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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7장 14-25절. 율법을 섬기는 자의 비명
1. 오늘 본문은 죄에 노예가 되어 있는 우리 자신을 적나라하게 해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섬기며 살고 있는 죄인의 비명 소리를 들려줍니다.
즉, 유대교의 율법주의 종교인들의 비명 소리를 잘 듣게 해줍니다.
2. 그러나, 우리 예수님 믿는 성도들은 비록 본질상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의가 임해 있고, 성령님의 은혜가 임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3:24.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로마서 4:4-8. 아브라함과 다윗처럼, 선한 일을 한 의로운 행위가 없이, 오직 은혜로 의로 여기심을 받았습니다.
로마서 8:1.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로마서 8:2.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습니다.
로마서 8:4. 성령을 좇아 살아가는 성도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는 삶을 주십니다.
3. 어떤 사람은 우리의 선한 행위에 따라서 장차 천국과 지옥이 결정된다고 잘못 말합니다.
그러나, 한 번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떤 행위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천국에 갑니다.
왜냐하면, 구원 사건이 우리의 주권에 달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주권에 달렸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30. 미리 정하신 그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로마서 8:33-34. 누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로마서 8:39.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 하노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복음 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10:28-29.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에베소서 2;5-9.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이처럼,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에 의해서 예수님을 믿은 성도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영생을 얻었고, 하늘나라에 앉혀진 하늘나라의 시민이고, 아무도 하나님 손에서 빼앗을 수 없고, 예수님이 결코 내어 쫓지 아니 하십니다! 할렐루야! 아멘!
빌립보서 3:20.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4. 이틀 전에 서울에서 어떤 사람이 교회에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어서는 구원받지 못하고, 자기들이 가르쳐주는 것들을 행해야 구원받는다고 말했습니다.
소위 이단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전쟁이 날 터이니, 자기네 이단으로 와야 천국 간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이단에 속지 마십시오!
로마서 10장 13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 말씀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은 아들 되신 예수님을 믿는 것을 가리킵니다.
요한복음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그래서, 로마서 10장 14절에,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라고 했습니다.
유대교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시험하고 죽이려고 거짓된 입술로 <주여, 주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가식된 마음이 아니라, 성령님의 감동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받은 성도입니다.
고린도전서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교회에서는 이런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신앙고백을 보고, 세례를 줍니다.
그래서, 장로님들이 학습 세례 문답하실 때, 반드시 묻는 질문이 “구원받으려면, 즉 천국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면,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구원받고 천국 갑니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또 장로님이 묻습니다. “성도님이 착한 일을 많이 해야 천국 가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성도님은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써만 구원받고 천국 갑니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다른 문답은 몰라도, 이 문답만은 확실히 대답해야 세례를 줍니다.
이처럼, 예수 믿고 천국 간다는 것은 우리 신앙의 가장 기초적 진리요 교리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어도 구원받을지 안 받을지 모른다고 하고, 행위를 잘 해야 천국 간다고 하는 것은 이단입니다.
5. 요즘 이단은 교묘합니다.
통일교는 말하기를, 예수 믿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문선명을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합니다.
구원파는 말하기를, 기성 교회에는 구원이 없고, 자기들 구원파의 가르침을 받아야 참으로 구원받는다고 합니다.
안식교는 말하기를, 예수 믿는 것만으로는 구원받지 못하고, 토요일 안식일을 지키고, 음식을 가려먹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전도관은 말하기를, 십자가를 없애버리고, 비둘기 성령님을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합니다.
여호와증인은 말하기를, 예수 믿는 것만으로는 구원받지 못하고, 자기네 14만 4천 명 여호와증인 회관에 나와야 구원받는다고 합니다.
신천지는 자기 교주(이*희)를 ‘이긴자’(구원자)로 믿는 자만이 참된 신자라고 합니다.
우리 지방에는 왜 이처럼 온갖 이단들이 빠짐없이 다 들어와 있는지 안타깝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특히 요즘 불안한 정세에 편승해서, 성도들을 미혹하는 이단들이 주변에 가까이 있는 것을 경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가르치신 대로 말세가 되거든 미혹케 하는 자들이 많이 생길 것을 알고, 늘 깨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6. 오늘 내용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14-20절. 율법 앞에 철저하게 죄인이고, 죄의 노예가 되어 있는 인간
21-25절. 율법을 섬기며 살아가는 인생의 비참한 비명 소리
7. 오늘 말씀의 제목은 <율법 섬기는 자의 비명>입니다.
