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최미경
크라운 외 1편
조금 불편했어
원래 이런 적이 없었거든
젓가락질을 멈추고
혀끝으로 몇 번 짚어보았지만
특별한건 없었어
이야기가 조금 더 이어지자
나는 손목시계를 보았어
그만 일어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어
난 그들에게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고
그렇게 끄덕이며 맞장구를 치다보면 자리가 끝났으니까
괜히 내가 나서서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어
늘 그렇듯 그냥 조금만 참으면 금방 끝나니까
입안에 넣은 것들을 가만히 씹고 또 씹고만 있었는데,
뭔지 모르는 게 덜컹거리는 거야
그렇게 치과를 갔어
사진을 찍더니 왼쪽 어금니가 썩었을 것 같다고
썩은 것도 아니고 썩었을 것 같다니,
크라운을 벗겨 봐야 안다고 했어
그래서 알았지
내가 관을 쓰고 있었다는 걸 말이야
처음 그 관을 쓴 날을 되짚어 올라가니 삼십년이 지났더라구
쓰고 다닌지 참 오래 되었는데
그걸 모르고 있었던 거지
의사가 크라운을 벗긴다고 했을 때
나는 끄덕였고
잠시 뒤 입안에서 악취가 쏟아져 나왔지
어금니가 다 썩었다며 아프지 않았냐고 물었어
아픈 건 아니고 그냥 조금 아주 조금 불편했다고 얘기했는데
그럴 리가 없다고
통증이 있었을 거라며 갸웃거렸지
난 원래 잘 참고
남의 얘기도 잘 듣고
듣고 난 이야기도 잘 잊어버린다고
말하려고 하자
의사는 손거울을 건넸어
그 안에 관이 벗겨진 내가 있었어
흉측한 몰골을 하고 썩을 때로 썩은 내가
크라운을 뒤집어쓰고 버티고 있었던 거야
*치과에서, 이를 덮는 ‘금속관’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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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기념일
남편이 어젯밤 꿈에서
장인어른을 만났다고 했다
결혼하기 8년 전에 아빠는 세상을 등졌기에
남편은 한 번도 장인어른을 이승에서 만난 적이 없었다
꿈에 나온 사람이 어떻게 장인어른인 줄 알았냐고 하자
사진에서 본 적 있다며 술이 덜 깼는지 꿈이 덜 깼는지
물을 벌컥 마셨다
나는 남편이 꿈에서 만난 장인어른을 만나 볼 수가 없기에
남편의 꿈속 장인어른이 그의 진짜 장인인지 알 수 없었다
남편이야 사진으로 한두 번 봐서 장인어른을 알아보았다쳐도
아빠는 어떻게 자기 사위인지 알아보았을까
혹시 그곳에 간 이후 간간이
나사는 꼴 내려보고 있었던 걸까
그렇게 20년 넘게 지켜보다 이건 아니다 싶어
꿈길을 헤집고 뒤져 남편을 찾아왔던 걸까
일면식도 없는 사위를 꿈에서 만나 무슨 말을 하려 했던 걸까
어떤 마음으로 사위를 마주했던 것일까
물어보고 싶은 게 한두 개가 아닌데
어젯밤 남편과 괜히 싸웠다 싶다
최미경
2004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저녁 7시에 울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