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의 글은
2019년 4월 8일 포스팅하였습니다.
좌파 정권이 세워질 때마다 역사의 왜곡과 날조는
이념의 편향된 가치에 충실하여 역사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정 교과서를 초토화시킨 것은
역사 전쟁의 서막이었습니다.
그 후 제주 4.3 남로당 무장 폭동을 민중항쟁으로 날조하였고
1948년 8월 15일 자유 대한민국의 건국을 부정하고
1919.4.11일 상해 임시 정부를 대한민국의 건국 기념일로 획책하고 있습니다.
또한 죄익 독립 운동가를 독립 유공자로 추서하는가 하면
1948년 남북협상 때 월북하여 노동당,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한 김원봉을
독립 유공자로 추서할려고 합니다.
이미 "암살"과 "밀정"의 영화를 통하여 김원봉을 미화하였고
앞으로 제작될 드라마 KBS의 "약산 김원봉"과 ,MBC의 "이몽"을 통하여
김원봉을 독립 운동가로 각색할 것입니다.
지난 날 3당 합당으로 정권을 잡은 김영삼 정권은 광주 5.18을 민주화 운동으로 미화하였고
그 정치 세력은 박근혜 대통령을 불법 사기 탄핵시켰습니다.
그리고 1924년 4월 조선노농총동맹을 결성한 김재봉을
200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습니다.
그 후 조선노농총동맹은
조선 공산당, 남로당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1989년 동의대 사건으로 전경 7명이 사망하였는데
2002년 5월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는 이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시위 학생 46명에 대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하고, 그중 39명에게 평균 2,500만 원의 보상금을 지급하였습니다.
이렇게 이념의 편향성에 따른 가치는
민족 연구사의 결실로 민중사관의 꽃이 되었습니다.
자유의 가치가 무너지고 평화의 가치가 이념의 날개가 되어
독재에 항거하는 민중의 깃발이 되었습니다.
이렇듯 역사의 왜곡과 날조와 조작으로 말미암은 역사 전쟁은
성서지대 열왕의 역사에 대한 깊은 묵상을 하게 하였습니다.
열왕의 연대기적 난제, 그 대장정에 오르기 전에
먼저 왕이 된 요시야의 아들, 남 왕국 유다를 비롯하여 북 왕국의 종말론적인 상황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조선의 역사도 형제가 왕이 된 예가 있듯이
성서지대의 열왕도 북 왕국의 이합과 남 왕국의 요시아 아들은 형제가 대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태조의 아들 정종과 태종, 세종의 아들 문종과 세조,
성종의 아들 연산군과 중종, 그리고 중종의 아들 인종과 명종 등입니다.
또한 아버지가 왕이 아닌 왕으로
14대 선조는 덕흥군의 아들로 덕흥군은 중종의 아들이요
16대 인조는 정원군의 아들로 정원군은 선조의 아들입니다.
25대 철종은 영조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사도세자이고, 아버지는 은언군이며
26대 고종은 대원군의 아들로 인조의 아들인 인평대군의 후손이며,
복령군,의원군,이진익,이병원 ,남연군,대원군입니다.
사극의 역사는
불안전한 후계를 둘러싼 조정과 왕실의 역사전쟁입니다.
조선의 후기 역사는
정조의 아들 순조는 11세에 등극하면서 영조의 비 정순왕후가 수렴청정하였고
헌종은 8세에 등극하여 순조의 비인 순원왕후가 수렴청정하였으며
고종은 12세에 등극하여 헌종의 모후인 조대비가 수렴청정하였습니다.
이렇게 약해진 왕권으로 세도 정치가 시작되었고
순조 때 안동 김씨, 헌종 떄 풍양조씨, 철종때 안동김씨의 세도 정치가 난무하면서 조선왕조는 무너졌습니다.
한편 성서지대의 열왕들 가운데 형제가 왕이 된 경우는
북 왕국 이스라엘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와 그 뒤를 이은 아합의 아들 여호람입니다.
아하시야는 아합의 아들로 재위 2년만에 후사가 없이 병들어 죽었고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아하시야의 뒤를 이었으나 예후에게 척살되었습니다.
남 왕국 유다는
요시야의 아들들이 종말론적인 유다 왕국을 계승하였습니다.
요시야 왕이 므깃도 전투에서 애굽 왕 바로 느고에게 죽고
백성들이 요아스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세웠으나 3개월만에 애굽에게 사로잡혀 처형되었습니다.
