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때에 있은 일을 생각하라! - 그 때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 노아 때에 보인 사람들의 실상을 따름에 있는 유대인 -
마태복음 24장 36-39절 / 36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7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자신들의 주와 함께 하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받으시는 고난에 자신들 또한 고난을 받음에 있는데, 자신들이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예수께서 말씀하신 큰 환난을 당하는 것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들이 당하는 환난 속에서 자신들을 데려가시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는 사실 또한 잘 알고 그 기다림에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노아 때의 홍수를 들어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때의 홍수는 온 세상이란 거대한 땅이 물에 잠기는 대홍수로 그 한 가운데에 노아와 그의 가족 모두 여덟 명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랜 세월을 방주를 만드느라 땀 흘리고 있었습니다. 온 인류 대 노아의 가족 여덟 명, 이 여덟 명이란 8의 숫자는 온 인류라는 거대한 숫자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관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들이 뭘 하건 그들은 자신들이 갖는 관심사에 몰두합니다. 마태와 누가는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더라” 라고 말해 줍니다. 이 네 가지는 인류가 갖는 유일한 관심입니다. 자신들이 처한 현실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을 매일같이 끊임없이 계속하였습니다. 그러한 일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고 하늘에서 심판의 빗줄기가 쏟아져 내리는 그 날까지도 계속되었으며,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에는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귀에 들리지도 않았고 마음에 담아두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들이 하는 대로 놔두겠다, 너희들이 하고자 하는 대로 마음껏 해보라. 너희들이 하는 것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것이 전부인데, 그것도 120년에 불과할 것이다.” 그 120년,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중에 중천에 떠 있던 해가 순식간에 지듯이 그렇게 금방 지나갑니다.
온 인류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현실적인 일에 매달리며 하나님은 무시하고 외면하는 동안에 노아는 그의 가족과 함께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기억하고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방주를 예비해 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방주의 문을 닫으시고 하늘에서 심판의 빗줄기를 쏟아져 내리는 그 날까지도 계속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심판의 비를 내리시는 그 날까지 온 인류가 살아가는 모습과 하나님과 동행에 있었던 노아와 그의 가족이 살아가는 모습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런 온 인류에게 하늘에서 밤 낮 40주야 내린 비는 멸망시키는 심판의 비였으며, 노아와 그의 가족 여덟 명에는 그 심판으로부터 생명을 보존시키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은혜의 비였습니다.
온 인류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이 현실적인 일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하시는 데 따라서 자연적인 일입니다. 그러니 이것 자체로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그들에게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단지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고 자식을 낳는 것을 위해서 살아갈 뿐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으며, 행위는 포악할 뿐이어서 하나님 앞에 부패하였습니다. 이는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에게서도 그대로 보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1)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그들은 “우리는 조상들이 저지른 행동을 결코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도 그들이 걸어간 길을 그대로 밟아 가고 그들이 있어온 악에 자신들의 몫을 마저 다 채우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들은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아래 모으듯이 하신 보호 아래 두시고자 하시는 주님의 자비에 응하지 않고 거절하는 것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의 집이 버림을 받아 황폐해질 것이라며, 그들은 주님을 결코 다시 보지 못할 것이니 예수님이 그들에 의해서 죽임 당한 후에 부활 승천하실 것이며, 재림하셔서는 주님과 함께 했던 많은 자들의 환영을 받아 그들과 함께 영원히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것이나, 그들은 결코 주님의 얼굴을 대면하지 못할 것이며 어두운 데서 슬픔으로 곡하며 고통스러워할 것입니다(참조. 마 8:12; 22:13; 25:30; 계 1:7).
해서 예수님께서는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형벌을 피하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의 영이 영원히 그들과 함께 하지 않을 것임을 정하셨습니다(창 6:1-5, 11-2) 그러하기에 이들의 죄악은 멈추지 않고서 그들의 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악행에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구원 얻는 회개의 복음을 외치게 하기 위해서 보낼 선지자(사도)와 지혜 있는 자들(스데반을 비롯한 일곱 집사들), 서기관들(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그 의미를 바르게 교육하는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들)을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으며 매질하며, 잡으러 다님으로써 의로운 사람 아벨의 피부터 성전의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죽임 당한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에 이르기까지 땅에서 무참하게 죽임을 당한 신앙인들의 피값을 그들 또한 그대로 이어 받고 있기에 그들에게 미칠 화는 주께로부터 노아 때에 있은 홍수로 멸망을 당한 것에 그치지 않고 영원히 버림받음에 있는 것이기에 참으로 매우 큽니다.
그렇게 노아 때 보인 사람들의 실상을 통하여 장차 온 인류가 당할 영멸의 비참 앞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음의 사실을 알려주십니다.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으니, 그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하나님과 동행하였다”(창 6:8-9)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노아에게 은혜를 입히신 하나님의 의는 장차 세상에 보내실 메시야(그리스도)로 언약되어 그를 통해 믿음으로 의롭다 함에 있을 수 있게 해주심으로 이를 믿는 모든 믿는 자들을 소망의 바람에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에 따라서 노아 때에 있은 하나님께 은혜를 입어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하여 하나님과 동행함에 있음이 그들에게서 있습니다. 세상에 다시 오실 인자의 임함은 그들을 위하여 있는 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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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기서의 ‘스가랴’는 여호야다의 손자요 바라갸의 아들 스가랴이다. (1)그는 유다 왕 요아스 때의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영에 의해 예언하는 일도 하였다. 요아스 왕은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 앞에 바르게 행하였으나(대하 24:2), 여호야다가 죽은 후의 요아스 왕은 거짓된 신하들에게 속기 시작하므로 유다 백성들도 여호와의 성전에 가서 조상들의 하나님에게 경배하는 일을 그만 두고 음행을 조장하는 아세라 목상과 바알의 신상들을 다시 섬겼다. 유다 백성이 이렇게 주님 앞에서 죄를 저지르자, 주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하셨다(대하 24:17-18). 이에 스가랴가 요아스 왕에게 의로운 직언을 하였으나, 요아스 왕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도리어 그를 성전 뜰 안에서 죽였다(대하 24:20, 22). 그 일로 하나님께서 요아스를 심판하시는 것으로 아람군의 침공을 받고 전쟁에서 중상을 당한 후 그가 스가랴를 죽인 일로 인해 요아스를 미워한 신하들에 의해서 피살되었다(대하 24:23-25) 이처럼 요아스왕에게 죽임 당한 스가랴는 여호야다의 손자요 바라갸의 아들이지만, 여호야다의 아들로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성경의 족보는 3대 이상의 할아버지를 아버지의 위치로 기록하기도 하는데 따른 것이다. 이는 손자는 아들이 낳은 자식이기도 하지만, 계대의 족보에 의해서 할아버지의 아들로 여기는 까닭이다. 따라서 아들의 자식은 할아버지의 자식이다. 그러한 것에서 ‘바라갸의 아들 스가랴’는 대상 24장 20-22절에서는 ‘여호야다의 아들’로 기록되고 있다. 여기에는 사가랴의 부친이 바라갸가 사가랴의 조부인 여호야다 만큼 유명한 제사장이 아닌 평범한 인물인 까닭에 유대인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조부 여호야다로 부친인 바라갸를 대신하였을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