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 터키 여행 (17.04.20~ 04.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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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Madangb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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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타그마광장
신타그마 광장(그리스어: Πλατεία Συντάγματος)은 그리스 아테네의 중심부에 있는 광장이다. 1844년 그리스 왕국의 헌법이 여기서 반포되었다.
신타그마는 그리스어로 헌법을 의미한다. 그리스 고궁이 광장 바로 앞에 위치해 있으며, 이 건물은 1934년부터 그리스 국회로 사용되고 있다. 이
광장의 동쪽에는 무명 용사의 비가 있다. 그 밖에도 광장 주변에는 각종 관공서가 위치해있고, 광장 서쪽으로 아테네 최대의 번화가인 에르무
거리가 있다.
파르테논 신전
파르테논 신전(고대 그리스어: Παρθενών)은 고대 아테나이의 수호자로 여겨지던 아테나 여신에 봉헌된 그리스 아테네의 신전이다. 기원전 5세
기에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건설되었다. 현존하는 고전기 그리스 건축물 가운데 가장 중요하며, 도리스식 기둥 양식 발전의 정점을 이룬 것으로
평가받는다. 또 신전의 장식 조각도 그리스 예술의 정수로 여겨진다. 파르테논 신전은 고대 그리스와 아테나이 민주정의 오랜 상징이자 세계적으로
위대한 기념물로 인정받는다. 현재는 그리스 문화부에서 복원 및 개축 계획을 시행하고 있다.
파르테논 신전이 건설된 자리에는 원래 아테나 여신의 옛 신전으로 역사가들은 이를 옛 파르테논 신전(Pre-Parthenon)이라 칭하는 건물이 있었
으나, 기원전 480년에 페르시아의 침공으로 파괴되었다. 여타 그리스의 신전과 마찬가지로 파르테논 신전도 국가 금고로 쓰였으며, 특히 이곳은
한때 델로스 동맹의 금고로 쓰였다. 기원후 6세기에 파르테논 신전은 성모 마리아에 봉헌된 기독교 교회로 쓰였다. 오스만 제국에 정복당한 뒤에
1460년대 초에 모스크로 쓰였고 첨탑이 건설되었다. 1687년 9월 26일 파르테논 신전 안에 쌓아놓은 오스만 투르크의 화약 더미가 베네치아군의
포격으로 불이 붙었다. 화약이 폭발하면서 신전과 그 조각물이 크게 훼손되었다. 1806년 엘긴의 7대 백작, 토머스 브루스(엘긴 경)이 오스만 제국의
허가를 얻어 파르테논에 남은 일부 조각을 떼어냈다. 이 조각물은 오늘날 엘긴 대리석 조각군 또는 파르테논 대리석 조각군으로 불리는데, 1816년
런던의 대영 박물관에 매각되어 지금까지 그 곳에서 전시하고 있다. 그리스 정부는 엘긴 대리석 조각군을 다시 그리스로 반환해 주도록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별다른 성과가 없는 상황이다.
이 신전의 '파르테논'이란 이름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제프리 M. 허윗(Jeffrey M. Hurwit)에 따르면, '파르테논'은 '처녀의 장소'를
뜻하며, 원래 파르테논 신전의 어느 방 한 곳을 이컫는 말이었을 것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어느 방인지 그리고 그 방에 어떻게 이 이름이 붙었는
지는 논란의 대상이다. 일설에서는 '파르테논'이 범아테네 축제 때 아테나에게 바치는 페플로스(고대 그리스의 여성 겉옷)를 아레포로이(해마다
아테나 여신을 위해 일하는 네 소녀)가 짜는 방이라고 한다. 크리스토퍼 펠링(Christopher Pelling)은 아테나 파르테노스가 아테나 폴리아스(" 도
시의 아테나")와 관련되어 있긴 하지만 같지는 않은 개별적인 아테나 숭배 의식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하였다[4] 이 이론에 따르면, '파르 테논
'이란 이름은 "처녀 여신의 신전"을 뜻하며, 아테나 파르테노스 숭배 의식이 이 신전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5] 역시 그 기원이 불명확한 '파르테
노스'(παρθένος)란 별칭은 "처녀, 결혼하지 않은 여자"를 뜻하며, 특히 야생 동물과 사냥, 식물의 여신이자 전쟁, 수공예 그리고 실용적인 것의
여신인 아르테미스를 이를 때 쓰는 말이다. 또 이 신전의 이름은 처녀들('파르테노이')를 암시하는데, 처녀들의 최고위 희생 의식은 도시의
안전을 보장하였다.
'파르테논'이란 이름이 신전 건축물군 전체를 분명히 일컫는 첫 사례는 기원전 4세기의 웅변가 데모스테네스의 말에서 나온다. 5세기에 건축 기록
에서 이 건축물은 그저 '호 나오스'("신전")으로 불렀다. 건축가 므네시클레스와 칼리크라테스는 현존하지는 않지만 아테나이 건축에 대해 이들이
쓴 기록에서 이 건물을 '헤카톰페도스'("100피트의 키다리")라고 불렀다고 하며,[11] 4세기와 나중에도 '파르테논'이란 이름 뿐 아니라 '헤카톰페
도스' 또는 '헤카톰페돈'으로 불렸으며, 기원후 1세기의 저자 플루타르코스는 이 건물을 '헤카톰페돈 파르테논'이라고 칭하였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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