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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이슬람과 사상적 자유
어느 토론회 석상에서 본인과 한 질문자와 나눈 대화이다.
“당신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질문자-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저자-
“당신은 신의 존재를 믿습니까?” -질문자-
“네, 믿습니다.” -저자-
“그렇다면 당신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질문자-
“당신은 어떻게 제가 자유사상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지요?” -저자-
“당신은 결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어리석은 말을 믿기 때문입니다.” -질문자-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 -저자-
“당신은 무엇이 우주와 인간을 창조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자-
“그것은 자연입니다.” -질문자-
“그렇다면 자연이란 무엇입니까?” -저자-
“그것은 끝이 없는 비밀스러운 힘이지만, 감각기관에 의해서 인지할 수 있는 대상을 가집니다.” -질문자-
이 말에 대해 나는 이렇게 답변했다.
“당신과의 대화로 난 당신이 내가 다른 미지의 힘을 믿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내 마음은 나에게 내가 당신이 원하는 미지의 힘을 믿는 것을 막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내 마음이 나에게 던지 의문점은 왜 자연이라는 허위의 신은 나의 부름에 대답하지도 않고 나를 편안하게 해주지도 않을까? 그리고 나에게 평화와 평안과 고용함, 그리고 안락함을 찾게 해 준 나의 신을 왜 반응하지 않는 허위의 신을 위해 버려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이것은 사고의 자유에 대해 말하는 진보주의자들의 실례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사고의 자유는 신을 버리는 자유와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이것은 사고의 자유가 아니라 무신론의 자유이다.
이러한 전제로 시작해서 그들은 이슬람이 단지 무신론을 금한다는 이유 때문에 이슬람이 사고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문제는 사고의 자유와 무신론의 자유는 같은 개념인가? 무신론이 정말 사고의 자유에 필요한 필수조건인가 하는 것이다.
유럽 자유주의 역사의 그릇된 안내로 그들은 유럽의 어떤 부분적인 환경에서만 무신론의 유포가 필요한 것일 뿐 세계 모든 지역에서 똑같이 그러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유럽의 교회로 대표되는 기독교가 과학을 억압하고 과학자를 괴롭히고, 또한 짜깁기 한 거짓을 그냥 지나치며, 신의 말이라는 명분 아래 미신이 유럽의 자유사상가들을 무신론으로 몰고 갔다는 사실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유럽의 지식인들은 신에 대한 천성적인 믿음이나 이론적이고도 실제적인 과학적 사실에 대한 믿음이라는 두 가지 대립된 태도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유럽의 지식인들은 본능적으로 이 궁지로부터 부분적인 도피처를 찾아냈다. 그래서 그들은 교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은 그의 이름을 빌려 우리를 노예화하고 부당한 요구를 강요하고 독재와 미신에 복종하도록 강요한 당신들의 신을 다시 가져가시오. 당신들의 신에 대한 믿음은 우리를 수도자와 은둔자들의 금욕적인 생활로 이끌어 가려고 합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명령에 따르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노예화하는 교회도 갖지 않으며 당신들의 신이 한 것 같은 어떠한 도덕적, 지적, 유물론적인 강요도 하지 않는 새로운 신을 가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슬람에서는 인간을 무신론으로 이끄는 따위의 일은 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사람을 당황하게 하거나 궁지에 몰아넣는 일이 전혀 없다. 오직 하나의 신이 존재할 뿐이다. 그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창조했고 모든 것은 그에게 귀의될 것이다. 이것은 자연주의자나 무신론자까지도 반박하거나, 의심할 여지가 없는 명백하고 분명한 개념이다.
이슬람에는 유럽인들의 교회가 가졌던 것 같은 그런 성직자가 없다. 종교는 모두의 공동 재산이며 모든 무슬림은 그의 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지적인 여건이 허락하는 만큼 종교로부터 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다.
모든사람은 평등하며, 그들이 생활에서 행하고 있는 행동의 대가를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모든사람의 존경을 받는 사람은 그들이 기술자이건 선생님이건, 노동자이건 수공업자이건 간에 신을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종교는 이렇게 많은 직업 중 하나가 아니다. 이슬람에는 직업적인 성직자가 없다. 그래서 이슬람의 예배는 성직자의 중재 없이 행해진다. 그러나 법률학과 공공질서가 필요로하는 법을 전공하는 사람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이슬람의 법률과 제도를 연구하는 전문가의 지위는 다른나라와 같지 않다. 그들에게 다른사람 보다 더 큰 어떤 권력이나 명성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그들은 다만 법학자이며 국가의 조언자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알-아즈하르’가 종교적인 모임이긴 하지만 유럽의 성직자들이 가졌던, 사람을 괴롭히는 권력은 갖지 않았다는 점을 증명할 수 있다. ‘알-아즈하르’가 할 수 있는 것은 개개인의 종교에 대한 이해에 도전하고 비판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한편 외부로부터 온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알-아즈하르’의 종교에 대한 이해에 도전하고 비판을 가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슬람은 어느 개인이나 집단의 독점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은 그들 직업에 관계없이 종교에 대한 깊은 이해를 실제생활에 적용시키는 종교문제에 있어서의 권위자로 여겨질 뿐이다.
이슬람의 계율이 세워졌을 때 이슬람 학자들이 자동적으로 정치가나 성직자, 사무국장 등이 되지는 않았다. 변화한 것은 다만 규율의 근거를 이슬람법에 의한다는 것뿐이었다.
엔지니어는 여전히 그가 하던 일을 했고 의사 역시 의학적인 일을 맡아 했으며 경제학자들은 이슬람의 경제가 나타내는 상황의 변화만으로 그 사회의 경제생활의 방향을 제시했다.
역사에는 이슬람의 신앙심과 그 규율 체계가 과학이나 과학의 적용과 충돌을 한 적이 없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 이슬람의 어떤 과학자도 과학적인 사실을 발견했거나 발표했다고 해서 화형에 처해진다거나 고문을 당한 적이 없다.
진정한 과학은 이슬람의 신앙심과 충돌하지 않았으며 신에 대한 믿음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다. 이슬람은 사람들이 우주와 지구에 대해 연구할 것과 신의 존재를 규명하기 위해서 그들의 창조력을 집중할 것을 원한다.
신을 믿지 않는 많은 서양의 과학자들이 적절한 과학적 연구를 통해 신의 존재를 발견하려 노력해 온 것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슬람은 결코 인간을 무신론으로 인도하지 않는다.
동양의 무신론자들은 이전에 그들의 식민지 주인이었던 사람들을 앞뒤 안 가리고 추종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믿음과 모든 종류의 예배를 공격하고 사람들에게 그들의 종교를 버리라고 다그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기를 바란다. 그런데 왜 그들을 그러한 자유를 원하는 걸까?
유럽에서는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을 미신에서 해방시키고, 압제와 폭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종교를 공격할 구실을 찾는다. 그러나 만약 이슬람적인 믿음이 그들이 필요하다고 극성스럽게 요구하는 모든 자유를 이미 허용했다면, 그들은 왜 그것을 공격해야만 하나?
이러한 소위 자유사상가들은 사상의 자유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오히려 도덕적 타락과 무절제한 성적 무질서에 더욱 관심을 갖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사고의 자유를 그들의 기본적 원인과 계기들을 숨기려는 가면으로 사용한다.
그것은 단지 종교와 도덕에 대한 그들의 무서운 싸움에 대한 위장수단일 뿐이다. 그들은 이슬람이 사고의 자유를 막아서가 아닌 인류를 그의 기본적인 열정의 지배에서 해방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다.
자유스러운 사고의 지지자들은 국가가 거대한 힘을 가지기 때문에 이슬람의 규율체계가 독재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것 중 최악의 것은 사람들을 홀리어 마음을 사로잡는 신앙이라는 이름을 빌려 국가가 막대한 힘과 권력을 독점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슬람이 자신들을 앞뒤를 깊이 헤아리지 않고 사납고 악독한 규율에 복종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거대한 힘은 독재를 가져오고 평민들은 스스로 생각할 권리도 없이 노예가 된다고 그들은 결론짓는다. 사고의 자유는 영원히 소멸되어 버린다고 주장한다. 두려움을 무릎쓰고 지배자에게 도전할 사람은 아무도 없고 이렇게 하는 사람은 종교와 신에 대한 반역이라고 비난받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잘못된 비난은 성 꾸란의 다음과 같은 구절들로 단호히 물리칠 수 있다.
1. 인민의 정부는 상담역으로서 인민들 가운데 있느니라.
2. 너희가 사람들 사이에서 판단을 내릴 때, 공평하게 판단해야 하느니라.
(성 꾸란 4장 58절)
초대 칼리프인 ‘아부바크르’께서는 “내가 신과 그의 선지자에게 복종하는 한 나에게 복종하라. 그러나 만약 내가 신이나 선지자에게 불복종한다면 나는 너희에게 복종을 요구할 수 없다.”라고 말씀했다.
‘우마르’께서 무슬림에게 설교할 때 이렇게 말했다. “만약 당신들이 나에게서 어떤 부정한 점이라도 발견한다면 나를 옳게 이끌어 주시오.” 한 청중이 말했다. “신의 전능하신 힘으로 우리가 당신에게서 어떤 부정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당신을 우리의 칼로 옳게 만들겠소.”
억압과 폭정이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억압이 몇몇 나라에서, 아직도 종교의 이름을 빌어 행해지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종교가 독재자가 쓰는 가면에 불과할 뿐일까?
히틀러는 종교의 이름을 빌어 국가를 지배했는가? 지금은 심지어 러시아에서까지 스탈린이 경찰국가를 다스린 폭군이며 독재자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런 스탈린이 종교의 이름으로 통치했을까? 모택동, 프랑코, 남아프리카의 말론, 중국의 장개석을 포함한 모든 폭군과 독재자가 종교를 앞세워 지배했을까? 종교의 지배를 제거하려는 현재, 종교라는 가장 신성한 이름으로 인류를 사로잡아 기만하는 가장 무서운 독재를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독재를 찬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유로운 지성과 양심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개인적인 야망을 감추기 위한 가면으로, 고상한 원칙을 사용할 수 있다. 프랑스 혁명에서 자유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가장 무서운 범죄를 여러분은 목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유에 대항해 싸우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수백만의 죄 없는 사람들이 법률이라는 이름 아래 투옥되고 고문당하고 살해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법률을 무효화해야만 하는가? 억압과 폭정이 종교의 이름으로 몇몇 나라를 지배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종교를 버려야 하는가?
만약 종교가 억압과 부정을 두둔하고 편든다고 종교를 버려야 맞는 것인가? 이것은 무슬림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무슬림과 이슬람에 반대하는 세력들도 순수한 정의와 공평을 이룩한 이슬람에 대해서는 억압과 부정을 두둔하고 편든 종교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슬람은 사람들에게 신을 믿고 종교에 의해 보호받고 안전하게 인도될 수 있는 자유를 존중하라고 가르침으로써 폭정에 대항했다. 이러한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지배자가 부정을 저지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를 법적인 힘의 한계 속에 묶어둘 것이다.
나는 이슬람만큼 정의를 세우고 폭정에 반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종교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슬람은 사람들에게 만약 통치자가 부당할 때는 바로 잡는 것이 정의라고 가르치고 있다.
선지자께서 말씀하기를, “어떤 악을 목격한 사람은 그것에 도전해야 하느니라. 부정한 통치자 앞에서 정의의 말을 하는 것이 가장 성스러운 싸움이니라.”라고 하셨다.
사람들이 ‘오스만’ 3대 칼리프께서 정통의 길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고 이에 대항해서 반란을 일으킨 것은 이러한 원칙에서 원인을 두고 있는 것이다. 비록 그 반란 자체가 더 큰 탈선을 가져오긴 했지만, 결론적으로, 이러한 진보주의적 자유사상가들에게 한 마디 충고하고 싶다.
진정한 자유의 길은 종교의 포기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부정을 혐오하고 그릇된 것을 교정하는 혁명적인 사상을 주는 것이다. 이 정신이 바로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의 정신이다.
제6장 이슬람과 처벌의 개념
어떤 사람들은 가끔 이렇게 이야기한다. “오래 전에 사막에서 적용했던 것과 같은 원시적인 처벌의 방법을 오늘날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단돈 몇 푼 때문에 도둑의 손을 자르게 할 수 있을까? 죄인을 사회의 희생물처럼 취급하며 죄인에게 처벌보다는 의료적 보살핌을 주려하는 현대 국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단 한 사람의 죄인에게 정당한 투석사형을 가하는 처벌은 막으면서 어째서 북아프리카에서는 문명국가 중 하나인 프랑스가 4만의 죄 없는 사람들에게 살인(주7)을 범하게 하는 것을 허용할까?
(주7)「 ‘세티프 학살’: 나치 독일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던 날(1945년 5월8일) 프랑스 군경 은 “이제는 독립을 달라”고 외치던 수천 명의 알제리 군중을 향해 비행기와 군함을 이 용해 학살을 자행했고 프랑스 측 희생자는 사망자 103명이며 알제리 측 희생자는 45,000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 희생규모는 엄청난 것이었다. 이를 ‘세티프 학살’이라 고 일컫는다. 이후 8년간의 끈질긴 알제리 독립전쟁(1954~1962년)이 이어지게 된 계 기가 되었다.」
이제 이슬람에 있어서의 범죄와 처벌의 개념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현대에 들어와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범죄도 다양해졌다.
범죄란 개인이 사회에 대해 타인의 권리나 재산 따위를 함부로 침범하여 손해를 끼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죄와 벌의 개념이 개인과 사회의 관계라는 국가의 개념에 포함되게 되었다.
서구 자본주의 국가와 같은 개인주의 국가는 개인을 매우 신성시 하여 모든 사회생활의 중심으로 생각한다. 그러한 이들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국가의 권리를 억제한다.
