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사랑 가족 여러분!
지난 4월 찾았던 마리소리골에는 아직 겨울이 계곡 음지에 잔설로 똬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6월의 마지막 토요일, 홍천 마리소리골에는 봄도 훌쩍 뛰어넘어 여름이 아우성이었습니다.
뜰앞의 독일 가문비 나무, 전나무, 뒷산의 소나무, 낙엽송, 참나무는 푸르다 못해 검은 빛을 띠고
진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토굴 앞의 공작단풍은 날개를 활짝 편 공작새보다 더욱 화려한 몸짓으로 치장했습니다.
폐부 가득 스며들어오는 달디 단 공기에 아미산 산행으로 지친 몸에는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5시 조금 넘어 '송계취금' 공연은 막이 올랐습니다.
악기 박물관에 몸의 일부와도 같은 귀중한 악기를 기꺼이 기증해 주신 인간문화재 원로들께서
들려주시는 연주는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어울사랑 가족뿐 아니라 홍천군민들께서도 자리를 꽉 메워주셔서 그야말로 악기박물관 공연장은
입추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황경애 선생님의 단아하면서도 화려하고, 묵직하면서도 경쾌한 태평무로 마리소리골에는 국악의 정취가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정재국 명인의 피리 연주 '상영산'이 마리소리골 계곡을 휘감았습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유장한 피리소리는 먼 옛날 인도의 영취산에서 사바의 중생들에게
깨달음의 세계를 가르쳐주시던 부처님의 '영산회상' 세계로 우리를 인도했습니다.
양승희 명인의 가야금 산조와, 제자들과 함께 하신 가야금 병창은 마리소리골 계곡에 찾아온 더위를
싹 날려주는 청아한 소리였습니다.
김영재 명인의 해금과 이병욱 선생님의 기타가 어우러진 '적념'은 동 서양의 악기가 이뤄낼 수 있는 조화의 극치였습니다.
이어 관객과 함께 한 경기민요 메들리와 아리랑이 마리소리골에 울려 퍼지면서
송계취금의 감동은 절정으로 치달았습니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어울사랑채 건립에 적극 동참하고 계시는 서예의 대가 중리 하상호 선생님께서
일필휘지의 글을 쓰셔서 명인들께 증정하시는 감동적인 퍼포먼스도 곁들여졌습니다.
명인들의 연주가 이어지는 무대에 오르신 중리 선생님은 좌선으로 마음을 가다듬으시더니
커다란 붓끝에 기를 모아 단숨에 이백의 명시 등을 써 내려가셨습니다.
명인들께서 뿜어내는 음악의 향기와 더불어 중리 선생님의 묵향이 뿜어내는 문자의 향기가
공연장 가득 퍼졌습니다.
공연장을 꽉 메운 200여명의 청중들 뿐 아니라 공연장 밖에 있던 우두커니 서 있던 나무들,
바람에 팔랑팔랑 몸 까불던 나뭇잎들, 천방지축 쾅쾅거리던 계곡 물, 무표정하던 바위들
모두 숨 죽이고 귀 쫑긋 세운 채 이 멋진 공연에 흠뻑 취했습니다.
그야말로 자연과 사람 음악이 하나로 어울린 숲속 큰 잔치였습니다.
이어서 맛있게 저녁을 먹고 나서는, 특별히 중견 배우이자 탤런트이신 이영하 중앙대 한류대학원
교수님의 특강도 있었습니다. 한 나라의 발전이나 브랜드 이미지에서 문화와 예술이 차지하는 힘과 비중이
얼마나 큰 것인지 교수님께서는 대장금과 겨울연가 등을 예로 드시면서 실감있게 설명해주셨습니다.
