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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菩薩의 十種印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印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菩薩摩訶薩이 知苦苦와 壞苦와 行苦하야 專求佛法호대 不生懈怠하며 行菩薩行호대 無有疲懈하야 不驚不畏하며 不恐不怖하야 不捨大願하고 求一切智하며 堅固不退하야 究竟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나니 是爲第一印이요 菩薩摩訶薩이 見有衆生이 愚癡狂亂하야 或以麤弊惡語로 而相毁辱하며 或以刀杖瓦石으로 而加損害라도 終不以此境界로 捨菩薩心하고 但忍辱柔和하야 專修佛法하며 住最勝道하야 入離生位하나니 是爲第二印이요 菩薩摩訶薩이 聞說與一切智相應甚深佛法하고 能以自智로 深信忍可하야 解了趣入하나니 是爲第三印이요 菩薩摩訶薩이 又作是念호대 我發深心하야 求一切智하며 我當成佛하야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며 一切衆生이 流轉五趣하야 受無量苦일새 亦當令其發菩提心하야 深信歡喜하고 勤修精進하야 堅固不退라하나니 是爲第四印이요 菩薩摩訶薩이 知如來智가 無有邊際하야 不以齊限으로 測如來智니 菩薩이 曾於無量佛所에 聞如來智가 無有邊際故로 能不以齊限測度이며 一切世間文字所說은 皆有齊限일새 悉不能知如來智慧하나니 是爲第五印이요 菩薩摩訶薩이 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 得最勝欲과 甚深欲과 廣欲과 大欲과 種種欲과 無能勝欲과 無上欲과 堅固欲과 衆魔外道와 幷其眷屬이 無能壞欲과 求一切智不退轉欲하야 菩薩이 住如是等欲일새 於無上菩提에 畢竟不退하나니 是爲第六印이요菩薩摩訶薩이 行菩薩行호대 不顧身命하야 無能沮壞니 發心趣向一切智故며 一切智性이 常現前故며 得一切佛智光明故로 終不捨離佛菩提하며 終不捨離善知識하나니 是爲第七印이요 菩薩摩訶薩이 若見善男子善女人이 趣大乘者면 令其增長求佛法心하며 令其安住一切善根하며 令其攝取一切智心하며 令其不退無上菩提하나니 是爲第八印이요 菩薩摩訶薩이 令一切衆生으로 得平等心하야 勸令勤修一切智道하며 以大悲心으로 而爲說法하야 令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 永不退轉하나니 是爲第九印이요 菩薩摩訶薩이 與三世諸佛로 同一善根일새 不斷一切諸佛種性하고 究竟得至一切智智하나니 是爲第十印이니라 佛子야 是爲菩薩摩訶薩十種印이니 菩薩이 以此速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야 具足如來一切法無上智印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인(印)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보살마하살이 괴로움의 괴로움[苦苦]과 무너지는 괴로움[壞苦]과 변천하는 괴로움[行苦]을 알고 오로지 부처님의 법을 구하여 게으르지 않으며, 보살의 행을 행하여 고달프지 않으며,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으며, 큰 서원을 버리지 않고 온갖 지혜를 구하며, 견고하여 물러나지 않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나니, 이것이 첫째 인(印)이니라.
보살마하살이 어떤 중생이 어리석고 미쳐서 혹 나쁜 말로 헐뜯으며, 혹 칼이나 막대기나 돌로 해롭게 함을 보더라도 마침내 이런 경계로 해서 보살의 마음을 버리지 않고, 다만 참고 부드럽고 화평하게 오로지 불법을 닦으며, 가장 수승한 도(道)에 머물러 생사를 떠난 지위에 들어가나니, 이것이 둘째 인이니라.
보살마하살은 일체 지혜와 서로 응하는 매우 깊은 부처님의 법을 설함을 듣고는 능히 자기의 지혜로써 깊이 믿고 분명히 알며[忍可] 이해하고 들어가나니, 이것이 셋째 인이니라.
보살마하살이 또 이런 생각하되, ‘내가 깊은 마음을 내어 일체 지혜를 구하나니, 내가 마땅히 성불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며, 일체 중생이 다섯 가지 길[五趣]로 헤매면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으므로 또한 마땅히 그들로 하여금 보리심을 내어 깊이 믿고 기뻐하며 부지런히 닦고 정진하며 견고하여 물러가지 않게 하리라.’하나니, 이것이 넷째 인이니라.
보살마하살이 여래의 지혜가 가없음을 알고 한정[齊限]된 마음으로 여래의 지혜를 측량하지 않나니, 보살이 일찍이 한량없는 부처님 계신 데서 여래의 지혜가 가없음을 들은 연고며, 능히 한정된 마음으로 측량하지 않음은 모든 세간의 글자로 하는 설명은 모두 한정이 있어서 여래의 지혜를 다 알지 못함이니, 이것이 다섯째 인이니라.
보살마하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가장 수승한 욕망과 매우 깊은 욕망과 넓은 욕망과, 큰 욕망과, 갖가지 욕망과, 이길 이 없는 욕망과, 위없는 욕망과, 견고한 욕망과, 마(魔)와 외도와 그 권속들이 파괴할 수 없는 욕망과, 일체 지혜를 구하려고 물러나지 않는 욕망을 얻어서 보살이 이와 같은 욕망에 머물러서 위없는 보리에 끝까지 물러나지 않나니, 이것이 여섯째 인이니라.
보살마하살이 보살의 행을 행하되 몸과 목숨을 돌보지 아니하여 저해하고 파괴할 이가 없느니라. 마음을 내어 일체 지혜로 나아가는 연고며, 일체 지혜의 성품이 항상 앞에 나타나는 연고며, 모든 부처님의 지혜 광명을 얻는 연고로 마침내 부처님의 보리를 버리지 아니하며, 마침내 선지식을 버리지 아니하나니, 이것이 일곱째 인이니라.
보살마하살이 만일 착한 남자나 착한 여인으로서 대승에 나아가는 이를 보면 그로 하여금 불법 구하는 마음을 늘게 하며, 그로 하여금 모든 착한 뿌리에 머물게 하며, 그로 하여금 일체 지혜의 마음을 거두어 가지게 하며, 그로 하여금 위없는 보리에서 물러가지 않게 하나니, 이것이 여덟째 인이니라.
보살마하살이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평등한 마음을 얻게 하며, 일체 지혜의 길을 부지런히 닦도록 권하며, 크게 어여삐 여기는 마음으로 법을 설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영원히 물러나지 않게 하나니, 이것이 아홉째 인이니라.
보살마하살이 세 세상 모든 부처님들과 착한 뿌리가 같아서 일체 모든 부처님의 종자 성품을 끊지 않고 구경에 일체 지혜의 지혜에 이르게 되나니, 이것이 열째 인이니라.
불자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인(印)이니, 보살은 이것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빨리 이루고, 여래의 모든 법에 위없는 지혜의 인을 구족케 되느니라.”
*
보살(菩薩)의 십종인(十種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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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도장을 확 찍어 버렸다. 청정해져야 지혜의 도장이 확 찍히게 된다. 물이 맑아야 그림자가 찍힌다.
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유십종인(有十種印)하니 : 열 가지 인이 있으니
하등(何等)이 : 무엇이
위십(爲十)고 : 열 가지 인이냐.
