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41]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 해설
자목이 선귤자에게 물었다.
“지난날 제가 선생님께 벗에 대한 정의를 여쭈었더니,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같이 살지 않는 아내이고, 한 핏줄이 아닌 형제 같다’고 하셨잖습니까? 벗은 이와 같이 중한 것이므로 세상의 이름난 귀족들이 선생님의 덕을 흠모하여 같이 노닐고 싶어 하는 자가 많습니다. 그런데도 선생님께서는 그들을 다 뿌리치시고는 저 엄 항수같이 천한 일을 하여 모두가 사귀기를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을 칭찬하시고 교제라도 하시는 듯하니 제자인 저는 부끄러워서 문하에서 떠나려고 합니다.”
선귤자가 웃으며 말했다.
[A] <“이보게, 내 자네에게 벗에 대해 얘기해 주지. 속담에 이런 말이 있지? ‘의원이 자기 병 못 고치고, 무당이 자기 굿 못 한다’고. 사람이란 누구나 자신만의 좋은 점이 있는데도 사람들이 몰라주면 안타까운 법이야. 반대로 과실에 대한 충고를 듣고 싶은데 칭찬만 자꾸 하면 아첨이 되어 버리고 잘못만 들추어내면 헐뜯는 것이 되어 사람의 도리가 아닐세. 그리하여 잘못한 점이 많아도 그 주변만 맴돌며 중심을 건드리지 않으면 아무리 크게 책망하더라도 성내지 않게 되는 것이니 이는 자신이 싫어하는 것이 온당치 않기 때문이야.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잘한 점을 칭찬해 주면 마치 어떤 물건의 가려진 곳을 드러내 보인 것 같아 감동하여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듯한 기분이 들 거야. 가려운 곳을 긁는 데도 도리가 있지. 등을 긁을 때는 겨드랑이까지 긁지 말아야 하고, 가슴을 쓰다듬다가 목까지 긁지 말아야 하지. 말이란 공허한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미덕은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거야.”>
그는 스스로 감동한 듯 말을 이었다.
“이러한 것을 알아야 벗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야.”
자목이 귀를 막고 달아나면서 말했다.
“이는 선생님께서 건달패나 종놈이 하는 일을 저에게 시키려고 하는 것뿐입니다.”
선귤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자네가 부끄럽다고 하는 것이 바로 여기 있다는 뜻이구먼. <중략> 저 엄 항수를 보게. 그는 나에게 자신을 알아주기를 요구하지도 않지만, 그를 아무리 칭찬하여도 나는 싫지 않다네. 그는 밥 먹는 데 엄숙하고, 행동하는 데 조심스러우며, 달게 잠자고, 웃음은 꾸밈이 없다네. 생활은 어리석은 듯하여 볏짚 지붕에 흙벽을 쌓고 구멍을 내어 출입을 하는데 집에 들어갈 때는 새우처럼 등을 구부려야 하고, 잠잘 때는 개처럼 입을 땅에 박고 잔다네. 아침이 되면 즐거운 마음으로 삼태기와 삽을 들고 마을로 들어가 남의 집 변소를 치는데, 9월이 되어 서리가 내리고 10월에 얼음이 얇게 얼면 사람의 똥은 물론 외양간의 말똥이나 소똥, 닭똥, 개똥, 거위똥, 돼지똥 등을 마치 구슬이나 보배처럼 거두어 가지만 사람들은 청결하지 못하다고 욕하지 않으며, 거기에서 나오는 이익을 독차지하지만 의리에 어긋난다고 나무라지 않는다네. 곧 많은 것을 탐내고 힘써 가져가더라도 사람들은 염치없다고 말하지 않는단 말이야. 손바닥에 침을 뱉어 삽자루를 휘두를 때 보면 구부정한 허리가 마치 새가 먹이를 쪼는 듯한 모습이라네. 문장을 잘하는 것도 그가 뜻하는 것이 아니고, 풍악을 울리고 잘사는 일도 그로서는 생각해 볼 처지가 아니지. 하기야 부자가 되고 귀한 존재가 되는 것은 누구나 원하는 바지만 원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 바에야 부러워할 것도 없는 게 당연하지. 그는 칭찬을 해 줘도 영광스럽게 생각지 않을 것이고, 헐뜯어도 욕되게 생각지 않을 것이야.