또 OECD 국가별 비교를 통해 우리가 아직 문화 예술 분야에 대한 투자와 마인드가 매우 미흡하다는 점도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중산층 기준이 소득과 학력 집의 크기 등 경제적인 능력 위주이지만,
서구 선진국의 중산층 기준은 남을 위한 배려, 악기 하나 정도 다룰 수 있는 예술적 소양,
외국인과 소통할 수 있는 외국어 능력 등 예술적 안목과 인문학적 교양이라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새삼 이병욱 선생님이 추구하시는 어울림의 세계가 얼마나 우리 삶의 질을 고양시키는데 중요한 것인지
느끼게 해 주셨습니다.
이어진 3부에서는 이병욱 선생님의 멋진 기타와 이유진 어울카페지기님의 피아노, 이완이 첼리스트의 연주가
어우러진 흥겨운 연주 마당이 펼쳐졌습니다.
'꿩대신 닭'으로 토굴 안에 있는 전자올갠으로 이 유진 교수님은 열심히 연주하셨지만 연주자의 열정을
악기가 따라오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피아노 한대 들여놓았으면 더 없이 좋았을 것을!
이번 공연의 아쉬움으로 남는 대목입니다.
감동과 여운이 식기도 전에 이번에는 멀리 남아공에서 펼쳐진 우리나라와 우루과이의 월드컵 16강
응원전으로 마리소리골은 다시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목이 터져라 응원했지만 아쉽게도 그날 행운의 여신은 약간 우루과이로 기울어지셨습니다. (편파^^)
최선을 다해 선전한 태극전사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사이 하늘에서는 장대비가 쏟아졌습니다.
마리소리골의 열기를 식혀주는 비인지, 아쉽게 분루를 삼킨 우리 선수들과 국민들의 애통한 눈물인지
검은 하늘에서는 주룩주룩 비가 내렸습니다.
이번 마리소리골 잔치에는 특히 어울사랑채 건립에도 큰 마음을 내 주신, 여성산악인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오은선 대장도 참여해서 자리를 더욱 빛냈습니다.
마리소리골 인근의 아미산 등산을 겸한 이번 오은선 대장의 방문에, 서석면의 이장님들께서도
멋진 플래카드를 걸어 마음으로부터 환영해 주셨고, 이병욱 선생님 내외 분도 악기박물관에
근사한 플래카드를 걸어주셨습니다.
또 이병욱 선생님의 공연 때마다 멋진 배경 그림을 손수 그려주시는 이무성 선생님께서는
오은선 대장을 상징하는 용맹스런 호랑이 그림과 오대장의 등정을 축하하는 시를 담은 족자를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참석자들은 앞다퉈 오대장과 사진을 찍으면서 히말라야 등정의 영광을 함께 나눴습니다.
공연장을 가득 메운 어울사랑 가족 여러분과 홍천 군민들을 보면서 다시 한번 이 분들에게
더 좋은 잠자리와 공연장소를 제공할 수 있는 '어울사랑채'가 빨리 세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
간절했습니다.
또 이번 송계취금 공연과 마리산 산행, 그리고 이영하 교수님의 특강은 미디어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보였고 취재 열기도 뜨거웠습니다.
서울 MBC를 비롯해 춘천 MBC, 강원민방에서는 험한 아미산 산행부터 공연과 강연까지
밀착취재를 했고, 해외에도 프로그램을 실어 보내는 아리랑TV (국제방송)에서도 장시간 취재를 해,
마리소리골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갈수록 깊어지고 확산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해발 1000미터에 가까운 아미산 정상까지 동행취재를 했던 춘천 MBC와
강원민방 카메라 맨들의 이마에 흘러내리던 굵은 땀방울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녹음이 지쳐 검게 변한 한 여름밤의 마리소리골!
이곳에서 펼쳐진 지난 주말의 향연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솔밭사이를 흐르는 계곡에서 우리 가락에 취한 송계취금(松溪醉琴)이었고, 나무들이 뿜어내는 향기에 취한
송계취향(松溪醉香)이었고, 메마른 가슴을 적시는 시원한 빗소리에 취한 송계취우(松溪醉雨)였고,
태극전사들을 응원하는 함성소리에 취한 송계취성(松溪醉聲) 의 밤이었습니다.
