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나이와 몸
생명은 하나의 주제에 대한 다양한 변주곡이다. – 리처드 도킨스
생명의 나이는 세포(Cell)의 탄생으로 시작된다. 수십억 년 전 태양으로부터 온 한 빛의 파동이 한 물질입자에 부딪혔을 때 시작됐다. 파동 역시 움직임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38억 년 전 원핵세포(Prokaryote: 핵, 핵막, 세포소기관이 없는 세포)의 출현,
그리고 22억 년 전 진핵세포(Eukaryote: 핵, 핵막, 세포소기관이 있는 세포)에서 산소 농도가 대기의 20%에 도달한 6억 년 전에야 비로소 다세포 생명체로 진화했다.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단세포 생명체가 서로를 향해 손길을 내밀었다. 기나긴 생명체의 러브 스토리가 시작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감각세포와 운동세포를 연결해주는 신경세포가 출현하게 된다. 세포 간 원활한 소통을 위해 신경세포의 조절 작용이 통합, 발달하면서 중추신경으로 진화했다. 척추(Spine, 등뼈) 안에 척수(spinal cord) 즉, 뇌와 연결된 중추신경을 가진 척추동물이 등장한 것은 최소 3억 년 전의 일이며,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등장한 것은 20만 년 전의 일이다. 이렇게 생명은 38억 년이라는 긴긴 시간을 통해 진화해왔다.
생명현상은 세포의 작용이며 우리 몸(Body)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세포는 인체의 기본 기능 단위로 인체를 건축하는 벽돌이라 할 수 있다. 210여 종에 이르는 세포가 있으며, 몸 안의 모든 세포는 약 37조 개에 이른다. 몸이 우주라 불릴 만하다. 모든 진핵 세포 안에는 미오신(Myosin)과 액틴(Actin)이라는 단백질 복합체가 있다. 이로 인해 세포는 자발적인 진동(Vibration) 즉, 근원적(Myogenic) 움직임을 가진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적혈구, 정자, 난자처럼 홀로 일하는 세포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세포는 잘 짜인 조직(Tissue)을 이루면서 고유의 기능을 발휘한다. 각각의 세포가 가지고 있던 근원적 움직임이 척수를 통한 신경 작용에 의해 전기화학적 움직임으로 통합되어 맥박이 뛰고 심장이 뛰는 것과 같은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진핵 세포 하나는 근원적인 움직임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 움직임이 의식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세포는 조직을 이루어 몸을 구성한다.
우리는 하나의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의 몸은 여러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많은 자극들을 받아들이고 그것들에 대해 반응을 할 때, 몸 전체는 그 각 부분들이 아무렇게나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일관되고 통일된 조화로운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몸은 마치 완전한 하나로 통일된 것처럼 감각하고 움직입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요? 그리고 그럴 때 우리 몸이 지닌 공간성과 운동성은 어떻게 나타나는 것인가요?
– 조광제의 <몸의 세계, 세계의 몸: 메를로-퐁티의『지각의 현상학』에 대한 강해> 중에서
세포로 짜인 몸의 조직(Tissue)은 네 가지로 상피조직, 근육조직, 신경조직, 결합조직으로 나뉜다.
상피조직: 표면과 속면을 덮고 있는 조직
근육조직: 힘을 발생하고 움직임을 일으키는 조직
신경조직: 빠른 정보 교환을 촉진하는 조직
결합조직: 인체의 구조를 지지하고 보호하는 조직
이 네 가지 조직은 각각 다양한 계통(System)들로 구성되며, 이들의 형태와 기능은 매우 다양하다. 인체의 계통은 피부, 털, 손발톱, 뼈대 계통, 근육 계통, 신경계통, 호흡계통, 심장혈관계통, 림프계통, 면역계통, 소화계통, 비뇨계통, 생식계통, 내분비계통으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뇌는 신경세포들이 모여 이루어진 신경계통에 속한다. 신경계통이라는 관점에서 뇌는 ‘움직임을 만드는 기관’인 것이다. 그리고 근육 계통인 근육(Muscle)은 ‘움직임을 일으키는 기관’으로 근육세포들이 모여 다발을 이루고, 그 다발은 근막(Fascia)으로 둘러 쌓여 있으며, 끝은 결합조직인 힘줄(Tendon, 건)로 이루어져 뼈(Bone)에 부착된다.
우리 몸은 왜 이렇게 생겼을까?
세포의 조화로운 결합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몸은 왜 하필 이렇게 생겼을까? 답은 간단하다. ‘우리의 유전체(Genom, 유전체는 유전자와 염색체의 합성어임)가 이렇게 생겼기 때문’이다. 유전체는 환경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협연을 끊임없이 지속하면서 우리 몸이 특정한 특성을 발전시키거나 잃도록 만든다.
1980년 중반에 시작해 2003년에 완료된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서 인간의 유전체 전체 배열을 밝혀냈다. 제임스 왓슨과 프렌시스 크릭이 DNA 이중 나선 구조를 밝혀낸 지 50년 만의 일이다. 사람의 경우 세포마다 대략 30억 쌍의 염기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청 되는데,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바로 이 30억 쌍의 염기가 어떤 순서로 배열돼 있는가를 밝혀내는 작업이었고, 99.9%의 정확성을 바탕으로 완전히 분석되었다.
우리는 생명의 열쇠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것이 비밀의 상자를 열어주진 않는다.
이렇게 게놈의 초안이 완성됐다고 해서 인간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유전자는 약 2만 5천여 개에 달하는데 각 유전자의 기능을 밝혀내는 후속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며, 이런 기능 분석 작업은 지금까지 해온 염기 서열 분석보다 훨씬 오랜 연구 예산과 노력이 요구될 것이기 때문이다. 학자들에 따르면 앞으로도 20년 이상 더 연구가 돼야 유전자를 이용한 진단과 치료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한다.
전체 유전자 중 아직도 정확한 기능을 모르는 유전자 수는 1만 2천여 개에 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복잡하게 얽힌 여러 개의 유전자가 발병 원인이라는 점도 유전자 치료를 어렵게 한다. 예를 들면 당뇨병 발병에 관여하는 유전자만 1,500개다. 결국 아직까지 운동, 영양, 휴식의 규칙적인 실천이 건강한 유전자를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