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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 은혜를 받은 자 말씀/ 누가복음 1:26-56 요절/ 누가복음 1:28 | 2023. 12. 10 | |
성탄 말씀 1강 |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메리 크리스마스! 벌써 2023년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성탄 복음을 통해 슬픔과 절망에서 벗어나 기쁨과 희망이 넘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은 비천한 여자 마리아에게 임한 성탄 소식입니다. 그녀에게 임한 성탄 소식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천사는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마리아는 어떤 은혜를 받았으며, 어떻게 하나님을 찬송하는 아름다운 인생이 되었습니까?
제사장 사가랴에게 세례 요한의 탄생을 예고한 천사 가브리엘이 여섯달 후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 살고 있는 마리아를 찾아갔습니다. 가브리엘의 방문 목적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갈릴리 나사렛은 산골 마을이었고 무명의 동네였습니다.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며 말할 정도로 나사렛은 작고 보잘 것 없는 동네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천사 가브리엘을 갈릴리 나사렛에 보내신 것은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사9:1)라고 예언한 이사야 말씀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마리아는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였습니다. 약혼 기간은 보통 1년이었고 유대에서는 약혼하면 법적으로 부부가 되었습니다. 약혼기간은 결혼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마리아는 요셉을 생각하며 인생 최고의 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이런 마리아에게 천사 가브리엘이 놀라운 인사를 했습니다. 28절을 보십시오.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천사의 인사는 단순한 인사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인사는 언약의 회복과 관련된 뜻별한 인사였습니다. 특히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라는 말씀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특별히 선택된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전능하신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은혜를 감당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뿐 아니라 감당할 수 있도록 함께 하여 주시고 때마다 능력과 지혜를 부어주십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인사말을 듣고 놀랐습니다. 천사는 ‘평안하라’고 했지만 마리아는 마음이 요동쳤고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천사의 인사말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마리아는 왜 자신에게 이런 놀라운 인사를 하는지 깊이 생각했습니다. 천사는 다시 한번 마리아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마리아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입니까? 31-33절을 보십시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그것은 인류의 구원자를 낳고 키우는 성모가 되는 은혜입니다. 마리아는 결혼하고 아들딸을 낳고 양육하는 평범한 여자의 인생을 살았을 겁니다. 그런 인생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인류의 구원자 메시아를 낳고 키우는 일에 쓰임 받게 된 것은 놀라운 은혜요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직접 지어주셨습니다. 그 이름은 예수입니다. 이 세상에 예수보다 아름다운 이름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는 구약의 여호수아와 같은 이름으로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라는 뜻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예수 이름의 뜻을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하였습니다.
마리아가 낳을 아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 예수님은 큰 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인격과 능력 면에서 누구보다도 큰 자이십니다. 예수님은 가장 높으신 분이시지만 가장 낮아지셨고 섬기는 종의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연세계와 영적 세계를 다스리는 놀라운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자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해졌습니다. 예수님은 군대귀신 들린 청년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말씀하심으로 귀신을 제압하시고 청년을 깨끗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일어나 걸어가라” 말씀하심으로 그를 치유하사 일어나 걸어가게 하셨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향하여 한 마디 말씀 “나사로야 나오라” 하심으로 단번에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인간의 최대 숙제인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역사에 빛을 발한 어떤 위인이나 영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자이십니다.
둘째, 예수님은 다윗의 왕위를 이어 받는 메시아 왕이십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다윗은 백성들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공평과 정의로 다스렸기 때문에 그의 통치를 받는 백성들은 행복했습니다. 로마 황제의 통치로 고통 받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과 같은 왕이 나타나서 자신들을 다스려주기를 갈망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위대한 왕도 영원하지 않고 그의 왕국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영원한 왕이시고 그의 왕국도 영원합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릴 것입니다. ‘야곱의 집’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새이스라엘이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왕이 되어서 자기 원하는 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으면 사단의 다스림을 받게 됩니다. 인간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스스로 왕이 될 수 없고 누군가의 다스림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으면 사단의 다스림을 받고 죄와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 다스림을 받고자 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그 사람과 함께 하시고 겸손과 사랑과 공의로 다스려 주십니다. 예수님은 상한 갈대도 꺽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아니하시고 섬세히 살피시고 돌보셔서 치유와 회복의 역사를 이루어주십니다. 죄를 반복해서 짓고 정죄와 낙심에 빠져 있을지라도 예수님께 나아가 회개하기만 하면 은혜로우신 주님께서 정죄치 않으시고 용서의 은혜를 베푸시고 새생명과 하나님 나라의 참 소망으로 채워주십니다.
