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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창간 50년 특집] 한국엔 기회의 땅 … 러시아의 별을 가다
[중앙일보 창간 50년 특집] 한국엔 기회의 땅 … 러시아의 별을 가다 |
| 1 극동 러시아 지역의 젖줄 아무르강은 하바롭스크에서 남쪽에서 흘러온 우쑤리강(왼쪽 아래)과 만난 뒤 크게 방향을 틀어 북동쪽으로 흘러간다. | |
[중앙일보 창간 50년 특집] 유라시아 극동 관문을 가다, 1만 3000km 르포 한국인 없어도 곳곳에 한국제품 … 아무르강 따라 한류 꿈틀
중국과 러시아를 가르는 국경 역할을 했던 아무르강이 중 · 러 교역 통로로 용틀임하고 있다. 두 나라 간 교역이 확대되면서 국경 주변의 도시 모습도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APOCC)과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전문가가 동행한 중앙SUNDAY 취재팀은 지난 12~21일 중국 북부와 러시아 극동지방의 젖줄인 아무르강과 레나강을 탐사했다. 아무르강 중상류인 헤이허(黑河)를 시작으로 러시아 블라고베셴스크와 하바롭스크를 거쳐 강 하구인 니콜라옙스크나아무레(이하 니콜라옙스크)로 이어진 9박10일간의 탐사 동안 지역의 흥망성쇠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취재팀은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을 거쳐 지난 13일 북쪽 국경도시 헤이허에 도착했다. 헤이허는 아무르강(중국 이름 헤이룽강)을 사이에 두고 러시아 블라고베셴스크와 마주 보고 있는 도시다. 전체 길이가 2800㎞에 이르는 아무르강 에서도 비교적 상류에 해당하는 곳이다. 헤이허 중심가에는 20층이 넘는 대형 호텔이 건설 중이었고, 기차역도 새로 들어섰다. 헤이허 외곽의 ‘변경 경제합작구’ 에서는 한꺼번에 대형 공장 7~8개를 짓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 2 아무르강 상류에 위치한 중국 헤이허의 출입국관리사무소. 러시아로 들어가는 여객선을 타기위해 중국 상인들이 짐과 가방을 나르고 있다. |
극동 러시아와 중국 연결 초읽기
| | 3 아무르강을 다니는 중국 유람선의 오성홍기 뒤편으로 러시아 국경수비대 경비함이 보인다. | | 상하이 푸단대 국제정치학과의 이창주 연구원 (박사과정)은 “러시아와의 무역을 염두에 둔 중국의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 며 “헤이허와 블라고베셴스크가 철도 · 도로로 이어지면 극동 러시아 전체가 중국과 연결되는 것” 이라고 말했다. 헤이허와 블라고베셴스크는 양국이 육로로 접근할 수 있는 곳이어서 물류 루트로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헤이허와 블라고베셴스크 두 도시 사이를 흐르는 아무르강은 한강이 서울의 강남 · 북을 나누는 것과 흡사했다. 강 너비도 1㎞ 남짓해 엇비슷했고, 중국에 가까운 곳에는 여의도처럼 작은 섬도 있었다. 하중도에는 중국 측 출입국관리사무소와 두 도시 사이를 오가는 여객선 부두가 들어섰다.
하중도에는 중국과 러시아 상품을 파는 대형 쇼핑센터 두 개가 있다. 가게를 둘러보니 없는 게 없을 정도였다. 중국 상인이 러시아 상표가 붙은 쌍안경과 마트료시카 인형까지 팔았다.
아무르강 양쪽에는 양국 주민들이 물놀이와 낚시를 했다. 서울의 한강 유람선처럼 중국 측 유람선을 타고 두 도시를 한 시간 동안 둘러봤다. 중국 유람선과 러시아 국경수비대의 경비함이 평온하게 오갔다.