애굽 왕은 여호아하스를 대신하여 요시야의 아들 엘리야김을 왕으로 세우고
여호야김이라고 불렀으며 여호야김 4년에 바벨론의 침략으로 포로가 되었습니다.
☞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와서 그를 치고 그를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잡아가고
느부갓네살이 또 여호와의 전 기구들을 바벨론으로 가져다가
바벨론에 있는 자기 신당에 두었더라(대하36:6-7)
여호야김이 죽고 난 후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되었으나
3개월만에 바벨론의 2차 침략으로 포로가 되었으며
베벨론 왕이 여호야긴을 대신하여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요시야 왕 이후 남왕국 유다는
애굽과 베벨론에게 왕조가 유린당하였습니다.
여호아하스 3개월, 여호야김 11년, 여호야긴 3개월, 시드기야 11년을 끝으로
혈통적 다윗의 왕조는 멸망하였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하면서
요시야의 아들들을 삭제하고 그의 손자 여호야긴(여고냐)를 계보에 올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샤를 삭제하고
여호람(요담)은 웃시야를 낳고....라고 기록하면서 여호람의 다음의 계보에 웃시야를 올렸습니다.
참으로 파란만장한 이스라엘의 역사는
참혹한 역사의 흔적을 남겼습니다.
요시야의 아들도 순서가 뒤죽박죽되어
종말론적인 연대기의 혼란을 보였습니다.
역대기는 요시야의 아들들은 맏아들 요하난과 둘째 여호야김과 셋째 시드기야와 넷째 살룸이요라고 하였는데
요시야의 아들 가운데 제일 먼저 왕이 된 사람은 여호아하스요, 그의 다른 이름은 살룸입니다.
☞ 여호와께서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곧 그의 아버지 요시야를 이어 왕이 되었다가
이 곳에서 나간 살룸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그가 이 곳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잡혀 간 곳에서 그가 거기서 죽으리니 이 땅을 다시 보지 못하리라(렘22:11-12)
여호아하스가 왕이 될 때는 23세였는데
세째로 기록한 시드기야가 11년 후 왕이 될 때는 21세였습니다.
살룸 곧 여호아하스와 시드기야는 같은 어머니를 두었는데
모친 이름은 하무달이요 립나인 예레미야의 딸로 아나돗의 예레미야 선지자와 동명이인입니다.
그러므로 시드기야는 살룸의 형이 아니라 살룸의 동생이며
여호야김이 왕이 되었을 때 25세였으니까 첫번째 왕이 된 여호아하스는 여호야김의 동생입니다.
여호야김은 25세에 왕이 되었고
모친의 이름은 이름은 스비다라 루마브다야의 딸이이므로 시드기야와는 배다른 형제입니다.
요시야의 첫째 아들로 기록된 요하난은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였고
요하난에 대해서 더 이상 기록이 없습니다.
사실 요시야의 아들로 왕이 된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과 시드기야의 형제 순서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한편 여호야김의 뒤를 이은 여호야긴은
열왕기에는 18세, 역대기에는 8세에 왕이 되었다고 하였는데
역대기의 표기가 사본의 오기인 것 같습니다.
남 왕국 유다 왕 아하시야가 왕이 된 나이도 열왕기는 22세, 역대기는 42세라고 하였는데
그의 아버지 여호람은 32세에 왕이 되이 재위 8년만에 죽었으므로
아버지가 죽을 때보다 나이 많은 아들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열왕기는 여호야긴이 그의 아버지의 모든 행위를 따라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고 기록하였는데
3개월 짜리 8세의 왕에게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또한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갈 때
왕의 어머니와 왕의 아내들과 내시들과 나라에 권세 있는 자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갔다고 기록하였습니다.
3개월 짜리 8세의 어린 왕에게 왕의 아내들이란 말은
전혀 어울리지 않기 떄문입니다.
여호야김이 왕이 될 25세에 그의 아들 여호야긴은 7세요,
여호야긴과 21세에 왕이 된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와는 3살 차이이므로
그 때 시드기야는 10세쯤 되었을 것입니다.
요시야의 죽은 나이가 39세, 여호야김이 왕이 된 나이가 25세이므로
요시야가 여호야김을 낳았을 때 나이는 14세요,
여호야김보다 11세가 적은 시드기야를 낳은 때는 25세로 추정 됩니다.
요시야가 8세에 왕이 되어 재위 31년에 죽었는데
죽은 나이 39세에 25세의 여호야김과 23세의 여호아하스와 10세의 시드기야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요시야의 나이 14세에 여호야김을 낳았고
16세에 여호아하스를 낳았으며 25세에 시드기야를 낳은 셈입니다.