이러한 경향은 그들의 죄와 벌에 대한 개념을 나타낸다. 서구국가는 죄인들이 처한 불우한 주위 환경과 극복할 수 없는 정신착란 및 신경질환의 희생자로 보고 될 수 있으면 교정하며 보살피려고 한다.
그러므로 서구국가는 형벌, 특히 도덕적 범법자에 있어서의 형벌을 처벌이라 생각하지 않을 정도까지 약화시키려 한다. 여기서 범죄를 정당화하고 설명하기 위해 정신분석학이 도입되었다. 범죄를 사회, 종교, 도덕 그리고 전통 때문에 억눌려 있던 성적 본능의 결과로 인한 성적 콤플렉스로 간주한 선구자는 프로이드(Sigmund Freud)라고 알려져 있다.
그 후 많은 정신분석학자들의 연구가 프로이드의 예를 따랐지만, 성적 에너지를 생활의 중심으로 본다는 점에 있어서 그와 의견을 달리 하였다. 모든 그와 같은 연구들은 범죄자를 그가 자라난 일반적이고 개인적인 환경의 희생물인 수동적 피조물이라고 보았다.
그들은 “정신적 결정론”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믿게 되었다. “정신적 결정론”이란 이미 정해진 태도에 따라 행동하는 정신적 에너지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의지나 행동의 자유가 없다고 말하는 이론이다.
이와는 달리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사회란 개인이 거역할 수 없는 신성한 본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그러한 국가에서는 반사회적 행위를 한 개인에게 사형 또는 고문 등 심한 형벌을 가한다. 사회주의는 범죄자에 대해 프로이드나 그 밖의 심리학자들이 도입했던 정신적 측면보다는 경제적인 측면을 더 중시한다. 사회주의는 경제적 무질서로 곤란을 받는 사회에서는 미덕이 생길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범죄자는 처벌받지 않아야 한다고 내세운다. 그러나 경제가 절대적 평등에 의해 조정되던 구 러시아에서는 어째서 죄가 발생하고 감옥과 재판소가 필요한지 공산주의자들이 설명할 수 있었을까?
물론 개인주의나 공산주의나 양측이 어느 정도 옳다는 것에 의심이 있을 수는 없다. 주위 환경이 개인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잠재의식의 콤플렉스가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은 어떤 환경에 마주쳤을 때 완전히 수동적 존재인 것만은 아니다. 정신분석학자들은 이런 실수를 저질렀다. 즉 그들은 사람의 에너지에 온 연구를 집중했을 뿐 인간 조직에 있어 선천적인 자제력은 무시했다.
어린이가 자기의 분비샘을 조정해서 일정한 나이가 되면 오줌을 싸지 않게 해주는 능력이나,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감정이나 갑작스런 변덕에 자신이 계속 매이지 않기 위해 그의 감정과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이 인간에게는 있다.
한편으로는 경제적 조건이 개인의 감정과 행동에 얼마간의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배고픔이 정신적 붕괴와 악한 마음을 일으켜서 죄나 도덕적 타락을 낳게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적 요인만이 인간의 행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완전한 진리가 될 수 없다. 그것은 기아와 가난을 몰아냈다고 주장하는 구 러시아의 실생활에서 거짓임이 명백히 드러났다.
중요한 점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 어떤 범죄자가 처벌을 받아야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따지기에 앞서 그가 범한 죄에 대해 그가 어느 정도까지 책임을 져야할 것인가를 정해야 한다. 이슬람이 죄와 벌에 관한 문제를 생각할 때 이를 고려했음을 알아야 한다.
이슬람은 막연하게 형벌을 금지하거나 적당한 고려도 없이 처벌하지는 않는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슬람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양 진영의 가장 우수한 이론을 조화시킨 유일한 이론이다.
이슬람은 정당한 방법으로 정의의 균형을 유지하며 범죄자와 관련 있는 모든 조건과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범죄를 연구함에 있어서 이슬람은 동시에 두 가지를 고려한다. 범죄자의 견해와 그가 범행한 사회의 견해를 모두 고려하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 아래에서만, 이슬람은 태만한 이론이나 국가, 개인의 변덕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고 건전한 이성과 지혜로운 사고에 의한 공정한 처벌을 내리게 된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한다거나 적절한 고려를 하지 않음으로써 잔인하거나 그릇된 처벌을 내리는 것을 이슬람은 금하고 있다. 따라서 이슬람은 범죄가 옳지 못하거나 그 범죄자가 어떤 강제도 받지 않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 확실하지 않은 한 그러한 처벌을 행하지 않는다.
이슬람은 도둑의 손을 자르라고 명하지만, 그 범죄자가 배고파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일말의 의심이라도 있으면 결코 그런 처벌을 가하지 않는다. 이슬람은 간통을 한 남녀에게 돌을 던지라고 명령하지만 그들이 기혼자들이 아닐 경우, 혹은 그러한 가증스러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목격한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이 없을 경우 그러한 처벌을 가할 수 없는 것이다.
이슬람은 모든 처벌에 대해 이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판단해야 한다.
이슬람의 가장 뛰어난 입법자였던 ‘우마르 이븐 알카탑’ 제2대 칼리프에 의해 제정된 법률에서 이것을 명백히 발견할 수 있다. ‘우마르’는 샤리아(이슬람법)를 정직하게 시행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따라서 그가 법 해석에 있어서 관대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런 ‘우마르’도 기근으로 도둑질이 기승을 피우던 시기에는 도둑의 손을 자르는 것을 금지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위의 그러한 법 적용은 다음의 일화로 잘 설명이 된다.
‘하티브 이븐 아비 발타’의 하인 중 몇몇 소년이 ‘무즈나’족 사람의 암낙타를 훔쳤다는 보고가 ‘우마르’에게 전해졌다. ‘우마르’가 그 소년들에게 물었을 때 그들은 절도죄를 시인하였다. 그래서 그는 소년들의 손을 자르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잠시 생각한 후에 그는 ‘하티브’에게 말했다.
“네가 그 소년들을 고용했고, 또 그들이 먹을 수 없는 정도의 것까지도 먹을 정도로 굶주렸다는 사실을 만일 내가 몰랐다면 나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들의 손을 잘랐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고용주에게 설교하기를
“하느님의 뜻에 따라 나는 그들의 손을 자르지 않았기에 나는 너에게 벌금을 부과하겠다.”
고 하셨다. 그분은 주인에게 암낙타 값의 두 배를 물게 했다.
이 일화는 다음과 같은 원칙을 매우 명백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즉 주위환경이 죄를 짓게 만들었을 경우에는 형벌이 행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원칙은 선지자의 말씀에 의해 뒷받침된다.
“막연한 의심에 의해 처벌하지 않도록 해야 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처벌을 요구하기위해 이슬람이 채택한 사례를 연구해 본다면, 이슬람은 우선적으로 범죄가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개선하는데 주력함을 알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범죄가 발생하게 된 사전 주의환경을 파악한 뒤에야 자기의 죄에 대해 아무런 정당성을 주장할 수 없는 자에게 처벌을 가하게 되는 것이다.
범죄를 유발할 수 있는 환경을 개선할 수 없거나 범죄에 대해 어떤 확신을 할 수 없는 사회에서는 처벌이 가해지지 않고, 통치자는 죄인을 풀어주거나 가벼운 형벌(태형이나 징역)로써 죄인을 벌하게 된다.
이슬람은 갖가지 방법으로 범죄를 일으키는 환경을 제거하려 노력한다. 또한 부의 공정한 재분배를 보장하려 한다. 우마이야 왕조의 ‘우마르 빈 압둘 아지즈’ 정부 때는 빈곤이라고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슬람정부는 모든 국민을 종교, 인종, 언어, 피부색 또는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국민을 살필 의무가 있다. 또한 모든 국민에게 어엿한 직업을 마련해 줄 책임도 있다.
마땅한 일자리가 없거나 그의 능력이 부족하면 국가의 세금으로 그 사람을 돌봐줘야 한다. 이슬람은 모든 가능한 범죄의 동기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처벌을 가하기 전에 그에게 범죄를 강요할 만한 환경이 있었는지를 확인한다.
이슬람은 성욕을 인정하지만 그 성적 본능을 결혼이라는 합법적인 방법을 통해 만족시키려 한다. 그래서 이슬람은 조혼을 권장하며, 비용이 없어 결혼을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국가의 세금으로 지원하기도 한다.
한편으로 이슬람은 흥분을 유발하는 충돌로부터 사회를 정화하려 노력한다. 또한 과도한 성적욕구를 고상하고 우아한 목표를 위해 사용시켜 사회공익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인도한다.
이슬람은 여가시간을 하나님과 더욱 가까이에서 보낼 것을 권장 한다. 이슬람은 이런 방법으로 범죄를 일으키는 모든 동기를 제거하려 한다. 더구나 이슬람은 범죄인이 2인 이상의 증인이 볼 정도로 공공연한 간통을 저지르고, 전통을 무시하거나 동물적인 행위를 하지 않는 한, 처벌하기 위해 서두르지 않는다.
이에 대해 현대의 경제, 사회, 그리고 도덕적 상황은 젊은이들이 결혼을 미루게 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성범죄를 유발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 말은 어느 정도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이슬람이 진정 바르게 적용되는 사회에서는 젊은이를 타락하게 하는 포르노, 외설적인 영화, 잡지, 신문 또는 음악 등의 퇴페적인 유혹들이 없다. 거리에서 인간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을 찾아볼 수 없다. 순결한 결혼을 막는 빈곤도 없다. 그와 같은 상황일 경우에만 범죄자가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변명해도 그를 지체 없이 처벌할 수 있게 된다.
처벌을 하기 전에 이슬람은 범죄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환경을 없애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범죄가 발생한 후에도 혐의에 조금이라도 의심 가는 사항이 있을 경우에는 처벌을 미룬다. 그 어느 체제가 이슬람의 정의와 비교될 수 있겠는가?
이슬람이 채택한 처벌을 원시적이고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죄와 처벌에 대한 이슬람의 개념을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슬람의 처벌이 마치 자신들의 법률이 행해지듯 매일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이슬람 사회가 매일 태형, 손 절단, 돌을 사용한 처형 등을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잘못 상상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런 시행하기 꺼리는 처벌은 매우 드물게 행해진다.
도둑에게 가하는 처벌이 40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6번 행해졌다는 사실은 그러한 처벌을 되도록 억제하고 있다는 점을 명백히 밝혀준다.
이슬람은 처벌을 명하기 전에 범죄를 방지하는데 주력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한 처벌이 가해질 경우에는 매우 정당하게 시행됨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이 이슬람법의 적용을 두려워하는 것은 자연적으로 그들이 죄인이고 범죄행위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다. 이와는 달리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처벌이 실제로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이 말은 사실과 다르다. 이런 처벌은 뚜렷한 이유가 없이 범죄를 저지르고자 하는 예비 범죄자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 채택된 것이다. 그들의 범죄를 일으키려는 욕망이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범행하기 전에 이 처벌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의 공공복리와 사회구성원들의 인명과 재산을 돌보고 완전한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려는 사람들을 그들 멋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이슬람은 무슨 수를 써서든지 이들을 정상인으로 돌려놓고 보살핀다. 그리고 범죄환경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어느 교양 있는 젊은이나 현대의 법률학자가 서구인들로부터 원시적이라고 비난 받는 것이 두려워서 이슬람이 정한 처벌을 어기려 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후회할만한 어리석은 행위일 것이다. 사람들이 진정한 이슬람법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면 많은 도움을 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제7장 이슬람과 성적 억제
서양의 심리학자들이 종교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 번 살펴보기로 하겠다.
그들은 종교가 인간 본연의 활동성을 억제할 뿐만 아니라 인간을 죄의식에 빠트려 평생 을 고통 속에 살도록 한다고 말한다. 종교인들을 사로잡고 있는 이러한 감정은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은 죄악이며 따라서 그들의 생활 속에서 모든 즐거움을 없애지 않고는 이 죄악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유럽의 암흑기에 유럽인들은 종교를 매우 빨리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들의 종교가 요구하는 하찮은 금기들을 거절했을 때, 유럽인들은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었고 활동과 생산의 장으로 돌입하게 되었다.
그들이 다시 중세의 종교적 분위기로 귀의하기를 바랄까? 해방된 감정을 또다시 구속하길 원할까? 진취적인 엘리트인 젊은이들에게 모든 일마다 허용과 금기를 말하면서 그들의 생활을 침해해야 해야 할까?
유럽이 그들의 종교에서 무엇을 바라는가 하는 문제를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미루기로 한다. 그것을 믿고 안 믿고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일반적인 종교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이슬람에 대해서만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이 힘 있게 살아 움직이는 능력을 억제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얘기하기 전에 먼저 억제의 정의부터 내려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끔 엘리트나 모방을 잘 하는 범인들에 의해 잘못 사용되기 때문이다.
억제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본능적인 행위를 금하는 것이 아니다. 억제는 본능적인 감정자체를 불결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이러한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을 거부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이런 의미의 억제는 본능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닌 무관심의 문제이다. 자신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불결한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가 하루에 스무 번이나 이런 짓을 한다 해도 억제의 감정으로 인해 고통 받게 된다.
왜냐하면 매번 그가 일을 저지를 때마다 마음의 갈등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잠재적으로 그렇게 우왕좌왕하는 것은 강박관념이나 정신착란의 계기가 된다.
우리는 억제에 대해 프로이드가 해석한 내용을 지지하지 않는다. 아래는 평생을 인간의 억제와 관련된 연구에 바치고, 종교가 인간의 행동성을 억제한다고 혹평한 프로이트의 해석이다.
그의 저서 “성에 관한 학설에 대한 세 가지 공헌”의 82 페이지에 의하면 “잠재적인 억제와 본능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잠재적인 억제는 단지 행동의 중지이다.”라고 한다.
이제 우리는 억제가 본능적인 감정을 불결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고, 행동을 중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 그러면 이슬람에서의 억제에 대해 논의해 보기로 하자.
