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12. 29(금)~12.30(토) 1박2일간 강원도 정선, 평창지방의
산간마을을 여행하고 글을 올린 여행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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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여행때 눈에 담은
풍경들이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지워지지 않은채 눈 앞에서 아른거린다
여행후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의 피곤함은
어느새 잊어버리고 또다시 길 떠나길 주저하지 않는다
한 겨울속에 떠나는 여행은 다른 계절에 비해
각별한 맛이 난다
가파른 산세와 골이 깊은 강원도 지방에
많은 눈이 내리면
강산은 고요하고 적막해진다
예년에 비해
기온의 변덕으로 호남지방에는 많은 눈이 내려 재난이었고
반대로 다른 지방은 그대신 무척이나 추웠다
눈을 들어 아무리 둘러봐도 온통 눈천지인
두터운 눈쌓인 산길을
체인을 채우고 힘찬 엔진의 박동소리와
거친 숨소리를 내며
산길을 헤집을때면 벅찬 희열을 느낀다
하얀눈을 밟을 심산으로 강원도로 간다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 거슬로 올라 가는 것 같다
- 가리왕산 자연휴양림 -
금요일 서울에서 종무식이 끝나고
영동고속도로 새말인터체인지로 나와 안흥방면으로 가는
42번 국도로 올라섰다
이 길은 산 가운데를 가로질러 가면서
강원도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놓고 보여준다
오후 4시쯤 떠나
평창읍에서 모자란 부식을 구입하고
8시쯤 예약한 가리왕산 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
예약된 방은 멋진 통나무집 2층으로
산딸기방과 산수유방이다
저녁을 지을 동안 뒤쫓아서 일행들이 도착하고
다만 조현주네 가족만을 기다리는데
비행기재 터널 입구에서 단독사고가 났다며 현주가 연락을 해온다
산골소년(안동주)의 모빌에 대욱, 경수, 원선등이 동승하고
급히 현장으로 출동을 하여
약 30분이 지나 응급조치를 취해 현주네가 도착을 했다
휴양림에서 고기를 굽지 못하게 하길래
꿩대신 닭이라고
사온 숯을 들고 일부는 밤늦게 휴양림내의 물레방앗간으로 이동하여
하얀 눈밭에서 사온 고구마를 구워먹으며 새벽2시까지 있었다
가리왕산은 일명 갈왕산이라고도 부르는데
옛날 갈왕(신라때 왕이라고도 하고 중국의 어느시대 왕이라는데 설이 확실치가 않음)이
병란을 피해 이곳으로
숨어들었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정선땅에서 가을 단풍을 보고자 할 때는
가리왕산을 첫 손가락으로 꼽으며
가리왕산의 단풍은 곱게 그린 풍경화 그 자체라는데
지금은 산등성이에 빛바랜 이파리가
애처롭게 매달려 삭풍에 떨고
앙상한 나무가지는 한 겨울속에 팔을 벌려 세찬바람 결에 흔들린다.
