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명- 아테나와 아레스 –제 17회 마해송문학상 수상작
저-신헌
출-문학과 지성사
독정-2021. 6월 7일.월
아레스가 입을 옴죽옴죽하며 다가오더니 모자를 휙 낚아챘다.
“모건 자미는 왜 원형 마장으로 가요?”
“기승 훈련 하려고.”
기승훈련은 사람들 등에 태우는 훈련이다. 경주마가 되려면 기승 훈련이 잘 되어 있어야 한다.
“훈련은 오전에 했잖아요. 또 해요?”
“오전에 또 실패했어. 이 녀석이 사람을 안 태우려고 해, 방목ㅈ비에서 스트레스 좀 풀게 하고, 오후에 다시 훈련하는 거야.”
관리사 아저씨는 아레스를 끌고 원형 마장으로 갔다. 뒷모습을 지켜보는데 마음이 많이 쓰였다. 사람이 등에 올라타는 것을 좋아하는 말은 없다. 처음에는 하나같이 당황하고 반항한다. 하지만 대부분 말들은 적응 기간을 거치면서 무리 없이 사람을 태운다. 가끔씩 끝까지 거부하는 말은 경주마가 되지 못한다. 승마장에서도 받지 않느다. 그런 말은 갈 데가 없다.
“잡아, 빝켜 위험해!‘ 마사 앞뜰로 뛰어갔다. 말이 앞발을 번쩍 치켜들고 ㅌ크게 울어 댔다. 사람들은 가까지 가지 못사고 얼쯤얼쯤했다.
“아레스!”
훈련을 하기 싫은 아레스가 난동을 부리는느 것이었다.
“오라 오라, 츱츱츱. 오라.“
아레스는 순순히 따를 생각이 없어보였다. 콧김을 내뿜으며 고개를 내두르고 발검음은 방향을 잃고 겅중거렸다.
“워 워. 츱츱.”
아저씨는 고삐를 잡으려고 다가갔다가 아레스가 앞발을 드는 바람에 도로 물러났다. 아레스가 움직일 때마다 사람들이 피해 다녔다. 말과 사람이 서로 눈치를 보며 마당을 몇 바퀴 돌았다. 한 아저씨가 고삐를 잡으려다 하마터면 아레스와 부딪힐 뻔했다. 위험한 순간이었다. 목장 사람들은 말이 사람보다 훨씬 힘이 세고 큰 존재라는 것을 잘 안다. 재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사람이 크게 다칠 수 있다. 500킬로그램이나 나가는 몸집과 부딪히면 뼈가 부러지고, 깔리면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말이 잔뜩 흥분한 상태라면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왈왈왈왈 왈왈.”
어딘선가 챔프가 달려오더니 아레스를 향해 짖었다. 챔프가 짖는 소리에 아레스는 뒷걸음치다가 앞발을 치켜 올렸다, 챔프가 위험해 보였다.
“쳄프, 이리 와! 챔프!”
세나가 챔프를 불렀지만 챔프는 더 거세게 짖으며 아래스한테 다가갔다 물러났다 했다. 다른 말들은 챔프가 짖으면 풀 죽어서 얌전해지는데, 아레스는 앞발을 높이 들며 더 날뛰었다. 아레스한테는 쳄프가 통하지 않았다.
“챔프, 이리 오라고!”
챔프는 그제야 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새나한테 갔다. 세나는 쳄프를 쓰다듬으며 걱정스런 표정으로 아레스를 쳐다보았다. 그때 마사에 난 창으로 아테나 얼굴이 쑥 나왔다. 아테나는 히히힝 한 번 울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레스는 방목지로 내빼려다가 아테나를 보고 멈칫했다. 아테나가 한 번 더 히잉 울자. 아레스가 코를 벌룩대며 천천히 다가갔다. 아레스 꼬리가 살랑살랑 움직이는 것을 보니 흥분이 조금 가라앉았나 보다. 관리사 아저씨가 재빨리 에레스의 고삐를 잡았다. 하지만 당장 잡아 끌지는 않았다. 아레스와 아테나가 코를 부비며 한동안 서 있도록 그냥 두었다. 아무래도 오늘 아레스의 훈련은 끝난 것 같다. 새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다음 날, 새나가 마방에 들어서자 마사가 꾸물꾸물 깨어났다. 졸음을 쫓으며 푸르르 입 터는 소리,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말발굽소리, 건초 부시럭거리는 소리, 홀짝홀짝 물 마시는 소리가 새벽 공기를 흔들며 세나를 맞았다.