맨 처음 행동의 동기를 받아들이고 마음이나 감정 속에서 그것의 위치를 정당화하는 데 있어서 이슬람만큼 솔직한 종교는 없다. 꾸란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사람은 여자나 자손, 금은보화, 값비싼 말, 재물과 경작지에 대한 욕망을 가진다.”
이 구절에서 보듯이 꾸란은 모든 세속적인 욕구를 인정하고 사람들이 이것을 반대하거나 비난할 것이 아니라 중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이슬람은 인간이 이러한 욕망에 의해 움직이고 결국 그것의 노예가 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인생이 이런 것들에 의해 이끌려서는 안 된다. 만약 인간이 그의 모든 정력을 소모해가면서 색욕만을 탐닉하고 퇴폐적인 것에만 익숙해진다면, 인간이 항상 좀 더 나아지려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없다.
그렇다. 이슬람은 인간이 짐승의 수준으로 타락하는 것을 허용치 않는다. 그러나 이것과 잠재적인 억제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인간의 영혼을 다루는 데 있어서 이슬람에서는 원칙적으로 원초적인 동기가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해야한다.
그리고 그것을 잠재적으로 억제하지 않는다. 그리고 합리적으로 즐기는 정도로 이 본능적인 것을 실행하는 것을 허가해 준다. 개인이나 사회에 해를 가져오지 않는 범위에서 즐기도록 한다.
퇴폐적인 향락에 빠져있는 사람은 그의 힘 있게 살려는 능력을 생활에 쓰기 전에 이미 다 소모해 버리고, 후에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가져다 줄 욕망의 노예가 되어 버리고 만다.
이렇게 오직 향락에만 빠진 사람들은 사회에도 해를 끼치게 된다. 즉, 좀 더 소중한 일을 성취하는 데는 소홀하게 되고 가족관계 마저 해체되고 사회의 낙오자가 되는 것이다.
이슬람에서는 이와같이 이롭지 모한 점을 방지하는 범위 내에서 성의 쾌락을 즐기도록 허락한다. 그것은 꾸란에 명시된 바와 같이 꼭 그렇게 행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누가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에게 생의 즐거움을 주신 신을 숭배하지 않겠는가.”
“너의 본분을 잊지 말아라.”
“우리가 네게 부여한 생을 즐기도록 하라.”
“그리고 먹고 마시되 지나침이 없도록 하라.”
꾸란은 특별히 성적인 충동도 인정한다. 그리고 그것은 종교적인 억제에 관한 토론의 주제이기도 하다. 선지자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너희가 사는 세상에 본질적인 사랑과 이성에 대한 사랑을 부여했고 신께 기도하는 자는 나의 은총을 받을지니라.”라고 말씀 하셨다.
이것은 성적인 충동을 본질적인 이 세상의 향기라는 고귀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그것을 인간과 그의 창조주 하나님을 가장 가깝게 하는 매개체인 기도와 관련짓고 있다.
그분께서는 좀 더 쉽게 말하기를, “인간들이 그의 아내와의 사이에 갖는 성행위는 무방하다.”라고 했다. 그 때 무슬림들이 놀라서 물었다. “선지자여! 그러면 우리가 아내와 성행위를 하는 것은 신께서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까?” 그분께서 답변 하셨다. “만약 그가 그러한 행위를 부정한 방법으로 했다면 처벌을 받지 않겠느냐. 그러니 너희가 정당한 방법으로만 행한다면 무방하다.”
이렇게 볼 때, 이슬람교에서는 어떤 억제도 찾아볼 수 없다. 한 젊은이가 성적인 충동을 느꼈을 때 거기에는 아무런 잘못도 없으며, 따라서 그것을 불결한 것으로 볼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슬람에서는 다만 그러한 충동을 억제가 아닌 자신의 의지로, 무의식이 아닌 의식으로 조절하기를 요구할 뿐이다. 즉 적절한 시기를 위해 그것을 실행하는 것을 연기하는 것이며, 그것은 프로이드가 말한 억제가 아니라 적절한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것은 억제처럼 강박관념이나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신경장애를 가져오지 않는다.
이슬람이 이렇게 욕구를 조절하여 제어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인간에게서 즐거움을 빼앗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이슬람의 역사를 보면 이슬람 이외의 어떤 교리나 법률도 인간의 감정을 조절할 수 없었다.
한편 국민들이 그들의 향락을, 필요하다면 몇 날이고 몇 년이고 연기하거나 중지할 수 있도록, 역경을 견뎌내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고서는 국제적인 투쟁 속에서 그 어느 국민도 시련을 견딜 수 없다.
이와 같이 인간이 지켜야 할 근본자세를 가르치는 데 이슬람의 단식은 현명한 방법이다. 오늘날 진보주의를 내세우는 사람들은 “뚜렷한 목적이나 이유 없이 멋대로 정한 명령에 복종시켜 사람이 먹고 마시는 기쁨을 박탈하여 굶주림과 갈증의 고통을 주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무 제재가 없는 인간이 그의 생활을 옳게 꾸려갈 수 있을까? 사람이 단 몇 시간도 억제할 수 없다면 어떻게 참다운 인간이라고 할 수있을까? 이런 사람이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참고 견뎌야 할 전쟁이 발발했다면 전쟁터에서 그 어려움을 어떻게 참고 견디면서 싸우겠는가?
한때 공산주의자들이 이슬람 국가들의 단식이나 다른 금기를 멸시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심신에 고통을 주는 고된 상황을 견뎌내는 훈련을 받지 않았다면, 스탈린그라드에서 있었던 것과 같은 공격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단식은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신 신의 계시이며, 신이 명령을 내릴 때면 국가는 이를 법으로 정하여 모든 국민이 따르도록 해야 한다. 이슬람에는 단식과 기도 외에 신을 숭배하는 것에 무엇이 있을까? 하나님의 마음에서 진실로 믿고 느낄 수 있는 진실한 무슬림이 되자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그 내용을 느끼는 데 일주일이나 걸릴까?
이치는 똑같은 것이다. 인간이 선행으로 죄를 씻고 하나님에게로 가는 일을 하기에 더할 수 없이 좋은 기회를 가져 그의 삶을 즐거움으로 가득 채우고, 마음의 평화로 병과 걱정 없이 포기하지 않는 인생을 살게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주장하듯이 종교가 그 추종자들의 삶을 침해하고 죄의 그늘 속에 몰아넣는다면 벌을 내리기 전에 용서하는 이슬람은 그들의 주장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을까?
이슬람에서 죄는 인간을 항상 괴롭히는 괴물도 아니고 인간의 생활을 막막하게 하는 끝없는 어둠도 아니다.
여기서 죄에 대한 이슬람의 관점을 알기위해 선지자 아담의 경우를 보도록 하자. 하나님의 계시를 무시한 큰 죄로 인류 전체에 죄의 멍에가 지워졌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꾸란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담이 신의 계시를 어겼지만 그는 용서받았다.”
선지자 아담의 죄는 이미 용서되어 졌기에 인류에게 구원이나 정화를 필요치 않다. 그리고 아담의 자손인 우리도 선지자 아담과 마찬가지로 죄를 짓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
심판도하시기 전에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관대하시며 자비로우신 분인가?
하나님은 인간의 본성을 알고 계시기에 그들이 견딜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이상을 주지 않는다. 신은 인간의 능력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는다.
“신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만큼의 고통만 지우십니다.” (성 꾸란)
선지자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아담의 자손은 죄인이지만 속죄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꾸란에는 자비와 용서와 회개에 대해 많이 언급되어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깊은 믿음으로 하느님의 계시를 따라야 한다. “너희 조물주에게 용서 받기를 서둘러라.”라는 꾸란의 말씀을 잊지 마라. 역경을 이겨 나가고, 노하지 않고 관대하며, 하나님이 내린 은총을 받아들이는 신앙심이 깊은 사람에게는 하늘과 땅만큼 넓은 낙원이 준비되어 있다.
누구나 죄를 범했거나 부정한 짓을 했을 때 창조주이신 하나님에게 용서를 빌고, 또한 그 용서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진실을 알게 되면 하나님께 잘못을 범할 수도, 그리고 잘못을 주장할 수도 없을 것이다.
“오, 하나님! 당신은 정말 당신의 종들에게 자비로우십니다. 하나님이 자비로우심을, 특히 인간이 죄를 지었을 때 더욱 자비로우심을 알고 나면 모두 다 하나님을 따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죄를 뉘우치고 나쁜 마음을 돌린다면 기꺼이 받아들이시고 죄를 용서해 주실 뿐 아니라, 자애롭고 친절하신 은총으로 그들을 진실한 신앙을 가진 종교인이 되도록 일깨워 주십니다.”
하나님의 용서나 은총에 어떤 의심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는 누구나 동정하시고 기꺼이 구원하시는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이라면 그 어디에 고통으로 시달리는 무리가 있겠는가?
앞에 언급한 사실들을 더 이상 증명해 보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다음 선지자의 말씀은 독특한 증언이므로 인용해 보기로 하겠다.
“너희들의 영혼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자들이여! 너희들이 죄를 짓지 않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추방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으나 용서를 구하는 자들에게 그 용서를 베풀어 주시느니라.”
14. 이슬람의 이해
1 이슬람은 세계 인구 1/5의 종교
이슬람은 기독교, 불교와 더불어 세계의 3대 종교로 꼽히지만 유독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유대교가 유대인들의 종교인 것처럼 이슬람을 마치 아랍인들의 종교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이슬람은 전세계 인구의 1/5이 넘는 13억 명의 신도를 가진 세계적 종교이다.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들은 140여 개 국가에 흩어져 살고 있다. 그 중 아랍연맹에 속해 있는 22개국(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요르단, 팔레스타인, 사우디 아라비아,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오만, 예멘, 이집트, 수단, 리비아,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모리타니, 지부티, 소말리아, 코모로)를 포함하여 이슬람회의기구에 가입되어 있는 회원국가만 해도 57개국)약 8억 명 이상, 아랍연맹 22개국과 아프카니스탄, 알바니아, 아제르바이잔, 방글라데시, 배냉, 브루나이, 부르키나파소, 카메룬, 차드, 가봉, 잠비아, 기니, 기니비사우, 가이아나, 인도네시아, 이란, 카자흐스탄, 키르키스탄, 말레시아, 몰디브, 말리, 모잡비크, 니제르,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세네갈, 시에라이온, 수리남, 타지키스탄, 톡고, 터키. 투르크메니스탄, 우간다, 우즈베키스탄, 코트디부아르)에 달한다. 이 국가들이 현대세계에서 이슬람 문화권, 즉 무슬림 움마(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그 범위는 서아시아를 중심으로 하여 동쪽으로는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과 동남아시아까지, 서쪽으로는 아프리카 북서부의 끝까지 이른다. 이 지역은 이슬람 역사에서 아랍어로 다르 알 이슬람 이라고 불려온 지역으로 오늘날의 이슬람세계 또는 이슬람권을 말한다. 무슬림 수가 가장 많은 국가는 인도네시아이고(약 1억 8천만명), 지역적으로는 인도반도에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다(파키스탄 약 1억 4청만명, 인도 약 1억 명, 방글라데시 약 1억 1천만명), 아랍인 무슬림 수는 3억 명이고 터키(약 6천 3백만 명), 이란 (약 6천 5백만 명), 이집트(약 5천 9백만 명), 나이지리아(약 7천만 명) 등 무슬림 인구가 5천만 명 이상 되는 국가도 상당수 있다. 우리의 이웃인 중국에도 약 4천만 명 가량의 무슬림이 있다. 유럽에서 두 번째로 신도 수가 많은 종교이다. 약 1천 7백만 명의 무슬림이(프랑스 4백만 명, 영국 4백만 명, 독일 250만 명 등)이 있으며 미국에도 약 8백만 명이 넘는 무슬림이 살고 있다. 이슬람(세계 인구의 22%은 기독교(세계 인구의 33%)다음으로 신도 수가 많은 종교이며 기독교를 카돌릭과 프로테스탄 로 나누어 볼 때는 무슬림 수가 세계 1위이다.
2 하나님만을 믿는 유일신교
이슬람은 하나님을 믿는 종교다 . 유대교가 모세의 5경을 토대로 했고, 기독교가 예수의 복음서를 중심으로 교회를 세웠듯이 이슬람은 무함마드의 꾸란을 통해 하나님인 알라 에게 귀의하는 종교이다. 이 세 종교는 같은 하나님을 믿는 일신교이다. 모두가 만물의 창조자, 부양ㅇ자, 우주질서의 주관자, 지배자, 전지전능의 절대자, 최후 심판의 날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믿는다. 야훼(여호와)는 히브리어이고 알라는 아랍어이며 하나님은 우리말이다. 예컨대 아랍의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신을 부를 때 아랍어로 알라 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 이라는 말처럼 알라 하나님은 가능하겠지만 여러 신들 중 알라신을 믿는다 라는 의미로 알라신을 지칭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슬람 교도들은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다른 신과 하나님을 동렬에 두는 것은 죄 중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가장 큰 죄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이슬람은 오직 알라 만을 믿는 유일신 교리의 종교로서 신성에 관해서는 어떠한 복수적 개념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따라서 기독교의 삼위일체론 같은 교리는 즉각 배격한다. 그 때문에 무슬림들은 그들이 가장 훌륭한 일신교도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산다.
꾸란에서는 알라가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신과 동일한 하나님 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이슬람 교인들은 신에 대해 말할 때 그 신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모세의 하나님, 예수의 하나님, 무함마드의 하나님 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관한 꾸란 성구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우리에게 계시된 것과 너희에게 계시된 것을 믿는다. 우리의 하나님과 너희의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우리는 그분께 복종하는 자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너희 는 성서를 가진 백성들로 유대인과 기독교인을 지칭한다. 그리고 이 성구 끝의 복종하는 자 가 원어대로 발음할 때 무슬림인데 이 단어가 바로 이슬람교인을 가르키는 아랍어이다.
