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거대 피라미드 세계 도처에 있다
■일본에도 피라미드가?
1934년 6월, 초로의 한 학자가 안내인을 동반한채 히로시마의 아시다케산(葦嶽山)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지 오래라 주변은 모두 진흙 투성이였고, 계곡을 몇 개나 넘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들은 얼마 후 높이 8미터, 폭 10미터 정도의 돌을 발견했고 곧이어 번쩍이는 번개 속에서 노학자는 무언가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저기 보이는 산이 바로 피라미드야"
소리를 친 사람은 사카이 가쓰도키(酒井勝軍)박사. 그가 발견한 산은 바로 아시다케산이었으며, 일본 최초의 피라미드 추정물이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일본 최초로 피라미드를 발견한 사카이 가쓰도키 박사)
산이 피라미드라니? 상식적으로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얘기지만 엄연히 일본에서 국가적 이슈로 떠 올랐던 실제의 기록이다. 원래는 피라미드였는데 거기에 어떤 이유에서인지 흙이 덮히고 나무가 자라 산의 모습이 됐다는 것이었으며, 그러한 피라미드가 일본 전역에 흩어져 있다는 것이 박사의 연구결과였다.
■하늘배를 타고 이집트로 날아가
일본의 피라미드는 다케우치(竹內)문서와의 연관성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쇼와 10년 지금까지 전혀 볼 수 없었던 기이한 문서가 이바라키현의 한 신궁(皇祖皇太神宮)에서 발견된다. 다케우치 고마로(竹內巨磨)가 보관하고 있던 이 고문서는 일본의 초고대 문명에 관한 놀라운 역사를 기록해 놓은 것으로써, 일본인은 우주에서 도래한 신인(神人)이며, 엄청난 고도의 문명을 가지고 있었고, 하늘을 나는 배를 타고 이집트까지 오갔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카이 교수는 바로 이 점을 주목했다. 다케우치 문서에는 직접적으로 피라미드를 언급한 내용은 없지만 피라미드의 나라 이집트와의 연계 가능성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었기 때문이다.
(사진: 피라미드로 추정되는 일본의 천관산)
실제로 그는 이집트로 건너가 고대 팔레스타인과 유태인의 역사를 조사하는 동시에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역사책에서 특이한 문건을 접하게 된다. 거기에는, "고귀한 인종이 동방의 해가 뜨는 나라에서 기이한 방법으로 나타나 피라미드를 건설하였다"라고 적혀 있었다는 것인데, 그것은 고대의 일본인이 멀리 이집트까지 갈만한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는 다케우치 문서와도 일맥상통하는 한편 자신이 발견한 일본의 피라미드와도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시사해 주는 것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카이 박사의 많은 연구물들은 2차대전때 소실되거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일본 정부에 의해 몰수당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후학들이 밝혀낸 그의 연구결과 중에서 가장 주목 받는 것은 피라미드山 주변에는 반드시 죠몽(繩文) 유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 연관 관계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본 피라미드의 수수께끼를 푸는데 중요한 단서로 작용할 것이라 여겨지고 있다.
■피라미드에 대한 의문점
일본의 피라미드가 이집트와 다른 점은 국토의 대부분이 산인지라 자연적인 피라미드 모양들이 많기 때문에 굳이 거석을 잘라서 만들지 않아도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완벽한 피라미드 모양이 아니기 때문에 주변에 고인돌이나 영국의 스톤헨지 비슷한 거석 건조물들을 이용해 피라미드 파워를 증폭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일본 피라미드山 근처에서 발견되는 석조물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은 왜 피라미드를 필요로 했을까? 사카이 박사는 여기에 대해서도 코멘트를 달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동식물의 성장 촉진과 관계 있다는 것이다. 피라미드의 파워를 이용해 주변환경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주장이다.
