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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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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이야기 스크랩 김정일의 아름다운 부인들
행복주주 추천 0 조회 84 11.12.25 02:0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김정일의 여인들..4명중 2명 사망>



김일성 주석 승낙받은 공식부인 김영숙뿐

첫 동거녀는 경남 창녕 출신
성혜림

사망한 고영희씨에 대한 애정 각별

(서울=연합뉴스) 최선영 장용훈 기자 =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동거를 해 부인으로서의 대우를 받은 여인은 김 옥씨를 포함해 고(故) 성혜림, 김영숙, 고(故) 고영희씨 등 4명이다.

이들 중 김 위원장과 처음으로 동거를 한 여인은 영화배우 출신의 성혜림씨.

경남 창녕군에서 출생한 성씨는 월북 작가 리기영씨의 장남 리 평씨와 결혼해 딸을 낳았으나 1960년대 말 문예부문을 지도하던
김정일 위원장의 눈에 들어 전 남편과 이혼하고 김 위원장과 동거했다.

성씨는 당뇨병 등 지병으로 러시아 등 해외에서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왔으며 2002년 5월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

성씨는 김 위원장 사이에 장남 정남(35)씨를 두고 있다. 정남씨는 2001년 5월 위조여권을 소지, 부인 및 아들과 함께 일본에 불법 입국하려다 추방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대북소식통은 "김 위원장의 첫 번째 동거녀가 홍일천씨라는 소문도 있지만 실제 처음으로 동거했던 여성은 성혜림씨"라며 "김 위원장과 홍일천씨는 전혀 무관한 사이인데 왜 그런 소문이 났는 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최근 김 위원장의 여자로 항간에 나돌고 있는 손성필 전 러시아주재 북한 대사의 동생 손희림이라는 여성도 애당초 존재하지 않으며 성혜림씨의 이름이 와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이 두번째로 동거한 여성은 김영숙(59)씨로, 사실상 고(故) 김일성 주석의 정식 허락을 받아 결혼식을 올린 공식 부인이다.

함경북도 인민보안국 타자수를 거쳐 노동당 중앙위원회 간부부에서 문서원으로 일하다가 김 위원장의 눈에 들어 결혼했다.

그러나 김영숙씨는 슬하에 장녀 설송(33), 차녀 춘송(31) 등 2녀만 두면서 김 위원장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세 번째 동거녀는 2004년 유선암으로 세상을 떠난 고영희씨로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지만 사망 전까지 사실상 북한의 퍼스트 레이디였다.

고씨는 재일교포 출신으로 평양
만수대예술단 무용수로 활동했던 1970년대 중반 김 위원장과 동거를 시작한 이후 사망 전까지 줄곧 김 위원장과 함께 살았으며 고씨의 부친 고태문씨는 제주도 출신으로 일본에서 유명한 유도선수였다.

김 위원장의 요리사를 지낸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씨가 자서전 '김정일의 요리인'에서 "고영희를 알고 난 뒤부터 김정일의 여성 편력이 줄었다"고 말할 정도로 고씨에 대한 김 위원장의 애정은 각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씨는 김 위원장과 사이에 아들 정철(25)과 정운(22), 딸 여정(19) 등 2남 1녀를 뒀다.

정철은 '성 호르몬 과다분비 장애'를 앓고 있으며 최근 팝가수
에릭 클랩턴의 공연을 보기 위해 독일을 여행하는 중 일본 언론에 공개되기도 했다.

정운은 외모나 성격에서 김 위원장을 빼닮아 한때 김 위원장이 가장 마음에 들어했고 김 위원장의 군부대 시찰 등에 자주 동행했지만 고영희씨 사망 후 김 위원장에게서 멀어졌다는 후문이다.

고씨는 생전에 자신의 아들 중 한 명을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 선정되도록 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끝내 실현시키지 못했다.