아무르 강물은 헤이룽강이란 이름이나 헤이허란 도시 이름처럼 짙은 갈색이다. 숲이나 습지에서 흘러나오는 강물은 타닌 성분 때문에 갈색을 띠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강현 APOCC 원장은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흑수말갈도 이 아무르강과 연관이 있다” 고 말했다. 취재팀이 찾은 중국 하얼빈시 중심가의 헤이룽장성 박물관에서는 특별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주제는 “백산(白山), 흑수(黑水), 해동청(海東靑)’. 백두산과 헤이룽강, 한반도산(産) 맹금류인 매를 가리키는 것으로 극동 러시아의 젖줄인 아무르강이 우리 민족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북한 노동자들이 러시아 가는 통로
교역량이 늘고 있지만 두 도시를 잇는 다리는 없었다. 취재팀을 안내한 허우쓰웨이(44)는 “중국이 두 도시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고 서둘러도 중국 사람들이 너무 밀려드는 걸 경계하는 러시아 쪽에서 자꾸 미루는 상황” 이라고 말했다. 대신 두 나라 사이에는 여객선이 오가고 있었다. 여객선은 하루 8번 왕복한다. 중국 측 배가 네 번, 러시아 측 배가 네 번 오간다. 중국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은 “중국 사람은 중국 여객선을, 러시아 사람은 러시아 여객선만 타야 한다” 며 “한국인도 중국 여객선에 승선해야 한다” 고 설명했다. 하지만 막상 러시아 측에서는 러시아 여객선을 타는 게 맞다며 이미 내린 취재팀에게 또다시 뱃삯을 요구했다. 실랑이 끝에 어쩔 수 없이 1인당 300루블(약 6000원)을 더 내야 했다.
취재진이 탑승한 중국 여객선에는 커다란 가방과 짐 꾸러미를 든 ‘보따리 장수’ 가 눈에 띄었다. 한국인이란 말에 20대 여성들은 활짝 웃으며 “안녕하세요” 하며 반겼고, “안녕히 가세요” 하며 손을 흔들기도 했다. 한국 TV드라마를 보고 배웠단다. 한국 사람이 드문 중국 북쪽 국경지대에서도 한류(韓流) 바람이 닥친 모양이다.
배에서 만난 30대 중국 여성은 두 시간 뒤 블라고베셴스크 내 대형 시장에서 다시 마주쳤다. 블라고베셴스크 시장과 쇼핑센터는 중국에서 건너온 옷과 신발, 다양한 생필품으로 넘쳐났다. 상점에서 일하는 상인들도 대부분 중국인이었다. 시내 거리나 레스토랑에서도 중국인이 많았다.
중국 · 러시아 간 교역이 늘어나자 북한 노동자들도 러시아로 드나들고 있다. 현지 여행사 관계자는 “북한 노동자들이 북한에서 중국 단둥(丹東)까지 기차로 이동한 다음, 단둥에서 20시간 버스를 타고 헤이허로 온 뒤 러시아로 들어간다” 고 했다. 30~45세의 남자들이고 20~100명 단위로 이동하는데, 러시아 곳곳에서 도로 건설 등에 투입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3~6월에는 러시아 쪽으로 자주 들어가고 9~10월에는 북한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KMI의 황윤희 연구원은 “2012년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렸던 아시아 · 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도시를 정비할 때 북한 노동자들이 집중 투입된 적이 있다” 고 말했다.
취재팀은 15일 야간 열차를 타고 하바롭스크로 이동했다. 하바롭스크 근처에 이르면 아무르강은 러시아와 중국을 가르는 국경의 역할을 멈추고 온전히 러시아 영토로 들어서게 된다. 또 중국 쪽에서 흘러온 우쑤리강과 합쳐져 북동쪽으로 방향을 크게 튼다. 아무르 강변에 위치한 하바롭스크에서는 한국인 여행객 모습도 눈에 띄었지만 중국인 · 일본인 여행객의 모습이 훨씬 더 자주 눈에 띄었다.