(사진: 일본에 분포되어 있는 피라미드 추정 지도)
하지만 이와 같은 주장을 그냥 인정할 수 없는 이유도 있다. 그 주장이 너무 국수주의적이라는 것과 피라미드 모양의 건축물은 비단 일본과 이집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장방형 피라미드는 남미의 아즈텍은 물론 우리나라의 고구려 장군총, 그리고 그 실체가 정확히 파악 안된 티벳과 중국 그리고 만주지역에 널리 걸쳐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정확한 용도와 목적을 알 수 없는 피라미드 형태의 건축물에 대한 보고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중국의 피라미드
남미에 피라미드 건축물들이 많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 됐지만 동북아 일대에 피라미드가 있다는 것은 극히 최근에 알려진 사실들이다. 우리가 피라미드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고구려 시대의 무덤도 그렇지만 독일인 학자 하우스돌프(Hausdorf)가 중국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직접 사진을 찍어서 서방 세계에 전했다는 피라미드 형태의 건축물들, 그리고 최근에는 러시아 학자들이 티벳 지방에서 발견했다는 1,800m 짜리 초 거대 피라미드의 실체들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사진: 피라미드 앞에서 태연히 밭을 갈고 있는 중국의 농부.
근처에 사는 주민들은 피라미드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다고 한다]
중국 당국은 피라미드가 있는 지역을 외국인 출입 금지 구역으로 설정해 놓고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고 있는데, 시안 지방에서 백여 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에는 평균 25 ~ 100 m 높이의 피라미드들이 있으며 그 중에는,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츠 빌딩과 맞먹는 300 m의 높이를 가진 것도 있다. 그 정도면 이집트의 쿠푸왕이 만든 기자의 대 피라미드보다 거의 2.5 배 정도 높고, 면적 또한 여의도보다 큰 엄청난 건축물이다. 이런 것을 축조하기 위해서는, 고대의 기술로는 연인원 100만명이 소요된다고 한다.
최초의 발견은, 1945년에 인근을 비행하던 미국 수송기 조종사의 사진촬영과 보고서에 의해서이다. 그 이전까지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산으로 알고 있었는데, 1963년에 중국의 고고학자들이 이 피라미드를 진시황의 무덤으로 생각하고 발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73년에 실시된 고고학계의 탄소 연대 측정법에 의해, 그 거대한 피라미드는 진시황의 무덤보다 수 천년 앞서 만든 것임이 밝혀지게 되어 서둘러 작업이 종결되었다.
[사진: 독일인 학자 Hausdorf씨의 TV인터뷰 사진과 직접 찍은 중국의 피라미드]
현재, 이들 유적들은 중국 공안 당국에 의해 철저하게 숨겨지고 있는데, 학술적인 조사도 불가능하며 중국에 의한 연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서구세계의 학자들과 방송국의 요청에 못 이긴 듯 '발굴기술과 유물 보존기술이 부족해 다음 세대로 그 발굴을 연기하게 되었다'는 말을 언론에 보도했으며, 이와 같은 중국 측의 태도는 고구려 역사 왜곡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독일인 학자 하우스돌프씨는 자신이 찍은 이 피라미드 사진들을 용케도 빼내는데 성공하여, 1994년 "하얀 피라미드"란 책을 출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티벳의 피라미드
2000년 6월에는 러시아의 학자들이 서장 티벳 고원에 피라미드가 존재한다고 발표했는데, 티벳 지방을 소유하고 있는 중국은 그 즉시 반박문을 내어, "해발 5000m가 넘는 고산지대에 피라미드와 고대 건축물을 건설하는 것이 쉽지 않을 뿐더러 어떤 목적과 역량을 가지고 그것을 세웠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그것은 피라미드처럼 보이는 계단형 산일 뿐이지 결코 피라미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피라미드로 추정되는 그 산들은 해발 6714m의 위용을 자랑하는 캉린보체山의 여러 봉우리인데, 러시아의 과학자 몰다스프씨를 중심으로한 일련의 학자들이 그 봉우리들에 대해 정밀 조사를 벌였으며, 총 100여개의 피라미드 추정 봉우리와 고대유적을 발견했다고 전해왔다. 그중 가장 큰 피라미드는 높이가 무려 1,800m나 되어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했는데, 이 소식이 곧바로 중국의 '참고소식(2000.06.09일자)'이라는 주간지에 실리게 되어 중국과 러시아의 피라미드 공방에 불을 지피게 된 것이다.