새벽에 방으로 돌아와 매우 따뜻하게 잠을 잤다
잠을 자다 너무 더워 침낭속에서 빠져 나와 그냥 이불처럼 덮고 잘 정도였다
아침에 일어나
창가의 커텐을 한 옆으로 치우니
눈 앞에 바로 급경사를 이루는 산세가 가로막고 있다
얼마나 가파른지 고개를 위로 바짝 추켜야지
산마루와 손바닥만한 하늘이 보인다.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전부 가파른 산세라 하늘이 손바닥만하게 보인다
아침취사를 끝내고
가리왕산 자연휴양림을 떠나는 시각이 오전 11시다
여행에서 아무리 아침에 바삐 설쳐대도 오전 11시에 길을 떠나게 된다
- 비행기재 -
자연휴양림을 떠나 "용탄리 마을"을 지나 조양강 하류를 향한다
이 용탄리 마을 뒷산은 "성마령(해발 960m)이다
성마령은 옛길로 한창 사람들이 왕래가 빈번할때는 폭이 5m라는데
지금은 길의 윤곽조차 찾을 길이 없다
원님도 넘고 보부상도 필연적으로 넘어야 했던 "정선" 제일의 관문으로
평창군 미탄면과 정선읍 용탄리 경계에 있다
성마령은 평창으로(또는 정선) 가는 가장 큰 길이었으며
제천, 원주, 서울 등지로 가기 위해
누구든지 넘어야 했던 험한 고개였다
성마령을 지나 "광하교"(동강의 상류 조양강 하류에 걸쳐진 교각)를 건너
비행기재로 들어섰다
이 비행기재는
강릉에 본사가 있던 30인승 강원여객 버스가
1954년부터 다녔다고한다
버스를 놓치고 바쁜사람은 언제올지 모르는 버스를 포기하고
트럭이라도 얻어타지 못하면
신작로를 두고도 미탄까지 골짜기길로 20리길을 걸어다녔다고 한다
그후 제천에서 영월, 정선, 사북등으로 이어지는 산업철도가 개통된 1973년 이후로는
점차 다니지 않았고
이제는 30여년 동안 다니지 않은 길을 사륜구동 차량만은
옛 정취를 느끼며 유유히 넘어갈 수 있다
옛 비행기재를 넘다 동강변(귤암리)으로 내려가는 오프로드 있으나
눈 쌓인 요즈음 같은 시기에는 매우 주의해야한다
이 비행기재는 일제시대부터 있었다
이 길이 일제시대부터 있었다면 우리 산하에 있는 광물을
착취하여 싣고 가려고 길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길이 좁고 험해 "제무시(GMC)"란 산판 트럭만 줄곧 오고갔다
수시로 크고 작은 사고로 악명높은 길이었다고 한다
- 평창 고마루마을 -
42번 국도를 따라 어젯밤에 스쳐 갔던 길을 되짚어 나오다
미탄읍을 앞두고
길 옆에 이정표에는 진탄나루, 문희마을이라고 써있다
들어서면 좌측으로 마른 하천이 보이는데
이곳이 "기화천"이다
기화천은 이곳에서 동강으로 흘러간다
석회암지대인 이 곳은 하천이 말라있은 것 처럼 보이지만
땅속으로 물이 흐르고
날씨 따뜻한 겨울날 지하에서 올라온 수증기로 기화천 주변은
온통 안개바다로 휩싸이는 특이한 현상을 보인다
고마루 입구까지 가는 길은
눈이 녹지 않았지만 체인을 칠 필요성은 없어보인다
고마루 마을 들머리인
몇 가구 없는 마을에 현주, 인용의 모빌은 남겨두고
선두 모빌은 나(갤로퍼2), 원선(갤로퍼2밴), 경수(뉴코란도 밴),
제일 마지막에는 산골소년(뉴코란도 오픈)의 모빌의 순으로 오른다
바닥의 눈은 10cm정도 쌓여있어
모빌은 사륜(4H)기어를 넣고
체인은 치지 않고 산 길로 접어들었다
많은 눈이 쌓이지 않았으나 시선 돌리는 곳 마다 눈으로 덮혀
그나마 다행이다
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산꼭대기에 숨어있는 "고마루"마을
재치산(해발 751m)중턱에
석회암 지층이 내려앉는 돌리네(Doline)현상으로 형성된 분지 마을이다
20여분간 가파른 눈 쌓인 산길을 숨가쁘게 차고 오른다
가파른 눈길은 조금씩 바퀴가 헛도는 것이 감지되나
문제될 정도는 아니고 눈 길을 잘도 헤치고 네발로 간다
고개정점에 이르니
아래에 산비탈을 이룬 밭이 있고
눈에 묻힌 민가(5가구)들이 점점이 보인다
눈 앞에 있는 마을 지나
조그만 구릉너머 5가구가 있는데 오늘 목적지이다
마을을 지나 구릉위에서
눈 썰매를 타기로 하고 구릉위에 모빌들을 주차 시키고
길 옆에 불을 놓았다
마른 나무가지는 순식간에 불이 붙고
주변은 어느새 따뜻해진다
바람도 숨을 죽이고
고즈넉한 산골에는 아이들 떠드는 소리외에는 주변이 너무 조용하다
