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애는 본래 피해망상적이며 따라서 끊임없이 숨으려고 한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 대해, 작성 중인 상세한 서류를 보유하고 있고
그것을 세계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오늘날의 컴푸터 세상에서는 어리석은 일이다.
사생활의 모든 세부사항이 누적된 자취로서 자동적으로 드러나는데,
그 자취를 따라가면 일체의 구매 행위, 웹사이트 조회, 재정적 조처가 드러나고,
또한 관심사, 정치, 교육, 그리고 더 많은 것에 대한 단서가 드러난다.
만인이 공적 영역에서 살아가며,
항의자는 항의자로 확인되어 인터넷 데이터베이스에 등재될 뿐이다.
왜곡된 지각의 투사는
정치적 압력단체들이 그것을 정부 기관에 잘못 적용할 때 재앙에 가까운 악영향을 낳는다.
미국 대사관과 군사작전에 영향을 미치는, 미국과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요즘의 재난들은,
선의에서 나왔으나 순진하고 비현실적이어서
시민의 생명과 안녕을 보호하는 관계 기관의 능력을 훼손시키는,
중요 기관들에 대한 제한 조처에 뒤이어 일어난 뜻밖의 귀결들이다.
역사적으로, 동일한 순진성으로 인해
전쟁성 장관 스킴슨(180으로 측정)은 2차 대전 이전 일본의 동향에 대한 사전 경고를 무시했는데,
그것은 네빌 침벌린(185로측정)이 보여 준 현실 검증력 결핍으로 야기된 것과 비슷한 사건이었다.
챔벌린은 히틀러를 만난 뒤 '우리 시대의 평화'라는 구호를 들고 영국에 돌아왔다. (히틀러는 그의 '우둔함'을 조소했다.)
테러리즘과의 타협은 155로 측정된다.
그것은 나약함이자 비겁함으로 얕잡아 보이며 공격성(즉 , 늑대 무리의 동물 정신 상태)을 불러들인다.
측정 수준 200 이하에서, 강자는 약자를 공격한다.
200 이상에서, 강자는 약자를 보호한다.
합리화된 책임감 결핍은, 보다 분명히 드러난 피해자 대신에
세상에서 가장 퇴폐적이고 위험한 이들에게 공감하는 변증자의 위치성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이렇듯, 낮은 마음은 자기애적 에고의 도구가 되는데,
작용하는 그것의 병리는 너무 심해서 60으로 측정되는 메시아적 과대망상광과
460으로 측정되는 온전한 정치인을 구별하지 못한다.(즉, 친구 같은 개와 코모도왕도마뱀을 구별하니 못한다.)
그리하여 유아적 에고는 사회 전반을 미워하지만,
특히 정부와 같은 사회의 대표 기관들, 학교, 산업, 자본주의, 성공한 상업, 대기업 ,
혹은 진짜 승리자와 성공한 이들을 미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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