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15(월) 색다른 투어 cafe의 아침편지
행운을 부르는 사소한 습관들
[하나] 불행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지 말라.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이나 불행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이 궁지에서 벗어나
마음 편해지기 위해
즉각 다른 사람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물론 스스로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자기 잘못을 직면해야 하므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번 남의 탓으로 돌리고 나면
책임을 떠넘기는 건
좀처럼 떨쳐버릴 수 없는
습관으로 굳어지게 된다.
[둘] 진심만을 말하라.
상대의 환심을 사면서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칭찬하면,
상대는 늘 기분 좋게 느끼고
당신에 대해서 좋은 감정으로 갖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칭찬은 아부와 다름없는 것이라고,
또한 상대를 마음대로 하려는
얄팍한 술책이거나
무언가를 얻어 내려는 아첨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칭찬과 아부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칭찬은 진심이 뒷받침된 것이다.
따라서 칭찬을 할 때 칭찬 그 자체 외에
다른 의미가 없다면 상대를 기분좋게 만들 것이다.
[셋] 똑똑한 척하지 말라.
똑똑한 척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바람직하지도,
운에 좋은 영향을 끼치지도 않는다.
우선 똑똑한 척 행동하면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로부터 고립된다.
그리고 혼자서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는 것처럼 보이면
사람들은 그를 도와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다시 말해 지나치게 똑똑하면 이로울게 없는 것이다.
[넷] 당신이 갖고 있는 것에 대해 우선 감사하라.
당신 스스로 행운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면
먼저 지금껏 당신이 이룬 것들을
열심히 생각해 보고 그것에 감사해야 한다.
건강, 가정, 가족의 사랑,
자신의 재능과 기술에 고마워한다면,
불행에 괴로워하거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포기하거나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에게 찾아오는 행운의
분명한 유형을 알게 되고 더 많은 행운을
만드는데 주력하게 될 것이다.
[다섯] 단정하게 차려 입어라.
단정하고 화려하게 차려입는 것은
당신이 얼마나 유행을 잘 따르는지,
얼마나 돈이 많은지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다.
당신을 보는 사람들을 기분좋게 만드는 것이다.
색상이나 잘 어울리는 옷차림은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 기분좋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다.
당신이 단정하게 매력적으로 차려입으면,
보는 사람들의 감각이 적극적으로 자극을 받아
당신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된다.
[여섯] 인내심을 가져라.
운 좋은 사람들은
항상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마감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또 어느 순간에 페달을 밟지 앓고
미끄러져 내려가야 할 지도 잘 알고 있다.
[일곱] 질투심을 반드시 버려라.
가장 자기 파괴적인 감정은 질투심이다.
질투를 하면 스스로 고통스러울뿐 아니라,
적극적인 에너지를 쓸데없이 소모해서 실수를 하게 되고,
결국엔 자신의 운과 기회를 망치게 된다.
질투심이 많아 보이면 당신은 결코
운 좋은 사람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운 나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행운에
배아파하고 인색하게 구는 것이다.
[여덟] 마음을 편히 가져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삶이 뜻한 대로 굴러가지 않을 때는,
어쩌다 힘든 날일 뿐이라 생각하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마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오늘 너무 너무 힘들다면
내일은 더 밝은 날이 기다릴 것이다.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한숨 자고 나서
한발짝 물러나 보면 쉽게 풀리기도 한다.
"행운은 스스로 운이 좋다고 믿을 때 찾아온다"
- 테네시 윌리엄스 글 중에서 -
Tennessee Williams (1911년 3월 26일 - 1983년 2월 25일)
미국의 극작가이다. 아이오와 주립 대학에서 극작을 공부하고, 그 후 희곡·시·단편 등을 썼다. 그의 작품의 무대는 그가 태어난 남부 지방이 대부분이며 그 곳에서 과거의 생활을 그리며 살아가는 여성들의 슬픔을 시적으로 표현하였다. 그의 작품들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연극으로 상연되고 있다. 윌리엄스는 20편이 넘는 장막극을 썼는데 그중 다수가 자전적이다.
대표작으로 『유리동물원(1944)』,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47)』,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1955)』등이 있다.