한편 요시야의 어버지 아몬은 22세에 왕이 되어 재위 2년만에 24세에 죽었는데
그 때 요시야의 나이 8세니까 아몬이 요시야를 낳은 때는 16세입니다.
성서지대에서 제일 미스테리한 출생의 비밀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입니다.
요담은 25세에 왕이 되어 재위 16년이요,
아하스는 20세에 왕이 되어 재위 16년이며 히스기야는 25세에 왕이 되어 재위 29년입니다.
섭정 기간을 무시하고 왕이 된 나이와 재위 기간으로만 계산하면
아하스는 36세에 죽었고 히스기야는 25세에 왕이 됩니다.
그러면 아하스가 히스기야를 낳은 때는 11세이며
11세는 오늘날 초등학교 4학년의 나이입니다.
생물학적으로 11세의 나이에
아이를 낳을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북 왕국의 연대기와 비교하면
더욱 심각한 연대기의 난제에 봉착합니다.
25세의 요담이 왕이 된 것은 북 왕국의 베가 2년이요
베가 17년에 남 왕국의 아하스가 20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데
아하스 12년에 북 왕국의 호세아가 왕이 되었습니다.
베가는 20년을 통치하였는데
베가 17년에 왕이 된 아하스 12년이 될려면 산술학적으로 적어도 호세아 9년이 되어야 합니다.
호세아 9년은 북 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한 날이요,
남왕국 히스기야 6년입니다.
베가 17년에 남 왕국의 아하스가 왕이 되었다면
아하스의 재위 16년을 계산하면 북 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하고도 4년이 남습니다.
그런데 북 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할 떄는
남 왕국 유다의 히스기야 6년입니다.
또한 요담 20년에 북 왕국 이스라엘의 호세아가 왕이 되었다고 하였는데
요담 20년은 섭정을 포함한 기간이라면 호세아 3년에 왕이 된 히스기야의 연대를 계산하면
베가 2년에서 호세아 3년의 21년의 기간은
실제로 요담 16년과 아하스 16년의 통치기간입니다.
이것을 나이로 계산하면
요담 25세에서 아하스의 죽은 나이가 될 것입니다.
요담 25세에서 아하스의 죽은 나이를 합쳐 21년 밖에 되지 않는데
아하스는 20세에 왕이 되어 16년간 통치하였으며 아하스의 아들 25세의 히스기야가 등장합니다.
베가 17년에 왕이 된 아하스와 요담 20년에 왕이 된 호세아와
호세아 3년에 왕이 된 히스가야의 연대기는 성서지대 최악의 연대기, 그 난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호세아 3년에 25세의 히스기야가 왕이 될려면
베가 17년에 20세의 나이로 아하스가 왕이 된 때는 히스기야의 나이 19세가 되어야 하고
베가 2년 25세의 나이로 요담이 왕이 된 때는 히스기야의 나이 4세의 손자가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20세에 19세의 아들이 있어야 하고
25세에 4세쯤 되는 손자가 있어야 합니다.
참으로 추론하기도 혼란스러운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대의 종말론적인 상황은 너무나 급박하여
성서지대 성경의 저자들마저 이렇게도 혼란스러운 난제의 역사를 남겼습니다.
종말론적인 상황 말고도
전체적인 열왕의 연대기를 대조하면 엄청나게 뒤틀려있습니다.
이렇게 성서지대 열왕의 혼란스런 연대기적 난제가
주석가들의 학문적인 고뇌가 아닌 말씀 묵상의 힘으로 고민되는 현상은 말씀에 대한 디테일한 이해일 것입니다.
성서지대의 열왕, 그 연대기적 난제를 원고 없이 말로 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성경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열왕의 연대기를 전체적으로 대조하면서
얼마나 뒤틀려 있는 지 알아보고 난제적 난항,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보고자 합니다.
성서에 대한 깊은 고민은
성서의 말씀에 대한 주인의식입니다.
성서에 대한 주인의식이 전혀 없는 사람은
성서의 연대기적 난제를 외면할 것입니다.
오히려 성서의 오류를 주장하는 소스로 사용하면서
안티 바이블의 전사가 될 것입니다.
참으로 성경의 말씀을 강독하지 않는 설교는
이단과 사이비의 종교적 노예로 삼는 사술이 될 것입니다.
성서의 갈등 구조에 대한 깊은 고뇌의 강을 건너야
비로서 다윗이 보았던 주의 우편에 계신 멜기세덱이 보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