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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림동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승리의 어린 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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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림동성당 스테인드글리스 '부활' |
우리나라에서 직접 방문해 감상할 만한 스테인드글라스를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마다 고민이 되곤 한다.
모든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에는 호불호가 존재하고 개인 취향에 따라 느끼는 바가 상당히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선뜻 어떤 특정 작품을 추천하기에는 늘 조심스럽다.
그러면서도 떠올리게 되는 몇 작품이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오늘 소개할 제천 의림동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이다.
2004년에 완성된 충북 제천 의림동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성당 건축 당시 계획된 작품은 아니었다.
성 베네딕도 수도회의 알빈 슈미트 신부가 설계한 의림동성당(1965)은 변형된 십자형 평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성당 내부에는 제대 쪽과 성가대석 양옆 벽 그리고 성당 측면과 세례대 쪽에 각각 두 개씩의 창이 배치돼 있다.
신자 향한 작가의 배려가 녹아 있어
의림동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디자인한 마르크 수사는 건축가의 의도대로 지나친 장식을 배제하고 최대한 절제된 스테인드글라스를 실현하고자 했다.
우선 작가는 제대를 중심으로 신자들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에 놓인 창들은 모두 차분한 색조로 처리해 미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또한 신자석과 제대의 창은 불투명 안료를 이용한 글라스페인팅으로 처리해 은은하게 전해지는 빛의 인상을 표현하고자 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성가대석과 그 양쪽 옆에 위치한 상부 창의 스테인드글라스에는 빨강, 보라, 초록 등의 다채로운 색을 사용하고 그리스도교의 함축적인 메시지를 내포한
‘성스러운 양’과 천사의 이미지를 제시해 미사 후 퇴장하는 신자들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미사 의식의 신비를 한층 더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성당 입구 세례대 양옆의 달드베르(두꺼운 유리를 사용한 기법) 창은 다소 후미진 공간을 천상의 느낌을 담은 생명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작품으로서 보는 이로 하여금 생명의 신비를 찬미하게 한다.
노랑, 파랑, 초록색 달드베르를 이용해 나비의 형상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부활을 상징하고 있다.
이처럼 노랑, 파랑, 초록의 세 가지 색이 주를 이루는 스테인드글라스는 프랑스의 야수주의 화가 앙리 마티스가 말년에 맡아 작업했던 프랑스 방스 로사리오 경당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생명의 나무’를 떠올리게 한다.
부드럽고 생기있는 색의 조화
마티스는 자신이 장식한 성당에서 모든 사람이 일상의 무거운 짐을 벗고 영적으로 편안한 휴식을 취했으면 좋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제천 의림동성당에서도 부드러우면서 생기 있는 색을 주조로 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편안하고 따뜻한 전례 공간이 연출되고 있다.
작가는 성당 입구에 들어선 신자들의 시선이 처음 닿는 곳에 위치한 창들을 모두 하나의 색조로 통일해 아담한 성당 내부를 하나로 아우르고 있다.
반면 성가대석과 그 옆 벽면에는 빨강, 보라와 같은 강렬한 색을 사용해 미사 후 퇴장하는 신자들이 스테인드글라스의 다채로운 색이 발하는 찬란한 빛을 통해 파스카의 신비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제천 의림동성당의 1층 측창에는 한글을 이용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설치됐다.
십자가의 길 밑에 자리 잡은 이 창에 작가는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오 주여 우리 주 예수’, ‘오 그리스도 우리 주 예수’를 적어 넣음으로써 십자가의 길 기도에 임하는 신자들이 창에 적힌 문구를 마치 후렴구처럼 되뇌며 기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추상적 표현과 글이 갖는 힘
마르크 수사는 구체적인 형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보다는 이처럼 성경 구절이나 기도문의 일부분을 한글로 직접 표현하는 것이 더욱 호소력이 있다고 보았다.
즉 그의 한글 문구는 서술적이기보다는 압축된 의미를 전달하는 기호로서 제시되고 있으며 시각과 청각에 모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감탄사와 함께 시작되는 신앙 고백의 글귀는 작가 자신의 것인 동시에 성당 안에 들어오는 모든 이들에게 공개된 신앙 고백으로서 공적인 호소력을 지닌 문구로 존재하고 있다.
시각예술에서 글은 때때로 이미지를 약화시키기도 하고 필요 이상의 설명을 가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러나 마르크 수사의 작품에 도입된 문구들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텍스트의 기능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그만의 조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되고 있다.
즉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상징과 문자는 서술적 기능을 넘어서 성경의 메시지를 묵상할 수 있는 하나의 출발점으로 존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