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역에서 출발한 KTX를 타고 광주송정역에 내리자 평마 희종형님과 친구들이 반긴다. 커피 한잔을 하고 행사장으로 향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예보상으로는 곧 그친다고 해서 따로 우비를 챙기지 않았다.
오후 5시 출발신호와 함께 희종형님은 빠르게 치고 나가고 송암과 경희는 후미에서 천천히 움직였다. 그 중간쯤에서 5분 50초 페이스를 유지하며 가고 있을 때 대학동기인 장수가 따라오며 함께 가자고 한다.
자전거길은 17km를 지나자 둑길로 이어졌다. 2cp에서는 바나나와 방울토마토를 넉넉하게 챙겼다. 24km 지점, 5.18 묘지를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대회 덕분에 입구라도 봤으니 다행이다. 25km 지점에서 50km 주자들과 이별하고 석곡천 둑길로 향했다. 함께 가던 장수가 힘에 부친다며 먼저 가라고 한다.
주로 바닥에 화살표로 표시는 했지만 혼자 갈 때는 불안하다. 갈림길에서 직진하는 경우 따로 표시를 하지 않아 더욱 불안하게 했다. 앞뒤로 주자의 간격이 벌어지면서 후반으로 갈 수록 더욱 심해졌다.
cp마다 먹걸이는 충분하게 비치되어 있었다. 허기가 질 때쯤에는 가래떡이 등장했다. 파워젤은 전혀 필요 없고 평소 갖고 다니던 아미노산 2개와 커피 2봉지만 있으면 되었다. 안개비가 흩뿌리는데도 반딧불이가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논밭에는 개구리소리 요란했다. 청량한 시골 느낌이 물씬 났다.
1차 반환점까지는 걸어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반환점에서 박카스를 마시고 가래떡을 먹으며 내려섰다. 1.5km쯤 내려서자 송암과 경희가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40km를 넘어서 아무도 없는 주로에서 첫 울트라 대회를 참가하는 신건(79년생) 주자를 만났다. 길이 애매할 때면 그 친구가 인터넷을 열어 알려줬다. 42km는 4시간 34분에 통과했다.
5시간 40분 걸쳐 도착한 51km 지점 유둔재 입구에서 식사를 했다. 찹쌀밥과 된장국 맛이 일품이어서 두그릇을 비웠다. 이 지점부터 가로등이 없는 곳이 많고 차량이 다니지 않는 옛날 도로를 따라 올라가야 하기에 랜턴이 꼭 필요했다. 두 번째 울트라마라톤을 참가하는 유규종(78년생) 주자가 따라 붙으며 셋이서 동행하기 시작했다. 유규종은 랜턴을 준비했지만 얼마 못 가서 작동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골인할 때까지 렌턴불을 공유하기로 했다. 셋이서 오르막은 걷고 내리막은 뛰면서 발을 맞췄다. 7cp까지는 꽤 길게 느껴졌다. 호남정맥인 안양산 휴양림 입구를 지나 한참을 걸어올라 큰재 정상에 위치한 7cp에 도착했다. 넉넉하게 과일을 먹고 가파른 내리막을 배에 힘을 주고 잔걸음으로 내려섰다.
80km 지점에서 너릿재가는 좁은 시멘트 도로로 갈아탔다. 따라오던 신건 주자가 갑자기 사라졌다가 너릿재 비포장도로를 올라가고 있을 때 나타났다. 매점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먹고 왔다고 했다. 세대차이를 인정해야겠지만 섭섭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너릿재 정상에서 누룽지 한 사발을 비우고 쉼 없이 달려 내려갔다. 큰 도로가 나타나더니 다리를 건너 삼거리 있는 곳까지 한달음에 내려갔다. 그런데 삼거리에는 아무런 표시가 보이질 않았다. 마침 행사차량이 보이길래 길을 물었더니 잘 모르겠다고 한다. 한참을 검색하더니 따라오라고 하지만, 길이 없으니 다리가 있는 곳까지 가보라고 한다. 두 주자는 중간에 무돌길을 찾아 들어갔고 나는 잘못 진입한 지점까지 가서 무돌길을 찾아들어갔다. 1km 이상 알바를 했고, 10분 정도의 시간허비가 생겼다. 나중에 보니 삼거리에서도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있는데 그분들이 찾지 못했던 것이다.
광주천을 따라 92.8km 지점에 위치한 마지막 cp에서 수박화채 세그릇을 비우고 셋이서 함께 광주시청 야외음악당에서 100km 여정을 마칠 수 있었다. 1km를 알바하는 바람에 안장수가 3분 먼저 도착해 있었다. 80km 지점에서 왼쪽 옆구리를 꼬집으며 당기는 느낌이 있어 원인을 찾아보니 진드기였다. 검은 피를 잔뜩 머금은 콩알만 한 진드기가 내 몸에 달라붙어 피를 빨고 있었던 것이다. 이틀 전 현충일에 산에 갔다가 진드기를 옮긴 것 같다.
사우나를 마치고 잠깐 눈을 붙인 후 광주송정역 시장 입구 장터식당에 들어갔다. 모듬고기 안주에 막걸리를 꽤 많이 마셨다. 송암이 진작부터 산다고 해서 본인이 계산했다. 친구덕에 잘 먹고 목포 집에 편하게 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