김정일, '여비서'를 네번째 부인으로 맞아

김정일의 새 부인 김옥씨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2000년 10월 김 위원장의 특사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북한대표단 일원으로 동행한 김옥씨는 미 국방부에서 윌리엄 코언 국방장관과의 면담에도 배석했다. 김옥씨가 머리를 조금 숙이고 앉아있다. 대북소식통들은 "당시 김옥씨가 먼 여행으로 피로한 탓인지 안색이 안좋고 몹시 핼쑥해 보였다"며 "실제는  훨씬  귀여운 모습"이라고 전했다.//북한/  -미 국방부홈페이지 자료사진- 2006.7.23 (서울=연합뉴스)
부인 이름은 김 옥..사실상 페스트 레이디
평양음대 피아노 졸업..고영희 사망 직후 동거 들어가

    (서울=연합뉴스) 최선영 장용훈 기자 =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4년  부인 고영희씨가 사망한 이후 비서출신의 김 옥(42)씨를 새 부인으로 맞아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복수의 대북소식통은 23일 "김정일 위원장은 2년 전 고영희씨가 사망하자  비서업무를 담당하던 기술서기 김 옥이라는 여성과 동거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사실상 북한의 퍼스트 레이디"라고 전했다.

    김 옥씨와 김정일 위원장 사이에 자녀가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그의 등장이 향후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김 옥씨는 1964년생으로 평양음악무용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으며  1980년대 초부터 고영희씨가 사망할 때까지 김정일 위원장의 기술서기로 활동했다.

    기술서기란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이상 간부들의 건강을  보살피는  직책으로 간부 1명당 1명이 배치되고 주로 간호사들이 선발되지만, 김  위원장에게는  다수의 기술서기가 있고 이들은 일반 간부의 기술서기와 달리 우리의 비서에 해당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기술서기 중 김 위원장의 신임이 가장 두터웠던 김 옥씨는 김 위원장의 군부대 및 산업시설 시찰 등 국내 현지지도 수행은 물론 외빈 접견에도 참석했으며 2000년 10월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김정일 위원장의 특사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수행원 자격으로 동행했다.

    당시 김 옥씨는 김선옥이라는 가명과 국방위원회 과장 직함으로 조 제1부위원장을 동행해 월리엄 코언 미 국방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 등과 면담에도 배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옥씨는 지난 1월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에도 국방위 과장 신분으로 동행했지만 사실상 김 위원장의 부인 자격으로 상당한 대우를 받았으며  후진타오  중국 주석과도 인사를 나눴다는 후문이다.

    13년 간 김정일 위원장의 전속요리사로 있었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藤本健二)씨는 자서전에서 2001년 4월 중순 김 위원장이 일본에 다녀올 수 있겠느냐고 자신에게 묻길래 갈 수 있다고 대답하자 "김창선(서기실 부부장)에게 항공권을 준비하라고 지시하고, 서기 김 옥씨에게는 내게 1만5천달러를 내주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대북소식통들은 "김 옥씨가 성혜림씨나 고영희씨처럼 미인이라기 보다는 귀여운 스타일"이라며 "아주 똑똑하고 영리한 여성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 2월 일본 주간지에 김정일 위원장의 부인이라고 소개됐던 여성의  사진은 김 옥씨가 아닌 중국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의 새 부인 등장과 후계구도>

김정일의 새 부인 김옥씨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이 2000년 10월 김 위원장의 특사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북한대표단 일원으로 동행한 김옥(오른쪽 맨끝)씨는 미 국방부에서 윌리엄 코언 국방장관(왼쪽에서 두번째)과의 면담에도 배석했다. 맨 끝자리에 머리를 조금 숙이고 앉아있는 여성이 김옥씨다. 대북소식통들은 "당시 김옥씨가 먼 여행으로 피로한 탓인지 안색이 안좋고 몹시 핼쑥해 보였다"며 "실제는  훨씬  귀여운 모습"이라고 전했다.//북한/  -미 국방부홈페이지 자료사진- 2006.7.23 (서울=연합뉴스)
전 부인 아들 후계자 낙점 바라지 않을 듯
후계 논의 금지령 김씨 등장과 무관치 않다는 관측
김정일 신임 두터운 황병서 부부장 김 옥 최측근

    (서울=연합뉴스) 최선영 장용훈 기자 =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동거에 들어간 김 옥(42)씨가 사실상 북한의 퍼스트 레이디로 등장함에 따라 향후 김 위원장의 후계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김 옥씨는 20대부터 오랫동안 김 위원장의 곁에서 업무를 보좌해 일찍부터 정치와 권력에 눈을 뜬 만큼 어떤 식으로든 후계구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후계자로 거론되고 있는 김정일 위원장의 아들은 고(故) 성혜림씨가 낳은 장남인 정남(35), 고(故) 고영희씨가 낳은 차남 정철(25)과 삼남 정운(22) 등이다.