소위보살마하살(所謂菩薩摩訶薩)이 :소위 보살마하살이 확실히 안다.
지고고(知苦苦)와 : 괴로움의 괴로움과
괴고(壞苦)와 : 파괴되는 괴로움과
행고(行苦)하야 : 행고하야 변천하는 괴로움을 알고 그걸 알고 참고 견디면 흔들리지 않는다.
고통이 없을 것이다. 고통인지 모르면 날로 괴롭다.
전구불법(專求佛法)호대 : 오로지 불법을 구하며
불생해태(不生懈怠)하며 : 게으르지 않고
행보살행(行菩薩行)호대: 보살행을 행하면서
무유피해(無有疲懈)하야 : 고달파 하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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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불외(不驚不畏)하며 : 여섯 번째 불경불외하며,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불공불포(不恐不怖)하야 : 공포스러워 하지도 않으며
불사대원(不捨大願)하고 : 큰 서원을 버리지 않고
구일체지(求一切智)하며 : 일체 온갖 지혜를 구하며, 꿈인 줄 알면 가위를 눌려도 별 것 없는데, 꿈인 줄 모르면 가위 눌릴 때 괴롭다.
견고불퇴(堅固不退)하야 : 견고하여 물러가지 않고
구경아뇩다라삼먁삼보리(究竟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나니 : 구경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완벽하게 하나니
시위제일인(是爲第一印)이요: 이것이 첫 번째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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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견유중생(見有衆生)이: 어떤 중생이
우치광란(愚癡狂亂)하야:게 어리석은 데다가 미쳤다. 광란해서, 아주 어리석고 미쳐서
혹이추폐악어(或以麤弊惡語)로 : 거칠게 패악을 끼치면서 남에게 못된 말로, 아주 악독한 말을 가지고
이상훼욕(而相毁辱)하며 : 이상훼욕이다. 제정신이 아니다.
서로 헐뜯고 광란해서 어리석고 미쳐서 혹이추폐악어로 막 욕하고 엥겨붙어서
혹이도장와석(或以刀杖瓦石)으로: 혹은 칼이나 막대기나 기와장이나 돌로
이가손해(而加損害)라도 : 남을 두드려 패더라도
종불이차경계(終不以此境界)로 : 마침내 이러한 경계로써
사보살심(捨菩薩心)하고 : 보살심을 버리지 않는다.
‘아이고 남에게 두드려 맞아 가면서 해야 되는 것이 보살행인가?’
법화경을 보면 부루나 존자가 어떤가?
법화경 오백제자 수기품에 보면, 오백제자라 해놓고 오백 명의 제자한테 수기를 주는 것이 아니고, 대표자 누구에게 주는가? 부루나 존자에게 준다.
수기라고 하는 것이 부처님의 법을 전해 받아서 미래의 부처가 된다는 것이잖은가. 그것을 부루나 존자에게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부루나 존자가 수로나국에 가면서
“인연이 있어서 가야 되겠습니다.”
“그 사람들 되게 못 됐고 악독하다는데, 거기 가도 네 말 안 들을 건데?”
“말 안 들으면 어떻겠습니까? 침이나 안 뱉으면 되죠.”
“침 뱉으면 우얄래?”
부처님이 그랬다.
“침은 닦으면 되죠.”
“뺨 때리면 어떡할래?”
“맞으면 되죠. ”
“욕하면 어쩔래?”
“욕 들으면 되죠.”
“그러다가 몽둥이로 때리면 어쩔래?”
“불법 전하다가 맞으면 어떻습니까? 맞을랍니다.”
법화경에는 의도적으로 부루나 존자를 딱 앞에 오백제자 수기품에 세워 놓았다.
오백이라고 오백제자가 아니고 오만 떼만 제자들, 모든 제자들이다. 그 뒤에 최초 녹야원에서 설법을 들었던 교진여가 수기를 받았다.
“그러다 칼에 찔리면 어쩔래?” 부처님이 말씀했을 때
“아유 좀 찔려 주지요. 법을 전하다 찔리는 것 예사지요.”
하고 부루나가 말했던 것처럼 요 대목도 화엄경이 법화경과 똑같다.
부루나는 성문 제자가 아니라 이미 보살심을 가졌다.
“죽으면 어떡할래?”
결국 부루나 존자는 용감하게 죽었잖은가.
‘아이고 법을 전하다가 죽으면 어때요. 죽으면 되지.’
결국은 불석신명(不惜身命)이라.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불법을 전하다가 장렬하게 돌아가셨다. 그런 분들이 한 둘이 아니다.
요 대목은 막 써놓은 것 같아도 실화다.
막대기로 때리고 욕하고 이런 것 있잖은가.
부루나 존자가 그렇게 비참하게 사람 취급도 못 받고 불법 전하다가 두드려 맞잖는가.
그 뒤에 보면 또 교진여가 등장한다.
‘왜 부루나 존자를 법화경할 때 이렇게 해 놨을까?’ 제가 생각해 보니까 부처님한테 수기를 받고 저희들 같은 경우 강맥 전강을 받잖는가. 그것은 사람이 잘나서 받는 것이 아니고 법을 전하라는 메시지다. 앞으로 나가야 될 사명감, 사명의 횃불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깨달아서 수기를 받고 이런 것은 두 번째고, 우리가 해야 될 일이 있지 않은가. 그것을 전하기 위해서 부루나 존자를 대동시키고 녹야원 교진여 비구 오비구 중의 교진여를 대동시킨다.
이름이 이렇다.
부루나 존자가 다음 생에 92억 겁 뒤에 성불한다고 한다.
억수로 노력을 많이 해야 되는데, 그런데 여래가 된다.
여래가 되면 그 법명이 무엇이겠는가?
설법을 잘했기 때문에 법명이 법명(法明)여래다.
법명 여래가 부루나 존자에게 주어진 나중의 불명이다.
교진여가 모든 사람을 대표해서, 부처님의 제자를 대표해서 다음에 수기를 받고 후대에 부처님이 된다고 수기를 받는데, 교진여 이하 부처님의 모든 제자들은 나중에 불명이 무엇인가? 보명(普明)이다.
가섭이 받든지 사리불이 받든지 누가 받든지 어떤 사람이 받든지 여기 우리가 다 받아도 마찬가지다. 회장 스님이 받든지 누구 스님이 받든지 우리는 전부 법명을 넓을 보(普)자 보명(普明)으로 받는다.
보광명전에서 보편타당한 법명 동일불성이라고 한다. 법화경이 그렇게 되어 있다. 그 대목을 가만 읽다 보면 ‘야 전부 수기를 받은 사람이고, 우리의 법명은 전부 동명동호 아미타불이고 법명은 보명여래구나’
시간에 관계되지 않고 공간에 관계되지 않고 신분에 관계되지 않고 싹 다 보명여래고, 싹 다 아미타불이다.
그래서 이 대목도 읽으면서 제가 이렇게 보니까, ‘우리는 다행히 원력을 가진 종장을 스승으로 모신 것이 참 다행스럽다’ 이런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스님도 독불장군처럼 혼자 하실 수는 없다. 여러분들하고 우리가 같이 해야 한다.
부처님도 마찬가지다. 우리 빼면 당신도 힘을 못 쓰신다.