한국외대 김현택 러시아연구소장은 “러시아로서는 중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융단 폭격처럼 중국 상품이 밀려드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적지 않다” 며 “러시아 사람들이 저가의 중국 상품에 실망하게 되면 한국 상품에 눈을 돌릴 수도 있고, 그게 한국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고 말했다.
환동해 시대 맞이해 주시해야 할 지역
취재팀은 다시 16일 아무르 강 하구 도시인 니콜라옙스크로 출발했다. 44인승 쌍발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기 위해 하바롭스크 공항에 나갔지만 비행기가 예정보다 6시간이나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늦은 밤에야 니콜라옙스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비행기는 좌석 지정도 없었고, 가방도 공항 밖까지 트럭에 실려온 것을 직접 줄 서서 받아야 했다.
이곳에서 아무르강은 강폭이 5~6㎞까지 넓어졌고 특유의 갈색 물빛을 보이며 도도히 사할린 쪽 타타르해협을 향해 흘렀다. 니콜라옙스크 항만관리사무소 안드레이 스피리도노프 소장은 “11월 하순부터 이듬해 3월 초순까지는 강과 바다가 얼어붙어 항구로서 기능을 못한다” 며 “과거 선장으로 일할 때 한국의 부산 · 마산 · 인천에도 가 봤지만 니콜라옙스크에 한국 사람이 방문한 것은 본 적이 없다” 고 말했다. 한인들이 찾지 않는 이곳에도 한국 제품은 가득했다. 호텔 객실 이불에는 ‘향 마이크로’ ‘음이온’ 이란 글자가 선명했고 전화기도 LG 제품이었다. 또 호텔 로비에는 삼성 TV가, 아파트 건물에는 LG 에어컨 실외기가 달려 있었다. 수퍼마켓에는 한국 과자와 라면, 기아자동차의 1t 트럭도 눈에 띄었다.
주강현 원장은 “한국인이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아무르강 유역이지만 한류 바람과 한국 제품 덕에 벌써부터 한류 바람이 불고 있다” 며 “환동해 시대를 맞아 한국이 적극적으로 주시해야 할 곳” 이라고 말했다.
- 중앙선데이 | 제 446 호 | 헤이허·블라고베셴스크·하바롭스크·니콜라옙스크=강찬수 환경전문기자 | 2015.09.26 |
[중앙일보 창간 50년 특집] 유라시아의 극동 관문을 가다 |
영구동토의 땅에도 개발 굉음 야쿠츠크는 극동 러시아의 별
[중앙일보 창간 50년 특집] 유라시아의 극동 관문을 가다 극동 러시아 사하 자치공화국의 수도 야쿠츠크 에서 남서쪽으로 100여㎞ 떨어진 파크롭스크. 레나강이 내려다보이는 자작나무 숲 사이로 굉음이 울린다. 대여섯 대의 불도저가 동시에 흙더미를 밀어낸다. 구불구불하고 비좁은 진흙탕 길을 펴 왕복 4차로의 도로를 만드는 현장이다.
이곳은 서쪽 우다치니 · 미르니의 다이아몬드 광산과 남쪽 천연가스 생산지역을 야쿠츠크와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다.
지난 20일 야쿠츠크를 22년 만에 다시 찾은 주강현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원장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작고 낡은 건물뿐이었는데 고층 빌딩이 즐비해 상전벽해를 느낀다” 고 했다.
석유와 천연가스 · 다이아몬드가 풍부한 이 지역, 극동 러시아는 대한민국엔 기회의 땅이다. 중앙일보 창간 50년 기획으로 지난 12~21일 중앙SUNDAY는 한국해양수산개발원 · 해양문화연구원과 함께 취재팀을 꾸려 1만3000㎞에 이르는 극동 러시아의 사하공화국과 아무르 유역을 탐사했다. 극동 러시아는 이들 지역과 연해주 · 캄차카 등이 포함된 지역이다.
