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의 피해야 할 40가지 요령
<개념표현과 명제의 오류>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1. 개념과 명제는 논리적 사고의 기본이다.
개념과 명제는 모든 이성적 사유의 기본 요소를 이룬다. 우리가 논술을 익히면서개념과 ‘명제에 대하여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언어와 개념이 언제나 일 대 일로 대응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하나의 명제는 조금씩 다른 여러 가지 문장으로 표현될 수 있다. 위에서 예로 든 집의 경우가옥, 주택이라는 말로 바꾸어 쓸 수도 있다. 즉, 하나의 개념이 여러 가지 단어로 실재되기도 하고, 하나의 단어가 서로 다른 개념을 나타내기도(동음 이의어:同音異意語) 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명제를 사람은 모두 죽는다와 같이 다른 문장으로 나타낼 수도 있다. 물론 기호로 명제를 분명하게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수학을 통하여 공부한 바 있다. 하지만 논술은 개념과 명제를 수학적 기호가 아니라 언어로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논술 문장에서 개념과 명제를 어떤 언어로 표현하느냐의 문제가 중요하게 대두되는 것이다. 다음 구체적인 예문을 보면서, 학생들의 논술문에 어떤 논리적 결함이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1) 유전자 검사 결과 치명적인 질환의 가능성을 지닌 유전 인자를 갖고 있다면 그건 정말 어떤 질환에 대한 가능성일 뿐이다.
예문 (1)은 고등 학교 3학년생이 작성한 모의 논술문의 한 문장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문장의 형태상 이어진 문장으로 표현된 이 예문은‘가정(假定)의 관계이며 앞 문장과 뒷 문장이전제+결론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의미상으로는 분명한 명제를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 문장은 ~할지라도또는~하더라도의 의미로 연결될 수 있도록 고쳐 주어야 한다.
(2) 이런 전쟁이 세계의 안전을 깨뜨리고 또 다른 악영향을 끼친다면 우리의 생존도 위험 수위에 놓이게 되지 않을까?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명제는참’ 또는거짓의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명제는 의문문이나 감탄문, 혹은 명령문의 형태가 아니라 평서문의 형태로 표현되어야 한다. 학생들은 예문 (2)처럼 의문문을 논술문에 쓰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어떤 명제를 나타낼 때는 반드시 평서문으로 써야 한다. 물론 신문 사설 등을 보면 설의법을 써서 스스로 묻고 답하는 것을 흔히 볼 수는 있지만 이는 논술에 도움이 안 되는 표현상의 기교에 지나지 않는다.
(3) 만약 고정적인 생각에 빠져 있는 사람이라면 이 그림 대회의 대상을 자동차를 가장 사실적으로 그린 사람에게 줄 것이지만 ㉠아직까지도 창조적 능력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개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예문 (3)은 ㉠을 기준으로 하여, 의미가 다른 두 문장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앞 문장과 뒷 문장이 의미상 전혀 연결되지 않는다. 밑줄 그은아직까지도라는 표현 때문에 의미상 불완전한 문장이 되고 말았다.
(4) 정확한 현재의 실정을 노동자들이 인식해서 기업과 대화로써 타협을 하여 국내 생산 시설의 발전을 꾀하여야 한다.
노동자들이 현재의 실정을 정확히 인식하면생산 시설이 발전하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생산 시설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기업의 투자가 있어야 한다. 기업가들이 생산 시설에 재투자해야 할 자본을 부동산 매입 등 비생산적인 분야에 투자하기 때문에 생산 시설이나 설비가 미비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생산성이다. 글쓴이는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의미를 이렇듯 잘못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논거를 제시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실정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피상적인 인식이 때로는 심각한 논리적 오류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니라면 함부로 글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여러 사회 현상에 대하여 늘 관심을 가지고 정확하게 알아 두어야만 제대로 된 논증을 할 수 있다.
(5) 인간이라면 누구나 존엄성을 지니고 있는데 사전 타협도 없이 남의 소유물을 빼앗는 것은 인권을 무시한 행위이다.
예문 (5)는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종잡을 수 없는 문장으로, 개념이 무척 혼란스럽다. 남의 물건이나 재산을 빼앗는데 사전 타협을 하는 경우도 있는가? 이와 같이 논리적 허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문장은 말 그대로 비문이라고 할 수 있다.
(6) 태양열 주택, 태양열 자동차 등은 이미 개발되었다. 이것들에 쓰이는 태양열 에너지는 화석 연료와는 달리 매장량이 무한하며, 환경을 오염시키지도 않는다.
앞에서 개념은 단어로 표현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예문 (6)에서 태양열을 설명하는데매장량이라는 말을 쓴 것이 개념 표현의 오류이다. 태양이 땅 속에 묻혀있다는 말인가?
(7) 개인은 생산성 향상으로 고임금 등 생산성 약화 원인을 상쇄시키고, 기업은 이윤 추구도 중요하지만 국내 산업 발전에 대한 최대한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국가는 기반 시설 확충, 각종 규제의 완화 등 산업 기반을 단단히 다져 줄 조치를 취해야 한다.
예문 (7)은 경제난을 극복하는 방안에 대하여 개인, 기업, 국가 등 3분법적인 논리로 진술하고 있는데, 논리의 형식은 크게 나무랄 데 없다.
그러나 누구든 어디서 한 번쯤 들어 보았음직한 내용이다. (7)을 예문으로 든 이유는 바로 식상한 명제를 경계하기 위해서다.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최대한의 노력을 하자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어떻게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어떻게 최대한의 노력을 하자는 말인지, 그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관건이다. 설령 구체적으로 제시한 방안이 최선이 아니라도 좋다. 논리적 타당성을 갖춘 창의적인 주장이야말로 논술에서 높은 점수를 얻는 지름길이다. 또한 그것은 실제 현실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연습 문제>예문 (3)에서 글쓴이가 나타내려고 하는 의미를 유추하여 간결하게 다듬어 보시오.
<예시 답안>고정적인 사고 방식으로 본다면, 그림 대회에서 자동차를 가장 사실적으로 그린 사람에게 대상을 줄 것이다. 그러나 심사 위원들은 개성을 더 중시하여 창조적 능력이 돋보이는 작품을 대상으로 선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