세상 나라는 흥망성쇠가 그치지 않습니다. 세상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은 반드시 실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나라는 영원하고 무궁합니다. 예수님의 나라가 영원무궁한 것은 죄가 없기 때문입니다. 돈이 많고 복지가 잘 되어 있는 나라에 살면 행복합니까? 북유럽이나 미국에서 살면 행복할까요? 부자집 2세 3세가 되면 행복할까요? 우리가 참된 행복을 누리려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이번 성탄절을 맞이하여 우리를 다스리고 있는 거짓 왕들을 몰아내고 예수님을 왕으로 모셔야 겠습니다. 그리하여 무엇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마리아가 성모가 되면 스위트 홈의 꿈이 깨질 것이 뻔합니다. 요셉에게 상처를 주고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게 될 것입니다. 간음한 여인으로 낙인이 찍혀 돌에 맞을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예수가 사람들에게 버림 받고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고난은 의미 있는 고난이요 영광을 얻기 위한 고난이기 때문에 감당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5절에서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구원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또한 사도의 직분 다시 말해 목자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목자로 살아갈 때 많은 아픔과 희생이 있습니다. 저는 목자의 직분을 감당하느라 결혼이 늦어졌고 가난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어린 자녀를 집에 두고 아내와 함께 매일 새벽기도에 나갔기에 아이가 깨서 집을 나간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어린 아이가 자기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놀랐을까요? 어릴 때 부모가 잘 케어해야 된다는 것을 그 때는 잘 몰랐습니다. 양들을 내 자녀를 돌보듯 먼저 돌볼 때 하나님께서 내 자녀를 돌봐주시리라 믿었습니다. 부모의 잘못으로 자녀가 상처 입고 희생되었다고 생각하니 지금도 마음이 아리고 눈물이 납니다. 성숙하지 못해 양들에게 감정적으로 대함으로 많은 상처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형편없는 저를 지금까지 함께하여 주시고 감당해 주셨습니다. 저 한 사람이 주님을 닮은 사람이 되도록 주님께서 많은 희생을 치루시고 오래 참으시고 기다려주셨습니다. 주님의 끝없는 사랑, 변함없는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올해 많은 동역자들이 복음역사를 위해 많은 희생을 했습니다. 부족한 종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믿어주시고 섬겨주신 목자님들을 생각할 때 뜨거운 마음으로 감사드립니다. 캠퍼스 개척과 세계선교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물질과 젊음과 은사를 드려 섬기신 동역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어떻게 처녀인 마리아를 통해 출생할 수 있습니까? 천사는 성령의 능력으로 된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성령이 마리아에게 임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마리아를 덮으시면 처녀 잉태가 가능하게 됩니다. 이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성령은 창조의 영입니다. 예수님의 출생은 새로운 창조의 역사입니다. 성령이 임하는 사건은 단순히 능력과 은사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깨어진 언약이 회복되고 생명력이 풍성한 삶을 회복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신 후에 인간의 탄생과 성장 과정을 똑같이 밟으셨습니다.