『유리동물원(1944)』은 그가 처음 큰 성공을 거두게 해준 작품이며,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47)』과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1955)』로 1947년, 1955년 퓰리처상을 2회 수상한 대작가이다. 그의 작품들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연극으로 상연되고 있다. 유리동물원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한국에서도 상연된 바 있다.
테네시 윌리엄스 어린시절
토마스 레니어 윌리엄스 3세는 미시시피 주의 콜롬버스시에서 에드위나 윌리엄스와 코닐리우스 윌리엄스의 2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인 월터 다킨은 미국 성공회의 목사였고 할머니인 로스 다킨은 음악선생님이였다. 토마스의 아버지는 술을 자주 마셨고 직업으로는 길거리를 떠돌면서 신발을 팔았다. 따라서 집에서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Southern Belle주의를 믿었다. 토마스가 태어난 후, 월터 다킨은 미시시피주의 클락크스데일시의 교구로 전직해서 토마스는 자신의 할아버지를 따라서 클락크스데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윌리엄즈는 로즈 (1909-1996)라는 누나와 다킨 (1919-2008)이라는 남동생도 있었다. 그는 어릴 때 “톰”이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누나인 로즈와 굉장히 친하게 지냈다. 연극 학자 알리안 헤일은 토마스와 로즈의 관계가 거의 쌍둥이의 관계같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윌리엄즈 가정에는 오지라는 흑인의 아이를 보는 여자도 있었는데 그녀는 로즈와 함께 어린 토마스와 시간을 가장 많이 보냈다. 따라서 헤일은 토마스가 어렸을 때 여자들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자라서 그의 작품들에서 흔히 여자들에 대한 공감이 많이 나타난다고 추측한다. 특히 감수성이 풍부했고 수줍었던 로즈는 토마스의 작품들에서 나오는 많은 인물들의 영감이 될 수 있다고 헤일은 주장한다.
1962년 타인지 선정 올해의 인물 표지 사진
토마스는 어린 시절부터 치명적인 병 (디프테리아 혹은 류마티스성 열)에 시달려서 거의 1년동안 집에서 외출을 할 수 없는 불행을 겪었다. 토마스의 아버지 코닐리우스 윌리엄즈는 테네지 주의 동쪽에 거주했던 개척자의 후손이였고 거친 성격을 지니고 살았다. 그는 토마스의 여자 같은 성격을 싫어했고 토마스의 어머니 에드위나는 코닐리어스와의 원치 않은 결혼에 의해서 항상 토마스에게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렇게 문제가 많았던 토마스의 가족이 토마스의 많은 작품들의 자극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작품세계
그는 전후(戰後)를 대표하는 미국 극작가의 한 사람이다. 그의 시적인 대사 표현력은 극적인 분위기와 정서를 무대상에 풍기는 데 있어 발군의 힘을 갖는 작품이다. 한때는 모든 희곡이 윌리엄스조(調)로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염려할 정도였다. 여성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는 절묘한 맛을 풍기고 있는데, 그 밑바닥에는 감춰진 잔혹성과 같은 것이 있다.
왜냐하면 그가 그려내는 여성의 운명은 비참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청년시대의 그는 학생, 방랑생활, 구두 세일즈맨 등 어수선한 생활을 했는데, 최초의 장편희곡 <천사들의 싸움>(1940)은 그룹 시어터가 채택하여 보스턴에서 시연(試演)까지 했으나 브로드웨이에서의 공연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그 후에도 여러 일에 손을 대어 지방극단을 위해 1막물 등을 쓴 후, 1945년에 상연된 <유리 동물원>의 대성공으로 일약 유명해졌다. <유리 동물원>은 남부를 배경으로 과거의 추억을 고수하는 어머니와 부끄러움이 많은 젊은 불구의 처녀, 그리고 생활의욕에 불타는 청년의 꿈과 좌절을 그린 매우 시적(詩的)인 극이다.
대표작으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47) <여름과 연기>(1948) <장미의 문신>(1951)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1955) <하늘에서 내려온 오르페우스>(1957) <청춘의 달콤한 새>(1959) <이구아나의 밤>(1962) 등이 있고, 양상과 형태가 다른 작품으로는 <카미노 레알>(1953) <지난 여름 갑자기>(1958)가 있는데, 여기에서는 그로테스크한 내용을 취급하고 있다.