    김 위원장과 김 옥씨 사이에 자녀가 있는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자녀가  없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가운데 김 위원장과 사이에 설사 아들이 있다고 해도 나이가 너무 어려 당장 후계자로 낙점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직 40대 초반에 불과한 김 옥씨가 전 부인의 아들 중 한 명이 일찌감치 후계자가 되는 것을 달가워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 부인의 아들이 후계자로 선정될 경우 당장 권력의 중심이  후계자에게  쏠려 퍼스트 레이디로서의 지위가 흔들릴 것은 뻔하기 때문에 김 옥씨는  김  위원장으로 하여금 후계자 선정을 최대한 늦추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북한 내부적으로 후계문제 논의가 금기시되고 있는 것도 김 옥씨의 등장과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은 작년 말 김기남 노동당 비서, 박재경 군 대장 등 당.군 측근들에게 3대 세습이 국제사회에서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며 후계논의 금지령을 내렸다.

    이 자리에 배석했던 측근의 대부분은 고영희씨와 가까워 고씨의 아들인 정철과 정운 중 한 명을 후계자로 만들려고 했던 인물들이지만 김 위원장의 지시 이후 후계문제에  함구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 같은 후계논의 금지 배경에는 김 위원장이 후계자 선정에 따른 권력의  레임덕 현상을 우려하는데다 김 옥씨의 입김도 적지 않게 작용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복수의 대북소식통은 "김정일 위원장의 전 부인인 고영희씨가 사망하고 김 옥씨가 새 부인이 되면서 북한 권력내부에서는 후계문제가 사그라든 것으로 안다"며 "김씨의 등장으로 후계논란이 사라졌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측근 중 김 옥씨의 신임이 가장 큰 인물은 황병서 노동당 조직지도부(군사담당) 부부장.

    황 부부장이 작년 5월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김 위원장의  군부대  및 산업시찰 등 각 분야 현지지도에 거의 빠짐없이 동행하고 있는 것도 김 옥씨의 영향력과 연관시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가정보원 자료에 따르면 황 부부장은 올 상반기 김정일 위원장의 공개활동(71회)을 가장 많이 수행한 인물로, 단독 수행 20회를 포함해 총 48회 김 위원장을  수행했다.

    김 옥씨는 2년간의 업무정지 처벌 끝에 작년 말 복귀한 장성택 노동당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과도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북소식통은 "김 옥씨는 워낙 처세에 능해 그동안은 장성택  제1부부장  등 김 위원장의 측근들과 가까웠지만 이제는 자신의 권력기반을 위해 2인자인 장 제1부부장을 견제하는 입장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金正日和4位漂亮妻子=김정일과 네명의 아름다운 아내


위 제목으로 중국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들 이다.



김정일의 첫부인은 홍일천(洪一꼭두서니 천)이라고 한다.
김일성대학 러시아학부를 나온 혁명가 유자녀라고 알려져 있으며
1966년에 혜경이라는 딸을 하나 낳았고 김정일이 성혜림과 가까워지면서 이혼을 하였다.

1980년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어
정무원 보통교육부 부부장(문교부 차관)을 거쳐서 지금은 김형직 사범대학 학장이다.




BR>배우 성혜림은 김정일과 정식 결혼은 하지 않았으나 부인으로 대우 받으며 살았다.
그녀는 김정일보다 6살이나 많았고 또한 李平과 결혼 해 자식도 있는 여성이었으나
69년 부터 김정일과 정식으로 동거하고 남편 이평과는 이혼 하였다.
당시에 성혜림은 33세이고 김정일은 28살 이었다.
1971년에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을 출산하였으나 김정일은 아들의 출산을 숨겨왔다고 한다.

이에 대한 갈등으로 성혜림은 모스크바와 평양을 오가며 생활하였고
1996년에는 망명을 시도 하였으며 그 이후에 거처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고영희는 김정일의 공식 부인으로 인정받으며 현재 김정일과 같이 살고 있는 여자다.
김정일과 사이에 김정철(22), 김정운(20), 김일순(14) 등 2남1녀를 낳았다.