러시아측은 컴퓨터를 이용해 피라미드의 구조와 산의 구조를 대조 분석한 결과 어느 것이 산이고 어느 것이 피라미드인지 구분할 수 있었다고 발표했으며, 티벳 피라미드는 멕시코와 이집트의 일부 피라미드처럼 계단식 구조로서, 주위의 산들은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산을 피라미드로 착각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과연 어느 쪽의 주장이 맞는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는 일이다.
■동유럽 보스니아에서도 발굴중
지난 2006년 4월 20일 미국 NBC에서는 유럽에서도 드디어 피라미드가 발견됐다는 보도를 했다. 보스니아의 고고학자와 발굴단이 비소코(visoko)의 중앙 보스니아 타운 근처에 있는 언덕에서 피라미드로 추정되는 돌무더기를 발견했다는 기사를 전하며 15년간 라틴아메리카의 피라미드를 연구해 온 보스니아 고고학자 세미르 오스마닉(Semir Osmanagic)이 현장을 주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스니아 피라미드 발굴현장)
오스마닉 박사는 비스코 타운위로 솟아오른 2,120피트높이의 언덕이 실제로는 1층 피라미드로서 유럽대륙에서 발견된 첫번째 피라미드라는 점을 강조했다.
피라미드의 추정 크기는 722피트(220미터) 높이이고 Giza의 이집트 대형피라미드군으로 치면 3번째 크기라고 한다. 이 피라미드는 처음에 거대한 돌로된 블럭들이 정방형 모양으로 깍여지거나 훼손된채 발견되었는데 언덕의 경사도는 45도경사를 지며 정상의 평면을 향하고 있다고 발표했는데 위성사진과 온도감지 이미지들을 통해서 확인한 결과 그 주위에서 좀더 작은 다른 2개의 피라미드도 발견했다고 한다. 아마도 이 발견은 유럽에서 앞으로 발견될 다른 피라미드들의 전초전일지도 모를일이다.
■갈길이 먼 피라미드 연구
[사진: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현(集安縣) 퉁거우(通溝)의 룽산(龍山)에 있는 고구려의 장군총. 형태가 완벽한 장방형으로서 피라미드의 조건에 꼭 부합하고 있다. 마치 이집트나 남미의 계단식 피라미드를 보는 듯 하다. 이 무덤의 주인공으로는 광개토대왕과 그 아들인 장수왕(長壽王)의 것이라는 두 설이 있는데, 현지 중국 학자들은 태왕릉을 광개토대왕릉으로, 장군총을 장수왕릉으로 보고 있다]지금까지 우리는 이집트의 피라미드와는 전혀 별개의 피라미드에 대해 살펴봤다. 하지만 아직은 일본의 산들이 정말 피라미드인지, 우리의 장군총이 아즈텍의 피라미드와 같은 종류인지도 확실치 않다. 중국의 피라미드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으며 티벳의 피라미드는 학자들간의 이견 공방 속에 오히려 그 진실이 묻혀 버린 느낌마져 든다. 아프리카 수단의 사막에 있는 쿠시왕국의 '메로에(merowe)' 피라미드에 이르러서는 거의 두 손들 지경이다. 피라미드에 관한 한 모든 것이 안개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사진: 쿠시왕국의 수도 merowe에 전해져 오는 정체불명의 피라미드. 아직 이렇다할 전문적인 조사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채 사막의 모래바람속에 버려져 있다. 쿠시왕국은 기원전 7세기에 이집트를 정복했던 전설 속의 신비한 흑인왕국으로서 일명 이디오피아 왕국이라고도 전해진다]
어떤 현상이나 사실을 세상에 처음으로 내놓는 것은 오히려 쉬운일일지도 모른다. 정작 어려운 것은 그 진실성을 규명하고 밝히려는 노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지루하고 어려운 작업이다. 그것을 극복하고 해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는 것이 오컬트라는 학문의 목표요 사명이다. 피라미드에 얽힌 이러한 미스테리들도 말없이 뒤에서 수고하는 젊고 패기있는 오컬티스트들에 의해 곧 풀리기를 기대해 본다.
모든 것이 세월을 두려워 한다. 하지만 세월은 피라미드를 두려워 한다.
-고대 이집트 경구-
오컬트 칼럼니스트 이한우 i33m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