고(부요와 형통의 복), 우리의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모든 죄를 용서받은 천국에 들어가는 복을 받은 사람은 당연히 모든 병도 고침받은 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53:5/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고 했으며, 벧전2:24/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했습니다. 이 두 구절의 말씀처럼 우리의 모든 병은 이미 고침받았다는 태도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병을 고침받을 것이다(미래형)가 아니라 이미 모든 병을 고침받았다(완료형)는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병을 고치는 치유사역의 문제만 나오면 너무나 소극적이고 수동적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하나님의 뜻이라며 이 병을 고쳐 주세요 라는 잘못된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병을 고쳐 주셨는데도 하나님께 병을 고쳐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성경말씀과 일치하지 않는 잘못된 기도입니다.
그리고 요삼1:2/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간구하노라는 유코마이라고 하는데 소원하다, 종교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다, 하고 싶어하다, 원하다 라는 뜻으로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육체가 강건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우리 모두가 영혼이 잘되고 모든 하는 일이 잘되고 우리의 몸이 건강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명백하게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뜻을 본다면, 더 이상 질병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이라면 고쳐 주세요 라고 기도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병을 고치는 치유사역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서 날마다 자신의 병을 고치고 다른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는 능력사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받는데 공격적이어야 하고, 적극적으로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공급하신 구원의 축복(시103:2-5)다섯 가지를 세상이나 육신이나 마귀가 가로막고 부인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제공하신 구원의 축복을 온전히 받아 누려야 합니다.
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병은 절대로 축복이 아닙니다. 신28:1-14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복으로 여기시는 것들이 무엇이며 신28:16-68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저주로 여기시는 것들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병과 질병은 언제나 저주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만든 종교가 나타나서 병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축복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키는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그것을 단호하게 물리쳐야 합니다.
물론 구약시대는 하나님께서 병으로 어떤 사람들을 치기도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옛 언약과 새 언약 차이를 알지 못합니다. 구속이 완전된 새 언약 아래서는 절대로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질병으로 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든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구약시대 율법 아래서도 병은 언제나 저주였지, 결코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신28:16-68절에 기록된 모든 것을 포함하여 모든 율법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그래서 갈3:13/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 고침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종류의 불신(앙) 때문입니다. 불신은 믿음을 무력화시키는 정반대의 힘입니다. 대부분의 믿는 자들은 믿음과 불신이 정반대의 힘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불신을 해결하기 위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마17:20절에서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만 있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믿음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과 맞서 우리의 믿음을 무력화시키는 온갖 종류의 잘못된 생각, 태도, 느낌, 감정을 맞아서 싸우지 않아서입니다.
따라서 강한 믿음을 가지려면 우리의 초점을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특히 우리의 병을 고치셨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두어야 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과 반대되는 모든 것으로부터도 벗어남으로 불신의 양을 줄여야 합니다. 우리는 부정적인 모든 보고에 귀 기울이는 것을 멈추고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이 영적인 생각이 되면 우리가 얻게 될 모든 것은 생명과 평안입니다(롬8:6).
2. 하나님의 나라, 즉 영의 세계에도 법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천국)은 법에 의해서 작동되고, 믿음으로 작동됩니다. 온 몸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진리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만드신 법(칙)은 항상 동일하고 변하지 않습니다. 만약 언제 어디에서든지 항상 동일하지 않는 법칙은 그것을 법칙이라고 할 수 없는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중력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중력은 하나님이 만드신 법칙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중력의 법칙이라 부릅니다. 지구 안에서 중력의 법칙은 모든 장소와 모든 일에 항상 동일합니다. 만약 중력의 법칙이 한국에서만 적용되고 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는 무중력 상태라고 하면 중력은 하나의 현상이지 법칙은 아닙니다. 또한 중력이 어떤 때만 나타나고 다른 때에는 무중력 상태라고 한다면, 중력은 하나의 현상일 뿐이지 법칙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일관되고 보편적이라는 말은 그것이 법칙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지배하는 법칙도 창조하셨습니다. 중력의 법칙만이 아니라 전기와 관성의 법칙과 같은 다른 법칙들도 있습니다. 관성의 법칙은 어떤 물체가 움직이고 있을 때 계속 움직이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을 우리는 관성의 법칙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관성의 법칙이 작동되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움직이는 자동차를 멈추기 위해서는 브레이크를 밟아야 합니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가 멈추는데 걸리는 시간은 차가 달리는 속도와 차의 크기와 무게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이 관성의 법칙입니다. 앉아 있어도 관성의 법칙은 작용합니다. 관성의 법칙은 우리에게 맞서서 작용합니다. 그래서 정지상태에 있는 자동차의 시동을 걸어서 속력을 내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일단 자동차가 굴러가기 시작하면, 우리는 별로 거칠 것이 없이 운전할 수 있습니다. 중력이나 관성의 법칙은 다양한 법칙들 중에서 몇 가지 예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연적인 법칙과 영적인 법칙을 직접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 법칙들을 스스로 침해하거나 무너뜨리지 않으십니다. 이 진리는 병을 고치는 치유사역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3. 하나님이 만드신 법칙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자연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영적인 영역도 하나님의 법칙에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천국)가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하나님의 법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무엇이든지 자신의 법칙을 무시하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가족 중에서 누군가가 죽었을 때 하나님께 화를 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치유하지 않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셨다면 고칠 수 있었을 텐데요. 