서구에서 잘못 표현했던 영향으로 종종 이슬람을 마호메드 (무함마드)교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크게 잘못 된 것이다. 무슬림들은 무함마드를 신봉하지 않는다.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이 땅에 전한 신의 사자 로서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를 이은 예언자일 뿐이다. 꾸란에서는 무함마드가 철저히 인간임을 강조한다. 무슬림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뜻에 절대 복종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슬람교인들은 무슬림(복종하는 자)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세계적인 종교의 이름이 그 종교의 창시자(불교, 기독교, 조르아스터교)나 지역 또는 인종(유대교, 힌두교)을 바탕으로 지어졌지만 이슬람은 아랍어로 순종(복종)과 평화라는 뜻에서 이름 지어졌다. 세계 만물의 창조주인 하나님에게 절대 순종함으로서 육체와 정신의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종교적 합의를 담고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슬람교는 하나님의 의지에 무조건 복종하는 종교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회교라고 지칭하는 사례가 종종 있는데 이것도 잘못된 것이다.
또 무슬림은 하나님이 이 땅에 예언자들을 보냈다고 믿는다. 인류의 조상 아담으로부터 시작되는 모든 신의 사자와 예언자들의 존재 그들의 사명과 역횔을 믿는 것이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예언자들인 아브라함과 모세, 다윗, 야곱, 요셉은 물론 신약 성서에 나오는 예수와 세례자 요한까지 예언자들 모두를 믿는다. 꾸란에 등장하는 25명의 예언자 중 21명이 기독교 성서에 나타난 동일인다.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속성인 자유의지로 인해 하나님께서 말씀을 그대로 따르지 못하고 원래의 가르침에서 이탈하거나 왜곡된 길을 걷게 마련이다. 이 때 하나님은 새로운 예언자를 보내서 원래 하나님의 가름침이 무엇인지를 다시 일깨워 준다. 무슬림은 이러한 마지막 예언자가 무함마드라고 믿는다. 또 무슬림은 천사의 존재와 천국과 지옥을 믿으며 최후 심판의 날이 도래할 것임을 믿는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토라(모세5경)와 다윗의 시편, 예수의 복음, 꾸란으로 인류에게 계시되었음을 믿는다. 꾸란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마리아의 아들 예수로 하여금 토라에서 그 이전에 계시된 것을 확증하고 그들(예언자들)의 발자취지를 따르도록 했으며 또한 토라에서 그 이전에 계시된것을 학증하면서 인도와 광명이 담겨있는 복음서를 그에게 내려 주셨나니 이는 신을 경외하는 자들을 위한 훈계요 인도서이니라.
이 성구를 통해 예수의 중요한 사명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혀졌다. 그것은 모세에게 내려졌던 토라의 내용을 확증하고, 새로운 복음서를 이 땅에 가져와 인류에게 신의 뜻이 무엇인지를 전달하는 일이었다. 기독교인들이 그들에게 내려진 신약성서 의 계시가 그 이전에 내려진 구약의 내용을 확증하는 것이고 동시에 완벽하게 채워주는 것으로 보고 있듯이, 무슬림은 앞서 내려진 경전들 속에 계시된 것들을 확증하고 또 유대교와 기독교의 신앙 체계에서 후대인들이 인위적으로 첨삭했거나 왜곡한 것들을 순화시키고 올바르게 하며 때로는그것을 보완하여 완벽한 것으로 바로잡기 위해서 꾸란이 내려왔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신으로부터 받은 계시서인 꾸란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종합판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무슬림은 이슬람이 새로운 계시, 새로운 경전을 가진 종교라고는 생각지 않으며 태초부터 존재해온 유일신 종교의 마지막 완성된 체계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아담의 하나님, 노아의 하나님, 아브라함과 모세, 에수의 하나님, 무함마드의 하나님에 전혀 구별이 없다. 똑같은 하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이를 뒤바침해주는 꾸란의 성구들은 무수히 많다.
우리(하나님)는 그가 이전에 성경에 계시된 것을 확증하고 성경을 수호하는 진리가 담긴 성서(꾸란)를 너(무함마드)에게 내려주노니...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명하셨던 종교를 너희의 종교로 규정하셨나니,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너(무함마드)에게 계시해준 것이고 또 그분께서 아브라함과 모세와 예수에게도 그 종교를 지키고 그 안에서 분열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던 것이니라...
이와 같이 무슬림의 관점에서 유대인과 기독교인은 성서의 백성들로 하나님으로부터 같은 계시를 받은 형제들이다. 즉 신앙인의 한 공동체 사람들로 보고 있는 것이다. 유대교인, 기독교인에 관련하여 무슬림이 누구인가?는 다음의 성구로 분명해진다.
너희는 말하라.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며 우리에게 내려준 것과 아브라함과 이스마엘과 이삭과 야곱과 그 자손들에게 내려주신 것과 모세와 예수가 계시받은 것과 예언자들이 그들의 주님으로부터 계시받은 것을 믿사오며 우리는 그들 중의 어느 누구도 차별하지 아니하며 오직 그분에게만 복종하는 자들입니다.
3 아브라함의 신앙을 중시하는 종교
이슬람교를 설명할 때 예언자 아브라함과의 관계를 빼놓을 수가 없다. 무슬림들은 무조건 하나님께 복종하던 아브라함의 신앙을 그대로 따르기를 원하고 아브라함과 같은 순수한 신앙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아브라함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세 종교 모두의 공동 조상이다. 무슬림은 그의 둘째 부인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을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이어지고 기독교와 유대교인은 첫 번쩨 부인 사라의 아들 이삭을 통해 연결된다. 그렇지만 이슬람 전통에서 차지하는 아브람함의 위치는 가독교나 유대교 전통에서보다 남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무슬림들은 하나님의 진리가 아담과 노아 때와 마찬가지로 아브라함 때도 그 원형이 순수하게 내려졌는데 그의 뒤를 이은 후대의여러 세기를 거치면서 그것이 일부 왜곡되고 변경되자 하나님은 모세와 예수, 무함마드와 같은 예언자들을 이 땅에 보내게 되었으며 마지막 예언자인 무함마드의 사명은 바로 이 원형의 종교인 이슬람을 다시 아브라함 때와 같은 순수한 것으로 복원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일신교의 역사는 기원전 13세기에 아브라함이 신의 가르침을 받고 그의 아버지 권위에 도전함으로써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이 시기에 인류는 다시 우상숭배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꾸란에서 언급하고 있는 모습은 다음과 같다.
아브라함이 그의아버지 아자르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우상을 신으로 모시고 있습니까? 실로 저는 당신과 당신의 민족이 분명히 잘못하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창세기 제 12장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아랍식 이름 아자르)는 그의 가족을 메소포타미아의 계곡 우르의 갈데아에서 오늘날 서구가 비옥한 초생달 지역이라고 부르는 곳 북서쪽 활 모양으로 구부러지는 지역의 하란으로 데려갔고 아버지가 죽은 뒤 아브라함은 하란에서 나와 가나안 이집트로 옮겼다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으로 되돌아 온다. 이슬람 전통에 따르면 이러한 아브라함의 여정 중에 메카로 갔던 것도 포함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브라함은 유대인과 아랍인의 조상이고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모두가 각각 아브라함에 대한 각별한 연고를 주장한다. 유대교인들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새 언약을 맺었고 그 증표로 할례를 만든 원조라고 믿고 있으며 따라서 아브라함은 토라 이전에 유대인이었음을 주장한다. 기독교에서는 사도 바울이 하나님에 대한 아브라함의 무조건적인 신앙을 가장 의로운 기독교인의 모범으로 내세웠고 그래서 아브라함을 복음서 이전에 한 기독교인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무슬림도 아들을 희생하려 했던 아브람함의 의지를 신에게 복종하는 모범적 행신으로 삼고 그를 꾸란 이전의 무슬림으로 믿고있는 것이다. 이같이 아브라함은 지리적 종족적 정신적으로 세 종교와 연관을 맺고 있으며 각 종교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진정한 친구요 신앙의 아버지로 증언하는 전통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성약을 만드셨는데 그 내용은 그의 가족과 후손들을 크게 번성하게 하고 은혜받게 하리라는 것이었다. 아브람함의 아내 사라는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지키시리라 믿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미 아이를 낳을수 있는 나이를 훨씬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아브라함에게 이집트의 하녀 하갈을 부인으로 맞을 것을 권했고 둘 사이에는 이스마엘이 태어났다. 그리고 이스마엘이 자라서 할례를 받은 후에 두 번째 아들이 기적적으로 사라에게서 태어난다. 이 아들이 이삭이다. 그런데 사라는 그 후 이삭을 위한 유산 상속문제를 염두에 두고 장자인 이스마엘을 하갈과 함께 집에서 쫒아내라고 아브라함에게 강요한다. 수일간의 여행 끝에 타는 듯한 사막에 버려진 하갈과 이스마엘은 한 방울의 물도 남지 않게 된다. 이스마엘을 살리기 위해 하갈은 물을 찾아 사파와 마르 두 언덕 사이를 일곱 바퀴나 돌았으나 허사였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하나님은 또 다른 은총을 내려주셨다. 이스마엘의 발 밑에서 잠잠이라는 샘을 솟게 하셨던 것이다.
이슬람 전승은 하갈과 이스마엘이 버려졌던 파란의 광야가 메카근처의 사막지대였다고 말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그 뒤 하갈과 아들의 생사가 궁굼하여 찾아와보니 모자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메카에서 잘살고 있었다. 아브람함은 사막에 떨어진 운석을 운반해 와 제단을 쌓고 이스마엘과 함께 예배소를 세워 감사의 예배를 드리니 이것이 오늘날 메카의 카아바이다. 검은 천으로 둘러쌓인 육면체 모양의 카아바는 무슬림세계에서 가장 신성한 곳이고 이슬람의 가장 친근한 상징 중의 하나다. 꾸란에서는 이때의 광경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 그 집의 기석을 들어올리면서, 주여, 저희가 드리는 예배를 받아주소서. 실로 당신은 모든 것을 들으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마엘은 이집트 여인과 결혼하여 12명의 아들을 낳았으며 137살 까지 살았다고 전해진다. 유대인들과 무슬림들의 전통은 토라와 꾸란 또는 고대 전승에 근거하여 이와 같은 이야기들이 일치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슬람 전통에서는 먼저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약속을 매우 중시한다. 이 약속은 이삭이 태어나기 전에 맺어진 것이므로 이스마엘은 약속의 아들이고 아브라함의 합법적 상속자임을 내세운다. 그리고 이스마엘의 자손이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고 말하신 위대한 민족이 마침내는 무함마들를 배출한 아랍민족이라고 말한다. 또한 신께서 아브람함의 신앙을 시험하기 위해 그의 아들을 희생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셨을 때 주저없이 신께 복종했던 아브라함의 신앙을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시 한다. 무슬림은 하나님으로부터 번제의 희생물로 지목된 아들이 이스마엘이라고 믿는다. 그는 장자였고 할례를 했으며 약속의 합법적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꾸란 성구는 다음과 같다.
아들이 그와 함께 일할 나이에 이르렀을 때 그(아브라함)가 말하기를, 오, 내아들아, 실로 내가 너를 제물로 바치라는 꿈을 꾸었는데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그가 말하기를, 오, 아버지, 명령받은 대로 하시옵소서. 하나님의 뜻이라면 당신께서는 제가 인내하는 자들 중의 하나임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 둘은 하나님께 복종하였고 그가 아들로 하여금 이마를 땅에 대고 엎드리게 했을 때 우리(하나님)는 그를 불러 오, 아브라함아, 너는 이제 꿈을 실행하였노라. 실로 우리(하나님)는 이와 같이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보상을 내리니라.
한편 구약성서 에서는 제물로 바쳐질 뻔했든 주인공이 이삭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삭은 아브람함의 나이가 100살이 되었을 때 태어났고 이스마엘은 그보다 14년전인 아브라함의 나이 86살에 태어났다. 그러니까 이스마엘은 이삭보다 14살 위였고 이 14년 동안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독자였다.
창세기 22장 2절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아들, 너의 사랑하는 유일한 아들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너에게 가르켜 주는 산의 한 곳에서 그를 번제로 바쳐라 라는 내용이 있다. 번제의 대상이 독자임은 같은 장 12절에서도 네가 네 아들 독자라도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 정녕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 라고 언급된다. 이삭이 태어난 후에도 형 이스마엘은 계속 살아 있었기 때문에 이삭을 독자라고 할수는 없다. 또 무슬림 학자들은 모리아 땅이 이스마엘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메카에 있는 마르와 동산이라고 말하고 있다.
많은 무슬림들은 창세기에 이삭의 이름이 이스마엘의 이름을 대신해 쓰여진 것은 유대 기독교 전통의 구원의 역사에서 헤부루의 역활을 강조 하기 위해 그렇게 언급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꾸란 계시의 목적이 앞선 경전 내용이 인위적으로 왜곡되고 생략된부분을 순화하고 원형의 것으로 완전하게 하는데 있다고 믿는 것이 그들의 신앙인 것이다. 무슬림들은 이슬람에서 최고의 예언자들 가운데 한 분으로 존경받고 있는 이삭의 지위가 이러한 해석으로 인해 조금이도 손상된다거 생각하지 읺는다.