단인욕유화(但忍辱柔和)하야 : 화엄행자는 다만 인욕하고 유화하고, 다만 참고 부드럽게, 스님으로 살 때는 보들스님 깨치면 보명여래로 산다.
전수불법(專修佛法)하며 : 오로지 불법을 닦으며
주최승도(住最勝道)하야 : 가장 좋은 도에 머물면서
입이생위(入離生位)하나니 : 생멸법을 다 떠나버리는 그 자리에 불생불멸의 자리에 들어간다. 심체의 체대를 가지고 불생불멸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 이생(離生)이라고 한다. 이렇게 이야기한다.
규봉종밀이 대총상(大總相) 같은 데서 판단하면서 이념(離念)이라고 하는 과정이 있다. 잡념이 있고 잡념의 땟구정물이 떨어지면, 생각이 엔간히 벗겨지면 이념이, 생각으로 분리되면 이념이라고 한다.
이념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무념이라고 한다. 이념 다음을 무념이라고 하니까 여기서도 이생 다음에 더 올라간다면 무생이 되겠다. 분리한다는 것은 아직 조금 남아 있다는 것이고 완전히 분리돼 버리면 무생이다.
그래서 기신론 같은 데서는 마음의 본체는 불생불멸 반야심경은 더 구체적으로 불구부정, 부증불감이라고 한다. 마음의 심체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작용은 어떻게 하느냐? 작용은 그런고로 반야바라밀을 행한다 이렇게 이야기한다.
시위제이인(是爲第二印)이요 : 이것이 두 번째 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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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문설여일체지상응심심불법(聞說與一切智相應甚深佛法)하고: 문설 듣는다. 일체 지혜와 서로 상응하는 매우 깊은 부처님의 법을 듣고는 어떻게 하는가?
능이자지(能以自智)로 : 능히 스스로의 지혜로, 우리가 다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입법계품에서 나중에 선재동자가 힘이 다 올라와서 미륵보살을 만나고, 더이상 선지식을 안 만나도 선재동자 저혼자 공부가 다 끝나서 자립이 됐잖은가.
그때 문수보살이 어떻게 하는가?
문수보살이 선재동자를 자기가 머물던, 문수보살이 머물던 그 자리에 자소주처한다. 자소주처(自所住處)라고 나오잖는가. 그러니까 화엄경 같은 경우 굉장히 치밀하게 완전한 깨달음에 의해서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 같다.
문수보살이 자소주처라. 당신이 머물던 그 자리에 선재를 놔두고 환섭불현(還攝不現)이라. 다시는 환섭 거두어서 모습을 나타내지 아니했느니라.
문수보살이 어디 가버리고 안 계시니까 선재동자는 ‘문수보살 다시 만나야 되는데’ 띠릭띠릭 살피니까 시방 모든 시방 법계의 부처님과 선지식들을 다 친견할 수 있었다.
그런 대목도 나오고 6천 비구도 어떤가?
시험에 떨어져서 재수하면서 문수보살을 따라나섰던 비구들이 있잖은가. 6천 비구가 문수보살에게 끌려가다가 용의 법문을 듣기 전에 법문 듣고 해탈하는데 그때 구절이 어떤가?
불리문수사리족하(不離文殊師利足下)하고 문수사리 보살의 족하 발밑을 불리 떠나지 아니하고 시방 일체제불을 다 친견하고 승사공양하고 다 견성오도해 버렸다.
6천 비구에 대해서 그렇게 나온다.
지남도 같은 데는 ‘상왕회처(象王回處)에 낙화홍(落花紅)이라. 문수보살 돌아보는 그 자리에 꽃이 붉게 지더라’ 이렇게 불국선사가 멋지게 시를 지어 놓은 것이 있다.
여기도 마찬가지다. 능히 스스로의 지혜로
심신인가(深信忍可)하야 : 심신인가라. 제발 스스로 자기를 믿어라. 깊이 믿고 분명히 알아서
해료취입(解了趣入)하나니 : 해료취입 이 대목은 입법계품 마지막에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을 만나는 자리에서 치밀하게 해놓는다. 해료취입 이런 것, 이해하고 나아가 들어가니. 근본지다 후덕지다 이런 것을 설명하면서 해놓았다.
시위제삼인(是爲第三印)이요: 이것이 세 번째 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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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는 결정적으로 성불해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우작시념(又作是念)호대 : 또한 이러한 생각을 짓되
아발심심(我發深心)하야 : 내가 깊은 심오한 마음을 내어서
구일체지(求一切智)하며 : 일체지 부처님과 같은 지혜를, 근본 지혜를 구해서
아당성불(我當成佛)하야 : 내 마땅히 성불해서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며 :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할 것이며
일체중생(一切衆生)이 : 일체중생이
유전오취(流轉五趣)하야 : 다섯 길로 윤회를 돌고 돌면서
수무량고(受無量苦)일새 :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 것을
역당령기발보리심(亦當令其發菩提心)하야 : 그들로 하여금 마땅히 보리심을 내게 해서
심신환희(深信歡喜)하고 : 깊이 믿고 기뻐하게 해서
근수정진(勤修精進)하야 : 부지런히 정진하게 해서
견고불퇴(堅固不退)라하나니: 견고해서 물러나지 않도록, 견고불퇴하게 하리라 하니
시위제사인(是爲第四印)이요 : 이것이 네 번째 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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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는 결정적으로 부처님의 지혜는 광대무변함을 아는 것이다.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지여래지(知如來智)가 : 지, 안다. 무엇을? 여래의 지혜, 부처님의 지혜가
무유변제(無有邊際)하야: 가이없음을 알고
불이제한(不以齊限)으로: 제한된 안목, 제한된 마음으로는
측여래지(測如來智)니 :여래지를 측량할 수 없다.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이다. 무능진설불공덕(無能盡說佛功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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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이 : 보살이
증어무량불소(曾於無量佛所)에 : 일찍이 무량한 부처님 처소에서
문여래지(聞如來智)가 : 여래의 지혜가
무유변제고(無有邊際故)로 :무량무변함을 듣고는, 변제가 없음을 듣고는
능불이제한측도(能不以齊限測度)이며 : 그러므로 능히 불이 제한된 마음으로써 측량하지 않으며
일체세간문자소설(一切世間文字所說)은: 일체 세상에 있는 글자와 문자로써 하는 말은
개유제한(皆有齊限)일새: 개유제한이라, 실컷 써봐라. 한문에 화엄경이 담기겠나, 한글에 담기겠나, 영어에 담기겠나. 화엄경은 글로 실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실불능지여래지혜(悉不能知如來智慧)하나니: 여래의 지혜를 알지 못함이니
시위제오인(是爲第五印)이요: 이것이 다섯 번째 인이다.