이 좋은 자리를 만들어주신 이병욱 선생님과 명인 연주가 선생님, 그리고 식사를 비롯
힘들고 궂은 일 마다 않으신 무드황 선생님과 봉사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공연 프로그램 가운데 서막을 열어주신 황경애(무드 황) 선생님의 춤사위를 보고 떠 오른 시
한편을 감사의 뜻으로 올리면서 오래오래 이 아름다운 밤을 마음 속에 간직하겠습니다.
어울사랑 가족 여러분!
다음에는 더 많은 분들을 마리소리골에서 뵙기 바라겠습니다.
- 서울 여의도에서 goforest 合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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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무 (泰平舞)
2010.06.26
오직 바람만 가득한 허공
한뼘 내딛는 여인의 발걸음 이리도 무거운가
우주를 잡아당기는 중력과
맞서는 흰 버선 발
팽팽하게 흐르는 긴장
갈라지는 대지 굶주린 나날
덮치는 병마 끝없는 전란
피눈물 흥건히 고인 민초들 가슴
두 발에 담아 디디려니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
오직 침묵만 가득한 허공
두뼘 치켜 올리는 여인의 손짓 이리도 무거운가
세상의 모든 인연 놓고만 싶은 아득함
가녀린 두 손으로 오롯이 움켜쥐고는
하늘 향해 추어 올리는 붉은 나비의 날개짓
더는 견디기 힘든 고통 땅에 묻어주시고
더는 흘릴 수 없는 눈물 거둬가 주시고
오직 평화만이 오직 안식만이
이 나라 이 강산에 가득하길 하늘에 빌며
허공 가르는 간절한 손 짓
이윽고 사뿐사뿐 내딛는 발걸음
모든 슬픔 모든 고통 감싸안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비단치마
민초들의 비원 휘감아 부챗살로 부풀어 오르니
검은 쪽머리 내려 앉았던
금빛 새 푸드득 하늘로 솟구쳐 오르고
붉은 저고리에서 떨어지는 꽃잎에
아로새겨진 하늘의 축복
태평성대를 누리소서!
태평성대를 누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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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무는 조선시대의 춤으로 풍년과 나라의 태평성대, 임금의 수복강녕을 축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황경애 선생님이 추신 태평무의 묵직하면서 경쾌하고
화려하면서 고졸했습니다. 우리 춤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첫댓글 아, 정말 멋진 공연, 추억어린 마리소리골의 밤이었습니다. 이날의 행사와 정경을 이리도 서정적인 글로 정리해 주신 고포리스트님께 감사드림다. 태평무의 시를 읽고 나면 이무성화백님은 또 서화작품 작업에 들어가셔야 될 듯 ~~~
goforest님의 글을 읽고 나면 감히 곡을 붙여 보고 싶은 충동이 생기곤 합니다.. 곳곳에서 느끼는 모든 감정을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도 커다란 축복이겠죠 항상 좋은 글로 감동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눈에 선하게 옮겨 주시니 그 현장에 있엇던 제 자신도 몹시 감동적입니다, 혹 참석치 못하신 분들께 일독을 권하고싶을만큼 상세하고 자상한 글, 감사합니다, 모든 분들의 성원에 다시한번 감사 감사
송계취금의 정경을 시와 산문으로 멋지게 표현하셨네요. 덕분에 다시 한 번 그날의 풍경에 잠기는 것 같습니다. 감사!
멋진 글과 멋진 산문과 멋진 시가 어우러져, 송계취금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감동적으로 노래하는군요..이태백이 환생하듯 일필휘지 옥필을 다듬어 올려주신 선배님께 감사드리며, 어울사랑의 발걸음이 어디로 향할지 무척 기대됩니다. 화이팅~!!
마치 눈앞에 스치듯 그날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언제나 그러했지만 지금 이순간도 goforest님의 시에 감동받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습니다. ㅋㅋ 정말 좋은글, 말씀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