이와 같이 이슬람의 전통에서는 아브라함과 관련된 신앙관이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무슬림의 성도인 메카의 성립에서부터 이슬람 신앙과 실천의 다섯 기둥 가운데 하나인 순례의식을 행하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이슬람은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의 종교적 행적과 많은 연관을 맺고 있다. 전 셰계의 무슬림들은 이들이 재건한 카아바를 향해 하루 다섯 차례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리고 이슬람전통에서 가장 큰 축제인 희생제는 바로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제물로 바치려다가 대천사가브리엘의 중재로 양을 대신 바친 사건에서 유래된다. 무슬림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라고 외치며 양을 잡아 이웃끼리 나누어 먹으며 5일 정도의 연휴를 보낸다. 메카로 성지순례를 간 무슬림 순례객들은 카아바를 일곱 번 돌고 가능한 그 안에 놓여있는 흑석에 입을 맞추거나 그것을 손으려 만져보려한다. 그 뒤 카아바 동쪽의 아브라함의 발자국이 있는 곳에서 두 번 절하고 남쪽에 위치한 잠잠샘의 물을 마신다. 이 샘은 신의 은총 때문인지 아직도 수량이 풍부하고 맑은 수질을 유지하고 있어 많은 순례객들이 이 성천의 물을 가져가 무슬림들이 마시게 한다. 또한 하갈이 물을 찾아 헤메던 싸파와 마르와 두 언덕 사이를 7번 왕복(이를 싸이라고 한다)한다.
이러한 순례의식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물론 아브라함의 손종하는 신앙관이다. 이슬람이 신의 의지에 복종하는 종교이므로 아브라함의 복종은 그만큼 돋보이는 것이다. 지나친 표현 같지만 이슬람을 아브라함교 라고 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아브라함은 예수, 모세 이전의 신의 사자로서 한 점 흩트러짐이 없던 순정의 일신교도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꾸란에는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아브라함은 유대교인도 기독교인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하니프 무슬림이 었으며 우상숭배자의 한 사람이 아니었도다.
이슬람의 논리는 아브라함, 모세, 예수의 추종자들 모두가 무슬림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후대에 인위적으로 첨삭된 교리관이다. 앞의 꾸란에서 언급된 하니프(성실한 일신교도)라는 단어가 중요하다. 진정한 무슬림의 궁극적 목표는 바로 아브라함과 같은 하니프의 길을 걷는 것이다. 그리고 유대교, 기독교인들에게도 똑같이 그 길을 걸어갈 것을 권유한다. 그 길이 곧 하나님이 말씀하신 씨라트 알 무스타낌(올바른 길)의 길이고 결국 이슬람의 길인 것이다.
4 이슬람은 신앙체계만이 아니다
오늘날 서방세계의 사람들이나 우리가 이슬람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정치적, 종교적 사건들을 보면서 그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오해와 편견의 시각을 갖게되는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이 질문에 대한 답중에서 가장 우선 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 사회가 정교분리 사회인데 반해 이슬람사회는 근원적으로 정교일치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슬람과 이슬람세계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주제에 관한 논의가 무엇보다 필수적이다.
무슬림들은 이슬람을 인간이 신의 뜻대로 현세를 완벽하게 살면서 내세를 준비하게 하는 신의 가르침으로 인간 존재의 모든 분야가 합일된 한 생활방식이라고 정의한다. 이른바 이슬람은 단순한 신앙체계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종교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인간 생활 전반을 포함하여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슬람은 종교와 세속을 모두 포괄하는 신앙과 실천의 쳬계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슬람교 보다는 이슬람 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고 그들은 이슬람교인이라는 말보다는 무슬림이라고 불리기를 바란다.
불교와 기독교 같은 대다수 종교들이 세속의 삶보다는 내세를 더 강조하고 인간 생활의 육체적인 면보다 정신적인 면을 더 중시하는데 이슬람은 내세와 똑같이 현세의 삶을 중ㅅ하고 인간 생활과 영적 육적 양측면을 똑같이 중시한다. 이것은 보통 이슬람은 정교일치제 라는 말로 대변되고 있는데 사실상 이 같이 교회와 국가 종교와 정치를 합일체제로 보는 것은 정교분리 사회에서 살아온 우리에게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날 지구상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교회와 국가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정교분리 원칙을 토대로 국가구성법(헌법)을 만들고 정교분리를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마도 이것은 기독교 전통에서 비롯된 서구의 정치사상이 현대 세계에 보편화된 영향 때문일 것이다. 기독교인은 처음부터 세속의 것과 내세의 것을 갈라놓은 예수의 가르침을 신봉해왔다. 그러나 무슬림은 종교를 바탕으로하여 그들의 첫 공동체를 세웠고 처음부터 공동체가 교회이자 국가인 개념에서 출발하였다. 세속을 통치하고 잘 사는 일과 내세를 준비하는 일을 구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이슬람세계의 무슬림은 이슬람에 정치, 경제, 사회, 종교, 군사 등 제반 영역에 관한 고유한 사상과 이념, 원리, 제도가 다 들어 있다고 믿고 있다. 이 점이 다른 종교인에 비해 무슬림이 갖고 있는 가장 톡특한 특징일 것이다.
정치권력에 대한 기독교인과 무슬림의 기본정신이 만들어지는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정치와 종교, 교회와 국가문제에 대한 두 종교의 차이를 비교해볼 수 있고 정치권력에 대한 두 종교인들의 근본적으로 다른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신께서는 특별한 시간과 장소에서 직접적이고도 결정적으로 인류 사회에 개입하셨다. 아마도 이것은 기독교인과 마찬가지로 무슬림도 똑 같이 갖고 있는 신앙의 핵심일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인류역사에 개입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직접 드러냄으로써 스스로 인간이 되셨다는 신의 말씀의 육신화 를 믿고 이것이 그들 교리의 모체를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요한은 이것을 말씀이 육신이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라고 표현하였다. 그렇지만 무슬림에게 유대교인도 마찬가지지만 이러한 개념은 극도로 불경한 것이다. 그것은 신의 절대적 유일성을 손상시키고 다신교적 우상숭배의 문을 열어 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슬림은 신의 말씀이 모세, 다윗, 예수, 무함마드 등 신의 사자들을 통하여 전달되었다고 믿는다. 예수에 뒤이어 무함마드는 신의 마지막 예언자로 선택받았다. 분명히 그는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그렇지만 무슬림들 중 누구도 그가 인간 이상의 존재이거나 신의 말씀의 주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계시된 신의 말씀을 인간에게 전달한 한 사람의 메신저였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무슬림이 스스로를 무함마드 신봉자 라고 부를 수 없다고 말하는 진의 이다.
그들이 믿는 대상은 오직 알라 뿐이다. 그들은 신의 의지에 무조건 복종하는 사람들이고 신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인 사람들이다. 이슬람은 아랍어 동사(복종, 순종하다, 몸을 맡기다)를 어근으로 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것은 신의 뜻에 복종하는 것을 말한다. 무함마드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가 신의 말씀을 전해준 마지막 예언자라는 사실 때문이다. 무슬림의 신조는 그들의 신앙 증언문인 다음 한 문장에 함축되어 있다. 라 일라하 일라 알라(일랄라) 무함마드 라술 알라(라술룰라) 알라 이외는 신이 없고 무하마드는 신의 사자이다. 이 한장을 언급하는 순간부터 누구나 무슬림이 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유대 공동체가 고통스럽게 로마제국에 합병되어가고 있던 팔레스타인 땅에서 인류 역사에 대한 직접적인 신의 개입이 이루어졌다고 보고 있다. 무슬림들은 그 후 600년이 지난 뒤 비잔틴 로마와 사산조 페르시아 두 제국이 자웅을 겨루며 동서방의 패자로 경쟁하고 있던 시대에 아직도 미개하고 순수한 땅이었던 히자즈에서 다시 한번 결정적인 개입이 일어났다고 믿고 있다. 장소와 시간에 대한 이러한 견해 차이와, 이를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 하는 것은 타자의 종교나 예언자의 사명 같은 것을 인정하느냐 못하느냐 라는 서로의 종교에 관한 근원적인 이해관계 뿐만 아니라 정치권력에 관한 두 종교의 교리관 형성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나사렛 예수는 공동체의 종교가 곧 민족적 독립과 직결되어 있을 때 태어났다. 마테오는 탄생한 아기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라 주장하였고 당시 로마의 앞잡이 헤롯왕이 자행한 유아 대량학살 사건을 예수의 탄생과 관련시키며 예수의 탄생 그 자체가 정치적 사건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렇지만 유대민족의 해방과 독립은 거의 가망없는 주제였다. 그리고 로마재국의 힘에 눌려 민족국가나 유대교의 부활을 위한 운동 같은 것은 재앙만을 불러올 주제였다. 그리고 예수 사후 40년이 지나면서 그러한 재앙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당시 예수는 좁게는 유대주의, 넓게는 기독교의 비정치적 해석을 설명함으로서 예수의 가르침의 정수와 본질이 종교적인 것일 뿐임을 분명히 하였다. 그는 내 왕국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라고 선언했던 것이다. 그는 유대교 예언자들이 앞서부터 예언해왔던 민족적 지도자 메시아가 다시 도래할 것임을 예고하면서 조직화된 정치적 반란을 통해 쟁취하는 국가보다는 오히려 믿음, 소망, 사랑을 통해 개인이 성취하는 다가오는 세상에서의 종교적 구원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또 그는 이러한 구원은 단지 유대인에게만 예정된 것이 아님을 밝혔다. 예수는 그것이 세상 만민 모두에게 열려 있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래서 누가는 예수를 만민의 구세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예수 사후 사도 바울도 이 점을 확고히 재천명하였다. 그 후 기독교는 로마제국 치하에서 고통받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후에는 더 나은 세상이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었다. 한 마디로 말해 그가 목표로 삼은 왕국은 현세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쳐라 라는 가르침으로 간명하게 표현된다. 이렇게 기독교는 현세의 정치(국가)와 내세의 종교(교회)를 엄격히 구분하여 시작하였다. 그러한 연유로 기독교인은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고 교회라는 개념과 국가라는 개념을 별개로 인식하며 살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종교와 신앙이라는 것이 개인 차원의 문제이지 국가가 관여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학파를 출연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 까지 기독교세계는 교회와 국가를 분리하는 것을 정도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은 시작부터 국가와 종교를 구별하지 않았다. 무함마드가 세운 이슬람 공통체인 움마는 처음부터 국가로 불려야 할 것이었다. 그는 메카에서 신의 말씀과 복음을 전달하는 신의 예언자로 등장했지만 메디나로 이주한 후에는 공동체를 세우고 국가원수가 되었다. 이 메디나 공동체와 정부는 비록 단순한 형태였지만 민족, 영토, 통치권 등 국가의 구성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무함마드는 공동예배에서 신도를 인도하였고 전장에서는 군대를 이끄는 군사 지도자였으며 공동체 내부에서는 여러 분쟁을 해결하는 중재자이자 재판관이었다. 그 밖에도 필요한 조약을 체결하고 규약을 제정하며 각 지역에 필요한 행정 명령을 내리는 등 무함마드는 분명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 원수의 지위에 있었다.
그의 뒤를 이은 칼리파(후계자)들도 움마 통차를 위해 무함마드가 행사하던 정치, 종교의 대권과 그 권위를 그대로 계승하였다. 칼리파들은 움마를 통치하는 정신적, 세속적 지도권이 당연히 그들에게 있었다고 믿었다. 또 무슬림들 역시 이 두가지를 구별하지 않았다. 이러한 이슬람 칼리파 제도는 정치와 종교의 일을 나누었던 중세 기독교사회의 교황 황제 체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중세 초반 동 서양을 대표하던 이 두 경쟁적 정치제도는 모두 신의 예정에 따라 존립하고 계시된 신의 말씀에 따라 체제의 권위를 부여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신의 이름 아래 세계적인 권위와 권력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기독교 내에서는 황제와 나란히 교황이 존재하였다. 그리고 교황에게는 황제가 갖고 있지 않은 영적 권위와 기능이 있었다. 그는 지상에서 신의 대리인이었고 인간의 영혼을 지배하며 인도하는 자였다. 이에 비해 황제는 인간의 육신에 관계되는 사항들을 다루는 것이 임무였다. 세속통치가 주요 임무였던 것이다. 이 독립된 두 권위 사이에는 서로의 이해가 상충되어 장기간 충돌과 대립이 지속되었다. 이와 비교해 볼 때 칼리파 제도는 표면적으로 본질적인 기능과 역활면에서는 다르지만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의 교황 황제 체제를 하나로 묶어놓은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칼리파 제도가 정교일치 제도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렇지만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전통 무슬림사회에서 교황과 동일한 기능을 가진 존재는 결코 허용될 수 없다는 점이다. 전통 이슬람에서 오류절무의 신성한 존재 또는 신과 인간 사이의 영적 중재자와 같은 지위와 개념은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신의 계시에 따라서도 이슬람의 정교일치 개념은 보증받고 있다. 꾸란은 신에 대한 복종과 현세의 통치자에 대한 복종을 동시에 가르친 것이다.
오, 믿는 자들아, 알라께 복종하라. 그리고 신의 사자와 너희 가운데 권위를 가진 자들에게 복종하라.
여기서 권위를 가진 자들이란 통치자를 뜻한다. 무슬림은 신께 복종하듯이 무하마드와 칼리파들에게도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것이 그들의 신앙이다. 통치자에 대한 복종을 의무화하는 대표적인 하디스 로는 나에게 복종하는자 누구나 신께 복종하는 것이고 내게 거역하는자 곧 신께 거역하는 것이다. 통치자에게 복종하는자 누구나 내게 복종하는 것이고, 통치자에게 반역하는 자 곧 내게 반역하는 자이다 를 들수 있다. 그렇지만 꾸란은 무슬림들이 이슬람 국가의 수장인 칼리파에게 부단히 충언해야 하고 부정한 통치자의 신하가 된다거나 추종을 삼가야 한다는 것도 동시에 가르쳐주고 있다. 칼리파가 정치, 종교의 대권을 한 손에 쥔 정교 일원적 통치권자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정치인이기 전에 신실한 종교인이어야 하고 무슬림 신민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독실하고 종교적으로 올바른 인물만이 칼리파로서 하나님의 종복인 무슬림을 이끌고 공동체를 위해 선한 정부를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예를 들면 압바스조 초기에 출연한 이슬람 정치사상가 이븐 알 무갓파아(759년 사망)와 이슬람 법학자 아부 유스프(798년 사망)는 국가 권력이 비대해질수록 칼리파의 통치 행위는 독재화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칼리파에게 요구되는 자질로는 무엇보다 독실한 신앙심과 정의임을 강조하였으며 칼리파는 신이 맡겨놓은 양떼들을 돌보아야 하는 양치기로 묘사하였다. 나아가 정부의 주요 기능도 꾸란의 명시대로 사람들을 신법에 확실히 복종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꾸란을 정확히 해석해내는 일이 급 선무였고 또 무함마드가 말하였거나 실제로 행한 선례에 비추어 움마의 모든 일을 처리하고 판결하려 했다. 그러므로 꾸란과 예언자 무함마드가 남긴 순나(관행)는 종교적인 일 정치적인 일의 구별 없이 움마 통치의 근간이 되었다. 그들은 그것이 곧 신법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실제로 꾸란과 예언자 순나는 이슬람법인 샤리아의 양대 법원이 된다.