궁여지책으로 번역도 보고 한문도 보고 하지만 그거는 화엄경이 아니다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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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어아뇩다라삼먁삼보리(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 :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득최승욕(得最勝欲)과 : 득최승욕에. 의욕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결정적인 의욕, 부처님 결과물에 대한, 깨달음에 대해 물러나지 않는 것,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대해서 가장 높은 최승욕과
심심욕(甚深欲)과 : 심심욕과
광욕(廣欲)과 : 광욕과
대욕(大欲)과 : 아주 커다란 대욕과
종종욕(種種欲)과 : 가지가지 의욕과
무능승욕(無能勝欲)과 : 이길 리 없는 의욕과
무상욕(無上欲)과 : 위없는 의욕과
견고욕(堅固欲)과 : 견고한 의욕과
중마외도(衆魔外道)와 : 중마외도와
병기권속(幷其眷屬)이 : 병기권속이
무능괴욕(無能壞欲)과 : 무능괴욕이라. 여러 마구니와 외도와 권속들이 파괴할 수 없는 희망, 의지, 욕망 그것으로써
구일체지불퇴전욕(求一切智不退轉欲)하야 : 온갖 지혜를 구하여 물러가지 않는 의욕을 얻었으며
보살(菩薩)이 : 보살이
주여시등욕(住如是等欲)일새: 이와 같은 등의 의욕에 머물러서 하고자 하는 힘, 아주 강력한 발원욕, 원력을 가지고
어무상보리(於無上菩提)에 : 무상보리 위없는 보리에
필경불퇴(畢竟不退)하나니: 끝까지 물러나지 않나니
시위제육인(是爲第六印)이요 : 이것이 여섯 번째 인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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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는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행보살행(行菩薩行)호대 : 보살행을 행하되
불고신명(不顧身命)하야: 몸과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무능저괴(無能沮壞)니 : 남이 무너뜨리거나 파괴시킬 사람이 없다. 보살마하살이 보살행을 행하되 이 세상에 좀 얍삽한 사람들이 흔들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발심취향일체지고(發心趣向一切智故)며: 발심하여 온갖 지혜로 나아가는 까닭에 그 사람들을 흔들 수가 없고
일체지성(一切智性)이 : 일체 지혜의 성품이
당현전고(常現前故)며 : 항상 앞에 나타나는 까닭으로 신장들이 보호하는데 누가 흔들 수 있겠는가.
득일체불지광명고(得一切佛智光明故)로: 일체 부처님 지혜 광명을 얻는 연고로
종불사리불보리(終不捨離佛菩提)하며 : 마침내 부처님의 깨달음 보리를 불사 버리지 아니하며
종불사리선지식(終不捨離善知識)하나니 : 마침내 선지식을 버리지도 않나니
시위제칠인(是爲第七印)이요: 이것이 일곱 번째 인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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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는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약견선남자선여인(若見善男子善女人)이: 만약에 선남자 선여인이
취대승자(趣大乘者)면: 대승에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좀 큰 발심 있는 사람들 보면
영기증장구불법심(令其增長求佛法心)하며 :그 사람들로 하여금 불법을 구하는 마음을 증장하게 하며
영기안주일체선근(令其安住一切善根)하며: 그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착한 뿌리 선근에 머물게 하며
영기섭취일체지심(令其攝取一切智心)하며: 그들로 하여금 일체 지혜의 마음을 거두어 가지게 하며
영기불퇴무상보리(令其不退無上菩提)하나니 : 그들로 하여금 무상보리에서 물러나지 않게 하나니
시위제팔인(是爲第八印)이요: 이것이 여덟 번째 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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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째는 결정적으로 확실하게 평등하게 모든 사람을 제도하겠다, 이런 뜻이다.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영일체중생(令一切衆生)으로 :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득평등심(得平等心)하야: 평등심을 얻게 해서 일체 중생이 다 평등심을 얻게 해서
권령근수일체지도(勸令勤修一切智道)하며 : 권하여 그들로 하여금 일체 지혜의 길에서 부지런히 닦게 하고
이대비심(以大悲心)으로: 대자 대비한 마음으로써
이위설법(而爲說法)하야: 법을 잘 설해서
영어아뇩다라삼먁삼보리(令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 : 그들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영불퇴전(永不退轉)하나니: 영원히 물러나지 않게 하나니
시위제구인(是爲第九印)이요 : 이것이 아홉 번째 인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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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과 동급이 된다’ 이런 말이 열 번째에 나온다. 결론은 항상 부처님과 동급이다.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여삼세제불(與三世諸佛)로 : 여삼세제불로, 과거 현재 모든 부처님과 더불어서
동일선근(同一善根)일새 : 동일선근이라 요것도 어디에 나왔는가? 시성정각 세주묘엄품 첫 대목에 나왔다.
첫 대목에 비로자나 부처님과 보현보살이 옛날에 한 장소에서 같이 선근을 심었다, 이렇게 나온다.
부단일체제불종성(不斷一切諸佛種性)하고: 부처님의 일체 제불의 모든 종성을 끊지 아니하고
구경득지일체지지(究竟得至一切智智)하나니: 구경에, 필경에, 마침내는 득지일체지지라. 마침내는 온갖 일체지하고 지지는 조금 다르잖는가.
지지는 흔히 종지라고 한다. 일체종지, 후득지라고 한다.
일체지는 살바야라, 근본지라.
쉽게 이야기하자면 밀가루가 있으면 일체지라고 할 수 있다. 칼국수 수제비 빵 이렇게 다양하게 나오는 것은 일체 종지가 되는 것이다. 빵이 됐든 밀가루 됐든 칼국수가 됐든 전부 뭔가? 밀가리다.
밀가리하고 밀가루는 다르지 않는가? 밀가리로 만들면 칼국시, 밀가루로 만들면 칼국수다.
시위제십인(是爲第十印)이니라: 이것이 제 십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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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불자야
시위보살마하살십종인(是爲菩薩摩訶薩十種印)이니: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십종인이니. 이제 인을 쳤다.
아까 청정해서 인을 쳤고 인을 쳤으면 무엇인가? 점점 지혜가 밝아질 것이다.
보살(菩薩)이 : 보살이
이차속성아뇩다라삼먁삼보리(以此速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야: 이것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속성해서
구족여래일체법무상지인(具足如來一切法無上智印)이니라 :구족한다. 여래의 일체법에 무상 지혜의 인을 친다.
우리가 흔히 익숙한 것은 무생법인이다.
그래서 도장을 꽝 찍고 나니까 무엇인가?
인증고로 도장을 찍어서 확정이 된 까닭으로 조철(照徹)이 무애(無碍)라. 비추는 것이 환하다.
배터리 완전히 장전되었고 이제 환하다.
5) 菩薩의 十種智光照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智光照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知定當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智光照와 見一切佛智光照와 見一切衆生死此生彼智光照와 解一切修多羅法門智光照와 依善知識發菩提心하야 集諸善根智光照와 示現一切諸佛智光照와 敎化一切衆生하야 悉令安住如來地智光照와 演說不可思議廣大法門智光照와 善巧了知一切諸佛神通威力智光照와 滿足一切諸波羅蜜智光照가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一切諸佛無上智光照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지혜 광명으로 비춤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결정코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줄 아는 지혜 광명의 비춤이며, 모든 부처님을 보는 지혜 광명 비춤이며, 일체 중생의 여기서 죽어 저기에 남을 보는 지혜 광명의 비춤이니라.
모든 경전의 법문을 아는 지혜 광명 비춤이며, 선지식을 의지하여 보리심을 내어 착한 뿌리를 모으는 지혜 광명의 비춤이며, 일체 모든 부처님을 나타내는 지혜 광명 비춤이며, 일체중생을 교화하여 여래의 지위에 머물게 하는 지혜 광명의 비춤이니라.