14-20절. 율법 앞에 철저하게 죄인이고, 죄의 노예가 되어 있는 인간을 말씀합니다.
1. 지난 시간에 율법을 주신 목적이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마치 눈으로 볼 수 없는 사람의 내장을 레이저 영상을 통해서 훤히 들여다보듯이, 지금 사람의 속에 숨어 있는 <죄성>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 속에>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17절.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절.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20절.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 바울 사도는 지금 <죄가 죄로 드러나게 하고> <죄로 심히 죄 되게 하기 위한> 수술을 진행해 가고 있습니다.
(1) 바울 사도는 <나>라는 일인칭 대명사를 24회나 사용하고, 현재 시제를 사용하면서, 극적으로 <죄>를 찾아 수술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 이러한 표현법은, 이 대목을 읽는 독자들도 <바로 나 자신도 죄인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시인하도록 하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로마서를 읽고 있는 <나> 자신도 <율법과 계명> 앞에서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다>는 것이 바로 나 자신의 문제임을 공감케 하려는 것입니다.
(3) 이처럼, <율법> 앞에서 <나 자신이 온통 죄악 투성이인 죄인임>을 공감하고, 동의케 하는 것이 이 부분의 기록 목적입니다.
3. 그리고, 3장 21절에서, <율법 외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니>라고 했는데, 이 7장의 사람에게도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의 필요성>을 계속 일깨워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14절.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we know that the Law is spiritual, but I am of flesh, sold into bondage to sin.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οἴδαμεν γὰρ ὅτι ὁ νόμος πνευματικός ἐστιν·
we have known for that the Law spiritual is
직역하면 ‘왜냐하면 율법이 신령하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즉 ‘알고 있다’(οἴδαμεν)는 현재 완료(we have known)로서 이미 알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뒤의 동사(ἐστιν)는 현재형으로서(is) 언제나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나는 육신에 속하여
ἐγὼ δὲ σάρκινός εἰμι,
I but fleshly I am
직역하면 ‘그러나 나는 육신적이다’는 뜻입니다.
‘나는’(ἐγὼ: I)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동사(εἰμι)는 현재형으로서(I am) 언제나 육신에 속해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죄 아래에 팔렸도다.
πεπραμένος ὑπὸ τὴν ἁμαρτίαν.
having been sold under the sin
‘팔렸도다’(πεπραμένος)는 완료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sold) 이미 팔려버린 상태를 가리킵니다.
1. <율법이 신령한 것>이라고 말한 것은, <나는 육신에 속하여>와 대조하기 위해서입니다.
(1) 그러므로, <내가 죄에 팔린 책임>이 <율법>에 있는 것이 아니요, <육신에 속한 나>에게 있습니다.
즉, <육신>에 속해 있는 <내>가 <죄>에게 속아서, 결국 <죄> 아래 팔린 신세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2) 아담과 하와의 경우가 이와 같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금하신 <하나님의 금단의 계명>에 잘못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사탄>에게 속아서,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에게 <책임>이 있었던 것입니다.
2. 죄 아래 팔렸도다
<죄 아래 팔렸다>는 말은 <죄>의 노예가 되어, 제힘으로는 벗어날 가망이 없는 절망 상태라는 것입니다.
<15절 이하>는 <죄> 아래 팔린 <노예 상태>의 비참함을 말씀합니다.
15절.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what I am doing, I do not understand; for I am not practicing what I would like to do, but I am doing the very thing I hate.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ὃ γὰρ κατεργάζομαι, οὐ γινώσκω·
what for I work, not I know
직역하면 ‘왜냐하면 내가 행하고 있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행하는’(κατεργάζομαι)은 현재형으로서(I work) 행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알지’(γινώσκω)도 현재형으로서(I knowd) 현재 알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οὐ γὰρ ὃ θέλω, τοῦτο πράσσω,
not for what I want, this I practice
직역하면 ‘왜냐하면 내가 원하지 않는 것 이것을 내가 행하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두 동사(θέλω, πράσσω) 모두 현재형으로서(I want, I practice) 현재 내가 원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현재 행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ἀλλ’ ὃ μισῶ, τοῦτο ποιῶ.
