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옥대에 대한 기문〔漱玉臺記〕
수옥대는 와룡담(臥龍潭) 아래에 있다. 벼랑을 등에 이고 선 바위가 있는데, 그 꼭대기는 흙으로 덮여 있고, 높이는 대략 서너 장 정도이며, 병풍이 펼쳐진 모양이다. 그 아래는 모두 모래이다. 폭포가 와룡담에서 흘러와 여기에 이르러 비로소 땅속으로 흘러든다. 비가 넉넉하게 내리면 비로소 물이 고여 한 굽이를 이루는데, 물빛이 맑고 물소리가 영롱하여 참 사랑스럽다. 벽면에 ‘수옥대’ 세 글자를 새겨 주사(朱砂)로 메웠다. 이것은 옥호(玉壺) 정하언(鄭夏彦)이 쓴 글씨이다. 옛날 내가 삼척부(三陟府)에 유배되었을 때 옥호가 당시에 마침 삼척의 수령이었다. 그는 품성이 고고하면서 세속에 매이지 않았는데, 권귀(權貴)에 붙는 자를 마치 똥 묻은 돼지처럼 여겼다. 글에 능하고 술을 좋아하여 술을 마시고서는 거리낌 없이 말을 내뱉었으니, 거의 세속의 사람이 아니었다. 나와 의기투합하여 정의(情誼)가 매우 두터웠으므로, 날마다 손을 잡고 죽서루(竹西樓)와 오십천(五十川) 사이를 노닐며 해악(海嶽)을 읊조리기도 하고 운월(雲月)을 노래하기도 하면서 언제나 노년이 되어서도 잊지 말자는 약속을 하였다. 나중에 옥호가 척주(陟州 삼척(三陟))를 버리고 돌아와서는 이곳의 땅을 사서 노년을 마치고자 하였다. 샘과 바위를 파고 소나무와 밤나무를 심으면서 벼슬에 대한 마음을 먹지 않고 지낸 지가 거의 십 년이었다. 나도 한두 번 방문하여 이틀 밤을 자고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옥호가 세상을 떠났다. 어린 자식이 가난하여 지키지 못하고 팔아 버리자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었다가, 서너 차례 주인이 바뀌더니 지금은 나의 은거지가 되었다. 사람의 일이 뒤바뀌는 것이 이러하니, 참으로 서글퍼할 만하다. 내가 가끔 수옥대 아래로 걸어가 새겨 놓은 글씨를 어루만지면 의연히 그 사람의 마음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주-D001] 수옥대(漱玉臺) : 번암의 별업이 위치한 명덕산(明德山)에 있는 석대(石臺)이다. 본래 정하언(鄭夏彦, 1702~1769)의 소유였는데, 나중에 번암의 소유가 되었다. 정하언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미중(美仲), 호는 지당(止堂)ㆍ옥호자(玉壺子)이다. 목사 정무(鄭堥)의 아들이다. 1735년(영조11) 문과에 합격하고, 정언, 의주 부윤(義州府尹), 삼척 부사(三陟府使), 승지, 대사간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承政院日記》 《文科榜目》 [주-D002] 내가 …… 수령이었다 : 번암이 1751년 산송(山訟)이 빌미가 되어 삼척에 유배되었을 때 삼척 부사로 재임하고 있던 정하언과 교유하며 친분을 쌓은 일이 있다. [주-D003] 죽서루(竹西樓)와 오십천(五十川) : 모두 삼척도호부(三陟都護府)에 있는 명승지이다. 죽서루는 도호부 읍성(邑城) 내 오십천 가에 있는 누각의 이름이다. 오십천은 삼척의 죽서루 아래를 흐르는 하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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