눈길에서 놀다가 양말과 장갑이 젓으면
피워 놓은 모닥불에 나뭇가지에 양말을 걸고 불을 쬐어 말린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그게 잘 마를리 없다
시행착오가 생긴다
시행착오라는게 양말을 태워먹는 거지만 어김없이 그날도 양말을 말리다 태웠는데
크게도 태웠다
어른 손가락 세개정도는 충분히 들어가고 남는다
그래도 즐겁다고 떠들며 웃어댄다
아마도 향수를 떠올리며 웃는 웃음이겠다
옛날 어릴때 같으면 나이롱양말을 말리다 구멍이 나면
어김없이 집에 돌아가 엄마에게 맞아야했다
웃고 떠드는 사이에
눈 앞에 보이는 동네에 사시는 부부가 올라오신다
부부는 눈썰매를 하나씩 끌고 앞으로 우리가 내려갈 언덕에서
눈 썰매를 타기위해 가신다고 가시더니
금새 돌아오신다
이번엔 끌고 갔던 눈 썰매를
마침에서 그곳에서 놀던 인용, 현빈(인용 아들), 인용조카에게 빌려주고
우리에게 다가와 불좀 쬐시자고 하신다
그 분은
8년전에 고마루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는데
폐암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이 곳에서 사시며 암을 극복했단다
이 부부가 간절하게도 자기집에서 머물렀다 가랜다
날씨가 따뜻한 계절에는 가끔씩 사람들이 왕래를 했는데
요즈음 처럼 추운겨울철에는 오고가는 사람들이 없댄다
사람이 그리운 부부다
목적지를 그래서 이분들 집으로 바꾸었다
점심을 떡국으로 먹으려했다고 하자
자기네 집에서 취사를 하라며 이 부부는 먼저 내려가신다
세워놓았던 모빌을 돌려 이들 부부네 집으로 찾아들었다
그런데
벌써 아주머니는 우리를 위해 밥을 짓는 중이며
우리가 가져 간 떡국을 자기네 양념으로 끓여주어 편안한 점심을 먹었고
남은 고기는
장작불을 지펴 집앞에서 호사스럽게 철망에 구워먹고
눈에 젓은 아이와 어른들은 뜨근하게 불을 땐 온돌방에서
젓은 옷가지와 마음까지 훈훈하게 말렸다
이 곳을 떠나 도시에만 들어서면
몸이 아프다는 아저씨의 모습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것이 자연스럽다
지금도
나무로 군불을 지펴 궁핍한 생활을 하지만 화려함에 물든 도시보다
공기 맑은 '고마루'가 이들에게는 "유토피아"다
노루꼬리 같은 짧은 겨울해가 어느새 넘어가려 한다
벌써 오후 4시가 되어간다
길이 어두워 지면 내려가기가 위험하니
눈 쌓인 산길을 이제는 내려가야한다
산봉우리가 둘러쌓인 산마을 고마루 마을
이 부처와 같은 부부와 헤어질 시간이다
모빌이 한대 두대 떠나는데
집 앞까지 나온 노부부는 손짓을 한다
오지에 같혀 사는 이들의 그리움이 흔드는 손가락에 묻어있는 것 같다
나도 마지막으로 떠나며
그들에게 손을 들어 흔들었다
온 몸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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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겨울속 강원도 오지마을 여행기
ri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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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03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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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영철씨 ...추운날에도 강행 여행을하고 .... 시적인 여행기를 책을 만드시면 어떠할지?
그렇지 않아도 주변에선 그러는데 나는 그러고 싶은 생각이 아직 전혀 없어, 그리고 다시 다듬고 그래야는데... 가끔씩 주변에선 그러는데 주제파악을 해야지 나는 전혀 생각이 없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