but what I hate, this I do
직역하면 ‘도리어 내가 미워하고 있는 것 이것을 내가 행하고 있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두 동사(μισῶ, ποιῶ) 모두 현재형으로서(I hate, I do) 현재 미워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고, 현재 행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1. ‘내가 원하는 것 즉 선을 행하지 않고, 내가 미워하는 악을 행하고 있으니, 이런 모순적인 자아상은 자기가 알고 행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무의식 중에 원치 않는 악을 행하는 인간 모습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나는 깨끗하고 거룩하게 살고 싶은데, 나도 모르게 이성을 보고 악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는 가족이나 친척이나 이웃에게 선한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데, 나도 모르게 화를 내고, 불친절하고, 냉정하고, 몰인정하게 대하게 됩니다.
나는 법규를 잘 지키고 살고 싶은데, 나도 모르게 교통법규를 어기고, 세금을 떼먹으려고 합니다.
이런 자신의 모습이 비참한 인간의 자아상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기도하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살면, 거룩한 생활과 이웃을 불쌍히 여기고 동정하는 삶을 살게 되고, 법규도 양심적으로 잘 지키게 됩니다. 할렐루야!
16절.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if I do the very thing I do not want to do, I agree with the Law, confessing that the Law is good.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εἰ δὲ ὃ οὐ θέλω, τοῦτο ποιῶ,
if but that which not I want, this I do
직역하면 ‘그러나 만일 내가 원하지 않는 것 이것을 내가 행하고 있다면’이란 뜻입니다.
앞의 동사(θέλω) 현재형으로서(I want) 부정어(οὐ:not)와 함께, 현재 계속 원하지 않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뒤의 동사(ποιῶ)도 현재형으로서(I do) 현재 계속 행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σύνφημι τῷ νόμῳ, ὅτι καλός.
I consent to the law, that good
직역하면 ‘내가 율법 그것이 선하다는 것을 시인한다’는 뜻입니다.
‘시인한다’(σύνφημι)는 현재형(I consent)으로서, 시인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이란 죄 아래 팔린 사람의 불가피성을 말합니다.
1. 내가 원치 않는 악을 행하면, 내 안에 있는 착한 양심이 율법이 선한 것임을 시인한다는 말씀입니다.
즉 내 안에 있는 양심이나 율법은 다같이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안의 양심과 율법은 선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마귀와 내 안에 있는 죄의 본성은 악하다는 것입니다.
17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o now, no longer am I the one doing it, but sin which dwells in me.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νυνὶ δὲ, οὐκέτι ἐγὼ κατεργάζομαι αὐτὸ,
In that case now, no longer I I do it
직역하면 ‘이 경우에는 이제 내가 그것을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는 뜻입니다.
‘행하는’이란 동사(κατεργάζομαι)는 현재형으로서(I do) 현재 행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내가’(ἐγὼ:I)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ἀλλὰ ἡ ἐνοικοῦσα ἐν ἐμοὶ ἁμαρτία.
but the dwelling in me sin
‘거하는’이란 동사(ἐνοικοῦσα)는 현재분사로서(dwelling) 언제나 거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 내가 율법을 어겨서 죄악을 행하는 것은 진정한 나의 양심이 아니고, 내 안에 거하는 죄요 죄의 본성이라는 뜻입니다.
즉 마귀는 내 안의 죄성을 자극해서 범죄 행동을 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내 안의 진정한 자아와 양심은 성령님의 감동을 따라서 선을 행하고자 합니다.
이런 이중적인 자아상(양심과 죄성)은 갈라디아서 5장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16-18.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로마서 7: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18절.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I know that nothing good dwells in me, that is, in my flesh; for the willing is present in me, but the doing of the good is not.
내 속(에)---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οἶδα γὰρ ὅτι οὐκ οἰκεῖ ἐν ἐμοί,
I have known for that nothing dwells in me
본 절은 직역하면 ‘왜냐하면 내 속에 즉 내 육체 속에 (선한 것은) 아무 것도 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아노니’(οἶδα)는 완료형으로서(I have known) 이미 알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거하지’(οἰκεῖ)는 현재형으로서(dwells) 부정어(οὐκ:nothing)와 함께, 언제나 거하지 않은 상태를 가리킵니다.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τοῦτ’ ἔστιν ἐν τῇ σαρκί μου, ἀγαθόν·
that is in the flesh of me, good
직역하면 ‘내 육신에 선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아노니)’란 뜻입니다.