<중략>
그러나 엄 항수는 아침이나 저녁이나 밥 한 그릇씩이면 만족해한다네. 간혹 사람들이 고기라도 권하면 거절하기를 ‘음식이 목구멍만 지나가면 나물이든 고기든 배부르긴 마찬가진데 맛을 따질 것이 있소.’ 하고, 또 좋은 옷을 입으라고 하면 역시 거절하며 말하기를, ‘소매가 넓은 옷은 몸에 맞지 않고, 새 옷을 입으면 더러운 물건을 질 수 없지요.’ 한다네. 설날 아침이 되어야 비로소 갓과 띠와 옷과 신발을 갖추어 입고 이웃을 돌아다니며 세배를 한다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다시 헌 옷을 입은 뒤 삽을 매고 마을로 들어간다네. 이 엄 항수 같은 자는 더러운 것이 생활 수단이지만 그것을 자기의 덕으로 만들며 세상에 숨어 사는 자가 아닐까?
『논어』에 이르기를 ‘본래 부귀를 타고난 자는 부귀한 신분으로 행동하고 본래 가난하고 천하게 태어난 자는 가난하고 천한 신분으로 행하라.’고 하였는데 본래라고 하는 것은 정해진 운명을 뜻하는 것이네. 또 『시경』에 이르기를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에 관가에서 일하니 타고난 운명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이 운명이라는 것이 바로 분수를 말하지. 하늘이 만백성을 만들어 낼 때 각각 정해 준 분수가 있는데 이것이 운명의 바탕이야. 누구를 원망하고 탓할 필요가 있겠나? 새우젓을 먹으며 그보다 좋은 달걀을 생각하고, 칡옷을 입으면 그보다 가볍고 시원한 모시옷을 생각하듯 자기 분수를 모르고 좋은 것을 부러워하다 보니 세상이 크게 어지러워지는 것이네. 백성이 땅을 버리고 농촌을 떠나면 밭이 황폐해지지. 저 진승·오광·항적 등도 다 농민이었으나 그 뜻이 어찌 자신의 처지인, 논 갈고 밭 매는 일에 만족할 수 있었겠는가? 『주역』에 이르기를, ‘등짐이나 져야 할 신분의 사람이 수레를 타면 도둑이 달려든다.’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본분을 망각했기 때문임을 이름일세. 그러니 의리에 맞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재물을 준다고 해도 정당한 것이 아닐세. 힘들이지 않고 재물을 얻으면 아무리 큰 부자가 되더라도 그 명성을 더럽힐 뿐이야.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신분에 따라 구슬이나 옥이나 쌀알을 입에 물리는데 이는 그 죽음이 깨끗함을 밝히기 위해서지. 저 엄 항수는 더러운 똥을 지고 다니면서 식생활을 해결하니 다른 사람이 보기에 매우 깨끗하지 못하다고 하겠지. 그러나 생활 방법이 얼마나 떳떳한가? 그가 하는 행위야 좀 천할지 몰라도 그가 지키는 도리야 얼마나 고상한가? 이런 것을 가지고 그가 뜻하는 바를 미루어 본다면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는 부자라도 그보다 나을 것이 없음을 알 수 있네. 이런 것으로 볼 때 이 세상에서 깨끗하다고 하는 자 중에도 깨끗지 못한 자가 있고, 더럽다고 하는 자 중에도 더럽지 않은 자가 있음을 알 것이야. 나는 음식이 너무 맛이 없을 때면 나보다 못한 처지의 사람을 생각한다네. 그러다가 저 엄항수에 생각이 미치면 견딜 수 없는 것이 없어진다네. 참으로 그 마음 가운데 남의 재물을 도둑질하려는 생각을 가지지 않았다면 엄항수를 생각지 않을 수 없을 거야. 이 마음을 더욱 넓혀 간다면 성인의 마음에 이를 수 있을 것일세. 그러므로 선비된 자가 곤궁하게 살면서 그 곤궁한 처지를 얼굴 표정에 나타내는 것과 뜻한 바를 성취시켰다고 그 만족감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지. 이런 사람들을 저 엄 항수와 비교해 본다면 부끄러워하지 않을 자가 드물 것일세. 내가 엄 항수를 스승으로 삼는다고 한 이유가 여기 있다네. 감히 벗이라고 할 수도 없지. 그래서 나는 감히 저 엄 항수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예덕 선생이라는 호를 지어 부른다네.”