고영희는 강원도 원산, 황해도 신천, 평안북도 창성, 양강 도 삼지연,
함경남도 함흥 등지에 관저를 갖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1953년 일본에서 태어나 60년대 전반 가족 전원이 북한으로 귀국한
재일 조선인으로 72년에 만수대 예술단에 무용수였다.



 

 

 

그러나 고영희 보다 먼저 결혼한 여자는 김영숙으로 알려져 있다.

김영숙은 혁명유공자의 유자녀로 타이피스트였다고 하는데 그녀의 사진은 올라있지 않다.
성혜림과 생활하던 당시인 1973년에 첫딸 설송을 낳았고 아래로 1남 1녀를 더 낳았다고 한다.



 

어린시절, 부모(김일성과 김정숙)와 함께






중학생 시절


 

고등학생 시절의 동창생들과 김정일




청년시절의 김정일

 


북한노래 '휘파람'을 부른 가수 겸 인민배우 전혜영.


김정일의 둘째아들 정철과 셋째 정운을 낳은 고영희. 만수대예술단 무용배우 출신이다.

 


일본 주간지 <주간문춘>이 2002년 8월 김정일의 러시아 방문 당시 모습을 게재했다.

이 주간지는 "김 위원장과 동행한 '기쁨조'를 하바로프스크역에서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며

"오른쪽 여인은 작년에도 동행했던 여인으로 전형적인 기쁨조 스타일이지만,

왼쪽 사진의 숏커트 스타일은 과거에 볼 수 없었던 모습"이라고 소개했다.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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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正日 和4位 漂亮妻子

(김정일과 네명의 아름다운 아내)
중국 사이트에 오른 기사 제목과 사진들이다.



첫 부인 홍일천



김정일의 첫부인은 홍일천(洪一꼭두서니 천) 이라고 한다.
김일성대학 러시아학부를 나온 혁명가 유자녀라고 알려져 있으며 1966년에 혜경이라는 딸을 하나 낳았고 김정일이 성혜림과 가까워지면서 이혼을 하였다.

1980년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어

정무원 보통교육부 부부장(문교부 차관) 을 거쳐서 지금은 김형직 사범대학 학장이다.


 
홍일천(김형직 사범대) 학장

 

 



둘째 부인 성혜림



 
공훈여배우 성혜림


그녀는 김정일보다 6살이나 많았고 또한 李平과

결혼해 자식도 있는 여성이었으나 69년 부터 김정일과 정식으로 동거하고 남편 이평과는 이혼 하였다.
당시에 성혜림은 33세이고 김정일은 28살 이었다.

1971년에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을 출산하였으나 김정일은 아들의 출생을 숨겨왔다고 한다.

이에 대한 갈등으로 성혜림은 모스크바와 평양을

오가며 생활하였고, 1996년에는 망명을 시도 하였으며 그 이후의 거처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배우 성혜림은 김정일과 정식 결혼은 하지 않았으나 부인으로 대우 받으며 살았다.




셋째 부인 고영희


 
재일 조선인 만수대 예술단 고영희


고영희는 김정일의 공식 부인으로 인정받으며

현재 김정일과 같이 살고 있는 여자다.
김정일과 사이에 김정철(22), 김정운(20), 김일순(14) 등 2남1녀를 낳았다.

고영희는 강원도 원산, 황해도 신천, 평안북도 창성, 양강도 삼지연, 함경남도 함흥 등지에 관저를 갖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1953년 일본에서 태어나 60년대 전반 가족 전원이 북한으로 귀국한 재일 조선인으로 72년에

만수대 예술단에 무용수였다.





그러나 고영희 보다 먼저 결혼한 여자는
김영숙으로 알려져 있다.

김영숙은 혁명유공자의 유자녀로 타이피스트였다고 하는데 그녀의 사진은 올라있지 않다.
성혜림과 생활하던 1973년에 첫딸 설송을 낳았고
아래로 1남 1녀를 낳았다고 한다.

 네째부인 김옥



 



4번째 부인으로 추정되는
72년에 만수대 예술단의
고영희 비서출신 김옥


기타 사진


 
어린시절, 부모(김일성과 김정숙)와 함께



 
중학생 시절 김정일


 
고등학생 시절의 동창생들과 김정일


 
청년시절의 김정일


※ 이런 난잡한 놈 김정일을 찬양하는 정신나간 한국 좌파들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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