동사(ἔστιν)는 현재형으로서(is) 언제나 있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원함은 내게 있으나
τὸ γὰρ θέλειν παράκειταί μοι,
the for to will is present with me
직역하면 ‘왜냐하면 원하는 것은 내게 있지만, (선을 행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원하는’(θέλειν)은 현재 부정사로서(to will) 언제나 원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있다’(παράκειταί)는 현재형으로서(is present) 언제나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τὸ δὲ κατεργάζεσθαι τὸ καλὸν, οὔ·
the but to work the good, not
직역하면 ‘그러나 선을 행하는 것은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행하는’(κατεργάζεσθαι)는 현재부정사로서(to work) 언제나 행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1. 내 육신 속에서 선을 원하는 것은 내 양심이고, 선을 행하는 것이 없는 것은 내 속의 죄성 때문입니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내 속에 있는 죄성이 양심을 이기고 악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는 인간의 슬픈 자아상입니다.
그렇지만, 기도하고 성령님의 인도와 은혜 안에서 살면, 내 마음 속의 갈등도 사라지고, 우리의 삶도 성령님의 열매를 맺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19절.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 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the good that I want, I do not do, but I practice the very evil that I do not want.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οὐ γὰρ ὃ θέλω ποιῶ ἀγαθόν,
not for that I desire I do good
직역하면 ‘왜냐하면 내가 원하는 것 선은 실천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것 악 이것을 행하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원하는’(θέλω)은 현재형으로서(I desire) 항상 원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행하지’(ποιῶ)도 현재형으로서(I do) 부정어(οὐ:not)와 함께, 항상 행하지 않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도리어 원하지 아니 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ἀλλὰ ὃ οὐ θέλω κακὸν, τοῦτο πράσσω.
but that not I do want evil, this I practice
‘원하지’(θέλω)는 현재형으로서(I want) 부정어(οὐ:not)와 함께, 항상 원하지 않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행하는도다’(πράσσω)도 현재형으로서(I practice) 항상 행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 내가 선을 원하는 것은 내 양심이고, 악을 행하게 만든 것은 내 안의 죄성입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선을 행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가련한 실상입니다.
그렇지만,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은 성령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행복하고 은혜로운 삶입니까? 할렐루야!
20절.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if I am doing the very thing I do not want, I am no longer the one doing it, but sin which dwells in me.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εἰ δὲ ὃ οὐ θέλω, ἐγὼ τοῦτο ποιῶ,
if now what not I want, I this I do
‘원하지’란 동사(θέλω)는 현재형으로서(I want), 부정어(οὐ:not)와 함께, 현재 원하지 않은 상태를 가리킵니다.
‘하면’(ποιῶ)이란 동사는 현재형으로서(I do), 언제나 행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내가’(ἐγὼ:I)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οὐκέτι ἐγὼ κατεργάζομαι αὐτὸ
no longer I I work it
직역하면 ‘더 이상 내가 그것을 행하는 것이 아니요’란 뜻입니다.
‘행하는’이란 동사(κατεργάζομαι)는 현재형으로서(work) 부정어(οὐκέτι:no longe)와 함께, 언제나 내가 행하는 것이 아니란 뜻입니다.
‘내가’(ἐγὼ:I)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ἀλλὰ ἡ οἰκοῦσα ἐν ἐμοὶ ἁμαρτία.
but the dwelling in me sin
‘거하는’(οἰκοῦσα)은 현재분사로서(dwelling) 언제나 거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1. 내 양심이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내가 아니고, 내 타락한 인간성에 깃든 죄라는 것입니다.
실상 마귀가 이 죄성을 자극하여 온갖 악을 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 사회에 온갖 죄악들이 가득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을 따라 사는 성도들은 성령님이 마음 속에 충만히 함께 하셔서, 죄성이 활동하지 않고, 평온한 마음으로 선한 말을 하고, 선한 행동을 하면서 살게 됩니다.
이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입니까? 할렐루야!