한적했던 동토(凍土)의 땅 야쿠츠크의 성장은 놀라웠다. 중국 · 호주의 돈이 몰려오면서 곳곳에 호텔과 고층 빌딩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극동 러시아의 별’ 로 떠오르고 있는 현장이다. 80년대 말 18만 명이었던 인구도 조만간 30만 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취재팀을 안내한 김현하 더투어클럽 러시아 지사장은 “호주 기업가와 관광객의 왕래가 부쩍 늘고 있다” 며 “야쿠츠크 국제공항도 2011년 새 단장했다” 고 말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 자본의 진출이 적극적이다. 중국은 지난해 5월 러시아로부터 매년 380억㎥의 천연가스를 2018년부터 30년간 공급받기로 계약했다. 양국은 야쿠츠크에서 생산된 천연가스를 블라디보스토크로 보내는 4000㎞의 가스관도 건설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총 50억 달러(약 6조원)가 투입된다.
러시아 가스 자원의 27%, 석유의 21%, 석탄의 45%가 묻혀 있는 극동 러시아는 자원 빈국인 한국에는 미래의 땅이다. 지구온난화로 열리게 될 북극 항로의 교두보이기도 하다.
북극해의 얼음이 녹으면 한반도에서 베링해협을 돌아 유럽으로 가는 북극항로가 열린다. 2040년 이후 연중 쇄빙선 없이 운항이 가능해지면 사하공화국은 북극항로를 통해 한반도와도 연결된다.
하지만 한국의 진출은 미미한 수준이다. LG상사가 2011년 야쿠츠크시에 8층짜리 LG 사하센터 건물을 짓고 자원개발과 도로 등 인프라 구축사업 참여에 나선 정도다. 이양구 전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는 “나노 · 바이오 등 한국의 첨단기술과 극동 러시아의 자원이 결합되면 성공적인 상생 모델이 될 수 있다” 며 “한류를 통한 문화 교류와 체계적인 선제 투자가 필요하다” 고 강조했다.
기회는 눈에 보이지만 우리를 마냥 기다려주지는 않는다. 강덕기 한국외대 러시아어과 교수는 2013년 야쿠츠크와 레나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니즈니베스탸흐까지 철도길이 열린 것에 주목했다. 강 교수는 “야쿠츠크 동쪽을 흐르는 레나강 위에 다리가 건설되면 야쿠츠크는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철도로 바로 연결된다” 며 “아무르강 남쪽에 머문 우리의 북방 진출을 강 너머 극동 러시아 전체로 확대하는 전략을 연구해야 한다” 고 말했다.
- 중앙선데이 | 제446호 | 야쿠츠크·하바롭스크=강찬수 환경전문기자 | 2015.09.26 |
[중앙일보 창간 50년 특집] 시베리아에서 만난 원시의 자연 |
| 1 러시아 야쿠츠크 남서쪽 강변에 펼쳐진 레나 필라. 높이 200m 안팎의 바위기둥이 80㎞나 펼쳐져 있다. | |
레나 강변에 펼쳐진 80km 바위기둥 … 거제 해금강 수백 개 이어 놓은 듯
[중앙일보 창간 50년 특집] 시베리아에서 만난 원시의 자연 20일 오후 러시아 사하공하국의 수도 야쿠츠크에서 남서쪽으로 200여㎞ 떨어진 레나 강변. 2012년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등록된 ‘레나 필라(Lena pillar) 자연국립공원’ 에는 높이 200m 안팎의 기기묘묘한 바위기둥들이 레나강 우안(右岸)을 따라 거대한 성벽처럼 줄지어 서 있었다. 웅장한 경관에 입이 딱 벌어졌다. 러시아 안내인은 “바위기둥이 강변을 따라 80㎞ 연이어 펼쳐져 있다” 고 설명했다.