이러한 연유로 만약 통치정부가 나쁘면 그것은 통치자가 통치하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통치자 더 이상 독실하지 못하거나 종교적으로 올바르지 않아 신법인 샤리아에 복종하지 않고 등한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움마에서는 정치 반란들이 항상 종교적인 이유를 내세우면 정당화 되었다. 그리고 비록 정치적 변혁이 일어난다 할 지라도 그 목적에 종교적 대의가 올바르게 세워져 있는 한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은 무함마드가 남긴 다음의 하디스로 뒷바침된다. 나의 공동체는 오류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 내에서는 카와리지나 쉬아 같은 분파가 생겨나 끊임없이 기존 정권에 대항하는 반정운동을 전개해도 묵인될 수 있었으며 나아가 지방에서는 권력이나 군사력이 신장되어 중앙정부에 도전하는 정치적 분열현상이 계속 일어나도 간과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14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현대의 이슬람 원리주의 조직들은 친서구적이고 세속화된 정권을 무너뜨리고 정교일치의 진정한 이슬람국가의 건설을 외치고 있고 급기야는 자신들의 정치, 종교적 가치관만이 올바른 것이라는 신념 아래 극단주의의 여러 급진 무장 세력을 조직하여 나름대로의 정치적 종교적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무슬림에게는 정치적인 일이 곧 종교적인 일이며 항상 역사속에서 칼리파의 지위를 원하는 자도 칼리파를 탄핵하려는 자도 모두 꾸란과 예언자 순나 를 내걸고 투쟁하였던 것이다.
무슬림들이 공동체(국가)를 세우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꾸란 은 무슬림의 기본 의무를 다음과 같이 명확히 가르쳐 주고 있다.
무슬림들은 예배를 행하고 자카트를 내며 선을 실행하고 악을 금하는 그런 자들이니...
땅위에 국가를 세웠을 때 무슬림들은 먼저 예배와 자카트(종교 구빈세) 같은 종교적 일을 시행해야 하고 동시에 선한 일을 행하고 악한 일을 금하게 하는 정치적인 일을 수행해야 한다. 무슬림들은 올 바른 일을 행하고 악을 금하라 는 이 명령을 이슬람국가와 무슬림 개인 모두가 절대적으로 지켜야할 첫 번째 의무사항으로 생각하고 있다. 무슬림들은 이 의무의 실천을 이슬람이 제시해온 선과 진리에 관한 모든 가르침과 기본 원리들을 결합하고 있는 가장 결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무슬림 정치학자들은 무슬림 국가에서는 이 의무의 실천을 최우선으로 제도화하고 필요하다면 무력을 써서라도 그 실행을 강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곧 이슬람정치의 근본임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앞의 성구를 통해 이슬람에서는 종교와 정치를 구별하지 않는다 는 사실을 재확인 하게 된다. 왜냐하면 선을 행하고 악을 금하는 일이 곧 종교의 길이고 목표이며 또한 종교의 일을 하는 것이 곧 정치임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무슬림들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정교일치원리에 대한 감정은 또 다른 중요한 이슬람의 가르침인 예언자 무함마드의 다음과 같은 하디스에서 읽을 수 있다.
너희들 중 누구든지 악행을 보는자는 자신의 손으로 그것을 바꿔 놓아야만 하고 만약 그렇게도 할 수 없다면 혀로라도 시도해야만 하고 만약 그렇게라도 할 수 없다면 그때는 신앙의 가장 약한 표현인 마음속으로라도 그것을 행하여만 한다.
이 하디스는 오늘날까지 무슬림의 국가, 사회, 개인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행동의 기본지침이 되고 있다. 불의와 악행을 보고 그냥 앉아 있는 것은 올바른 신앙인의 태도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 하디스의 마지막 구절에서 보듯이 마음으로만 실천하는 행위는 가장 약한 자들이 가는 길이다. 정의를 위해서는 언제나 적극적 사고와 더불어 신앙의 실천주의를 몸소 실행하여야 한다. 이 하디스는 옳은 일을 명하고 악한 일을 금하라 는 꾸란 성구의 으무적 실천과 직결되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가르침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무적 실천주의는 그 보편성에서 무슬림 생활의 모든 측면을 포괄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많은 무슬림들은 이 의무의 실천이야말로 무으민(믿는자들)의 인격에서 필수 요소의 하나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아마도 이 하디스는 신앙의 순결성과 실천주의를 표방하면서 우마이야조 내내 급진적 행동주의자들로 반정 운동을 벌였던 카와리지 분파의 독특한 교리형성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20세기 이집트에서 등장한 이슬람 운동뿐만 아니라 오늘날 이슬람의 이데올로기 화를 주장하는 모든 이슬람주의 운동에서도 그 정신을 찾아볼 수 있다.
5 성직자 제도가 없고 샤리아를 따르는 종교
이슬람에는 성직자 제도가 없다. 이 점 또한 다른 종교와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 중의 하나다. 이슬람은 신과 인간 사이에 영적인 어떠한 중간 매체도 두지 않으며 인간과 신의 직선적 관계를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슬림들은 예배, 선교, 교육등 종교생활의 운영방식에 타 종교인들과 다른 면을 보인다. 종교 교육자나 선교사를 따로 두려하지 않고 스스로가 선교사이고 스스로가 누구보다 훌륭한 교육자임을 자처한다.
예를 들어 이맘은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맘이 될 자격은 사막의 베두인이거나 여행자이거나 젊은이, 무식자, 걸인 등 누구에게나 부여되어 있다. 이맘의 지위를 취득하기 위하여 특별교육 과정이나 성직수임식, 안수식 같은 어떤 절차나 의식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다시 말해 이맘은 누구나 될 수 있으며 이슬람교에는 기독교의 성직자 계급같이 특별한 영적 자질과 권위를 갖고 종교적 의식과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평신도와 구별된 사람들 또는 사제집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슬람을 믿는 사람은 신 앞에 평등하다. 결코 근접할 수 없는 신의 본질, 신의 위엄에 절대 복종해야 하는 동등한 지위인 것이다. 이같이 이슬람은 평등 주의를 내세운다. 신 앞에서 종교적 의무를 수행하는 무슬림은 누구나 똑같다 무슬림은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더 신에게 가까이 있다고 말할수 있는 사람은 없다 고 생각한다.
울라마는 이슬람 종교에 관한 지식을 쌓은 무슬림 법학자, 신학자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들은 성법의 수호자로서 간혹 중세 기독교사회의 성직자들과 비교되기도 하지만 사실상 울라마와 기독교 성직자의 지위는 상당히 다르다. 물론 울라마는 성직자가 아니다. 단지 종교에 관한 가르침과 올바른 인도를 할 수 있는 지식인들로서 높은 학식 때문에 무슬림 대중으로부터 존경을 받고있는 무슬림 학자들일 뿐이다. 이들도 역시 울라마가 될 때 어떤 자격증 수여식이나 특정 종교의식을 거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죄를 용서한다거나 파문을 선언하는 일 같은 초인적 지위에서나 행할 수 있는 권한은 더더욱 갖고 있지 않다. 그들도 똑같은 무슬림에 지나지 않는다. 나아가 어떤 방법을 퉁하더라도 신과 인간 사이를 중재한다거나 둘 사이의 관계를 이들이 이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한다. 즉 이슬람에서는 주교나, 신부, 목사와 같은 사제 신분이나 영적 인도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과 육신은 완전히 신의 소유라고 무슬림들은 생각한다. 신의 본질과 인간의 본질은 전혀 다르고 관련이 없는 것으로 양자간의 구분이 분명하다. 신은 유일한 존재자, 절대자이고 인간은 다만 신을 경외하며 신의 의지에 복종하는 피조물에 불과하다. 이렇게 이슬람은 인간과 창조주 사이의 구분을 명확히 하고 인간과 창조주 사이의 직선적 관계를 무엇보다 강조하는 종교이다. 신과 인간 사이에는 어떤 중재자도 둘 수 없다. 중보자나 영적 중개인이란 존재를 두지 않는 것이다. 이맘과 마찬가지로 이슬람 공통체의 수장인 칼리파도 신 앞에서는 평신도와 똑같다. 이점이 중세 기독교세계에서 황제와 교황의 지위와 이슬람 칼리파의 지위가 두두러지게 다른 점이다.
칼리파의 권력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가 공동체 안에서 종교문제에 관한 모든 지도권을 소유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권위나 권력이 신과의 관계에 직결되어 있다서나 신에게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칼리파는 공동체 구성원 가운데 한 사람이고 무슬림은 종교수호와 세속 정치에 대한 그의 능력과 자질을 신임하고 그에게 충성서약을 함으로서 칼리파의 권력이 비로서 얻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칼리파 제도는 절대권력의 전체적인 퉁치권자가 아니고 신에게서 권력을 수임하는 신정주의의 산물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움마 구성원들의 찬동(충성서약)에 따라 움마와의 계약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그를 탄핵하고 직위를 해제할 권한을 공동체가 갖고 있는 일종의 민주적 제도인 것이다.
이슬람이 다른 종교와 비교하여 다른 또 하나의 특징은 특별한 법체계를 갖고 있고 모든 무슬림은 이 법체계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무슬림의 삶은 샤리아의 지배를 받는다. 샤리아는 아랍어로 길을 뜻하는 말이다. 무슬림이면 누구나 복종하고 쫓아야 할 길로서 알라께 나아가는 길이며 그 목표는 신의 의지에 귀의하고 복종하는 것이다. 무슬림은 이길을 잘 지키고 따르기만 하면 누구나 신의 의지에 도달하고 복종하며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샤리아는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공동체 생활의 중심이 되어 왔다. 이슬람이 다른 종교와 달리 신앙과 실천의 체계 이고 현세의 삶을 중시하는 종교이기 때문에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문제와 공동체 생활내에서의 실용적 요구가 신학보다 먼저 법학을 발전시키고 체계화 시켰다.
구원에 이르는 기독교인의 길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를 믿는데 있는 것이라면 무슬림의 길은 바로 이 샤리아를 잘 받아들이고 이에 복종하는데 있다. 울라마들은 이 법이 신이 만든 것이지 인간이 창제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 법의 원천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꾸란 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들의 주요 ㅇㅁ무는 법을 제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규율을 확인하고 해석하며 정리하고 설명해 내는데 있다고 강조한다. 즉 그들중 누구도 독단적으로 절대적인 해석을 주장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이것은 법학자들 간에 법 해석의 ㄷ다름과 우연성을 낳았다. 따라서 상이한 법학파들이 이슬람세계의 상이한 지역에서 권위있는 학파로서 인정받게 되었다. 이들 4대 법학파(하나피, 말리키, 샤피이, 한발리)가 수집하고 성문화한 법의 기본 골격은 모두 같은 것이다. 다만 일부 세세한 사항에서만 해석과 실천에 이견을 보이고 있다. 순니 무슬림들은 누구나 이 4대 법학파 중 한 길을 택하여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샤리아는 무슬림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그들의 행위를 구속한다. 샤리아의 준수 의무는 무슬림 누구에나 마찬가지다. 칼리파라고 예외일수 없다. 물론 이슬람 역사에 츨몰하던 무슬림 군주들이나 강력한 실제 권력을 쥔 통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와 같은 점이 기독교 전통에서 교회법과 국가법 사이에 발생하던 갈등 관계나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중세 기독교세계의 황제와 교황간의 관계와 무슬림 전통에서의 칼리파제도 또는 법제도가 근원적으로 다른 점이다.
한마디로 이슬람국가는 시법에 따라 통치되는 국가이다. 이것은 무슬림 세계에서의 법과 정치 이론은 곧 종교 교리에 근거한 것으로서 신의 계시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믿음을 기초로 한다. 이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유럽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간과하기 싶다. 왜냐하면 그들의 법체계와 정치 이론이 기독교 교리에 근거하여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로마법은 기독교 발생 이전에도 엄연히 존재했고 기독교가 공인된 후에도 교회법과는 별개로 시행되었다. 바로 이러한 것이 서방세계와 이슬람사회가 다른 점이다. 이슬람 사회에서는 꾸란 으로부터 교리와 법이 똑같이 만들어지고 그 결과 서방세계나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종교 도덕상의 죄 법률상의 죄를 구별하지 않는것이다.
결론적으로 무슬림세계에서는 교회와 국가의 분리론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정신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이라는 이종의 검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종교이자 국가 라는 이슬람의 전통적 정교 일원론은 변할 수 없는 무슬림들의 신앙이다. 이들은 정치제도와 관련된 정치원리들이 꾸란에 명시되어 있고 예언자도, 그의 후계자들도 이 원리들을 국가통치에 실제로 적용하였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세속 국가들의 기본 목표는 공익을 실현하는데 있다고 말한다. 이 공익의 개념은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들의 정치철학과 이상, 사회, 경제 사상들에 따라 국가마다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그것은 다은 두가지 주요 특색을 갖는다. 첫째, 현세의, 세속의 것이라는 점이다. 이 개념 속에는 정신적, 종교적 요소는 들어있지 않다. 둘째 헌법 제정의 권한을 갖는 국민들의 중의를 집약시켜 공익을 달성한다는 점이다. 국가는 중의가 지시하는 것에 따라서 공익을 결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여기서의 공익 결정은 정치적 힘에 따른 것이다. 반면 이슬람국가에서 공익과 복리는 종교를 세움으로서 성취되는 것이고 샤리아에 복종함으로서 가능한 것이다.