2.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 혼자 힘으로는 율법을 지켜서 의로운 삶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철저히 인식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님 안에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만 성화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주님 모시고 영생을 맛보며, 성령님과 함께 행복한 생활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191장>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주의 팔이 나를 안보함이요, 내가 주의 큰 복을 받는 참된 비결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함이라.
전에 죄에 빠져서 평안함이 없을 때 예수 십자가의 공로 힘 입어 그 발 아래 엎드려 참된 평화 얻음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함이라.
나와 동행하시고 모든 염려 아시니 나는 숲의 새와 같이 기쁘다. 내가 기쁜 맘으로 주의 뜻을 행함은 주의 영이 함께함이라.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함이라.
세상 모든 욕망과 나의 모든 정욕은 십자가에 이미 못을 박았네. 어둔 밤이 지나고 무거운 짐 벗으니 주의 영이 함께함이라.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함이라.
<찬송가 415장> 주 없이 살 수 없네, 죄인의 구주여. 그 귀한 보배 피로 날 구속하소서. 구주의 사랑으로 흘리신 보혈이 내 소망 나의 위로 내 영광됩니다. 주 없이 살 수 없네 나 혼자 못서리. 힘 없고 부족하며 지혜도 없도다. 내 주는 나의 생명 또 나의 힘이라. 주님을 의지하여 지혜를 얻으리.
21-25절. 율법을 섬기며 살아야 하는 비참한 인간의 비명소리입니다.
1. 성령님의 인도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내 힘으로 율법의 정죄를 대항하고, 내 힘으로만 성화를 이루어 가려고 하는 비참한 모습을 지적해주고 있습니다.
성령님의 도움심이 없이는 결코 율법의 요구를 성취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2. 21-25절에서는, 두 가지가 대조되어 있습니다.
21절. 선과 악
22-23절. 마음의 법과 죄의 법
25절.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
3. 그런데, 여기에 빠진 것이 있는데, 8장 2절에 나오는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8:2.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나를) 해방하였음이라.
4. 성령님의 인도에 따라 살지 않는 사람은 마음속에 무서운 갈등을 갖습니다.
내 힘으로 율법을 지키려고 하니, 얼마나 갈등이 심합니까?
24절.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차라리, 예수를 안 믿었을 때는 이러한 고통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은혜가 무엇인지, 율법이 무엇인지도, 죄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성령님의 보호가 없으니, 마귀가 가만둡니까?
예수 믿기 전에는 마귀가 자기 자식이라고, 건드리지 않고 가만두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 믿고 하나님 자녀가 되었으니, 마귀가 가만둘 리가 없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있고, 성령님과 말씀의 은혜를 입고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믿기 전보다도 더욱 괴롭고, 죽을 맛입니다.
5. 양은 양의 우리 안에서 목자의 돌봄을 받아야 평안합니다.
양이 양의 우리 밖으로 나가서, 목자의 보호를 받지 못하면, 악한 짐승이 달려들어서 죽이려고 합니다.
양이 우리 안에 있는 것은 마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1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6. 양이 우리 밖에 나가서 풀을 뜯어 먹으려면, 목자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성도들이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서 말씀의 은혜를 받는 것과 같습니다.
로마서 8:4. 성령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16:13.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
7. 물론 성령님은 예수님의 영이십니다.
로마서 8장 9절에는 성령님을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또, 사도행전 16장 6-7절에는, 성령님을 예수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5장 26절에는, 성령이 오시면,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 하신다고 했습니다.
21절.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 find then the principle that evil is present in me, the one who wants to do good.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εὑρίσκω ἄρα τὸν νόμον
I find then the principle
직역하면 ‘그래서 내가 (선을 행하기 위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는 것) 그 법을 발견한 것이다’는 뜻입니다.
‘깨달았다’(εὑρίσκω)는 현재형으로서(I find) 현재 깨달은 상태를 가리킵니다.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τῷ θέλοντι ἐμοὶ ποιεῖν τὸ καλὸν,
that desiring me to do the good
‘원하는’(θέλοντι)은 현재분사로서(desiring) 원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행하기’(ποιεῖν)는 현재 부정사로서(to do) 항상 행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ὅτι ἐμοὶ τὸ κακὸν παράκειται·
that me the evil is present with
‘함께 있는’(παράκειται)는 현재형으로서(is present with) 언제나 함께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1. 이처럼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습니다.
