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시의 장례식
단연코 정월 대보름날 주인공은 황소를 탄 천하장사 박거근이다.
깨갱깽깽 긴 상모를 돌리며 사물패가 앞장서고, 황소 등에 올라탄 박거근이 개선장군처럼 두 팔을 흔들고,
그 뒤로 구름 같은 고을 사람들이 뒤따랐다.
저잣거리를 휩쓸고 박거근이 들어간 곳은 기생집 명월관이다.
기생을 끼고 친구들과 떡이 되도록 술을 마신 거근은 행수기생의 부축을 받으며 뒷방 금침으로 들어가지만
금방 코를 골아 행수기생을 실망시켰다.
박거근은 더 이상 행수기생의 기둥서방 노릇을 하지 않기로 했다.
박거근은 기골이 장대한 데다 이목구비도 반듯한 호남에 무엇보다 이름 그대로 그 물건이 우렁차
본명을 제쳐두고 사람들은 그를 거근(巨根)이라 불렀다.
게다가 산전수전 다 겪은 행수기생의 기둥서방 노릇을 한해 동안 하고 나니 방중술의 달인이 되었다.
과부들이 체면이고 뭐고 살아생전에 거근의 품에 한번 안겨보자고 난리가 났다.
방물장수 살살이는 거근과 과부를 연결해주는 거간꾼이 되었다.
심지어 보름날 강변에서 열녀효행상을 탔던 오실댁도 하룻밤 거근의 품에 안기더니 가출하고 말았다.
거근이의 발길이 과붓집만을 찾아다니진 않았다.
남편이 병석에 누워 있는 유부녀도 살살이에게 줄을 넣었다.
거근이의 엽색행각은 종횡무진, 마침내 건들지 말아야 할 곳에도 들어가고 말았다.
고을 사또의 나이 어린 애첩을 혼절시키고 나자 이 눈치코치 없는 동기(童妓)는 사또와의 동침을 거부하고
물건을 노골적으로 비교해 사또의 자존심을 확 구겨버렸다.
사또가 대로하여 박거근을 잡아 옥에 처넣었다.
곤장을 쳐 죽이겠다고 형틀에 묶었다가 이방의 귓속말에 그를 풀었다.
그즈음,
조정에서는 환관이 부족해 내시를 모집하려고 각 고을에 한 명씩 차출 해 올려 보내도록 어명을 내렸다.
하나 내시 지원자를 못 구해 쩔쩔매던 차에 박거근을 떠올린 것이다.
박거근이 포승줄에 묶여 창을 든 포졸 두명과 이방에게 끌려 한양으로 떠날 때
연도의 아낙들은 눈물을 뿌렸다.
건달로 빈들거리던 박거근을 일년여 동안 기둥서방으로 삼아 정이 잠뿍 든 행수기생은 이방에게
노잣돈을 찔러주고는 박거근을 껴안고 대성통곡을 했다.
몇날 며칠을 걸었나.
팔도강산에서 올라온 내시 후보들이 눈이 가려진 채 써늘한 어느 집으로 들어갔다.
“으아악!” 공기를 찢는 비명에 남정네들은 오줌을 설설 쌌다.
마침내 박거근의 차례가 왔다.
아랫도리가 벗겨진 채 형틀에 묶여 있는데 악력이 억센 장정 넷이 사지를 짓눌렀다.
박거근도 비명을 지르고 기절했다.
찬물 한바가지를 덮어쓰고야 깨어났을 때도 박거근은 쓰라린 통증으로 몸부림을 쳤다.
아직도 사지는 묶여 있었지만 고환과 음경은 잘려나가고 없어졌다.
“운 좋게도 살아났구나.” 거세 백정이 박거근을 내려다보고 쇠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방방곡곡에서 끌려온 예순여섯명 중에서 거세당하고 살아남은 사람은 서른명 남짓.
나머지는 목숨을 잃은 것이다.
궁궐에서는 140여명의 내시가 여러가지 일을 했다.
임금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나이 지긋한 환관은 종이품 상선으로 대감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위엄을 갖췄다.
박거근은 임금님 처소의 문지기를 했다.
밤에 임금이 궁녀의 방에 들어가면 밖에서 초롱을 들고 그 방을 지켰다. 박거근은 환청과 환영에 시달렸다.
여인네들의 희멀건 엉덩이가 눈앞에 어른거리고 가쁜 숨소리와 감창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나는 지금 내시다. 고환도 음경도 없다.” 기둥에 기대어 닭똥 같은 눈물만 떨궜다.
그렇게 몇년이 흐른 어느 날, 하늘 같은 내시 우두머리 상선이 박거근을 불렀다.
썩 내키지는 않지만 그의 권유로 혼례를 올리고 부인을 집에 들였다. 삼십대 중반의 얌전한 과부였다.
잘된 것이 부인이 일곱살 난 아들을 데리고 들어와 양자도 같이 들인 셈이 되었다. 이상한 일도 벌어졌다.
그날은 고뿔 몸살에 일찍 퇴궐했더니 장작을 쌓던 나무꾼과 부인이 툇마루에서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
눈감아줬다.
마흔넷에 박거근은 죽었다.
염을 할 때 염꾼이 작은 항아리에서 염장된 박거근의 고환과 음경을 꺼내 비단실로 꿰매 붙였다.
상선이 보관해두었던 것이다.
박거근의 관을 가져가 매장하고 봉분을 올리고 술을 따른 사람은
지금은 주막집 주모가 된 그 시절 명월관 행수기생이었다더라.
첫댓글 기가 막히네...
생으로 거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