이슬람국가와 서방 도는 현대 세속 국가의 목적과 역할 사이에는 이 같은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국가의 구성 요소 중 주권에 대한 기본 개념도 다르다. 이슬람법에 따라 주권은 신에 속하며 국가나 국민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슬람국가의 국가 기관은 절대 권력을 갖지 못한다. 신법에 따라 제한된 범위내의 집행권만을 행사할 뿐이다. 서방세계의 강대국들은 20세기초부터 서구식 민주주의를 이슬람 국가에 정착시키려고 애써왔다. 그러나 다당제, 의회제도, 선거제 같은 것은 이슬람의 원리에 맞지만 주권재민이 라는 기본 개념은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슬람식 민주주의를 추진해야 하며 서구제도와 같은 사상을 평행적으로 이식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점은 서구인이나 우리가 이슬람과 이슬람세계를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꼭 알고 있어야 할 사항들이다.
6 서방 세계에서 본 이슬람
무슬림 동방세계와 기독교인 서방세계는 수세기 동안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대하고 있으면서 때로는 평화스럽고 우호적인 선린관계를 유지했지만 또 다른 오랜 시간 동안 반목과 불화, 대립과 갈등속에 있었다. 지금도 일반적으로 무슬림이나 기독교인 모두가 그들이 서로 얼마나 많은 종교적, 문화적 공통점을 갖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이슬람의 예언자인 무함마드가 구약과 신약에서 모세와 예수가 전해주었던 똑같은 메세지를 인류에게 그대로 전한 매우 중요한 전달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오히려 많은 서방의 기독교인들에게 무함마드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경멸스럽운 혐오의 대상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최근의 여러 학문적 성과물들이 이슬람에 씌어져 있던 두터운 편견과 오해의 층을 걷어내기 전까지 서방세계는 이슬람세계에 대해 왜곡되고 자기중심적인 시각만을 갖고 있었다. 2003년에 타계한 에드워드 사이드는 그의 훌륭한 대표적 저작 오리엔텔리즘을 통해 서구학자들이 일방적인 잣대로 이슬람에 대한 생각을 바로 잡고자 했다.
지리적 여건과 잦은 인적 교류, 물적 교류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은 일찍부터 무슬림들을 가짜 예언자를 신봉하는 무지한 사람들로 오해하고 있다. 그것은 오래 동안 유대인들이 그들 나름의 선민사상에 따라 기독교인들을 사기꾼에 지나지 않는 예언자를 신봉하고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로 보았던 것과 흡사하였다. 기독교인들의 이러한 오해를 받은 후 몇 세기가 지난 뒤 다시 그리스도 추종자들의 눈에는 무함마드의 추종자들이 그들의 신이 세워놓은 위대한 계획, 즉 구원이라는 명제에 어울리지도 않고 결코 동조할 수도 없는 신성모독자들로 비쳐졌던 것이다.
실제로 기독교인들은 이슬람을 인간 무함마드를 숭배하는 신앙체계로 오해하여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슬람과 무함마드교를 동의어로 사용하였다. 20세기 초 네델란드 치하의 인도네시아 정치고문이었던 휘르오르네가 쓴 모함메다니즘 이란 책의 제목에서 보듯이 이러한 오류는 유럽에서 보편화되어 있었다. 그 뒤 또 다른 저명한 이슬람 역사가인 기브도 같은 이름의 책을 출간하였다가 (1945) 20여년이 지난 두에야 잘못의 심각성을 깨닫고 제목을 이슬람(1968년)으로 바구었다. 독실한 무슬림들에게 모함마단(무함마드의 신봉자)이라고 불리는 것보다 더 큰 모욕과 잘못은 없다. 그것은 앞에서도 언급했드시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용서받지 못할 가장 큰 죄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슬람에 대한 서방의 적의와 몰 이해는 매우 이른 시기부터 나타났지만 특히 십자군 전쟁(기독교 세력이 11~12세기에 이르러 팔레스타인 땅을 침략한 사건)중에 기독교 유럽인들의 적대감이 급상승하면서 더욱 구체화되어 발전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유럽의 왕들과 카돌릭 성직자들은 무슬림들을 제거해야 하는 악마의 자식들로 묘사했고 기독교 신부들은 이슬람을 이단으로 간주하였다. 무슬림은 이교도이고 무함마드는 그리스도의 역사 하심에 반기를 들고 반역을 꽤한 사기꾼이자 배교자 였다. 십자군 원정은 실패했지만 유럽인들의 무슬림에 대한 적의는 변함없이 지속되었다. 그리고 18세기에 이르러 서구인들은 드디어 문명사회의 우열을 뒤집고 무슬림에게 복수하기 시작하였으며 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이슬람세계의 95% 이상을 지배하게 된다.
단테는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를 그의 신곡의 지옥편에서 가장 저급하고 흉물스러운 추문과 불화의 사나이 라는 오명과 함께 두 동강이로 몸이 찢겨진 채 영원히 나올 수 없는끔찍한 지옥의 수렁 속으로 던져 넣었다. 기독교인 작가들은 그 후에도 무함마드에게 더 나은 평가를 주지 않았다.
17세기 말 출간된 무함마드의 생애 라는 책에서 프리도는 무함마드를 비신자들, 무신론자들, 이신론자들, 방탕자들의 거울이 되는 사람으로 묘사했다. 이러한 이슬람에 대한 또는 무함마드에 대한 적의로 가득찬 유럽인의 태도는 중세 초기부터 계몽주의 시대까지 계속되었다 물론 첫 번째 이유는 무지 때문이 었다. 비종교인 쪽으로 기울어져 있던 종교적 회의론자 이신론, 즉 자연신교의 예언자격인 프랑스의 볼테르(1694~1778)도 무함마드를 광신주의의 원천으로 보았다. 그러다가 아베 마라치에 이르러서야 다소 긍정적인 표현이 등장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꾸란 라틴어 번역에서 이 종교는 기독교 종교로부터 차용한 것으로 보이는 자연의 법칙과 광명에 일치하는 자연의 진리에 대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고 말하면서 이슬람을 기독교의 한 비뚤어진 연장선상의 종교인 것처럼 마지 못해 인정하였다.
18세기와 19세기에도 이슬람을 공박하는 작업은 지속되었다. 특히 이기간 중에는 기독교 선교활동이 더욱 활발해졌는데 기독교 선교사들은 이슬람에 대한 펌훼와 비난을 행하였다. 이슬람 종교와 이슬람의 예언자를 객관적으로 고찰해보려는 문헌작업은 거의 시도되지 않았다. 1704년 앙투안 갈라이 천일야화를 번역함으로서 이국적이고 흥미진진하고 색다른 이슬람세계가 소개되었을 뿐이다. 18세기 후반 위트레흐트 대학의 한 네델란드 신학교수는 이슬람보다 더 많이 비방을 받은 종교는 없을 것이다 라고 술회하였다. 이즈음 가장 큰 업적은 영국학자 조지 세일이 꾸란 의 영어 번역을 시도한 일이다.
근대에 들어서 비로서 이슬람세계를 보는 서구인들의 시각과 태도가 폭넓게 변하기 시작하였다. 기독교에 대한 비평을 모색하던 계몽주의 학자들이 점차 이슬람이 담고 있는 합리적인 교리와 사상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슬람이 바로 그들의 과거 업적이던 그리스 철학, 의학 등을 다시 유럽에 전달한 그들보다 우월했던 문명화된 세력이라는 것을 알아보기 시작하였고 예언자 무함마드는 통찰력있는 사상가이자 합리적인 종교를 창시한 인물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러한 학자들의 새로운 관심과 연구는 1830년 대에 이르러 본격화 되었다. 이슬람에 대한 기독교의 편견과 오류를 체계적으로 밝혀내고 아랍어, 페르시아 등 이슬람권 언어로 된 자료와 문헌을 이용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독일의 동양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고정관념과 잘못된 페러다임에서 벗어나 객관적이고 명백한 증거를 이용해 이슬람 연구를 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우호적 관점에서 이슬람을 고찰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한 예는 바일 교수의 다음 증언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무함마드)가 신앙의 광명이 아직 비쳐지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구약과 신약의 가장 아름다운 가르침들을 가져온 당사자인 한, 비록 무함마드의 추종자들이 아닐지라도 그는 누구에나 신의 사자 중 한 사람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헝가리 사람으로 부다페스트 대학의 신학교수였던 이그나츠 골드치어, 네델란드 학자이자 행정가였던 스노우크 휘르호네, 영국계 미국인 학자 맥더널드 등은 이슬람 연구의 새 지평을 열었다. 특히 골드치어는 이슬람을 서구에서 처음으로 학문다운 수준으로 끌어 올린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들은 깊이 탐구한 이슬람 연구서 등을 내놓아 이슬람전문 학자의 시대를 열었다. 뒤를 이어 이슬람 신학과 신비주의 영역의 권위자로 인정받게 되는 프랑스인 루이 마띠뇽, 역사학자인 영국의 헤밀턴 기브, 미국인 마샬 호지슨 등이 뛰어난 통찰력으로 잇스람 신학과 역사학 분야에 족적을 남겼다. 또 저명한 동양학자들로 드 페르세르발, 라멘스, 카에타니, 무이르, 놀테데 등을 꼽을 수 있는데 모두가 예언자 무함마드와 이슬람에 대한 선구적인 작업등을 행하였다.
그들의 저서들은 곧 후대에 권위 있는 고전적 문헌이 되었으며 이들의 학문적 성취와 결과들을 통해 의도적으로 꾸며지고 감정적으로 적의와 편견을 쌓았던 이슬람에 대한 유럽인들의 잘못된 시각과 윈인들을 파악하고 교정할 수 있었다.
사실 오리엔탈 리스트로 불리우게 된 이들은 자신들이 이슬람과 이슬람세계를 깊이있게 연구하였다고 자부하였고 실제로 그들이 여러 영역에서 남긴 나름대로의 큰 공적들들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동양학자들의 자만을 단번에 무너드린 책이 1978년 에드워드 사이드가 쓴 오리엔탈리즘 이다 예리하고 심오한 통찰력을 가진 그에게는 오리엔탈리스트들의 객관성이 문제였다. 그는 서구학자들이 그들의 잣대와 경험으로만 이슬람을 분석하여 무슬림의 실제와는 거리가 먼 이슬람 사상을 만들어냈고 또한 그들이 얼마만큼의 이슬람의 진실을 왜곡하였는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말하였다. 결국 그들은 이슬람사회에 대한 서구의 우월성을 설명하려 했으며 계속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인식의 창출에 이바지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중세 유럽은 아랍을 비롯한 이슬람문명권으로부터 지적, 정신적 영향을 받았다. 서구의 동양학자들은 가장 집중적으로 영향을 받은 시기가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였던 것으로 말하고 있다. 이때 이슬람 경전을 번역하기 위한 연구소들이 시칠리아, 바르셀로나, 톨레도, 세비야 등지에 세워졌고 이를 통해 신학, 철학, 의학뿐만 아니라 헬레니즘 문명의 소중한 유산들과 수학, 철학, 천문학, 광학, 점성술, 화학, 자연과학, 신비주의 등 무슬림들의 다양한 성취와 업적들이 서구세계로 유입되었다. 이 모든 분야의 것들이 잠자던 중세 유럽을 깨웠고 기독교 사상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슬람사회의 물질문명 또한 서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직물, 카펫, 금속공예, 유리제조, 세밀화법, 제본술 등이 중세와 근세 초기 유럽세계의 시장과 생활을 바꾸어 놓았고 비단과 종이를 서구에 전한 것도 무슬림들이다. 설탕, 면화, 감귤류 재배법도 마찬가지이다.
여러 각도에서 이슬람을 조명하고 이슬람에 대한 객관적 고찰과 깊이있는 학술연구의 경향은 유럽을 거쳐 오늘날에는 미국에서 주도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렇지만 사실상 통신의 비약적 발전으로 인해 세계인은 하나로 묶여있고 인터넷으로 인해 모든 것은 개방되고 교류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는 시공을 초월하여 지구촌 구석구석의 문화적 가치와 정신적 유산에 대한 지식을 공유할 수 있다.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카이로, 이스탄불, 탕헤르, 바그다드, 다마스크스, 사마르칸트 등 매혹적인 이슬람의 도시들을 마음대로 넘나들며 학문적, 문화적, 종교적 관심들을 만족스럽게 풀어갈 수 있다.
7 오해받고 있는 이슬람세계
아직까지도 이슬람은 우리사회에서 낯설게만 느껴지는 종교이다. 사막과 낙타를 연상하게 되고 베두인 또는 히잡을 쓴 여성이 떠오르는 먼 미지의 세계일 뿐이다. 지난 2001년 뉴옥에서 가공할 9.11 테러사건이 발생한 뒤로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 전역에서 이슬람에 대한 관심이 한층 고조되었고 그만큼 이슬람세계와 종교, 문화에 관해 제대로 알고자 하는 논의와 질문들이 많아졌다. 그중에서도 무슬림은 과연 호전적인가? 이슬람 원리주의자는 모두 테러리스트인가? 이슬람세계는 일부다처제만을 고수하는 사회인가? 이슬람세계는 남녀불평등 사회인가? 등이 아마도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질문인 것 같다.