선을 행하기 원하는 것은 양심이고, 악을 행하고자 하는 것은 죄성입니다.
우리가 이미 예수님을 믿었으므로 선한 양심이 더욱 활동적입니다.
그러나 마귀가 우리의 죄성을 더욱 자극해서 악한 말과 악한 일을 하게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기도하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마귀의 자극을 물리치고, 선한 말과 선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물론 우리가 부활하여 몸이 변화하고 천국에 들어가면, 그때는 우리 안의 죄성도 완전히 없어지고, 마귀도 우리를 자극하지 않게 됩니다. 할렐루야!
22절.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I joyfully concur with the law of God in the inner man,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συνήδομαι γὰρ τῷ νόμῳ τοῦ Θεοῦ
I delight for in the law of the God
직역하면 ‘왜냐하면 내가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즐거워하다’(συνήδομαι)는 현재형으로서(I delight) 언제나 즐거워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내 속사람으로는
κατὰ τὸν ἔσω ἄνθρωπον,
according to the inner man
1. ‘속 사람’은 양심이나 구원받은 영혼을 가리킵니다.
‘겉 사람’은 죄성이나 육체적 욕망을 가리킵니다.
2. 속 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는 것은 양심이나 구원받은 영혼은 사랑으로 표현된 하나님의 법(율법)을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선한 말을 하게 되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선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완전히 마음이 평안하고, 거룩해지고, 양심적이며, 선한 실천을 하게 되고, 내 마음에나 삶이나 가정과 사회생활이 행복하고 평안합니다.
2.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하나님의 법을 행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야 하나님의 법을 행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8:4. 성령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령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23절.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I see a different law in the members of my body, waging war against the law of my mind and making me a prisoner of the law of sin which is in my members.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보는도다
βλέπω δὲ ἕτερον νόμον ἐν τοῖς μέλεσίν μου,
I see but another law in the members of me,
직역하면 ‘그러나 네 지체들 속에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우는 것과 죄의 법 안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보는도다’(βλέπω)는 현재형으로서(I see) ‘바라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내 마음의 법과 싸워
ἀντιστρατευόμενον τῷ νόμῳ τοῦ νοός μου
warring against the law of the mind of me
직역하면 ‘내 마음의 법과 싸우는 것을’이란 뜻입니다.
‘싸워’(ἀντιστρατευόμενον)는 현재분사로서(warring against) 싸우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καὶ αἰχμαλωτίζοντά με ἐν τῷ νόμῳ τῆς ἁμαρτίας,
and making captive me in the law of the sin
직역하면 ‘죄의 법 안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이란 뜻입니다.
‘사로잡는’이란 동사(αἰχμαλωτίζοντά)는 현재분사로서(making captive) 사로잡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내 지체 속에 있는
τῷ ὄντι ἐν τοῖς μέλεσίν μου.
the being in the members of me
‘있는’(ὄντι)은 현재분사로서(being) 언제나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1. <사로잡아>는 전쟁에서 생포당하여, 포로로 끌려오는 모습입니다.
이처럼, 로마서 7장의 사람은 자유인이 아니고, 노예 상태입니다.
이처럼 사도는 죄 아래 팔린 사람의 삶이 어떠한가를 샅샅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2. 사도는 이 대목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려고, 이처럼 아픈 데를 쑤시고 있습니까?
(1) <율법>은 우리에게 <의롭다 함>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성화>도 이루어주지 못함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2) 결국 <그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 할지니라>를 말씀하고 싶은 것입니다.
3.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자 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죄의 법 아래로 사로잡혀 가게 됩니다.
주 예수님(성령님)의 도우심이 절대 필요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절대 살 수 없습니다.
차라리 은혜받고 사는 것이 행복이지, 세상 나가서 나 혼자 살려고 하면, 얼마나 갈등이 심한지 모릅니다.
몸은 조금 쉬고 싶지만, 차라리 교회 나와서 기도하는 것이 낫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잘 나오셨습니다.
다른 곳에 가서 몸이 좀 편할지 모르나, 마음에 은혜가 없으면, 참된 행복이 없습니다. 할렐루야!
24절.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retched man that I am! Who will set me free from the body of this death?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Ταλαίπωρος ἐγὼ ἄνθρωπος·
wretched I man!