근작으로는 <밀크 열차는 이제 이곳에 서지 않는다> <작은 배의 위험신호>(1972) 등이 있지만 과거의 빛은 사라진 듯하다.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 (지난 밤 이야기)
지난 토요일 밤에는 늦게까지 영등포 cafe에서 일하는 아들녀석이 행여 몸이라도 상할까 걱정이 되어 아빠는 택시 기사의 역할을 했습니다. 밤 12시 야심한 밤에 귀가하면서 강변북로를 지나 내부순환로 홍은동 램프로 진입하여 홍지문(弘智門)을 지나서 집으로 귀가했습니다.
그동안 늘 출퇴근 길에 弘智門을 자주 접하면서도 가까이서 볼 수 없었는데, 야심한 밤이라 아주 가까이서 이렇게 현장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더 기뻤습니다. 이 弘智門은 조선 숙종 41년(1715)에 서울 성곽과 북한산성의 방위 시설을 보완하기 위하여 세운 문으로 1921년에 허물어진 것을 1977년에 다시 세운 소중한 문화재입니다.
그리고 익일 일요일 아침에는 약간 눈빨이 휘날렸고 좀 쌀쌀한 날씨였습니다만, 용산 성당으로 주일 미사를 가야만 했습니다. 후임 남성총구역장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구역 회합에 참석해야만 하기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10시 교중 미사에는 보좌 신부님께서 이번에 군종교구로 가시게 되어 송년미사가 되었습니다. 떠나시는 보좌신부님의 얼굴이라도 뵙게 되어 한결 마음이 가벼웄습니다.
지난해 2월 부임하신 강신부님과 함께 사목회를 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특히 보좌신부님과 함께 '조선초대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님 선종 180주년 추모 행사'를 준비할 때는 정말 고생이 많으셨는데... 그리고 또 서울대교구 주관의 "위령의 날 행사"도 보좌신부님과 함께 준비했기에 어느 누구보다 각별했습니다. 한편 새로운 주임신부님이 오신 후에 처음 맞는 평신도의 날에 강론원고를 수차례나 검토 맡던 일은 더 잊을 수 없습니다. 이제 삼십대 후반의 나이에 다시 또한번 군대를 가시는 신부님이시지만, 어쩌면 더 큰 사목을 위해 순명하고 용단을 내리신 것에 대해 아낌없는 찬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교중미사가 끝나고 보좌신부님은 청소년분과장과 주일학교 교사들과 만남의 시간을 갖었기에 더 뵙고 인사를 드릴 수 없는 것이 마음 찡~했습니다. 전 사목호 총무를 통해 수차례 함께 식사할 기회를 달라는 것도 결국 시간관계상 거절해 주신 것이 조금은 서운했습니다.
교중미사후에 우리 남성구역장들은 신임 남성총구역장의 명에 따라 교육관 2001호에서 간단한 회합을 갖었습니다. 중책을 맡고 많이 고심했던 변마르코 총구역장은 이제 마음을 정리하고 멋지게 회합을 이끌어 주어 눈물이 핑 돌것만 같았습니다.
남성총구역장들은 회합을 마치고 마포의 '어머니 밥상집'으로 이동하여 그동안 못다푼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소중한 분들과 함께 식사하고 술을 권하고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그 자체가 바로 행복이었지요. 그리고 신임 남성총구역장이 밥값과 술값 일체를 낼 것 같아서 저는 재빨리 모자를 돌려 각각 배춧잎 한장씩을 거두었습니다. 부담없는 자리가 좋기 때문에 저질렀습니다. 이곳 마포 어머니밥상 집은 우리 남성구역장들의 평소 아지트입니다. 전라도 영암 아줌씨가 쥔장인데 정말 음식 맛은 최고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밥상식당에서 안주가 너무 좋아 몇잔 음주를 했기에 차를 끌고 집으로 갈 수 없어서 회사에 들려 약 3시간 동안 밀린 Blog 숙제를 정리하다가 정신이 말짱해 지면서 차에 있는 작은 선물 보따리를 가까운 지인의 집 앞에 살짝 놓아두곤 신촌을 경유 금화터널과 자하문 터널을 지나 귀가하였습니다. 오늘은 평소보다 한꺼번에 몇가지 일을 한 아주 보람있는 하루였습니다.
- 오늘의 일기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