“아레스, 사람을 태우는 거, 별거 아냐, 무서울 거 없어.”
엄마는 사람이 말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말이 사람을 선택한다고 한다. 말은 싫어하는 사람을 등에 태우지 않는다. 새나는 아레스와 함께 두 다리는 이미 아레스 몸속으로 녹아들어 간 듯 딱 붙어서 함께 움직였다. 땅을 박치는 아레스의 발길질이 세나의 심장까지 전해졌다.
“네가 왜 기승 훈련을 해?
할아버지가 화내는 아빠 뒤에서 마른기침을 했다. 너무 화내지 말라는 신호다. 하지만 아빠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했다.
“엄마가 말을 탄 이유는 외롭고 힘들 때, 처음 말을 탔어. 말 달리니까 복잡한 마음이 정리되더라고, 힘든 것도 견딜 만하고 외롭지도 않았어, 그 순간은 바람 소리와 말발굽소리와 숨소리밖에 안 들려, 온 우주에 오직 나와 말 둘뿐인 것 같아. 얼마나 짜릿한지. 그건 아무도 모를걸, 말과 나, 둘만 알지.“
아레스가 팔려가자 새나는 마사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눈물이 나지 않게 하려면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아레스를 경주마로 어떻게 만들 거야? 아래스는 마주가 없잖아.”
경주마의 주인을 ‘마주’라고 부른다. 아무리 훌륭한 말이라도 마주가 없으면 경주마로 등록할 수 없고 경기에도 출전할 수 없다. 아레스의 외로움을 달래줄 친구 염소로 망초를 데려왔다.염소는 보통 풀을 좋아하는데 개망초를 좋아하다니 입맛이 별나다. 마사에 들어서자 망초 울음소리가 들리고 망초를 보기 위해 마방마다 말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망초는 커다란 말을 보고도 놀라지 않고 전혀 거리낌 없이 돌아다녔다.
“망초야, 그만 돌아다니고 들어가라.”
할아버지가 망초를 몰아서 아레스의 마방 안으로 들여보냈다. 새나와 누나가 먹이통 안에 개망초를 넣어주자 망초가 오물오물 먹었다. 조금 있으니 아저씨들이 아레스를 끌고 왔다. 아래스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아저씨들이 마른 수건으로 아레스의 땀을 닦아 주는 동안, 새나는 물통에 시원한 물을 채워 주었다. 아레스는 목이 많이 말랐는지 한참 물을 마셨다. 할아버지가 아레스를 마방으로 들여보냈다. 망초가 아레스를 올려다보며 매애매애 울었다. 아레스는 망초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킁킁 냄새를 맡았다. 망초가 종종종 다가가자 아레스가 슬쩍 옆으로 비켜 주었다. 자기보다 작은 동물이 다칠까 조심스러운 몸짓이다. 망초는 아레스 앞다리 쪽으로 다가가더니 코를 들어 올리고 또 매에애애 울었다. 아레스는 망초 코에 자기 코를 갖다 댔다. 망초가 또 한 번 매애 우니 아레스가 코를 부볐다. 아레스는 반갑다는 인사를 늘 그렇게 했다.
경주마들 이름-빛의 속도. 돌개바람.
“머리 차로 1번 9번 추격합니다.”
‘머리차’는 말 머리리 길이만큼의 차이를 말한다. 누가 이길지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아저씨 모건 자마는 경주마가 되기만 하면 성공할 거에요. 아저씨도 돈 많이 벌 거예요.”
완보 아저씨는 피식 웃었다.
“난 경마로 돈 벌고 싶지 않은데.”
세나는 당황스러웠다. 말문이 막혔다.
“경부마가 되어서 우승하면 모건 자마는 행복할까?”
세나는 아저씨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성공하면 돈을 버는 것은 좋은 건데.
하얀 아테나는 어둠 속에서도 잘 보였다. 세나가 이끈 대로 끄덕끄덕 걷던 아레스가 어느 순간 달렸다. 머리라 높이 들고 꼬리를 크게 흔들며 아테나한테 달려갔다. 아레스와 아테나는 서로 코끝을 비비며 빙글빙글 돌았다. 세상에서 가장 친한 두 친구가 만났다. 목장 어구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 경마장에서 보낸 말 수송차가 도착했다. 새나는 아테나와 아레스를 데리고 도망치고 싶었다. 두 친구가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곳이 어디 있을 것 같았다. 말들은 새벽에 가장 편안한 마음과 몸을 지니기 때문에, 말을 훈련시키는 조교사나 기수는 새벽부터 움직인다. 세나는 안전모를 쓰고 기수복을 입고 기수 장화를 신었다. 책상 서랍에 쟁여 놓은 각설탕도 챙기고, 집 앞에서 개망초도 몇 송이 땄다. 새나가 마방 앞에 다가가니 아레스가 고개를 내밀었다.