직역하면 ‘나는 비참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τίς με ῥύσεται ἐκ τοῦ σώματος τοῦ θανάτου τούτου;
who me will deliver from the body of the death this
‘건져내랴’(ῥύσεται)는 미래형으로서(will deliver) 장차 건져낼 것을 가리킵니다.
1. ‘곤고한 사람’이란 양심을 따라 선한 삶을 살지 못하고, 마귀에게 충동을 받아서 죄악된 삶을 살고 있는 자아상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처럼 죄악된 삶을 살고 있으면서, 양심의 가책과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이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고 울부짖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죄악 세상에서 살고 있는 모든 인류의 탄식 소리입니다.
예수님 없이 나 혼자서 마귀의 정죄를 당하고 있는 비참한 사람의 비명 소리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우리 본성이 죄성으로 타락하게 되었고, 그래서 온갖 불행으로 고난을 당하고 죽게 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서 구원의 소리를 치고 있는 안타까운 울부짖음입니다.
정치가는 사회적인 불행과 죄악상을 해결하려고 하지만, 인간의 본성에 있는 죄성과 갈등은 정치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2. 그러면 누가 건져주겠습니까?
누구요?
그렇지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다 대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마귀를 이기셨습니다.
지금은 예수님이 하늘나라에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지만,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를 건져주시고, 보호하시고, 돌봐주십니다.
즉 성령님은 우리가 마귀를 이기게 하시고, 성령님은 우리 안의 죄성을 이기게 하시고, 말과 행동이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게 하십니다. 할렐루야!
이처럼 예수님 믿고 죄 용서를 받을 뿐만 아니라, 성령님을 모신 성도는 내적인 평안과 외적인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25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anks be to God through Jesus Christ our Lord! So then, on the one hand I myself with my mind am serving the law of God, but on the other, with my flesh the law of sin.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χάρις τῷ Θεῷ, διὰ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Thanks to the God, through Jesus Christ the Lord of us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노라
ἄρα οὖν αὐτὸς ἐγὼ τῷ μὲν νοῒ δουλεύω νόμῳ Θεοῦ,
then therefore myself I with the indeed mind I serve law of God
‘섬기노라’(δουλεύω)는 현재형으로서(serve) 언제나 섬기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τῇ δὲ σαρκὶ νόμῳ ἁμαρτίας.
the but flesh law of sin
직역하면 ‘그러나 육신은 죄의 법을’이란 뜻입니다.
1. 마귀가 우리의 죄성을 자극하여 모든 악과 불행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우리는 마귀와 죄 때문에 곤고한 존재라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성과 마귀에게서 해방받게 구원해주실 분은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셔서, 우리 죄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가 성령님을 모시고 마귀를 물리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2. 우리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긴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법’이란 양심과 성령님의 감동과 믿음을 가리키고, ‘죄의 법’이란 율법이나 사회법 등을 가리킵니다.
즉 성도들이 양심이나 성령님의 감동과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서, 율법이나 사회법을 어기면 처벌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모시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들도 율법이나 사회법을 지켜야 합니다.
3. 비참한 비명 소리를 지를 때, 건져줄 이는 예수님이십니다.
로마서 8:1.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즉, 다시 예수 믿은 구원의 은혜에 감사 감격하게 됨으로써, 승리의 삶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서, 즐거운 삶을 살아갑니다.
<찬송가 427장>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을 행함은 주의 영이 나를 안보함이요. 내가 주의 큰 복을 받는 참된 비결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4. 이 세상에서는 아직 몸이 부활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갈 때는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드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를 받지 못할 때는 정죄와 죄책감으로 시달리게 됩니다.
5. 또한 영적으로 죄에서 해방되었다고, 육신적으로 율법을 어기면 육신이 처벌받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믿고 자유함을 받은 성도가 육신적으로 세상법을 지켜야지, 어기면 처벌을 받습니다.
이 점은 예수 믿는 성도들이 주의해서 지켜야 할 중요한 점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가는 성도들은 율법과 세상법의 요구를 충분히 만족시키고도 남음이 있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로마서 8: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마태복음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에베소서 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왕 예수를 믿으려면, 열심히 기도하여 성령님의 은혜를 충만히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심령에 자유와 기쁨을 누리시고, 육신 생활에 거룩하고 흠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복된 신앙생활 하시고, 빛이 되는 생활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