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지배하는 법칙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다시 중력의 법칙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중력의 법칙은 고층건물 옥상에서 계속해서 걸어가거나 뛰어내리는 사람에게도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이 죽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에 유익을 위해서 중력을 만드셨습니다. 바로 지금 여러분은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을 끈으로 붙들어 매거나 잡아 둘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앉아 있는 의자를 바닥에 나사로 고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중력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50층 건물 옥상 밖으로 계속해서 걸어가려 한다면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만들어진 중력의 법칙으로 인해서 그 건물에서 떨어져서 죽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해를 끼치려고 중력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편안하고 안전하게 살아가는 것을 도와주려고 중력을 만드셨습니다. 온 세상이 그런 식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법칙을 어긴다면 즉, 고층건물의 옥상에서 건물 밖으로 걸어가거나 뛰어내리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롭게 하려고 만드신 중력의 법칙에 의해서 건물에서 떨어져 죽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이 원하신다면 고층건물에서 떨어지는 것을 멈추게 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법칙들을 바꾸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본성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법칙들을 창조의 일부로 만드시면서 매우 좋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1:31). 따라서 중력이 잘못된 것은 전혀 없습니다. 문제는 중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력의 법칙을 어기고 고층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이 잘못된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고층건물에서 떨어지는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중력의 법칙을 일시 중지시킨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로 인해 수 억 명의 사람들이 생명을 읽게 될 것입니다. 길거리에서 중력의 법칙에 의존해서 자동차를 운전 중인 사람들은 중력의 법칙이 갑자기 사라지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통제를 잃게 되고, 그 결과 도로를 달리는 모든 차들은 다른 차와 또는 건물을 향해 돌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건물에서 떨어지는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시려고 중력의 법칙을 잠시 멈추시게 되면 지구상에 있는 수 억 명의 사람들이 죽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중력의 법칙을 멈추거나 변경시키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만드신 법칙은 그것이 (자연법칙이든지 영적인 법칙이든지)은 항상 일관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법칙은 바뀌거나 요동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영적인 법칙도 바꾸거나 침해하지 않으십니다. 영적인 영역에도 법칙이 있으며, 그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 정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치유사역이 단지 자신의 기분에 의해 좌우되도록 설계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믿음과 병을 고치는 치유사역에는 그것을 지배하는 변치않는 법칙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자신의 모든 병을 고치고 다른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영적인 법칙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하나님의 법칙에 대해 무지한 것뿐 아니라 이런 법칙이 있다는 진리 자체에 무지한 것 역시 치유를 받는 데 커다란 걸림돌이 됩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나라(천국)가 법칙의 지배를 받고 작동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일지라도 각각의 서로 다른 법칙들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무지로 인해 병을 고치는 치유사역에 방해를 받을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영적인 법칙을 이해하기 위해서 전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전기는 하나님께서 지구를 창조하신 이후로 계속해서 존재해왔습니다. 지구에는 자기장이 있으며, 공기 중에는 전기가 존재합니다. 춥고 건조한 날에 카펫 위를 지나서 문고리를 잡는 순간, 전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정전기가 여러분에게 충격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구를 창조하신 첫 날 이후로 이와 같은 일들이 계속해서 동일하게 발생해왔습니다. 한 번 내리치는 천둥 번개 속에는 우리 나라에 일 년 동안 전력을 공급하기에 충분한 양의 에너지가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과 몇 백 년 전에 우리에게 전기를 주겠다고 결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전기는 지구가 만들어진 수간부터 이 땅에 존재해 왔었습니다. 그런데도 과거 사람들이 오늘날처럼 전기를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은 전기에 대한 무지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막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이 전기를 지배하는 법칙을 깨닫고, 그 법칙과 협력하는 법을 배웠다면, 우리는 수천 년 전부터 전기의 유익을 누렸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도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에어컨, 세탁기, 식기세척기를 사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전기와 원자와 헬륨과 같은 잠재력은 항상 지구 안에 존재했었습니다. 우리가 그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은 우리의 무지 때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당장 발명하기를 꿈꾸는 것들이 있습니다. 많은 아이디어들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무리인 것처럼 들리지만 언젠가는 그것이 사용 가능한 실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막지 않으십니다. 단지 법칙에 대한 무지가 우리를 막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발견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이루어져야 할 급진적인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
불과 수년 전에 일어났던 장거리 통신의 거대한 변화를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휴대폰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상 2천년 전의 사람들이 휴대폰을 통해 말하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었습니다. 휴대폰을 만들 수 있는 재료도, 그 기가가 작동하는 법칙도 태초부터 이 땅에 존재해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막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능력은 그곳에 있었지만 우리가 그 능력을 작동시키는 법칙을 이해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두려움을 가집니다. 우리가 전기스위치를 올려서 불을 켜는 법은 알지만 전기를 사용하는데 필요한 모든 법칙을 알지는 못합니다. 전기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으며, 그러므로 전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전기를 두려워합니다.