“아레스 잘 잤어?”
아레스보다 망초가 먼저 매애애애 대답했다. 새나는 등지를 딛고 안장 위에 올라탔다. 아레스는 새나가 편히 탈 수 있도록 가만히 서 있었다. 세나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자세를 잡았다.
“아레스 가자!”
세나가 이를 꽉 몰고 고삐를 힘차게 휘두르자, 아레스가 더 속도를 냈다. 찬바람이 귓전을 날칼카롭게 때리고 옷깃을 파고 들었다. 경주로에서 이만큼 빨리 달리기는 처음이다. 얼굴에 달려든ㄴ 매운바람 때문에 숨 쉬기 힘들고, 몸이 뒤로 쏠릴 때마다 ?떨어질 것만 같아 손에 진땀이 났다. 고삐를 꽉 쥐었다. 새나의 마음을 읽었는지 아레스가 속도를 살짝 늦추었다. 새나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꼭 그만큼 달렸다. 새나는 몸을 앞으로 수그리고 고삐를 더 바짝 잡았다. 아레스가 속도를 좀 더 늦추었다. 아레스의 말발굽 소리와 새나의 심장 소리가 뒤엉켜 귓속에서 울렸다.
방목지에서 뛰놀던 말들과 달리 경주마들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내몰려 달리고 있다. 대부분 눈가리개와 귀마개가 달린 마가면을 쓰고 있어서 볼 수는 없지만, 새나는 놀라고 긴장하고 두려움에 찬 말들의 눈빛을 떠올릴 수 있었다.
“계속 그렇게 있다간 당신도 애들도 오늘 힘들어. 좀 쉬어야 해.”
아이들이 힘들다는 말은 엄마를 움직이게 한다.
말은 다리가 부러져도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려서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말은 그토록 달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달리기 싫을 만큼이라니 그것은 죽을 만큼인 것이다.
“경주를 치름 말들은 2주 이상 쉬어야 해. 폭발하듯 힘을 써서 뼈와 근육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거든. 다시 경주 하려면 훈련 기간이 2주 더 필요하고, 그래서 경주마들은 보통 한 달에 한 번 출전 해, 근데 아테나는 전혀 쉬지 못했어. 쉬고 싶었을 텐데.”
엄마의 재활치료를 돕던 백두산이 죽어서 목장 한편에 잘 묻어주었다. 무덤 위에는 백두산이 좋아하던 조릿대를 올려놓았다. 망초가 조릿대를 먹으려고 자꾸 알짱거려서 울타리에 묶어 놓아야 했다.
“백두산 편히 쉬어.”
붉은 노을이 빈 하늘을 가득 채우고 넘쳐 무덤가게 내려앉았다. 챔프가 백수산의 죽음을 알기라도 하듯 아우우우 허울링 했다. 숲에서 나무들이 우우우우 몽을 흔들며 함께 울었다. 유니콘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예뻤던 아테나를 떠올렸다. 꿈속에 아테나가 찾아왔다. 아네타는 세나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핥아주고는 날개를 펼쳐 하얀 몸과 딱 어울리는 커다란 날개로 날아올랐다. 옆에서 또 다란 하얀 말이 함께 달렸다. 백두산이다. 아테나와 백두산을 하늘로 달려가 그대로 하얀 별이 되었다. 아레스는 엄마의 재활 치료를 도울 말이 되었다 그것은 꽤 좋은 길이기지 않아도 된다. 엄마와 들판을 달리면 행복해할 것이다. 재활 승마가 된 것이다. 엄마가 기수를 포기했지만 괴롭거나 슬프지 않고 편안해 보였다.
아레스가 엄마 머리칼을 헝클어뜨리며 입집을 했다.
“아래스 간지러워!”
아레스가 짓궂게 히이히힝 웃었다. 웃음소리가 하도 우스워서 모두 따라 웃었다. 웃음보리가 바닥삭에 너울너울 퍼졌다.
작가 신현의 말-
경주에서 탈락한 것 같아서, 경주에 참가할 자격조차 없는 것 같아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안아주고 싶습니다. 등을 쓰다듬어 주며 ‘너의 길은 특별해! 경주로보다 훨씬 넓은 길이라서, 다른 사람들이 모를 뿐이야.’속삭이고 싶습니다. 저의 속삭임이 아이들에게 위로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