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는 매우 슬픈 이야기로 막을 내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불행한 이야기들의 원인을 기자는 이 마지막 글로 정리했다. 그리고 따라오는 룻기는 바로 그 사사시대에 일어난 한 가정의 슬프지만 희망찬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이야기는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며 이 세상에 살아가는 많은 사람의 이야기다.
(룻 1: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엘리멜렉은 유다 베들레헴 사람이었다. 유다 베들레헴은 스블론의 베들레헴과 구분해서 부를 때 유다 베들레헴이라고 적는데 바로 이곳 유다 베들레헴이 다윗의 고향이요,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이다. 하지만 유다 베들레헴의 이야기들을 검색해 보면 대부분 슬픈 역사를 담고 있다. 사사기 17장에 단 지파의 타락을 부추긴 레위인이 유다 베들레헴 사람이었고 19장에 나오는 어떤 레위인의 첩 사건도 바로 유다 베들레헴에서 비롯되었다. 우상숭배와 행음 그리고 살육이 시작된 이야기들의 시작이 바로 유다 베들레헴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룻기의 첫 서두도 흉년이라는 슬픈 기록으로 시작된다.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유다 지파에 속한 베들레헴 사람이었지만 흉년을 피할 마음으로 모압으로 이주했다. 얼마나 살기가 힘들었으면 거처를 옮겼을까마는 더 잘살아보고 싶어서 옮긴 모압 땅으로 이주는 더 큰 불행의 시작에 불과했다.
모압으로 이주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모압 여인들과 결혼한 두 아들 말룐과 기룐마저 죽고 말았다. 룻기 1장의 완전히 초상집 분위기다. 그것도 호상이면 다행이겠으나 룻기 1장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가난을 피해서 이주해 간 이방 땅에 혼자된 두 며느리와 시어머니 나오미의 이야기는 슬프고 슬픈 어떤 전설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스토리가 아닌가? 결국 “나의 하나님, 나의 기쁨”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주인공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모압에서의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을 맺고 나오미가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여기서 아주 특별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대부분 이방인과의 결혼은 비극적인 결말로 끝이 나는 다른 스토리와는 달리 모압 여인이면서 나오미의 자부였던 룻기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하는 아주 특별한 사례다. 이방인과의 결혼을 반대하는 이스라엘인들의 전통에 비추어 보면 룻기의 결론은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다른 내용으로 끝을 맺는다. 이스라엘의 아들들보다 훨씬 나는 믿음의 여인 룻의 이야기는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무법천지 사사시대에 희미하게 빛나는 희망의 샛별과 같은 이야기다. 어떻게 이런 결말이 가능했을까? 그것은 그녀가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한 대답에서 찾을 수 있다.
(룻 1: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은 나오미의 가정에 시집오면서 완전한 철저한 신분의 변화 곧 신앙 안에서 완전히 거듭난 사람이 된 까닭이다. 그녀는 유다 사람 남편만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의 가정에 와서 그녀의 민족과 그녀의 신앙까지 개종한 것이다. 오늘날도 가끔 이런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다. 결혼이라는 과정을 통해 재림 성도가 된 사람들 가운데 오히려 시댁의 신앙을 이끌어가는 룻과 같은 며느리들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 아니겠는가?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지금까지 교회 안에서만 결혼하라고 가르쳤지만 룻과 같은 훌륭한 며느리, 사위들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간혹 룻과 같은 며느리들이 우리 교회에도 있음을 발견합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자식들은 교회를 떠났지만, 결혼이라는 인연으로 신앙인이 된 훌륭한 며느리들이 각 교회들을 지키고 가정의 신앙을 이어가는 것을 봅니다. 주님 저들의 신앙과 삶에 복을 넘치게 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