취재팀은 레나 필라를 찾기 위해 이날 오전 7시30분 낡은 버스를 타고 야쿠츠크 시내를 출발했다. 자작나무와 가문비나무 숲 사이로 난 포장·비포장 도로를 5시간 동안 달려 레나 강변에 도착했다. 모터보트로 갈아타고 강변으로 눈을 돌리니 우뚝 선 붉은 회색의 바위기둥들이 풍광을 이뤘다. 사람 모양도, 손과 발을 확대해 놓은 것 같은 모양도 있었다. 피라미드를 잘라낸 것처럼 커다란 세모꼴을 한 것도 눈에 들어왔다. 모터보트로 20여 분을 달렸지만 전체의 일부분인 10㎞ 정도를 보는 데 그쳤다. 러시아 안내인의 말대로라면 이곳 바위기둥은 우리나라 거제도의 해금강이나 부여 백마강 낙화암 수백 개를 이어놓은 것처럼 장대했다.
레나 필라 바로 아래 강변에 도착해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운 뒤 러시아 국립공원 관계자의 안내를 받으며 레나 필라에 올랐다. 뒤쪽 산등성이로 우회해서 바위기둥까지 오르는 2㎞의 등산로는 가팔랐고, 가랑비가 내려 미끄러웠다. 200m 높이의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바위기둥과 레나강 모래톱의 경치는 세계자연유산으로 손색이 없었다.
레나 필라는 고생대 캄브리아기 초 · 중기에 쌓인 지층이 바탕이 됐다. 바다에 잠겼다, 드러났다 하면서 석회암 · 이회암 · 백운암 · 점판암 등이 번갈아 쌓인 지층이다. 40만 년 전 지각 활동에 의해 이 지층이 놓인 시베리아 판이 200m가량 솟구쳐 올랐고, 이후 침식이 일어나면서 지금 같은 모습을 띠게 됐다. 특히 여름에는 아주 덥고 겨울에는 추위가 극심한 이곳 기후까지 작용하면서 영구동토(permafrost)와 열카르스트(theromokarst) 활동이 누적됐기 때문이다. 열(熱)카르스트는 겨울에 얼었던 땅이 여름에 녹으면서 호수가 만들어지는 현상이다.
러시아 안내인은 “레나 필라는 국립공원 지역이라서 탐방객이 머무는 시간도 제한하고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도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며 “대부분 여름철 유람선을 타고 지나가며 관람하고, 모터보트에서 내려 필라를 직접 탐방하는 경우는 한 달에 수십 명 정도에 불과하다” 고 말했다.
야쿠츠크 시내에 있는 멜니코프 동토연구소는 영구동토층 속의 생물과 암석이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1941년에 세워진 이 연구소 지하 5~12m에는 영구동토층의 실상을 한눈에 보여주는 터널이 층별로 설치돼 있다. 영구동토층에서 채취한 화석과 얼음에 갇힌 물고기와 야생화를 연구하기 위해 항상 영하 7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연구소 박물관의 로잘리야 이바노바 관장은 “오래된 나무는 썩어 없어지거나 화석이 되는데, 영구동토에 묻힌 나무는 수천 년이 지나도 최근에 묻힌 것과 다름없는 상태를 유지한다” 고 말했다.
지구온난화로 영구동토층에 묻혔던 생물 사체가 녹으면서 온실가스인 메탄이 대량 방출돼 지구온난화를 부추길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바노바 관장은 “그럴 가능성이 있지만 배출량이 많지 않아 크게 걱정할 상황은 아니다” 고 대답했다.
이에 앞서 취재팀은 18~19일 하바롭스크 지방의 작은 도시 오호츠크를 찾았다. 드넓은 오호츠크해(海)의 이름이 바로 이 도시에서 나왔지만 인구 4000여 명의 작은 도시에 불과했다. 오호츠크해는 사할린과 캄차카 반도 사이에 위치한 158만3000㎢ 넓이의 바다로 남한 면적의 15배가 넘는다. 17세기 중반 러시아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해 35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 | 2 오호츠크시 도로에서 마주친 북극여우. 자연이 숨쉬는 시베리아에는 다양한 동식물이 살고 있다. | | 오호츠크의 자연경관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선착장 바로 앞 바다에서 유유히 헤엄쳐 다니는 물범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오호츠크 시내와 공항을 연결하는 비포장 자갈길 도로에서 취재팀은 북극여우와 마주치기도 했다.