서양 사람들은 무슬림들이 한 손에는 꾸란, 한 손에는 칼 을 들고 이슬람 종교를 전파했다고 선전해왔다. 오랫동안 이슬람이 호전적인 종교인양 묘사하면서 이슬람의 폭력성을 부각시켜온 것이다. 앞에서도 보았듯이 이슬람을 다룬 내용들은 대부분 악의적인 편견으로 가득찬 것이었다. 그런데 무슬림들이 아직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최근의 많은 서양세계 지식인들조차도 호전적 이슬람, 이슬람 원리주의, 테러리즘 과 같은 말을 분별없이 자기중심적으로 쓰면서 이슬람이 위협적이고 도전적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호전성이야 말로 이슬람세계에서 일어나는 분쟁과 폭력사태의 근원적 요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 손에는 꾸란. 한 손에는 칼 이란 말은 역사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이다. 1400년의 이슬람역사에서 이슬람 공동체는 안팎으로 화해와 용서, 절충과 합의를 통한 평화로운 공존을 추구해왔기 때문이다. 십자군 원정에서처럼 서방과의 충돌과 대립에서 침략행위자는 거의 서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양인들 사이에는 이슬람이 비신도에 대적하는 전쟁을 의무화히고 단지 비신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적을 살해하라고 명령하는 무자비한 폭력의 종교로 비추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1187년 십자군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을 다시 탈환한 살라딘(1138~1193)의 예에서 볼 수 있듯시 이슬람은 관용의 종교이고 인권과 생명의 존엄성을 최상의 가치관으로 교리에 담고있는 평화의 종교이다. 이슬람의 의미는 평화이며 하나님의 99개 이름 중 하나도 평화이다. 무슬림들의 일상의 인삿말도 평화를 나타낸다. 앗 쌀람 알라이쿰(당신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평화는 이슬람의 본질이요, 의미적 상징이요, 목적이다.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 무슬림들과 유대인에게 저질렀던 대량 학살과 포악스런 약탈행위와는 반대로, 살라딘은 투항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과 자비를 베풀고 용서와 화합의 선정을 베풀었다. 이러한 그의 기사도적 관용정신은 서양에서도 널리 알려져 사자왕 리차드에 버금가는 정의와 평화의 영웅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무슬림들이 얼마만큼 인간의 생명뿐만 아니라 초목까지도 존귀하게 다루고자 했는지 무함마드의 후계자인 아부 바크르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는 632년 제1대 칼리프로 등극하자마자 예언자 무함마드가 계획했던 시리아 원정을 시행하였는데 이때 젊은 사령관 오사마 빈 자이드에게 군사지휘권을 맡기면서 어린이, 노약자, 부녀자는 살상하지 말것, 수목을 해하거나 불사르지 말 것, 과실을 자르지 말 것, 소나 낙타 등 짐승을 도살하지 말 것, 인명과 재산을 보호할 것, 신앙에 충실할 것 등 전장에서 지켜야 할 규율을 훈시했다. 제 2대 칼리프 오마르도 똑같은 선례를 남겼다. 634년 이슬람군이 예루살렘에 들어갔을 때 오마르는 모든 종교 공동체에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다. 그들의 생명과 재산은 안전하게 보호되고 예배장소도 그들로부터 결코 빼앗지 않는다고 선언하였으며 그대로 실행했다. 이슬람의 영역안에 있는 모든 시민들의 생명과 재산은 그 사람이 무슬림이든 아니든 고귀한 것으로 보호받는다는 것이 이슬람 정신이요 관행인 것이다. 이슬람은 살인자에 대한 처벌과 전시에서의 전투상황 정당한 자기방어 행위와 같은 합법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경우라도 인간 생명에 대한 위해행위는 금지하고 있다. 꾸란은 다음과 같이 명령하고 있다.
너희는 진리로서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성스럽게 하신 생명을 살해하지 말라.
기독교가 전쟁과 적극적 포교활동을 통해 유럽과 미국으로 퍼져간 것과 마찬가지로 이슬람의 전파도 정복사업과 선교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특히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전역과 중국, 캄보디아, 베트남, 타이, 말레지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인도 등 아시아 지역에서 단기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슬람을 받아들인 것은 무슬림상인들과 무슬림 수피(이슬람의 신비주의자)들의 개인적 노력 때문이었다. 또한 이슬람이 표방하고 있는 형제애, 평등, 자유 같은 가치관과 교리의 단순함, 중용주의, 관용성 같은 좋은 점들 때문이었다.
만약 이슬람이 칼로 교세를 넓혔다면 오늘날처럼 세계적인 종교로 성장하고 자리매김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관용적으로 신앙의 자유를 보장해 주었기 때문에 여러 지역에서 많은 개종자들을 얻을 수 있었다. 이슬람은 평화와 정의의 종교다. 기본적으로 종교는 결코 강요해서 성취될 수 없는 것이다. 꾸란에서도 종교에는 강요가 없다 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다. 신앙의 자유는 이슬람의 원리이자 기본정신이다. 설사 일시적으로 강요나 강제에 굴복한다고 해도 그것은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서구인들이 이슬람의 원리주의 운동의 확산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도전과 위협, 문명의 충돌을 말하는 것은 지나친 자의식이고 방어의식 때문이라는 것이 현대 이슬람 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두 번째 질문인 이슬람의 원리주의자는 모두 테러리스트들인가? 를 간단히 살펴보자. 사실상 오늘날 서양세계에서 알 카에다와 같은 과격급진 무장세격과 온건한 이슬람 원리주의 자들은을 구별하지 않고 마치 무슬림들은 모두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을 구별하지 않고 마치 무 슬림은 모두 이슬람 원리주의 자들이고 원리주의 자들은 모두 급진 무장조직의 일원인 것처럼 혼동했기 때문에 생겨난 이슬람세계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오해가 바로 이것이다. 20세기 초 독립을 쟁취한 신생 아랍국가에서는 근대화가 곧 서구화라는 개혁적인 사고를 지닌 근대주의자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서구의 문물제도 사상을 받아들여 이를 이용해 교육, 행정, 사회전반에 걸친 개혁을 주도하고 국가의 발전을 도모하려 했다. 과학과 선진기술 등 서구문명의 장점을 수렴해 낙후된 무슬림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추구해갔던 것이다. 그러나 지나친 이들의 근대화 개혁주의는 서구와 손을 잡고 정권을 이어 가기를 원하는 서구편향 주의자, 세속적 민족주의자, 실용주의자들을 낳았다.
한편, 무슬림사회 일각에서는 서구식의 지나친 세속화에 반대하는 무리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무슬림들을 각성시켜 순수 이슬람 원리에 충실한 근본주의적 개혁운동을 펼치고자 했다. 이들은 자본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같은 서구 이념들을 배격했다. 또한 무슬림사회에 만연한 외래족인 요소들을 버리고 원래 이슬람 이상과 근본으로 되돌아가자며 이슬람국가 재건을 외쳤다. 이들이 바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원리주의적 조직 내부에서 일부 급진 무장세력이 자라났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서구식 실용주의나 세속주의를 용납하지 않는다. 서구이념들을 무조건 거부하고 서구적 사고와 삶의 방식에 등을 돌린다. 이들은 매우 소수이지만 비밀리에 조직을 훈련시키고 점조직으로 운영되며 각종 테러를 벌이고 있다. 이들의 1차 목표는 세속화한 정부를 전복시키는 것이고 2차 목표는 이러한 타락한 정부를 지원하는 서양세력에 도전하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이들과 원래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원리주의자로 부름으로서 이슬람 원리주의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무슬림 급진 무장세력은 타락한 세속 정부나 서방세력을 타도하기 위해서 폭력이 허용되고 또 필요하다고 믿는다. 이집트의 사다트는 이들의 손에 피살당하였고, 무바라크를 비롯한 여러 세속정권의 지도자들은 아직도 타도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1990년 이후 이들의 무모한 테러행위는 서양세계 뿐만 아니라 무슬림사회에서조차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이러한 과격 무장세력들은 이슬람세계 전체에서 극소수에 불과하다. 일반 무슬림들도 이들의 무모한 테러행위에는 동조하지 않는다. 온건 원리주의 무슬림들은 누구든지 남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폭력을 저지르는 자는 특정이념의 신봉자일 수는 있어도 진정한 무슬림일 수 는 없다고 말한다.
일부다처제와 무슬림 여성의 낮은 지위 또한 이슬람세게에 갖는 편견과 오해의 주제이다.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간주하던 미개 사회제도인 일부다처제가 아직 일부 이슬람국가에 남아 있기 때문에 무슬림사회가 봉건적이고 남녀평등사회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무슬림들은 과거 무슬림사회의 일부4처제야말로 진정 여성을 위한 제도였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많은 현대 무슬림 법학자들도 이 제도가 차선으로 열려 있는 것이지 무슬림사회의 보편적 제도는 일부일처라는데 동의하고 있다. 이 제도는 서기 624년 우흐드라는 전투에서 무 슬림 군대가 패한뒤 생겨났다. 전쟁에서 많은 남자들이 죽자 무슬림공동체는 수많은 과부와 고아들이 생겨났다,이들을 구제하고 보호할 수 있는 해결책이 바로 한 남자가 4명까지 아내를 맞아들 있는 일부4처제였던 것이다. 이슬람의 일부다처제가 비난을 받는 이유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출연한 이 제도가 현대사회에서도 그대로 존속되고 있는 점 때문이다. 또 비록 나라마다 다르지만 이슬람국가에서는 아직도 이 제도가 법에 따라 관행으로 허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근대 이슬람 개혁운동의 선구자인 무함마드 압두(1847~1905)는 이 제도에 관련된 꾸란의 주절을 재해석하고 현대 무슬림사회에서 더 이상 일부다처제는 존속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만약 너희가 고아들을 바르게 기르지 못할까 두렵다면 그때는 너희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그러한 둘, 셋 또는 네명의 여인과 결혼하라. 그런데 만약 공평하게 대하지 못할 것 같으면 한 여인만 취하라.
이와 같이 한 명 이상과 결혼을 한다면 부인 각자에게 공평한 대우와 동등한 정의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는 네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결코 공평하게 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라는 구절을 들어 공평한 대우를 할 수 없음을 밝히고 꾸란 의 근본 취지는 어디까지나 일부일처제라고 말하였다. 이후 튀니지, 터키를 비롯한 이슬람국가에서는 일부다처제를 법으로 금하고 일부일체를 택하고 있다.
무슬림들은 무엇보다 이슬람이 평등한 종교임을 강조한다. 인종, 피부색, 언어, 사회적 지위, 빈부의 차이 등으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가 진정한 무슬림 공동체라고 자인한다. 그러나 서방 언론에서는 매우 자주 이슬람세계가 대표적인 남녀차별사회인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 남녀가 평등하고 상부상조의 관계임을 꾸란 에서는 남녀 신도들은 서로가 보호자이니라. 여성은 남성의 옷이고 남성은 여성의 옷 이라고 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꾸란은 종교적인 임무와 수행에서도 남녀평등을 규정하고 있다. 혼인과 이혼, 여성의 재산권, 상속권도 매우 구체적으로 명확히 규정하여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며 남녀의 동등한 지위를 증명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은 기능과 일에서 남성과 여성의 유별을 강조한다. 예컨데 남성은 경제적 부양의 이무가 있고 여성은 자녀교육과 가정의 보호라는 의무가 있다. 남녀의 권리는 동등하나 각기 역할과 일의 영역은 다르다는 것이다. 이슬람에서 남녀의 지위가 동등함은 꾸란 에서도 명백히 증명된다.
그들의 주님께서 그들에게 답하시기를 실로 나는 남자든 여자든 너희들이 행하는 어떤 일도 헛되지 않도록 할 것이로다. 너희는 서로 동등하니라.
오히려 이슬람은 여성에 관해 기독교사회에서 알려진 몇 가지 그릇된 관념을 교정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브의 아담 유혹설이다. 이슬람 전통은 이브가 하나님께 불경하고 아담을 유혹해서 신의를 배반하게 하였고 결국 추방당하게 되었다는 설을 부정한다. 꾸란 은 분명히 둘이 함께 사탄으로부터 유혹을 받아 죄를 범했으며 그 뒤 하나님은 회개한 이들을 용서하셨다. 이슬람 전통에서는 여성이 사악함의 원천이라거나 원죄인이라거나 특히 남성은 여성의 머리라는 생각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꾸란은 아담과 아브라함의 아내들, 모세와 예수의 어머니들과 같은 여성들에게 최상의 존경을 표하고 이들의 지위를 높였다. 특히 마리아와 사라에게는 천사가 방문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할 만큼 이들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높은 지위였다.
이슬람사회에서의 여성의 위치는 오늘날 몇몇 이슬람국가들에서 나라를 이끌어가고 있는 정치일선의 여성들을 통해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방글라데시의 여성 수상 베쿰 칼레다 지아, 파키스탄의 베나지로 부토 그리고 지난 2001년 7월 대통령에 당선된 인도네시아 최초의 여성 대통령 메가와티 수카르노 푸드리 등이 그 대표적인 경우에 속한다.
이슬람과 이슬람세계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슬람이 단순한 신앙체계만이 아니라 종교와 세속 모두를 포괄하는 신앙과 실천의 체계라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삶과 종교가 일치하는 독특한 가치관의 세계이기 때문에 무슬림들이 정치, 경제 협상 등 모든 영역에서 항상 이슬람의 깃발을 앞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교분리의 세속적 가치관 속에서 살아온 서구인들이나 우리가 이슬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이슬람권과 오랫동안 첨예하게 대립해온 서양이나 미국의 언론을 통해 이슬람 세계를 접하고 굴절된 서구의 프리즘으로 그들의 사회를 잘못 들여다보는 사례가 많았다. 오해와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나름대로의 객관적 시각을 갖고 이슬람사회의 제도, 관습, 종교, 문화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 처한 특수한 환경과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그들을 볼 수 있는 문화상대주의라는 시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