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보쌈
노병철
요즘 MBN에서 하는 '보쌈-운명을 훔치다'을 본다. 연출 부분에서 조금 미숙한 점이 보여 드라마 몰입을 방해하긴 하지만 나름 젊은 배우들이 연기를 참 잘한다 싶다. 특히 소녀시대 멤버였던 권유리가 이 정도로 연기를 잘했나 싶을 정도다. KBS 예능국장으로 있었던 박태호 PD의 작품이고 60년생이니까 우리 나이로 이제 갓 환갑이 넘었다. 그래서 그런지 젊은 PD와는 달리 가끔 연륜이 주는 능청스러운 대목도 자주 나온다. 나만 재미있게 보고 있는 줄 알았더니 이 드라마가 세계 각국에서 시청자들에게 높은 호감도를 얻고 있단다. 그냥 호감도만 있는 정도가 아니라 인기가 대단하다고 한다. 혐한 바람이 부는 일본까지도 방영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대단하단 말이 절로 나온다.
암튼 작가가 ‘보쌈’이란 소재를 가져와 참 재미있게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다 싶다. 보쌈은 홀로된 과부를 야심한 밤에 보에 싸서 데려와 혼인하던 풍습으로 일종의 약탈혼으로 치부되었다. 당시 과부가 되면 평생 개가 금지에 오로지 수절만이 최고의 미덕이었고 자결을 하면 열녀문을 내려 가문의 영광으로 치부하던 때였다. 본인은 수절하고 싶은데 괴한들이 들이닥쳐 억지로 재혼을 강요하면 이건 지금 법의 잣대로 보면 엄청난 성범죄다. 임금이 법으로 재혼을 금지했으니 감히 어느 누가 법을 어겨가면서 재혼하자고 덤비겠는가. 긴긴 동지 밤에는 허벅지 찌를 대바늘 열댓 개는 필요했으리라.
하지만 지금이나 옛날이나 사람 마음 다 똑같았으리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정말 미망인들이 수절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순순히 받아들였을까? 아무리 양반이지만 제 딸이 젊디젊은 나이에 어쩌다 홀로 남게 되어 안쓰러워 죽겠는데 체면 차린답시고 열녀문 세워줄 테니 평생 홀로 살라고 강요하고 정 괴로우면 은장도로 멱을 따라고 시켰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아마도 친정집 사람들은 당연히 수절하고 사는 것보다는 재혼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법망을 피해 재혼시키는 방법을 찾아내려 했을 것이다. 그 방법 중에 하나가 결혼을 약속한 과부랑 홀아비들이 서로 집안끼리도 말을 이미 맞춰놓고 보쌈을 당했다는 구실로 가문의 명예도 지키고 딸도 재혼시키지 않았을까. 실제 조사하니 그런 방법으로 보쌈꾼을 돈 주고 구하기까지 했다는 기록도 있다. 사람 머리는 폼으로 얹어놓은 것은 아닌 모양이다.
내가 여기서 하고픈 이야기는 보쌈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배경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스토리텔링이라도 어느 정도는 역사적 배경을 참조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기에 어설픈 썰을 풀어본다. 왜 역사적 배경을 광해군으로 했을까. 드라마 보쌈과 굉장히 비슷한 이야기가 광해군 때가 아니라 세조 때 실제 있었기에 하는 말이다. 왜란으로 인해 피난 중에서도 밥투정이나 하는 ‘개 또라이’ 왕인 선조에게서 똑똑한 광해군이 태어났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역사의 한 사실이다. 비록 적자가 아닌 서자라 죽어서도 왕의 칭호를 받지 못하고 말았지만, 현대 역사학자들의 평은 연산군과는 너무 딴판으로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 당시 선조에겐 적자인 영창대군과 딸 정명공주가 있었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영창대군을 죽이고 이복동생인 정명공주와 대립하는 구조가 된다. 정명공주의 외할아버지가 김제남이다. 나중 어머니인 인목왕후와 석어당에 갇혀 있다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복권된다. 광해군에게는 공주가 하나 있었는데 광해군과 대립했다는 이야기가 없다. 폐위 뒤에도 공주는 여섯 아이를 낳고 잘 먹고 잘산 것으로 기록에 나오고 있다. 결론은 광해군 딸보다는 이복 여동생과의 이야기가 더 설득력을 얻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상주에 가면 보굴암이란 곳이 있는데 여기에 전해오는 이야기가 지금 보쌈 드라마와 유사하다 하겠다. 김종서와 육신(六臣)이 죽고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의 능이 파헤쳐지자 공주는 세조에게 대들었고 왕이 공주를 해치려 하자 정희대비가 유모와 함께 멀리 도망가도록 했다. 상주 근처에서 숨어지내다가 한 청년과 사랑을 하게 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청년은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김종서의 손자이고 여자는 세조의 딸이라 참으로 기묘한 만남이 되고 만다. 하지만 혈기 왕성한 젊은 놈들 사랑에 가문의 원수가 뭔 방해가 되겠는가. 둘은 사랑을 하게 된다.
세조 말년에 피부병도 치료도 하고 자신이 지은 죄행을 참회하고자 절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공주와 만나게 되고 세조는 눈물을 흘리며 궁으로 돌아와 살게 하려 하였으나 둘은 야반도주해 버린다는 이야기이다. 또 다른 야사에 의하면 세조는 자신의 딸이 숨어 살고 있음을 알았지만 모른 척하고 족보에서 이름을 지웠다고도 한다. 그들이 숨어 살던 굴은 결국 원수를 사랑으로 승화시킨 굴이라 하여 '보배로운 굴'인 '보굴'이라 불리게 되었고 그 후 보굴암은 한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 준다고 하여 요즘도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 되어 보살들의 성지 순례 코스가 되었다. 이 경우 드라마 보쌈 이야기와 뭔가 비슷하지 않나 싶다. 그냥 재미로 보면 될 것을 따지기는 왜 따지는지 더워서 정신이 멍한가 보다.
첫댓글 와따 국장님 드라마 하나
갖고 따지기는 왜따져요?
그냥 재미로 보시지요. ㅎ
국장님 수필읽고 유식하고
박식하고 아는게 많다는
평을 하던데...그럴만 하시겄
소. 헌데 사업은 언제하고
그림은 또 언제하고 공부는
언제 하는거요? 참 신통한
일이요.
나는 티비드라마 한 편도
보지 않는데...시간 흘러가는건 맨 한 가지네요. ㅎ
선생님은 저의 멘토이십니다. 선생님 따라잡기 실행중이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