- 박지원, 「예덕 선생전
38. 윗글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서술자가 직접 개입하여 주관적 판단을 내리고 있다.
② 두 사람의 대화 형식을 활용하여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
③ 등장인물이 고문의 내용을 인용하여 주장을 강화하고 있다.
④ 대조되는 인물의 삶을 제시하며 주제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⑤ 등장인물이 다른 인물의 행동을 언급하며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39. 윗글의 ‘엄 항수’와 <보기>의 ‘대길이’의 공통점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보기>
새터 관전이네 머슴 대길이는 / 상머슴으로
누룩도야지 한 마리 번쩍 들어 / 도야지 우리에 넘겼지요.
그야말로 도야지 멱따는 소리까지도 후딱 넘겼지요.
밥 때 늦어도 투덜댈 줄 통 모르고
이른 아침 동네길 이슬도 털고 잘도 치워 훤히 가리마 났지요.
그러나 낮보다 어둠에 빛나는 먹눈이었지요.
머슴 방 등잔불 아래
나는 대길이 아저씨한테 가갸거겨 배웠지요.
그리하여 장화홍련전을 주룩주룩 비 오듯 읽었지요.
어린아이 세상에 눈 떴지요.
일제 36년 지나간 뒤 가갸거겨 아는 놈은 나밖에 없었지요.
- 고은, 「머슴 대길이」 중에서
①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을 통해 자기 발전을 이루어 낸 사람들이군.
② 부조리한 사회 제도에 온몸으로 저항하며 살아온 용기 있는 사람들이군.
③ 어려운 상황에서도 역사의식을 가지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군.
④ 자신의 처지에 구애받지 않고 진정한 삶의 가치를 알고 실천하는 사람들이군.
⑤ 자신의 경제적 상황을 인식하고 가난함 속에서도 만족감을 찾던 사람들이군.
40. [A]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한 것은?
① 자신이 지닌 권위를 이용하여 상대방을 윽박지르고 있다.
② 관용적 표현을 통해 예상되는 상대방의 반박을 차단하고 있다.
③ 비유적 표현을 활용하여 상대방의 잘못된 생각을 지적하고 있다.
④ 고전의 내용을 인용하여 상대방의 주장이 지닌 허점을 공격하고 있다.
⑤ 공유된 경험을 들어 자신의 주장에 대한 상대방의 공감을 호소하고 있다.
41. <보기>를 바탕으로 윗글을 감상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기>
「예덕 선생전」은 작가인 박지원의 사상이 반영된 작품이다. 미천한 신분을 지닌 인물의 구체적인 언행을 통해 당대의 양반 계층의 허위의식과 무위도식하는 삶에 대한 비판을 드러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직업 차별에 대한 타파 의식과 사람에 대한 편견이 없는 인물을 작가의 대리인으로 내세워 양반 중심의 신분 질서에 대한 비판 및 평등한 사회에 대한 지향을 형상화하였다
① ‘볏집 지붕에 흙벽을 쌓고’ 사는 미천한 신분의 ‘엄 항수’를 ‘예덕 선생’이라고 부르고 사귀는 ‘선귤자’는 사람에 대한 편견이 없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군.
② ‘삼태기와 삽을 들고’ 사는 자신의 처지를 인식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엄 항수’의 행동을 통해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는 작가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군.
③ ‘남의 집 변소를 치는’ 일을 하면서도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엄 항수’를 통해 직업에 대한 차별 의식을 타파하고자 하였군.
④ ‘밥 한 그릇’으로도 만족하는 소박한 생활을 실천하는 ‘엄 항수’의 모습을 통해 명분에 집착하고 남의 것을 탐하려는 양반 계층을 비판하고 있군.
⑤ ‘소매가 넓은 옷’을 거절하고 실용을 중시하는 ‘엄 항수’의 행동을 언급하여 양반 계층의 허위의식을 비판하고자 하였군.
첫댓글 왜 답이 안보일까요?? 해설을 클릭해도 나오질 않네요
답글에서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