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서 일어나는 현상들
임병식 rbs1144@daum.net
수필을 30년 넘게 쓰다 보니 ‘수필은 어느 정도까지 진정성을 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비루함과 천박함, 고상함을 가장한 저급한 생각들을 함께 가지고 살아간다. 볼품없는 알몸을 옷가지 하나로 가렸다는 이유로 그 백을 믿고서 자유로이 행동한다.
그러나 그 실체는 얼마나 가식적이고 허구적인가. 마음속으론 어느 특정인이 극도로 싫어서 미워하면서도 겉으로는 표정관리를 하고 질투심을 느끼면서도 안 그런 척 한다.
엊그제는 지인이 자식자랑 재산자랑을 과하게 늘어놓는 바람에 심히 거북했다. 특별히 두 자식이 부자로 살아서 부부합산 연봉이 수억대가 되며 판공비만 해도 어지간한 봉급쟁이의 급여수준이 된다는 것이다. 재산 과시는 다음 부분에서 두드러졌다.
수도권에 집을 마련할까 하고 자녀들에게 문의하니 수억원으로는 어림도 없다며 얼마 안있으면 재개발되는 아파트에 들어갈 예정이니 나중 그집에서 살라고 했다며 자랑이 귀에 걸렸다.
이것이야말로 없는 사람 기죽이는 것도 아니고, 자랑이 하늘을 찌르니 들어주기가 매우 불편했다. 참는데 임계점에 다다랐으나 그래도 나는 제법 인격 높은 사람처럼 꾹 참고서 ‘잘 됐네, 자네가 부럽네’하면서 애써 표정관리를 했다. 그래놓고 돌아서니 나 또한 남의 비위나 맞추며 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느끼는 것은, 내가 이미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변할 것이 없겠다 싶다. 주변이 가식투성이고 그것들이 또한 일상으로 접하는 현상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 점심을 먹기 위해 나선 일만 해도 그랬다. 늘 3인이 모여서 돌아가며 밥을 사는데 당초에는 도회지 서쪽에 있는 깨장어구이 집으로 가자고 했다가 다른 이가 그보다는 매운탕 집을 추천하는 바람에 찾아가니 문이 닫혀있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는 관광객 상대로 밥장사를 하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의외로 대접을 잘 받았다. 일부러 먼 곳에서 찾아왔다고 하니 주인은 정색을 하며 먹고 있는 반찬을 둘러보면서 추가하여 넉넉하게 가져가 주는 것이 아닌가. 옷차림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나섯더니 웬 노신사로 여겼는지 모른다. 그러나 개뿔, 하루에 몇 만원 쓰는데 신경을 쓰는 사는 백수임을 어찌 알까. 눈치를 챘다면 그토록 융숭하게 대접해 주지는 않았을 터이다. 뭐가 좀 있는 것으로 착각한 것임이 분명하다.
이날 나는 갑자기 어떤 생각이 일어나 가는 코스를 내가 정하게 되었다. 평소 같으면 되도록 직선코스를 택하는데 외곽도로로 안내했다. 도립수산생태관을 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그날따라 휴관 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그 앞에서 먼저 온 어떤 두 남녀가 차에서 내리더니 거칠것 없이 과도하게 스킨쉽을 하는 것이었다. 신혼같지도 않고, 부부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사귀는 애인 사이인가. 그걸 보면서 이들은 또 얼마나 과장되게 자기를 포장하며 이곳에 온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와서는 책장에서 우연히 책 한 권을 빼들었다. 아무 페이지나 펼쳤다. 수필 작품인데 처음부터 흥미진진했다. 본래 수필은 거짓으로 쓰는 글은 아니지만 글 내용으로 보아 가식은 없어보였다. 누가 과감하게 자기의 허물이 되는 이야기를 토설할수 있겠는가. 내용은 필자가 젊은 시절 사귀던 여성에게 바람을 맞고 비통한 나머지 무작정 길을 나선 이야기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필자는 눈 내리는 청량리역에서 밤기차를 타고 어느 산중의 간이역에 내렸다고 한다. 짊어진 괴나리봇짐에는 보던 책 몇 권이 들어있을 뿐이었다. 끔찍이 사랑한 여인을 친구에게 빼앗긴 마음은 생각할수록 분하고 억울했단다.