불가사의한 넓고 큰 법문을 연설하는 지혜 광명의 비춤이며, 일체 모든 부처님의 신통과 위신력을 잘 아는 지혜 광명의 비춤이며, 일체 모든 바라밀다를 만족케 하는 지혜 광명의 비춤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지혜 광명의 비춤을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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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의 십종지광조(十種智光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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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유십종지광조(有十種智光照)하니: 열 가지 지혜의 광조, 지혜광명으로 비춤이 있으니
하등(何等)이 : 무엇이
위십(爲十)고 : 열 가지냐.
앞에 선정과 지혜를 말미암아 거기서 뻗어 나와 비추고 뚫는 데 있어서 아무 장애가 없는 것이 지광조다.
한 번씩 이렇게 말씀드렸지만, 요런 것은 달마스님이 출가하시기 전에 했던 그 말씀이 여기에 아주 적절한 비유다. ‘지광이 최고다. 신명이 최고다. 법보가 보배 중에서 최고다’ 이렇게 이야기한 내용이다. 달마스님은 어린 사람이 출가하기 전에 그것을 알아버렸다. 그러니까 역시 떡잎부터 알아봤다.
소위지정당성아뇩다라삼먁삼보리지광조(所謂知定當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智光照)와 : 이른바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줄 아는 지혜 광명의 비춤이며
견일체불지광조(見一切佛智光照)와 : 모든 부처님을 보는 지혜 광명 비춤이며
견일체중생사차생피지광조(見一切衆生死此生彼智光照)와 :
일체 중생이 여기서 죽어서 저기서 태어나는 것을 보는 지혜광명의 비춤이며
해일체수다라법문지광조(解一切修多羅法門智光照)와: 일체 수다라 법문을 환하게 아는 지혜 광명을 비춤이며
의선지식발보리심(依善知識發菩提心)하야 : 선지식을 의지해서 보리심을 내고
집제선근지광조(集諸善根智光照)와 : 모든 선근을 내는 지혜 광명 비춤과
시현일체제불지광조(示現一切諸佛智光照)와: 일체 모든 부처님을 다 시현하는 지혜 광명 비춤과
교화일체중생(敎化一切衆生)하야 : 일체 중생을 교화하야
실령안주여래지지광조(悉令安住如來地智光照)와: 여래의 지혜 광명에 머물게 하는 지혜 광명 비춤과
연설불가사의광대법문지광조(演說不可思議廣大法門智光照)와 : 불가사의 광대 법문을 연설하는 지혜 광명 비춤과
선교요지일체제불신통위력지광조(善巧了知一切諸佛神通威力智光照)와 :일체제불의 신통 위력을 선교, 요지하는 지혜 광명 비춤과
만족일체제바라밀지광조(滿足一切諸波羅蜜智光照)가: 일체 모든 바라밀을 만족하는 지혜 광명 비춤이니
시위십(是爲十)이니: 시위 열 가지이니
약제보살(若諸菩薩)이: 모든 보살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여기에 머물면
즉득일체제불무상지광조(則得一切諸佛無上智光照)니라 : 일체제불의 위없는 지혜 광명 비춤을 얻느니라.
바. 菩薩의 十種無等住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無等住하야 一切衆生과聲聞獨覺이悉無與等이니 何等이 爲十고所謂菩薩摩訶薩이雖觀實際나而不取證하나니 以一切願을未成滿故가是爲第一無等住요 菩薩摩訶薩이種等法界一切善根호대 而不於中에 有少執着이是爲第二無等住요 菩薩摩訶薩이修菩薩行호대 知其如化하야 以一切法이悉寂滅故로而於佛法에不生疑惑이是爲第三無等住요 菩薩摩訶薩이雖離世間所有妄想이나 然能作意하야 於不可說劫에行菩薩行하야 滿足大願하고終不中起疲厭之心이是爲第四無等住요 菩薩摩訶薩이於一切法에無所取着하야以一切法이 性寂滅故로而不證涅槃하나니 何以故오一切智道를未成滿故가是爲第五無等住요 菩薩摩訶薩이知一切劫이 皆卽非劫이나 而眞實說一切劫數가是爲第六無等住요 菩薩摩訶薩이知一切法이 悉無所作이니 而不捨作道하고求諸佛法이是爲第七無等住요 菩薩摩訶薩이知三界唯心이며 三世唯心이나 而了知其心의 無量無邊이是爲第八無等住요 菩薩摩訶薩이 爲一衆生하야於不可說劫에行菩薩行하야欲令安住一切智地하나니 如爲一衆生하야 爲一切衆生도悉亦如是호대 而不生疲厭이是爲第九無等住요 菩薩摩訶薩이 雖修行圓滿이나 而不證菩提하나니 何以故오 菩薩이 作如是念호대 我之所作이 本爲衆生이라 是故로 我應久處生死하야 方便利益하야 皆令安住無上佛道가 是爲第十無等住니라 佛子야 是爲菩薩摩訶薩의十種無等住니若諸菩薩이安住其中하면 則得無上大智一切佛法無等住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같을 이 없는 머무름[無等住]이 있어 일체 중생과 성문(聲聞)과 독각(獨覺)이 모두 더불어 같을 이가 없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보살마하살이 비록 실제(實際)를 관찰하나 증득하지 않나니 일체 서원이 아직 만족하지 못한 연고이니라. 이것이 첫째 같을 이 없는 머무름이니라.
보살마하살이 법계와 평등한 모든 착한 뿌리를 심으나 그 가운데 조그만 집착도 없느니라. 이것이 둘째 같을 이 없는 머무름이니라.
보살마하살이 보살의 행을 닦되 그것이 환화(幻化)와 같아서 일체 법이 다 적멸한 것임을 아는 연고로 부처님의 법에 의혹을 내지 않느니라. 이것이 셋째 같을 이 없는 머무름이니라.
보살마하살이 비록 세간에 있는 허망한 생각을 여의었으나 그러나 능히 생각하기를 ‘말할 수 없는 겁에 보살의 행을 행하여 큰 서원을 만족하리라.’라고 하고 마침내 그 중간에도 고달픈 생각을 내지 아니하니라. 이것이 넷째 같을 이 없는 머무름이니라.
보살마하살이 일체 법에 집착함이 없나니 모든 법의 성품이 적멸하므로 열반을 증득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일체 지혜의 길이 아직 만족하지 못한 연고이니라. 이것이 다섯째 같을 이 없는 머무름이니라.
보살마하살이 모든 겁이 모두 겁이 아닌 줄을 알지마는 참으로 모든 겁의 수효를 말하느니라. 이것이 여섯째 같을 이 없는 머무름이니라.
보살마하살이 모든 법에 다 지을 것이 없음을 알지마는 도(道)를 지어 모든 불법(佛法) 구하기를 버리지 않느니라. 이것이 일곱째 같을 이 없는 머무름이니라.
보살마하살이 삼계(三界)가 오직 마음뿐이고 삼세(三世)가 오직 마음뿐임을 알지마는 그 마음이 한량없고 그지없음을 아느니라. 이것이 여덟째 같을 이 없는 머무름이니라.
보살마하살이 한 중생을 위하여 말할 수 없는 겁에 보살의 행을 행하여 일체 지혜의 자리에 머물게 하려고 하나니 한 중생을 위하는 것과 같이 일체 중생을 위하여서도 다 이와 같이 하여 고달픔을 내지 아니하느니라. 이것이 아홉째 같을 이 없는 머무름이니라.
