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있는 노래/ 짧은 수필
안보 강연과 ‘단장의 미아리 고개’
일생을 통해서 정말 행복했던 기억을 들먹여보라는 주문을 누가 내게 했다 치자. 난 서슴지 않고 대답하리라. 그거야 군부대에서 의 안보 강연이지!
여기서 상당한 시빗거리가 등장한다. 나는 안보(安保)에는 문외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큰소리친다?
두말할 나위 없이 내가 가진 특유의 허풍이 이 명제에 작용한다. 난 부족한 줄 알면서도, 장병들 앞에서 거침없이 속사포를 쏘아 올렸으니까.
어쩌다가 막히기라도 하면 노래를 목청에 싣는다. ‘진짜 사나이’며 ‘행군의 아침’ 등 군가 앞에서 나와 장병들은 한 덩어리가 된다. ‘전선야곡’을 뱃속 깊숙히서 뽑아올린다 치자. 더러는 눈시울이 젖는 게 어쩌면 당연하리라. ‘서울 구경’을 개사해서 부르면? 모두가 배꼽이 빠질 정도로 웃지 않고는 못 배기고말고. 가곡 ‘가고파’를 가르칠 땐, 모두의 얼굴에 향수鄕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다.
중언부언하지만, 말이 쉬워 안보 강연이지, 주제며 소재가 역불급力不及! 그래도 나는 뜬금없이 화이트보드에다 매직 팬으로 몇 자를 갈겨 쓴다. 『명심보감』 효행편의 한 구절이다. 身體髮膚는 受之父母라 不敢毁傷이 孝之始也요
마치 옛날 서당에서 선고先考께 배웠던 것처럼, 마치 노래라도 부르듯 소리를 내고 상체를 좌우로 흔든다. 박장대소를 터뜨리는 그들 앞에서 그 뜻을 풀이한다. 내 몸과 털끝 하나도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다치거나 상하게 하지 않는 게' 효도의 첫걸음이니라!
그러니 적과 싸울 때를 제외하곤, 군 복무 중 부주의로 말미암아 다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점을 덧붙여야 한다. 그럴라치면 이윽고 이런 간사스럽고 교만한 생각에 내가 지배를 받는 것이다. 당연하지, 이 병사들 중 누구라도 이 정신만 실천하면 효행이고도 남으니, 까짓(?) 안보 운운과 비견할 건가 말이다.
문득 생각이 난 듯 나는 짐짓 슬픈 표정을 짓고 ‘단장斷腸’이라는 고사성어를 설명한다. 새끼를 빼앗긴 원숭이가 뱃전에 뛰어올라 죽었는데,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끊어졌더라는‧. 하찮은 미물도 그럴진대 하물며 사람이랴!
내 구연口演에 그들은 그쯤에서 어느 정도 감동에 빠진다. 이윽고 내 입에서 터져 나오는 절규의 신호는 ‘단장의 미아리 고개’다. 나는 혼신渾身의 힘으로 열창熱唱의 넘은 절창絶唱을 쏟아낸다. 미아리 눈물 고개/ 임이 떠난 이별 고개/ 화약 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헤매일 때/ 당신은…
그러나 이 '단장의 미아리 고개'가 부부간이 아닌, 부모와 딸과의 이별을 나타낸 사실을 노래한 정설定說이 있음을 소개한다. 어느 대중가요 작사가가 체험한 것인데, 밀고 밀리는 전투의 현장을 부모는 밟고 있었다. 미아리 고개를 넘다가 적의 포탄 파편에 부모는 업고 있던 어린 딸을 잃고 만다. 눈에 보이는 막대기를 하나 잡고 땅을 파서 딸의 사체를 묻었는데, 그 일부가 드러날 정도였더란다. 아버지가 그걸 노랫말로 써서, 어느 작곡가에게 부탁하여 만든 노래가 이 ‘단장의 미아리 고개’라는 것.
워낙 내가 철저하게 슬픈 표정을 짓고 마치 피라도 토하는 듯한 애끓는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라, 오히려 장내는 쥐 죽은 듯 조용하다. 나는 그 틈새를 놓칠세라 사자후(?)를 토함으로써 첫째 시간의 강의를 마친다. 전우들이여 군 복무 중, 이래도 내 몸을 함부로 다룰 건지 묻습니다!
여생이 짧을 테니, 군부대 장병들 앞에서 다시 설 기회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그 바람이 이뤄진다 치자. 나는 또 ‘단장의 미아리 고개’에 얽히고설킨 모든 걸 안고 가리라. 그러지 못한다고 해도 절망할 필요는 없다. 내겐 현충원이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