과거에 실수로 전기를 만지다가 감전된 적이 있는 사람들은 전기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기를 아는 사람들은 전기 차단기를 완전히 내리지 않고 일부분의 차단기만을 내리고서도 바닥에 물기가 있는 공사장에서도 여유있게 전기공사를 합니다. 왜냐하면 전기에 대해서 알고 전기를 다루는 법을 알기 때문입니다.
6. 지구에는 중력의 법칙이 있는 것처럼 신앙생활과 믿음에도 법칙이 있습니다.
믿음과 영적인 세계도 법칙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살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전혀 그럴지 못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성경)은 이 법칙이 무엇이며, 또 하나님의 나라(천국)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가르쳐 주시는 그분의 설명서입니다. 그래서 롬3:27/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고 했습니다. 원래 이 구절의 앞뒤 문맥은 은혜와 믿음 사이의 긴장 상태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이 구절 마지막 부분에서 중요한 원리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법(the law of faith)입니다.
믿음은 법칙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에게 치유가 필요할 경우에 하나님께 병을 고쳐 달라고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병을 고쳐 달라고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이 치유되는 것을 원하실 경우에만 병을 고침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병을 이미 고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병을 고침받는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법칙과 하나님의 왕국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우리의 무지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법칙 위에 세워져 있고, 그 법칙은 일관되다 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이 법칙을 알지 못한다고 해서 그분의 법칙을 손상하지 않으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 죽거나 치유가 나타나지 않으면 하나님께 화를 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셨다면 나를 고쳐 주셨을 텐데 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시지만 그 능력은 그분의 법칙과 상관없이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믿음이 어떻게 역사하고, 또한 하나님의 능력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지배하는 영적인 법칙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 법칙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가로막게 되며 무지로 인해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처음 이 진리를 듣게 되면 화를 냅니다. 그들은 당신은 저를 비난하고 있군요? 라고 말합니다. 사실은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성경말씀은 완전히 100% 다 알 수는 없습니다. 어떤 부분에는 전문가 수준이지만 다른 부분에는 완전히 무지할 수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칙에 대해서 무지하다고 말하는 것은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깎아내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의 법칙을 몰라서 그 법칙에 협력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는 말씀을 읽고 공부하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작동하는 방식을 지배하는 많은 법칙들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훨씬 더 많은 법칙들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나는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나 자신의 병을 고치는 문제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는 치유사역이 활성화되지 않은 것을 보면 아직 병을 고치는 치유사역에 대해서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더 많은 것을 배우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계속해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많은 미개척지를 정복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 주시는 교훈 11번째 말씀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도전하며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댓글 아멘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 홀로 앉으십시오.
1. 마17:14-20절을 읽고 두 마음을 품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 함께 나누십시오.
1.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받았기에 병을 고쳐 달라는 기도는 필요합니까?
2. 사람들이 병을 고침받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3. 하나님은 자연법칙과 함께 무슨 법칙을 만드셨습니까?
4. 하나님이 중력의 법칙을 깨뜨리지 않듯이 무슨 법칙을 깨뜨리지 않습니까?
5. 전기를 알지 못하면 해를 입는 것처럼 사람들은 무슨 법칙을 알지 못합니까?
1.이미 모든 병은 고침받았기에 병을 고쳐 달라는 기도는 필요치 않습니다 따라서 병을 고치는 치유사역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서 날마다 자신의 병을 고치고 다른사람들의 병을 고쳐주는 능력사역자가 되어야 합니다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103:2~5) 것을 받는데 공격적이어야하고 적극적으로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축복을 세상이나 육신이나 마귀가 가로막고 부인하지 못하도록해서 온전히 받아 누려야 합니다
2.불신때문입니다
3.영적인 법칙
4.영적인 법칙
5.믿음과 영적인 법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