보살마하살이 비록 수행이 원만하였으나 보리를 증득하지 않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보살이 생각하기를, ‘내가 하는 일은 본래 중생을 위함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응당 오래도록 생사에 있으면서 방편으로 이익하게 하여 모두 위없는 부처님의 도에 편안히 머물게 하리라.’라고 하느니라. 이것이 열째 같을 이 없는 머무름이니라.
불자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같을 이 없는 머무름이니, 만일 모든 보살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위없는 큰 지혜의 일체 불법에서 같을 이 없는 머무름을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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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의 십종무등주(十種無等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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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유십종무등주(有十種無等住)하야 : 또 십종 무등주, 조금 전에 비추는 빛이 있다고 했지만, 빛은 결코 중간에 가다가 머무르거나 멈추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다음에 나오는 것이 무등주라고 할 수 있다.
빛은 브레이크가 없다. 번뇌나 브레이크가 있지.
빛은 어느 정도로 브레이크가 없느냐?
가시광선 유위법은 브레이크가 있을 수 있지만, 무위법은 MRI 같은 것을 찍으면 단층촬영하면서 속까지 찍어버린다. 뼈속까지 찍어버린다. 뚫고 나가버린다. 은산철벽도 뚫고 나가는 것이 지혜 광명이다.
우리가 사소한 욕심도 있고, 육체도 있고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병고도 있고 여러 가지 장애가 얼마나 많겠는가. 그러한 모든 것을 뚫어버리는 것이 빛이다.
아까 지혜광조라는 것은, 그런 여러 장애가 아무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도 마찬가지다.
연로하셨고, 병고에 시달리셨지만 그것은 아무 문제가 안 되었기 때문에 부처님을 이야기할 때는 광명이라고 이야기하지 부처님을 고통의 덩어리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부처님도 육신을 가지고 있는데, 다같이 고통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 경전속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잖은가.
사실인데 그런 것을 부각하지 않는 것은 지혜 광명이라는 것은 장애가 아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저런 벽같은 것을 못 뚫으면 빛도 아니다.
치과에 어른 스님을 모시고 가봤는데 치아를 못 찍으면 X레이도 아니다. 바깥의 카메라를 가지고 찍겠는가?
살가죽만 가지고 찍는 것은 빛도 아니다.
사진관에 가면 스포트 라이트 펑 터지는 것 있지 않은가? 아무리 터져 봐라, 속을 못 찍는다. 그래 일체 유위법은 여몽환포영이라.
그러면 어떨 때 그 빛과 이 빛이 다르냐?
빛이 입자가 고우면 뚫고 나간다. 쇳덩어리도 뚫고 나간다.
입자가 곱지 못하면, 가시광선은 왔다가 튕겨서 굴절된다.
우리가 흔히 눈으로 보는 것 빨주노초파남보 가시광선은 그렇다.
그 밖에 영역을 넘어가면 눈에 안 보이는 빛이 있다. 적외선 자외선 하는 것인데 그런 빛이라야 무위법의 빛이다.
육바라밀을 이야기할 때도 기신론이나 화엄경에는 어릴 때 그렇게 해 았다.
‘네가 얘기하는 바라밀 보시 그게 그거 아니다. 법성이 공한 줄 알고 바라밀을 하고, 보시를 하고, 법성이 공한 줄 알고 계율을 지키고’ 이렇게 나온다.
계율 지키는 것도 천수경 같은 데 넘어가면 어떤가.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망심멸양구공(罪亡心滅兩俱空) 그 전에는 뭔가? 이제까지 모든 짓던 죄는 삼업으로 지었다 그런 말을 하지 않는가?
그것은 이치의 공한 것을 확 꿰뚫어 나가는 것이다.
이치가 확 꿰뚫어진 사람이라야 사적으로 변화를 다양하게 할 수 있다.
이치에 막힌 사람은 다양하지 못하다.
음식의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맛있는 것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떡을 해도 꼭 개떡 같은 걸 한다. 떡 만들다가 솜씨가 안 되면 할 수 없이 쭉쭉 주물러서 개떡이라도 만들어야지 어떻게 하겠는가. 아무리 만들어도 개떡밖에 안 된다.
솜씨가 있는 사람은 다보탑도 만들고 석굴암도 만들고 화엄경도 만들고 다 만든다.
솜씨없는 사람은 밥 팔아서 똥 사먹는다는 말도 있다.
*
한 꼭지만 더 하겠다. 무등주.
무등주라고 하는 것은 무등지다.
무등이라고 하는 것은 일반 범부나 잡된 사람이 견줄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동급이 아니라는 말이다. 앞에서 환하게 유전조철(由前照徹)이라, 비추고 사무치는 것이 있는 까닭으로 불편주착(不偏住着)이라. 한쪽에 치우쳐 딱 달라붙어서 이상한 짓을 안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쌍주사리(雙住事理)라. 이수사변이여 사득이융이라. 사리쌍수요, 정혜쌍수라.
지관쌍수 하는 것 그것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것이 무등주다. 일반사람들은 잘 안 된다.
비파사나를 잘하는 사람한테 사마타가 따라온다는 것이다. 사마타를 잘하는 사람은 비파사나가 저절로 따라온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수행할 때는 90프로 사마타 수행을 먼저 하는 것이 맞다. 일단 끊는 것이다. 그러면 비파사나는 저절로 따라온다.
솜씨 좋은 사람은 비파사나를 먼저 해놓으면 좋을지 모르지만 기신론 같은 데서는 사마타 수행 아홉 가지를 딱 잡아놓고 유가사지론에 그 단계를 잡아 놨다.
그다음에 비파사나는 네 가지만 잡아 놓았다.
원효스님께서도 마명스님께서도 사마타 수행을 기신론 수행에서 굉장히 부각한다.
화엄경도 마찬가지다. 화엄경을 보면 ‘사마타 수행이 먼저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도 절에서 수행할 때 보통 사마타 수행을 많이 한다.
초발심자경문에 보면, 흔들지 마라, 눈 꽂히지 마라, 음식 가리지 마라, 소리 지르지 마라, 이런 말들이 있잖은가.
그런 것이 전부 사마타 수행하고 연관이 있는 것이다.
법당 가서도 염불할 때 오직 일념으로 한다. 화두를 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살피는 것보다는 일단 잡념을 잘라내는 것이다. 절을 하는 것도 그렇다. 다 사마타 수행이 우선인 것 같다.
어쨌든 여기는 정혜쌍수다. 열 가지 무등주가 있으니
일체중생(一切衆生)과 : 일체 중생과
성문독각(聲聞獨覺)이 : 성문 독각과
실무여등(悉無與等)이니 : 같을 이가 없으니
하등(何等)이: 무엇이
위십(爲十)고 :열 가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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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보살마하살(所謂菩薩摩訶薩)이 :이른바 보살마하살이
수관실제(雖觀實際)나 :실제를 관찰하나
이불취증(而不取證)하나니 : 그러나 깨달음을 증득하지 아니하니
이일체원(以一切願)을 :일체의 원, 모든 소원이
미성만고(未成滿故)가 : 만족하지 못한 까닭이라
시위제일무등주(是爲第一無等住)요 : 이것이 제일 무등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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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종등법계일체선근(種等法界一切善根)호대: 법계와 동등한 모든 착한 뿌리를 심어놓되, 등법계, 법계가 얼마나 넓은가? 그와 같은 숱한 선근을 심지만
이불어중(而不於中)에: 그러나 그 가운데에
유소집착(有少執着)이 : 티끌만큼도 집착하는 것이 없다.
