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장례식과 리허설이 겹쳤다.>
속으로 항상 하는 고민이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장례식과 공연 날이 겹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내게 그런 일이 닥쳤다.
2018년 1월 9일, 여느 날과 다름없는 평온하던 날 오전에 전화벨이 울렸다. 아버지의 전화였다.
아버지: 할머니가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시다. 요양원으로 지금 올 수 있겠니?
나: 알겠어요.
전에도 이런 전화가 몇 번 왔었던 터라,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요양원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느낌이 좀 이상했다. 요양원으로 들어가는 순간에 할머니께서는 눈을 감고 계셨다.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 들어 할머니에게 말을 걸어 보았지만 할머니께서는 기운이 없으셨는지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마지막으로 할머니를 불러보았던 내 목소리를 들으시고는 거짓말같이 눈을 떠 나를 한번 바라보시고 눈을 마주치신 뒤 침대에서 눈을 감으셨다. 그 눈빛은 평생 못 잊을 만큼 기억에 남는다. 어렸을 때부터 모든 좋은 것들은 "승원이 먼저."를 입에 달고 사시던 할머니는 내 마지막 목소리를 기다리셨나 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이런 경혐을 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임종을 지켜보는 그 병실 안은 공기 자체가 다르다. 누군가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참으로 슬프고 처절한 일이다. 눈물도 전염성이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병실 안에서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을 때, 나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때 내 머릿속에는 다양한 감정들과 생각들이 오갔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극도로 슬픈 상황에서 나는 "이틀 뒤면 리허설인데, 장례식과 겹치니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내가 생각해도 참 미친놈 같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리허설부터 생각하네."라고 나 스스로 자책했다. 하지만 공연 일정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생각은 해놓고 있어야 공연 일정이 문제없이 흐트러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머릿속으로 이후의 일정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번 콘서트는 내가 정말 해보고 싶었던 에이핑크의 콘서트였기 때문에 일정 하나 실수 하나라도 하기 싫었다. 완벽하게 해보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내 앞에 생기다 보니 당황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일단 스태프들에게는 현재 상황을 공유했다. 그리고 리허설이나 공연 일정에는 변동이 없으니 참고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아티스트나 소속사에는 알리지 않았다. 기분 좋게 콘서트 준비를 하는 상황에서 안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이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내가 공연 중에 큰 실수를 하거나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면 그 원인이 혹여나 할머니의 장례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리허설 당일, 장례식장에서 입었던 상복을 벗고 공연할 때 입는 검은 색 옷으로 갈아입고 공연장으로 향할 때 친척들이 물었다.
친척: 승원이 어디 가니?
나: 리허설이 있어서요. 제가 안 가면 안 돼요.
친척: 아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할머니 장례식인데 가긴 어딜 가.
나: 제가 안 가면 안 돼서 가봐야 해요.
뒤에서 좋지 않은 말들이 들렸지만, 나는 어서 가서 리허설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장례식에서 나와 공연장으로 운전하는 내 차 안에서 에이핑크의 신나는 음악을 들을 때 참 기분이 묘했다. 할머니 장례식 중에 듣는 댄스곡이라니, 참 이 상황이 아이러니했다.
리허설을 무사히 마치고 다음 날, 할머니를 장지로 모셨다. 슬픈 와중에 더 죄송했다. 그 며칠간만이라도 온전히 마음을 다해 장례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살아계실 때도 나는 할머니께 온전히 효도하지 못했는데, 장례식 때도 할머니는 나에게 두 번째였다.
장례식과 공연장을 오가는 상황에서 정신을 차려보니 공연 날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연출했던 에이핑크의 콘서트 <Pink Space>는 아무 일 없었던 듯 무사히 마쳤고, 공연을 끝내자마자 콘솔에서 할머니께 감사하다고 기도드렸다.
"할머니, 공연을 잘 할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마워. 가실 때까지 나 공연할 수 있게 그날 하늘로 가셨네. 항상 두 번째여서 미안해."
여기서 다시, 맨 처음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장례식과 공연이 겹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마음속으로 되물어도 나는 공연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연이라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나는 공연을 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의 사명감을 가지고 공연에 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그 공연장 안에 있는 관객들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는 그 공연이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한 가치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마음을 다하는 공연은 관객들이 안다."라는 심정으로 공연을 만든다.
<연출가는 액체 같은 사람>
내가 콘서트 연출에 대한 강의에 나갈 때면, 내가 콘서트 연출을 하면서 느꼈던 연출가라는 직업에 대해 몇 가지 문장으로 학생들에게 쉽게 설명하고는 했다.
첫 번째로 소개하는 문장은 "콘서트 연출가는 액체와 같다."라는 문장이다. 내가 콘서트 연출을 몇 년 하고 느낀 점은 이 직업이 굉장히 액체의 성질과 닮았다는 점이다. 액체는 기체와 비슷하게 유동적이며 고체와 달리 어떤 모양의 그릇에나 담을 수 있고, 그릇의 모양에 따라 모양을 가진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대한화학회 제공: http://new.kcsnet.or.kr)
그렇다. 연출가는 어떤 아티스트, 어떤 스태프를 만나느냐에 따라 모양이나 상황, 나아가서는 결과물까지 바뀐다. 동그란 모양의 아티스트를 만나면 내가 그 안에 들어가 그 모양의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네모 모양의 스태프를 만나면 나는 네모 모양에 맞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고체 같은 성질의 연출은 그 모양과 어울리지 못하고 누가 봐도 그릇에 잘못 담긴 이상한 모양으로 사람들의 눈에 비치곤 한다. 사실, 예쁜 그릇을 잘 만나야 예쁜 모양으로 담길 수 있다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한다.
또 이렇게 상상해보자. 내가 '아메리카노 샷'이라는 액체라고 가정했을 때, 내가 물의 성질을 가진 아티스트를 만난다면 그 결과는 아메리카노와 같은 공연이 만들어질 것이고, 우유 같은 성질의 아티스트를 만난다면 라떼와 같은 공연이 만들어질 것이다. 거기에 얼음 같은 스태프를 만나게 되면 그 성질이 더해져 아이스 음료가 될 것이다. 바닐라 시럽 같은 스태프를 섭외해 달달한 바닐라 음료 같은 공연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반대로 내가 '기름'이라는 액체라고 가정했을 때, 물과 같은 성질의 아티스트를 만나면 끝까지 섞이지 못하고 대립하게 되고 끝내는 버려지게 된다. 하지만 내가 기름의 역할로 꼭 필요한 상황에 투입이 된다고 하면 윤활유로서 내가 빛나게 되는 예도 있다.
연출을 하면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것은 아티스트의 고유한 맛과 향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관객들은 아티스트의 공연을 보고 음악을 듣고, 목소리를 들으러 공연장에 찾은 것이지, 내 연출 실력을 보려고 공연장에 찾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내가 색이 강한 연출이라고 하더라도, 그 아티스트에 맞는 적절한 연출이 뒤따라야 진정한 연출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위에서 여러 가지 비유를 들었다. 상황에 비추어봤을 때 나는 연출가는 액체와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본인이 가진 고유한 맛을 버리게 되면 안 되지만, 함께 일하는 아티스트와 스태프에 따라 본인의 모양을 유연하게 변화시켜 최선의 결과물을 내는 사람.
콘서트에는 그런 연출가가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