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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누방울 2
각목과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젊은 사람들이 우루루 지하실계단을 내려오자 박성기회장은 올 것이 왔다고 체념했다. 기력이 바탕난 박성기회장은 저항할 최소한의 힘도 남아 있지 않아 아예 두 눈을 감아버렸다. 차라리 비눗방울이 되어 산산이 산화해 버리고 싶었다. 이왕 고통 받아야 할 것이라면 어서 끝나기를 바라는 심정이었다.
“이 개새끼들 몽조리 다 죽여버릴끼다!”
“너그가 인간이가? 이 찌꺼래기 만도 못한 인간들아!”
“항복 안할끼가? 퍼뜩 항복해라!”
들려오는 소리는 포마드의 악쓰는 소리가 아니었다. 어디서 무척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박성기회장은 반사적으로 눈을 떴다.
젊은 조무래기들을 밀고 내려 온 사람들은 하모호선장과 갑판장, 통발반장, 양망장, 경매사, 그리고 퇴역선원과 머하노식당 아주머니외 예전의 하모호선원들이었다. 하모호선장이 앞서 각목을 들고 젊은 조무래기들을 지하로 몰았다. 조무래기들도 흉기를 들고 맞섰지만 하모호선장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젊은 사람들은 이미 전의를 상실한 패잔병들 같았다.
“너그들 내가 누군지 아나? 내가 동해를 주름잡던 하모호선장이다. 울진에도 너그같은 깡패새끼들이 있었나? 아무리 돈이 우선인 세상이라 캐도 사람을 상하게 하는 놈들은 내가 용서 안한다 이 개자석들아.”
“얼릉 무릅 안 꿇나? 내 성질 돋구는 놈치고 지명대로 산 놈 없다. 용왕님도 내가 설치면 네빼는데 너거같은 인간들이 내 앞에 대들어? 에라이 이 문딩이 새끼들을 탁!”
갑판장이 몽둥이를 휘두르자 우루루 뒤로 밀리던 젊은 조무래기들이 포마드와 함께 계단의 끝에서 뒤엉켜 나뒹굴었다. 마치 쓰레기통에 버리는 쓰레기 같이 나자빠지고 엎어지고 엉금엉금 기는 놈 제 각각이었다.
양망장이 곡괭이를 높이 쳐들었다.
포마드가 엉덩이로 뒷걸음치며 경매사를 향해 손을 내저으며 싹싹 빌었다. 비굴하게 애원했다.
“아요, 아저씨 용서하세요.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우리는 아무 죄가 없어요. 그냥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사람새끼가 아니다. 시키는 대로 하는 건 개새끼다. 개장국꺼리도 안 되는 새끼들! 에잇!”
양망장이 곡괭이를 바닥에 내리 찍었다. 불꽃이 일어났다. 퍽하며 바닥의 도끼다시가 깨지며 사방으로 잔해가 튀었다. 물론 위협이었지만 혼비백산한 포마드가 돌 게처럼 옆으로 재빨리 피했다.
“아이고고고 형님! 아저씨!”
퇴역선원이 조무래기들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말했다.
“하모성님. 이 자석들 하모호에 실어다 왕돌괴에 쳐 넣삐립시다.”
머하노식당아주머니가 바닥에 쓰러져 빌빌거리는 조무래기들을 손가락으로 일일이 가리키며 빽빽 소리 질렀다.
“너거들 봉께 우리식당에 밥 묵은 놈도 있네? 니 맞재? 돈 안내고 토낀 놈 이재? 니는 내한테 얻어맞은 놈이고? 또 니는 내한테 돈 빌리간 놈이다. 맞재? 안 맞나? 말해라 이 호로자석들아.”
이번엔 경매사가 나섰다.
“야이. 쥐새끼들아. 내 울진위판장 경매사다. 내 여서 35년 경매사하먼서 너그같은 좀상들은 처음본다. 오데서 사람 잡노? 야이 사람백정같은 씨래기들아. 경매사가 각목을 높이 치켜들었다. 조폭들이 놀라 엉덩이 뒷걸음쳤다. 포마드가 경매사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끓어 앉았다.
“형님. 살려주십시오. 우리는 오야봉 시키는 대로 하는 똘만이들입니다. 한번만요 딱 한번만요.”
포마드가 굻어 앉자 남은 조무래기들도 일제히 끓어 앉았다.
그 사이 머하노식당아주머니가 정신을 놓은 박성기회장에게 달려가 어깨를 부축했다.
“아이이고 아재. 이기 무신 봉변이가? 다친데는 없나? 내 알아 보겠나? 아이고 사람도 몬 알아보네?”
하모호선장은 포마드일행을 마치 유치장 같은 건어물보관실에 전부 가두어버렸다. 그리고 밖에서 자물쇠를 채운 후 쇠창살 앞에 열쇠를 던졌다. 키 큰 사람의 팔이 간신히 닿을 거리였다. 하모호선장이 옆에 있는 생선분쇄기를 가리켰다.
“너그! 다시 여 얼짱거리몬 모두 요다 갈아서 대게미끼로 쓸끼다. 알았나?”
