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요일 분당서울대 병원에 다시 들어왔습니다. 5인실 병동 창가에 배정되어 자리잡고 여러가지 필요한 검사도 하고, 병원에서 나오는 식사는 거의 형식적으로 살짝 아주 조금 맛보는 정도이면서도 시간맞춰 안주면 계속 달라고하고. 늘 해온 것처럼 착실히 찍소리없이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지난 목요일 제주도를 떠나 올라온 이후 금요일부터 잠자는 시간 외에 거의 모든 시간을 움직여 대면서 많은 것들을 처리했습니다. 영흥도집의 노후된 보일러 교체 공사, 김장까지는 못했지만 총각무 잔뜩 뽑아 담구어놓고, 차량 내외부 청소는 못했어도 더 중요한 엔진오일과 히터 브러셔 타이어까지 점검과 교체완료 (아이들 데리고 먼길 다니니 이런 점검과 교체는 필수), 은사님과 고교선배들과의 멋진 점심시간까지, 병원입원 전은 그야말로 숨가쁜 시간들이었습니다.
일전의 병동분위기와는 약간 다르게 이번에는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입니다. 갑자기 주사액으로 항생제가 미리 대량 투여되서 그런지 설사때문에 태균이 밤 12시 전까지 몇 번씩 화장실도 들락거리고, 밤사이 뒤척임이 컸는지 주사액 들어가는 바늘이 빠지면서 환자복은 피가 흥건하고.
누군가 연속 곯아대는 코골이에다, 아마 시골에서 오신 듯한 연로한 두 분의 신참입원 좌충우돌 소리들. 보호자 의자겸 침상의 변형을 몰라 아내분이 힘들게 의자에 앉아 밤을 보내신 듯, 뒤늦게 이 사실을 깨닫고는 두 분이 끙끙거리며 트랜스퍼머 의자를 거의 조립수준으로 맞추시니 제가 나서서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합니다. "xxx씨 예약잡혔다하니 지하 1층 MRI촬영하고 오세요"라고 하면 지하 1층을 몇 번씩 확인합니다.
다소 특별한 일상을 맞이해보면 삶의 모습이 얼마나 다양한 지를 알게 됩니다. 그 다양한 삶의 모습 중에 태균이와 저도 있으니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도 참 특별한 측면이 다분합니다. 곰같은 덩치의 30대 성인남자를 작은 덩치의 엄마가 졸졸졸 따라다니고, 장애가 있음에도 다인실 병원생활은 무리없이 잘 해내니 마치 의료진이나 간호사들과의 의사소통은 제가 대신하는 게 아니라 통역하는 것 같은 느낌. 먼 행성에서 지구로 온 외계인 인양 여기생활에는 많은 보조가 필요합니다. 특이한 외계인의 삶에는 지구인다운 사회적 훈련이 늘 필요합니다.
이 와중에 틈새시간을 이용, 지나간 영화들을 다시 봅니다.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보는 건 참으로 큰 전두엽 훈련입니다. 그 중에 CODA가 있고 이런 영화는 마음의 큰 기쁨입니다. 주눅들어 있지만 당차고, 당차려고 하지만 삶의 환경이 너무 발목을 잡고, 발목잡는 삶의 환경이 오히려 당찬 인생의 최강 힘으로 보상되는 극단적으로 불우한 장애가족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는 모두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https://youtu.be/0pmfrE1YL4I?si=TZA5H-eh1BdhthPg
아침 동트는 소리, 도시가 깨어나는 소리, 그리고 다른 병상에서 아침식사하는 소리, 나는 왜 저 무리에서 배제되었는지 인정하기 싫은 태균이 밥먹겠다는 제스츄어를 보내기 대신 옅은 미소로 어필링합니다. 곧 수술실로 가야한단다...
월요일은 수술이 가장 많아 바쁜 날이랍니다. 의사들도 월요병이 장난아닐 것 같습니다. 남의 생명을 다룬다는 직업의 스트레스 강도는 남다를 것 같습니다. 숙련된 일처럼 내 분야의 어떤 수술도 아무렇지 않게 되는 때에도 잠깐의 딴생각이나 보조진들의 실수로 인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집중의 강도는 아마도 이 전문직의 보수와 맞물려 있겠지요.
통역(ㅋ)때문에 수술실까지 특별히 입회가능해서 프로포폴 주사까지 주입되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왔습니다. 벌써 3번째이니 시키는대로 잘하고, 무엇보다 키작은 여자의사가 너무 친절합니다. 이 분 주위에 발달장애가 있는 듯 친절도 배려도 격려도 사근도 정말 백점 만점입니다. 다시 만난 것까지 반가와하며...
이번에 다 제거되었으면 좋겠지만 워낙 많은지라 결과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수술동의서 받을 때는 아무리 작은 수술이라도 극단적 조항까지 다 언급되는 터라 그러려니 하지만 마취를 동반한 수술이란 마음을 아리게 하는 부분은 어쩔 수 없는 듯 합니다. 태균 화이팅!
정기적으로 입원해보니 이 녀석 올 때마다 더 성장했음을 깨닫게 해주어서 이것도 감사할 일입니다! 저세상 이세상 성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아, 태균씨 넘 고생하시네요. 몇번의 수술로 돌을 제거해야 하니 이번이 끝이었음 좋겠습니다.
대표님의 하루하루 해결하는 일의 양이 엄청 납니다. 오히려 병원의 틈새 순간에 글을 쓰시는군요.
CODA는 저도 감명 깊었는데, 그림엄마는 그렇게 눈물이 나더래요.
태균씨에게 홧팅 외쳐 드리고 차후 일정이 무사하길 빕니다.🙏🙏🍒‼️
대표님~
아드님 이번 수술이 꼭 마지막이 되기를 기원해봅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매순간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에 저도 힘을 얻습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건강 잘 챙기시고요~🙂
조만간 보충제 주문할게요~
수술과 회복 모두 잘 마치도록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