천사는 마리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마리아의 친족 엘리사벳이 임신한 사건을 말해 줍니다.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습니다. 믿음의 역사에 대해서 들을 때 믿음이 강화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마리아의 자세는 어떠합니까? 38절을 보십시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마리아는 요셉의 약혼녀로서 자기를 바라보기보다 하나님의 여종으로서 정체성을 붙들었습니다. 그는 요셉의 아내로 살고자 하는 소원을 내려놓았습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자신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고자 결단 했습니다. 마리아의 자세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하나님 백성의 모범적인 자세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누구의 종입니까? 하나님의 종으로 분명한 신분인식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 인생과 미래를 맡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마리아는 믿음의 결단을 했지만 위로와 확신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누구를 찾아갔습니까? 약혼자 요셉, 아니면 부모를 찾아갔습니까? 마리아는 빨리 유대 산골에 있는 엘리사벳을 찾아갔습니다. 나사렛에서 유대까지는 100킬로미터가 넘고 3일 길입니다. 당시 약혼하면 신방에 들어가지 전까지 자기 집에 머물러 살았다고 합니다. 마리아는 용기를 내서 하나님 역사의 현장을 찾은 것입니다. 마리아가 문안했을 때 엘리사벳의 복 중에 있는 아이가 뛰놀면서 먼저 반응했습니다. 복 중에 있는 세례 요한이 기뻐하며 마리아를 환영한 것입니다. 그러자 엘리사벳도 성령이 충만하여 큰 소리로 불러 마리아를 축복했습니다. 놀랍게도 마리아를 ‘내 주의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세 번이나 복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마리아의 길은 꽃길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 오해와 비난이 쏟아질 것이며, 장차 칼이 마음을 찌르는 것 같은 고통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모든 여자 중에 복이 있다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마리아뿐만 아니라 마리아처럼 믿고 순종하는 여자는 복이 있습니다. 마리아의 행동이 복의 샘플입니다. 마리아는 축복 받는 길을 개척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일어날 일을 하나님 편에서 잘 해석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도울 때 엘리사벳 처럼 잘 도와야 합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기보다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비난이나 무시하는 말보다 축복의 말, 칭찬의 말을 해야 합니다. 불신의 말보다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카운슬링을 들은 후에 근심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영혼 깊은 곳에서 찬양과 기쁨이 흘러나왔습니다. 46-48절을 보십시오.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마리아는 영혼과 마음으로 하나님을 나의 구주로 찬양했습니다. 마리아의 고백은 마음과 영혼에서 나오는 찬양이요 기쁨이었습니다. 그것은 외적인 조건이나 상황이 호전된 데서 오는 기쁨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내 구주로 만나고 알게 된 데서 오는 기쁨입니다. 내 구주라고 고백한 것을 보면 마리아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리아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기 때문입니다. 비천하다는 것은 지위가 낮은 상태, 굴욕적인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마리아의 비천함을 돌보셨습니다. 마리아는 전능하신 창조주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미약하고 비천한 존재인가를 실감했습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주님께서 이방의 갈릴리라 불리는 땅 나사렛에 사는 한 소녀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녀에게 특별한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성모로 택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쓰셨습니다. 이는 말로 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마리아는 이제 자신을 만세에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노래합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을 볼 때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 다’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 더 나아가 캠퍼스 영혼들의 구원역사에 쓰임 받고 있는 사람들은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성경의 역사를 볼 때 하나님은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 권세 있는 자들, 부자들과 싸우셨습니다. 이들은 사회적인 지위와 권세와 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고 권력을 누리기 위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입니다. 비천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억압하고 이용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흩으시고 내리치시고 빈 손으로 보내십니다. 대신 비천한 자를 높이시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을 배불리십니다. 예수님이 한 아기로 이 땅에 오심으로 이런 놀라운 역사, 역전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나라는 이제 선진국이 되었고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갈수록 사회적 신분상승이나 역전이 어렵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인생을 바꿀 수 없다며 절망합니다. 많은 청년들이 자신의 비천한 처지 때문에 우울감과 슬픔과 절망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자살하는 사람들, 인생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진정한 인생역전은 좋은 직장에 취업하거나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보내주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되고 진정한 인생역전이 일어납니다. 슬픔과 환난이 많은 세상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성탄복음입니다. 우리가 간절한 마음으로 아기 예수님께 나아감으로 죄사함의 은혜와 하나님 나라의 소망으로 채워지고, 이 놀라운 복음을 이웃들에게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