오호츠크 향토박물관은 규모가 작았지만 곰과 참매 · 큰회색머리아비 · 두루미 · 도요새 등의 다양한 동물 박제가 전시돼 있었다. 일부 도요새는 호주에서 한반도 서해안을 거쳐 캄차카와 알래스카까지 1만㎞를 이동하는데, 이곳 오호츠크 지역도 중요한 중간 기착지인 모양이었다. 시베리아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였지만 오호츠크 박물관에도 매머드의 커다란 엄니(tusk)와 치아 화석이 전시돼 있었다. 시베리아 지역은 먼 과거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생물이 살아가는 서식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 중앙선데이 | 제446호 | 야쿠츠크·오호츠크=강찬수 환경전문기자 | 2015.09.26 |
[중앙일보 창간 50년 특집] 유라시아의 동쪽 출발점 환동해 |
“동해 · 오호츠크해는 호수 같은 바다 … 국가 · 종족 뒤섞이는 문명의 회랑”
[중앙일보 창간 50년 특집] 유라시아의 동쪽 출발점 환동해 유라시아 동쪽에 거대한 두 개의 호수 같은 바다가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의외로 모른다. 한국 · 일본 · 러시아 등으로 둘러싸인 동해, 캄차카와 쿠릴열도 · 홋카이도 · 사할린 등으로 둘러싸인 오호츠크해가 그것이다. 우리에게 오호츠크는 가을철 일기예보에나 등장할 뿐이다.
남한이라는 섬 논리에서 벗어나 북방 바다로 나아가는 인식 전환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환동해 북방전략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여러 나라와 종족들로 둘러싸인 ‘문명의 회랑 (回廊)’이기 때문이다. 이 회랑을 둘러싸고 남북한과 일본 · 러시아·중국, 그리고 몽골이 상호 교섭하며 문명사적 파장을 일으키며 교호(交互)해왔다.
오늘날 부산 · 포항 · 동해 · 속초 등 동해안 도시들은 저마다 환동해 시대를 부르짖는다. 해양수산개발원(KMI)이 중앙SUNDAY와 기획한 아무르강 · 오호츠크해 · 레나강 탐사는 한반도가 나가야 할 북방 미래를 예감하는, 어쩌면 새벽을 여는 발걸음이다.
| | 아무르강 하구에 살았던 니브흐족의 우리 장승을 닮은 신상과 샤먼의 북. | | 우리들의 북방 상한선이 만주에 머무른다면 그 정점에 아무르강이 있다. 러시아 남방전략의 최대 한계선이 다롄까지 이어진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내뻗었다면 그 정점은 하얼빈이다. 탐사대는 하얼빈 헤이룽장(黑龍江)성 박물관에서 발해 유물의 진수와 금 · 요 · 여진족 등으로 상징되는 제(諸) 민족의 발자취를 만났다. 아라사와 청이 끈질기게 다투었고, 근래에는 1950년대까지 국경 분쟁을 일으킨 곳이 바로 아무르강이다. 정작 아무르강역은 청나라도 아라사도 아닌 소수민족의 본향이었다.