내가 태산 같은 공덕을 짓는다 하더라도 응무소주이생기심이라.
시위제이무등주(是爲第二無等住)요: 이것이 제 두 번째의 무등주다.
그러니까 중생은 그걸 못 따라한다. 중생은 한 만 원 내놓으면 비는 것은 막 100만 원어치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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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수보살행(修菩薩行)호대: 보살행을 닦는 것이
지기여화(知其如化)하야 : 변화와 같은 줄을, 일체 유위법이 여몽환포영인 줄 아는 것이니, 바라밀행도 전부 다 무엇인가? ‘환과 같은 약으로 환과 같은 병을 치료한다’ 이것이다.
이일체법(以一切法)이 : 일체법이, 모든 법이
실적멸고(悉寂滅故)로 : 다 적멸한 것이므로
이어불법(而於佛法)에 : 부처님 법에
불생의혹(不生疑惑)이 : 의혹을 내지 않는다.
시위제삼무등주(是爲第三無等住)요 : 이것이 제 세 번째 무등주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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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수이세간소유망상(雖離世間所有妄想)이나 : 비록 이세간, 세간은 탐욕이다. 탐진치를 다 떠나 소유망상이나, 세간에 있는 허망한 생각을 여의었으니 이것이 이세간품이다. 세간 소유 망상을 이(離)하는 것, 이것이 이세간품의 공부 배우는 목적이다.
연능작의(然能作意)하야 : 그러나 능히 생각하기를
어불가설겁(於不可說劫)에 : 말할 수 없는 겁에
행보살행(行菩薩行)하야 : 보살행을 행하여
만족대원(滿足大願)하고 : 큰 서원을 만족하리라 하고
종불중기피염지심(終不中起疲厭之心)이: 중간에 고달픈 생각을 내지 아니하니라.
시위제사무등주(是爲第四無等住)요 : 이것이 네 번째 무등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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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어일체법(於一切法)에 : 일체법에
무소취착(無所取着)하야 : 집착하는 바가 없나니
이일체법(以一切法)이 : 일체법이
성적멸고(性寂滅故)로 : 성품이 적멸하므로
이부증열반(而不證涅槃)하나니 : 열반을 증득하지 않느니라.
아까도 말씀드렸다.
표훈스님은 이와 같이 화엄경의 이치를 환하게 아시니까 ‘나는 절대 열반에 들지 않겠다’
입법계품의 비슬지라거사(鞞瑟胝羅居士)는 ‘불반열반제(不般涅槃際)라’ 열반에 들지 않는다.
관세음보살도 열반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지장보살도 열반에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중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이고(何以故)오 : 왜냐하면
일체지도(一切智道)를 :일체지도를
미성만고(未成滿故)가 : 만족하지 못한 까닭이다.
시위제오무등주(是爲第五無等住)요 : 이것이 제5 무등주다. 일체 중생이 아직도 성불하지 못했는데 내가 거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는 말씀이다.
*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지일체겁(知一切劫)이 : 일체겁이
개즉비겁(皆卽非劫)이나 : 겁이 아닌 줄을 알지만
이진실설일체겁수(而眞實說一切劫數)가 :진실로 모든 겁의 수효를 말하느니라
시위제육무등주(是爲第六無等住)요 :이것이 여섯 번째 무등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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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지일체법(知一切法)이 : 일체법이
실무소작(悉無所作)이니 : 모두 지을 것이 없는 줄 알지만
이불사작도(而不捨作道)하고 : 도를 지어
구제불법(求諸佛法)이 : 불법 구하기를 버리지 않는 것이
시위제칠무등주(是爲第七無等住)요 : 제 7무등주다.
안 올 줄 알지만 앉아서 기다린다. 그러니까 조상 제사를 차려 놓는 것이다. 오는 사람을 누가 못 기다리는가?
안 오는 사람을 기다려야 정성스러운 것이다.
중생이 성불 안 할 사람들을 성불시키려 하니까 위대한 것이다. 성불할 사람들은 가만 놔둬도 지혼자 성불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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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지삼계유심(知三界唯心)이며 : 지삼계유심이며
드디어 화엄경에 나왔다.
삼계유심, 빨간 줄을 긋겠다.
구체적으로 나와 버렸다.
욕계 색계 무색계는 오직 마음이다.
응관법계성하라. 일체유심조다.
삼세유심(三世唯心)이나 : 삼세유심이나, 오직 마음뿐인 줄 알지만
이요지기심(而了知其心)의 : 그러나 요지 그 마음이
무량무변(無量無邊)이 : 무량무변하고, 한량없고 그지없음을 안다.
이 말씀은 무슨 말씀인가 하면 동일법성이라서 다 부처인 줄 알지만, 중생이 업장에 휘말려서 마음을 못 되게도 쓰고, 빼딱하게도 쓰고, 지저분하기도 쓰고, 다양하게 있다는 것이다.
기신론은 이렇게 나온다.
‘동일법성이기는 하다. 그러나 업식에, 업장에 휘말린 바가 업식의 차별이 무량무변하다.’
업식이 덮힌 바가 두덮고 얇음 그 경중 업장에 찌달린 바, 사람이 무거운 업장과 가벼운 업장에 휘달리는 바가 천차만별 무량무변하다. 항하사 모래만큼 사람 중생이 그 분별이 다르다.
여기 대중도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중생이 천명이면 천 명 다 다르고 만 명이면 다 만 명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놨다.
시위제팔무등주(是爲第八無等住)요: 이것이 여덟 번째 무등주라.
*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위일중생(爲一衆生)하야 : 한 중생을 위해서
어불가설겁(於不可說劫)에 :불가설겁에
행보살행(行菩薩行)하야 : 보살행을 행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한 중생이 보살행을 하나 하는 것도 위대한데 한 중생을 위해서, 그만큼 하는데
욕령안주일체지지(欲令安住一切智地)하나니: 그래서 온갖 지혜의 자리에 머물게 하려 하며
여위일중생(如爲一衆生)하야 : 한 중생을 위하는 것과 같이 또
위일체중생(爲一切衆生)도 : 모든 중생을 위하여, ‘아이고 당신이 하셔라. 우리는 도저히 못 한다’
실역여시(悉亦如是)호대 : 이와 같이 하여
이불생피염(而不生疲厭)이 : 그래도 고달픈 마음을 내지 아니하니
시위제구무등주(是爲第九無等住)요 : 이것이 아홉 번째 무등주다.
*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수수행원만(雖修行圓滿)이나 : 비록 원만함을 수행하지만
이부증보리(而不證菩提)하나니 :그러나 보리를 증득하지 않느니라.
하이고(何以故)오 :왜냐하면
보살(菩薩)이 :보살이
작여시념(作如是念)호대 : 이와 같은 생각을 짓되
아지소작(我之所作)이 : 내가 짓는 바가
본위중생(本爲衆生)이라 : 본래 중생을 위하는 것이지
시고(是故)로 : 이러한 까닭으로, ‘중생만 잘 되면 됐지 내 입에 들어가는 거 아무것도 없어도 된다’ 이 말이다.