포마드를 위시한 조무래기들이 일제히 ‘네’ 하고 대답했다.
“우리가 나간 후 30분 뒤 너그 재주껏 문 열고 나오든지 말던지 해라. 만약 일분이라도 먼저 움지꺼리는 놈 있으몬 대갈통 박살낼끼다 알았나?”
“네! 형님!”
박성기회장을 구출한 하모호선장은 일행과 함께 병원으로 돌아와 다시 링거를 맞고 있었다. 박성기회장은 하모호선장 앞에 끓어 앉아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큰형님. 큰 형수님 그리고 경매사님. 양망장어른, 통발반장님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그동안 너무 교만했습니다. 신의를 저버린 저를 용서하지 마십시오.”
머하노식당아주머니가 제일먼저 말했다.
“아재 용서할 사람이 여 오데 있노? 죄 안 짓고 신의 안버리고 산 사람 여 아무도 없다. 씰데없는 소리 하지마라.”
“큰형수님 정말 잘못했습니다. 정말 죽고 싶습니다.”
흐느끼는 박성기회장을 모두 숙연하게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 그 이상 어느 누구도 말을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한동안 박성기회장의 울음소리가 모두의 침묵을 흔들고 있을 뿐이었다. 숙연한 침묵은 계속되었다. 침울했다. 침묵을 깬 사람은 양망장이었다.
“여기 우리가 모인 거는 니가 잘나서 모인기 아이다. 하모호선장님이 모두 모이라캤다. 잘잘못은 차후문제고 우선 사람부터 구해야 하는 기라. 선장님이 안 나섰으몬 얼릉없다. 누가 나설끼고? 저 몸으로 혼자라도 니 구하러 간다카는데 우짤 수 없었능기라.”
박성기회장은 목이 잠겨 흐느끼지도 못했다. 목쉰 소리라 발음이 또록하지 않았지만 그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만 연발했다.
하모호선장이 박성기회장을 의자에 앉게 했다. 그리고 말했다.
“유기오. 왜 배타는 사람들을 한배탔다 그라는 줄아나? 의리가 아이다. 배 타는 순간, 한배안의 사람들잉기라. 그러니까 배안의 쌍둥이다 이 말이다. 한배 타는 사람들은 내 형제고 내 분신이란 말이다. 내가 니고 니가 내란 말이다. 그러니 조금도 미안해하거나 한때 잘못때매 자책할 필요는 없는기다. 당연한기다. 살다보면 누구나 신의를 버릴 때가 있능기다. 다만 말이다. 신의를 어짤 수 없이 버릿다캐도 이자삐몬잊어버리다안된다. 항상 가슴에 품고 살아야된다 이말이다. 유기오야!”
“네! 큰형님.”
“인자 유기오수산에 미련을 일단 접어라. 이럴 땐 우짜든지 몸을 피해야한다. 맞서 해결하려면 끝이 없다. 피해 놓고 시간을 벌어라. 그라고 다음을 기약해라. 저놈들이 언제 또 쳐들어올지 모른다. 저 놈들이 닥치몬 이번엔 우리 힘으로 몬막는다. 살아 있어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어디든 가라. 가서 당분간 쉬어라. 뒷일은 우리가 알아서 처리하꾸마할것이다.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주는기다.”
박성기회장이 고개를 들어 퉁퉁 부은 얼굴로 하모호선장을 바라봤다. 하모호선장은 고개를 꺼덕였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머하노식당에서 처음 경매사용어를 배울 때의 그 모습이었다. 그래서 하모호선장은 진심으로 박성기회장을 용서했다.
“큰 형님.”
“알았다. 우리 모두 니 심정을 안다.”
하모호선장의 말에 모두 고개를 꺼덕였다. 하모호선장이 갑판장에게 말했다.
“갑판장.”
“예, 선장님.”
“자네가 책임지고 유기오를 안전하게 보내라. 내가 생각하기엔 서울 쪽 말고 대구로 보내야 할꺼같다. 대구는 그 놈들이 생각하지 못할끼다.”
“예, 선장님 지가 책임지겠심더.”
박성기회장은 그날 밤으로 울진을 떠났다. 하모호선장과 갑판장 그리고 양망장, 통발반장과 경매사의 보호를 받으며 밤이 되기를 기다려 막 출발하는 대구행 마지막 버스를 탔다. 포마드에게 지갑마저 빼앗겨 가진 돈도 없었다. 허지만 그런 사소한 문제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한시라도 입구가 하나뿐인 울진을 빠져 나가야 했다. 버스가 터미널을 빠져 나가기 위해 서서히 뒷걸음칠 때였다. 허겁지겁 달려 온 머하노식당아주머니가 버스에 올라왔다.
“아재. 이거라도 가지고 가라. 모든 거는 우리한테 맡기고 항상 몸이나 단속해라 정착하몬 연락하고 알았재?”
박성기회장은 신문지에 싼 작은 도시락만한 뭉치를 받아들며 머하노식당아주머니의 손을 잡고 또 한 번 뜨겁게 흐느꼈다. 박성기회장의 떨고 있는 어깨를 다독이며 ‘사나 자석이 울긴 와 우노? 퍼뜩 그치라. 한번 웃어라. 내 아재 웃는 거 보고 갈끼다’라고 말했다. 박성기회장은 머하노식당아주머니를 쳐다보며 억지로 웃었다. 웃으며 말했다.