1858년 중국 · 러시아 간 국경조약인 아이훈조약이 체결된 헤이허(黑河) 건너편의 블라고베셴스크는 실카강이 합류하는 전략 거점으로 중국과 직면하고 있는 국경도시다. 탐사대의 노선은 상류의 블라고베셴스크로부터 중류의 하바롭스크, 그리고 강 하구의 니콜라옙스크나아무레(이하 니콜라옙스크)에 이르렀다. 니콜라옙스크는 한국인이 거의 찾아오지 않는 곳이라 손님 접대가 융숭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정작 스탈린에 의해 강제 이주 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니콜라옙스크에는 한국인이 살고 있었다.
| | 아무르 강변에 살았던 울치족의 신상(작은 사진). 우리의 솟대와 같다. [하바롭스크박물관] | | 아무르강 하구에 타타르해협이 있고, 사할린이 대척점에 있다. 아무르강 하구는 니브흐를 비롯한 다양한 민족이 살던 ‘인종의 용광로’였다. 사할린과 홋카이도로 넘어가던 산단 무역의 길목이기도 했다. 아무르강은 동북아 민족의 젖줄로 기능해왔으며, 쑹화(松花)강 등의 수많은 지류로 연결되고 북방 세계를 적시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이 거대 강물은 동해로 흘러들어가 바다와 강은 끝내 한 몸이 될 수밖에 없다는 장엄한 진리를 보여준다.
17세기 차르의 시베리아 정복은 마지막 단계를 밟고 있었다. 야쿠츠크에서 동쪽으로 720㎞ 떨어진 태평양 연안에 오호츠크 요새가 세워진다. 이 요새는 향후 200여 년간 태평양 연안에서 러시아의 중요한 기지가 됐다. 러시아 북태평양 극동 경영의 최종 거점이 캄차카라면, 오호츠크는 베이스캠프였다고 할까.
한때 탐험가들이 모여들고 고기 떼로 영화를 구가하던 오호츠크는 역사적 임무를 끝내고 기울어졌으며, 후배 도시 마가단에 번성을 넘겨준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긴다는데 오호츠크시는 몰락했어도 오호츠크해란 이름을 남겼다. 육로로 외부와 일절 연결되지 않는 감옥과도 같은 오호츠크시를 벗어나자면 화물과 사람을 한꺼번에 싣고 버스 규격과 비슷한 44인승 프로펠러 ‘마을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한다.
사하공화국 수도인 야쿠츠크는 내륙으로 분류되지만 알단강을 통해 오호츠크해에 접근할 수 있고, 레나강을 통해 북극해와 만난다. 터키계 유목민이 원주민 에벤크 · 에벤스 · 유카기르 등과 혼혈을 이루었기에 우리와 동일한 몽고반점의 몽골리언이다.
야쿠츠크가 그 옛날 모피 집산지였다면 오늘날은 가스 · 다이아몬드 · 금이 쏟아지는 자원의 보고(寶庫)답다. 시베리아 최다 민족 구성원을 거느린 사하족이지만 러시아의 강한 힘에 둘러싸인 ‘맹지(盲地) 국가’다. ‘공화국’ 명칭은 얻었지만 내부 사정은 만만치 않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는 망상(網狀) 구조로 구축되며, 북극권에서는 레나강까지 발을 뻗는 중이다. 중국 자본이 이곳 북극권까지 흘러들어온다. 강을 통해 북극해로 그대로 나아가서 유럽 가는 항로를 염두에 두는 중이다. 탐사대 루트는 레나 강변의 80㎞ 길이의 거대 돌기둥 군락을 보트로 이동해 정상까지 오르는 데서 멈췄다. 북극해 항로 개척이 다가오는 미래로 우리 곁에 훌쩍 와 있으니, 조만간 다음 탐사를 조직해 북극까지 그대로 내려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일대일로(一帶一路) 중국이 추진 중인 신(新) 실크로드 전략이다. 중앙아시아와 신장자치구 · 산시성 · 네이멍구 · 지린성 · 헤이룽장성을 연결하는 육상 실크로드(一帶)와 광저우 · 선전 · 상하이 · 칭다오 · 다롄 등 연안 도시에 동남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잇는 해상 실크로드(一路)를 뜻한다.
- 중앙선데이 | 제446호 | 주강현 제주대 석좌교수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장 | 2015.0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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