아응구처생사(我應久處生死)하야 : 내가 오래도록 생멸법에, 생사에 머물러 있으면서
방편이익(方便利益)하야 : 방편으로 중생을 이익되게 해서
개령안주무상불도(皆令安住無上佛道)가 : 그 모든 중생들을 안주하게 한다. 어디에 안주하게 하는가? 무상 불도에 안주하게 하느니라.
이것이 나의 소명이고 사명이라는 것이다.
중생 성불이 내 사명이다, 이 말이다. 내 성불이 아니고
시위제십무등주(是爲第十無等住)니라 : 시위제십무등주니라.
*
불자(佛子)야 :불자야
시위보살마하살(是爲菩薩摩訶薩)의 :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십종무등주(十種無等住)니 :열 가지의 무등주이니
약제보살(若諸菩薩)이 :만약에 제 보살이
안주기중(安住其中)하면 : 거기에 안주한다면
즉득무상대지일체불법무등주(則得無上大智一切佛法無等住)니라 : 즉득해서 그 자리에서 무상대지 일체 불법 무등주에 같을 이 없는 머무름을 얻느니라.
이래서 오늘 54권까지를 끝냈다.
근념하셨다.
(죽비소리)
하강례
지금도 안 늦었다
오늘은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제 56권 81페이지 ‘등법계무량회향을 답하다’ 일련번호 96번 ‘보살은 열 가지 두려움 없음이 있다’ 무외(無畏), 당당함 이런 뜻이죠.
열 가지 두려움 없음이 있다, 당당함이 있다.
세상에 참 어릴 때는 아무 철도 없고 눈에 보이는 것도 없고 귀에 들리는 것도 없고 그저 자기 앞만 보고 사는 입장이라서 아무것도 몰라서 두려워할 줄도 모르고 그랬는데 하루하루 살다 보니까 눈에 띄는 게 있고, 비교가 되고, 여러 가지로 살피게 되고, 알게 되고, 그러면 전부 두려워할 거리죠.
두려워할 거리, 전부 모든 사람들이 나보다 다 낫고, 모든 분야에서 나보다 다 뛰어나고, 모든 일들을 다 나보다 잘하고, 공부면 공부, 무슨 노동이면 노동, 기술이면 기술, 일체가 다 나보다 잘한다 하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저절로 들어와요. 그러면 그 당당함은 어디 가 버리고 두려움만 있게 되죠.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그래도 부처님 훌륭한 가르침을 만났으니까 열심히 공부해서 부처님 법을 가지고 뭔가 당당하게 살려고 해야겠죠.
지금도 안 늦었습니다.
부처님 법을 공부하면 누구든지 당당하게 살게 되어 있습니다.
-無比스님, 2024년 10월 25일, 유튜브 염화실TV 중에서-
큰스님의 생신 잔치가 열리기 며칠 전부터 범어사 화엄전은 국화분과 난화분과 꽃바구니들로 가득 찼다. 생신날에는 스님들과 전국에서 오신 보살님들 거사님들이 꽃보다 더 많으셨다.
케잌 촛불을 여러 번 불고 끄고 어느 시간에 온 손님이라도 큰스님과 함께 다같이 생일 노래를 불렀다.
범어사 방장스님과 주지스님도 오셔서 큰스님께 삼배를 올리셨다. 큰스님은 한 분 한 분 화엄전에 들어올 때마다 마치 처음 등장하는 주인공을 소개하듯이 주변에 소개하시고 반가와 하셨다. 존경하는 스승께 이름을 불리우고, 그간 잘 지내왔다고 칭찬도 들으면서 모두가 활짝 웃으며 두 손을 모았다.
“올해는 특별히 마당에 천막을 쳤어요. 햇볕에 탈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먹고 즐기다 가요.”
오는 사람마다 큰스님께서 권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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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9일에는 범어사 선문화관 대강당에서 모처럼 큰스님의 특별법회가 예정되어 있고, 23일 토요일에는 화엄경을 제외한 큰스님의 저서들이 전집이 되어 나오게 되어 범어사 보제루에서 봉정식도 열린다. 그 전집 표지 디자인에 용학스님이 살짝 관여를 하셨는데 <화중연화(火中蓮花)>가 표지의 테마라고 하셨다.
*
무엇보다 큰스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은 매일 화엄경 유튜브 법문 속에 실시간 배달된다.
10월에 주신 선물을 간단히 메모해 보았다.
10월에 들은 법문 -無比스님-
·이세간품은 90%가 중도에 관한 이야기다. 그 결론은 보살행이다.
·이세간품은 이백 가지 질문에 이천 가지 답을 하는데, 이백 가지 질문을 한꺼번에 쏟아내었다.
·선지식은 안내인이고 가이드다.
·부처님께 의지해야 선행이 나온다.
·일체법은 일체 가르침이다.
·대원은 꿈과 원력이다.
·견문이 넓어지면 어디를 가도 쓸모 있는 사람이 된다.
·할 일이 많은 것은 복이 많은 것이다.
·사람들이 다 부처로 보인다.
·화엄경에는 1만 번이 넘게 ‘일체’라는 말이 나온다.
·불교는 깨달음을 위해서 한다.
·생각이 우리 인생을 좌지우지한다.
·생각하는 대로 돌아간다. 그러니까 한 생각을 잘 내야 한다.
·일체구법행이다.
·누구에게 사기를 당해도 깨달은 바, 느낀 바, 내가 철드는 바가 있다.
·전부 닦아 배운다.
·일일이 닦아 배운다.
·내가 고관절을 다친 이후로 틱낫한 스님이 기억된다. 일거수 일투족에 마음이 떠나있지 않아야 한다.
·화엄(華嚴)의 꽃은 보살행이고 다른 사람에게 보탬이 되는 행이다.
·죽을 때까지 죽을 힘을 다해서 수행하자.
·보리심은 불심이다.
·종교성이 발현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들어간다는 것은 혼연일체가 된다는 뜻이다.
·일체가 보살행을 할 거리다.
‘스스로 끝까지 성냄과 다툼을 여의고, 또 다른 이도 성냄과 다툼을 여의게 하여 마음이 편안하여지느니라’
·내 인생을 어떻게 향상시킬까?
·서원과 목표가 있는 인생, 자기 인생을 장엄할 줄 알아야 한다.
·감동을 받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명훈가피력, 내가 조금씩 개조된다.
·불법 공부는 내 인격을 개조시키고 내 사람을 개조하려는 목적이다.
·화엄경을 공부하는 일은 자기 자신을 장엄하는 일이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된다.
·‘장대교망(張大敎網) 녹인천지어(漉人天之魚), 부처님의 높고 큰 가르침을 널리 펼쳐서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을 다 교화하리라’ 이것이 불교의 깃발이다.
커다란 빛, 펄럭이는 깃발
낱낱이 빛나는 꽃, 이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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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부처님 법을 공부하면 누구든지 당당하게 살게 되어 있습니다...고맙습니다 _()()()_
🙏🏻🙏🏻🙏🏻
생각하는 대로 돌아간다.그러므로 한 생각을 잘 내야 한다._()()()_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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