“큰 형수님. 꼭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죽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머하노식당아주머니도 웃으며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는 손을 흔드는 하모호사람들을 남겨두고 그길로 대구를 향해 달렸다.
“좌절하지마라 아재. 아재는 아직 젊다. 된서리 맞은 나무가 이듬해 더 많은 꽃피운다. 알았재?”
머하노식당아주머니의 말을 되씹으며 박성기회장은 돌아보고 또 뒤돌아보며 맹세했다. ‘꼭 되돌아오겠습니다. 꼭 되돌아 올 겁니다’
머하노식당아주머니와 갑판장 일행이 보이지 않았지만 버스가 울진항을 벗어날 때까지 박성기회장은 자꾸만 뒤돌아봤다.
그러나 그로부터 보름 후 하모호선장이 죽었다는 소식도 박성기회장은 듣지 못했다. 알지 못했다. 알 수 없었다.
버스가 한참 달린 후 머하노식당아주머니가 던지듯 주고 간 신문지를 풀었다. 비로소 시장기를 느꼈다. 3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박성기회장은 머하노식당아주머니가 주고 간 김밥도시락을 간절히 먹고 싶었다. 자꾸만 눈물이 떨어져 머하노식당아주머니가 주고 간 포장지. 신문지위에 뚝뚝 떨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김밥이 아니고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낡은 한 뭉치의 돈다발이었다.
박성기회장은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멍하니 머하노식당아주머니가 주고 간 돈다발을 바라보기만 했다. 눈물이 또 자꾸만 흘렀다. 수도관의 누수처럼 뚜둑뚝 떨어졌다.
자정을 두 시간 남겨 둔 시간이지만 고속버스대합실은 싸늘한 가을바람이 겨울바람 못지않았고 을씨년스러웠다. 박성기회장은 몸을 웅크리고 가급적 움푹한 곳에 쪼그리고 앉았다. 갈 곳이 없었다. 막상 대구로 오긴 했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대구에도 수많은 거래처가 있고 한때는 박성기회장을 만나고 싶어 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찾아 갈 수도 만나주지도 않을 것이 분명했다. 연락이 닿으면 오히려 소재를 알려 주느라 혈안이 될 사람들이었다. 무상한 생각이 들었다.
문득 읽던 만화속의 주인공이 생각났다. 그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시마무라 말이다. 시마무라도 사업에 실패하고 설국으로 갔을 때 이런 느낌이었을 것 같았다. 박성기회장은 문득 자신도 시마무라처럼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건을 해결하는 길은 자신이 이 세상에서 비눗방울처럼 둥둥 떠다니다 흔적 없이 사라지는 길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머리를 흔들었다. 하모호선장과 머하노식당아주머니를 떠 올리자 죽음만이 다가 아닌 것 같았다. 살아서 다시 한 번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빚을 갚기 전엔 죽을 수 없었다. 특히 머하노식당아주머니에게. 그러나 금세 또 생각이 바뀌었다.
어떤 사람이 대합실의 난간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몇 번이고 라이터를 켰다. 불은 켜졌지만 가을바람에 쉽게 담뱃불을 붙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또 라이터를 켰다. 라이터에서 뻔쩍 작은 마찰 섬광이 일었다.
그 순간 죽은 번개가 생각났다.
“또 잊어버렸다요? 자은이라 안캅뎌? 자은. 자은도엔 아직 굶어 죽은 사람이 없당께요. 워낙 인심이 흔항께.”
박성기회장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눈앞에 택시가 있었다.
한걸음에 대구역으로 달려갔다.
대구역에 대전경유 목포로 가는 0시50분 호남선야간열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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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란 살아가는 가치관과 삶을 풍족하게 만들어 주는 보석"
첫댓글 새벽에3시전에일어나서 법당에서 외롭고 먼저가신울 법사님의 친구분을 위하여 천도재를하려고 상을 차리고나왔습니다
살아남은자들은 먼저가신분들을위하여 음식을 장만하고 마음과 정성을 다 하여서 그들을위한 극락왕생의기도를합니다
살아생전에 그들의 아픔을 씻어주고 살아생전에 많은 인연들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자 천도재라는 의식을 절에서는 합니다
미움도 정도 야속함도 섭섭함도 다 버리고 오로지 그들을위한 기도를합니다
좋은곳을 향하여 밝게 가시라고 ,,,,,,,,,,,,다음생에는 좋은 인연으로 만나기를바라면서 ............먼저가신부모님이나 형제자매를위한 최고의 기도이며 제일 큰복을 짓는지름길입니다.
그리고 열심히글도잘보고나갑니다
그러셨군요...천도제..참 힘들다던데...스님 건강이 염려됩니다
법사님 도 마음 아프시겠구요.
그래도 법사님 같은 친구분 둔 그 분은 행운아입니다
오늘도 영명의 날되십시오
아이고!!!!! 궁금해라!!!!!
인제 끝나니까 좀만 기다려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