그는 눈 속을 헤치며 걷다가 그만 추위에 얼어붙어서 혼절하고 말았다. 깨어나 보니 화전민의 외딴집 방이었다. 밤늦게 귀가하던 화전민이 용케 구출을 해준 것이었다.
그 집에서 며칠간 신세를 졌다. 어느 달 밝은 늦은 밤이었다. 그 집 화전민 딸이 밤참을 만들어 가지고 왔다. 스스르 지창이 열리면서 내미는 소쿠리를 보는 순간, 잽싸게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꼼짝 못하고 잡혀온 닭처럼 바들바들 떠는 그녀를 침구 속으로 집어넣어 버렸다.
이튿날 그는 주인에게 신세진 것을 감사드리고 조심스럽게 삽짝으로 발을 옮길 무렵이었다. 갑자기 등 뒤에서 “아따따” 외마디를 내며 큰 애기가 고꾸라졌다. 백치의 아가씨였다. 이런 진솔함이라니. 이날 나는 이 글에서 자기를 벗은 참모습을 보았다. 밖에 나가면 두툼하게 쳐진 자랑과 과시로 무장된 사람과 지기 또한 애써 치부를 감주고 사는 가운데 이렇게 자기를 홀라당 벗은 글을 대하다니.
이 대목에서 나는 ‘수필쓰기의 사실성’을 생각했다. 어디까지 사실을 표현해 낼 것인가. 일상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연정, 흠, 탐욕, 정분을 얼마나 정제시켜 나타날 것인가. 그것을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여기서 보여주는 이 작가의 솔직성은 놀라운 것이 아닌가 한다. 대단한 용기가 아닌가 한다. 꼭 그리해야만 된다고 주장을 하는 것바가 아니라 적어도 작가라면 솔직성, 마음가짐은 지녀야 하지 않나 생각을 해본다.
근간에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본다. 지인은 자기를 과시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고, 식당 주인은 우리를 대한단 손님으로 여겨서 정성껏 대접했다. 중년의 두 남녀는 아무래도 과해보이는 행동으로 애정을 과시했다. 보기에 진의는 아닌것으로 느껴졌다.
그렇지만 책으로 읽은 글에서는 온전히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생각하면 그런 것들은 다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마주한 것이지만 아무래도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진심들 대할 때가 아닌가 한다. (2024)
첫댓글 자랑할 게 많은 사람이 자랑을 참기가 꽤 어렵겠다 싶습니다 오죽하면 팔불출이라는 말이 있겠어요 돈 자랑이 그 중 천하지 않을까요 입으로 자랑하지 말고 지갑을 열어 인심을 쓰면 좋을 텐데요. 돈은 수단일 뿐 인생의 목적이 되면 천박해지는데 깨닫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우연은 자기 의지의 수행과정 중에 생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까닭없는 일이란 없다는 생각이죠 무언가 하다보니 그로 인해 그러저런 사건도 생기게 된 거라고 봅니다
선생님께서 바깥바람으로 심기일전하고 계신 듯하여 제 마음도 가벼워져가는 것 같습니다
우연으로 생각되는 일들이 따지고 보면 그런 일정을 지내도록 짜여진 스케줄 같습니다.
그런생각이 드는군요.
그런 중에 어느 수필의 충격적인 장면을 대하면서 수필은 어디까지 노출시키고 보여줘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타인의 눈을 크게 의식할 건 아니지 싶습니다 오롯이 작가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노출빈도는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도덕적인 기준에 꿰맞추어 도식화할 수는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連日 잘 지내셨군요. 사모님이 永眠하신 후 孤寂하실 텐데 많이 활동하시니 보기가 참 좋습니다.
자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면 스트레스를 받고 괜히 自愧感 마저 들어 저는 그런 자가 나타 나는 모임은 謝絶해 버립니다.
인생 老後에 사서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안해서 말입니다. 즐겁게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作品을 連作하시는 모습이 아름다운 꽃 동산 같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祈願합니다. ^^♥
고맙습니다.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니 늘 고맙게 생각합니다.
되도록 스트레스 받을 일은 피하려고 하는데 세살살이가 마음대로 되지 않군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