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인물 탐구 - 신숙주, 권람, 강맹경, 구치관
■ 평생을 괴물과 함께 살았던 신숙주
신숙주(1417-1475)의 본관은 고령, 자는 범옹, 호는 보한재이다. 세종 20년(1438)에 진사시에 장원하고, 그 이듬해에 문과에 합격하였다.
세종 29년 중시에 합격한 뒤 서장관으로서 일본에 갔다. 일본 사람들은 신숙주의 명성을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시를 지어 달라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모두 신숙주의 시에 대하여 경탄해
마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있은 후로 일본 사람들은 우리 나라 사신이 일본에 갈 적마다 반드시 신숙주의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세조 6년(1460)에 강원, 함길도 절도사가 되어 국경 지방에 깊이 들어간 적이 있는데 오랑캐들이 밤에 공격해 와서 영내가 매우 소란하였다. 그러나 신숙주는 꼼짝도 않고 누워서 막료를 불러 자기가 지은 시를 받아 쓰게 하였다. 병사들은 그때서야 안정을 되찾고 차분하게 대처할 수가 있었다.
신숙주가 젊었을 적에 경복궁 정시에 응시하러 갔는데 이른 새벽에 커다란 괴물이 입을 쩍 벌리고 대궐 문 앞에 있어서 모든 응시생들이 다 그 입을 통해 들어갔다. 이때 신숙주는 눈을 부릅뜨고 당당히 서서 그 괴물을 응시하였다. 그때 푸른 옷을 입은 동자 하나가 신숙주의 옷소매를 잡고 물었다.
"공은 저 입을 벌리고 있는 괴물을 보았소? 그것은 내가 조화로써 만들어낸 괴물이니 공은 잘 간직하시오"
"너는 누구냐?"
"나도 사람이오. 공이 앞으로 귀한 재상이 될 것을 알고 평생토록 따라다니면서 행동을 함께 하려고 하오"
신숙주는 그 괴물과 함께 집에 돌아왔는데, 그 괴물은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신숙주가 앉으나 누우나 항상 함께 하고 곁을 떠나지 않았다. 밥을 먹을 때 그에게 자기의 밥을 나누어주면 씹는 소리는 들렸지만 밥그릇은 줄지 않았다.
그 괴물은 신숙주의 집안에 일어날 모든 일과 과거의 합격 여부를 신숙주에게 미리 다 알려주었다. 신숙주가 사신으로 일본에 갈 적에 이 괴물을 시켜서 먼저 뱃길의 깊고 얕음과 거리를 알아 오도록 시켰기 때문에 신숙주는 먼 뱃길을 무사히 다녀올 수 있었다. 신숙주는 죽기 전에 자손들에게 유언을 남겨 부탁하였다.
"내가 죽더라도 이 괴물에게 따로 제사를 차려 주어라"
그 자손들은 신숙주의 유언에 따라 신숙주의 제삿날이면 반드시 따로 한 상을 차려서 괴물에게 제사지냈다고 한다.
신숙주 생시에 세조는 늘 말하였다.
"환공과 관중, 한고조와 장량, 당태종과 위징의 관계는 나와 숙주의 관계와 같다"
세조 3년에 영의정에 이르고 시호는 문충이다. 성종묘에 배향하였다.
■ 국을 식게 만드는 사람 권람
권람(1416-1465)의 본관은 안동, 자는 정경, 호는 소한당이다. 어려서부터 글읽기를 좋아했고 큰 뜻을 품었으며 계책이 뛰어났다. 책을 싸가지고 깊은 명산에 들어가 한명회와 함께 공부를 하였다.
35세가 되도록 과거에 응하지 않고 있다가 세종 말년에 과거에 응시하여 잇달아 장원을 세 차례나 하였다. 세조가 대군으로 있을 적에 총재가 되어 '무경(고대의 병서)'에 주석을 달았다. 그는 수양대군의 시종이 되었는데, 대군은 그의 큰그릇을 알아주고 대우를 극진히 하였다.
그는 수양대군의 장래 꿈이 무엇인지 알고 그의 집을 은밀하게 드나들었으며, 한번 들어가 논의하기 시작하면 해가 늦도록 계속하였으므로 수양대군집 궁인이 공을 보면 "국을 식히는 양반이 또 온다"고 하였다.
수양대군이 공을 내전으로 불러 위로 잔치를 베풀고 정희왕후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 사람이 옛날 국을 식히던 사람이오"
영의정으로 길창부원군에 봉해지고, 시호는 익평이다. 세조묘에 배향되었다.
■ 우리 집에도 선조의 문집이 있다고 익살을 부린 강맹경
강맹경(1410-1461)의 본관은 진주, 자는 자장이다. 벼슬은 영의정에 이르고 진산부원군에 봉해졌다. 세조 임금이 맹경의 집을 보고 말했다.
"저 썩은 서까래를 빨리 갈아야겠다. 사람 상하겠다. 영상의 집이 이와 같으니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이계전이 중국에 갔을 적에 주객 낭중이 시를 청하였다. 갑자기 시가 떠오르지 않은 계전은 자기 선조의 문집인 '목은집' 가운데 있는 '조조대명궁시'를 써 주었다.
활짝 열린 명당에는 새벽 공기가 차고
우뚝 솟은 깃발은 난간에서 나부낀다.
시를 본 주객은 칭찬을 마지않았다.
강맹경도 중국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이계전이 맹경을 보고 농담 삼아 말했다.
"만약 중국 사신이 자네에게 시를 청하면 대책이 있는가?"
맹경은 그 말을 받아 즉시 대답하였다.
"우리 집에도 선조의 문집 '통정집'이 있지?"
그 말을 들은 방안의 사람들은 배를 잡고 웃었다. 이계전은 목은의 자손이요, 강맹경은 통정의 후손이다. 맹경의 시호는 문경이다.
■ 온종일 벌주를 마신 구 정승 구치관
구치관(1406-1470)의 본관은 능성이고, 자는 이율이다. 세조 13년(1467)에 영의정이 되었다.
야인 여얼이 자주 국경을 침범하여 세조는 구치관을 정서대장군으로 삼아 방어하게 하였다. 세조는 말했다.
"구치관은 나의 만리장성이다"
이때 구치관은 신숙주와 더불어 세조의 신임을 받은 터였다. 신숙주는 영의정으로 있었고, 구치관은 새로 우의정이 되었다.
어느 날 세조는 두 정승을 내전으로 불러 놓고 말했다.
"경들에게 내가 질문을 할 테니, 경들은 바른 대답을 해야 한다. 만약 실수하면 벌주를 마셔야 한다"
조금 후에 세조가 신 정승을 불렀다. 신숙주가 대답하자 세조는 "나는 신 정성을 불렀는데, 잘못 대답한 것이다" 하고 신숙주에게 벌주를 먹였다.
또 구 정성을 불렀다. 구치관이 "예"하고 대답하자 세조는 "나는 구 정승을 불렀는데 경이 잘못 대답하였다" 하였다.
이렇게 해서 신 정승과 구 정승은 하루종일 벌주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