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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이야기] 김용석
● 노자 1장
(1) 道 可道 非常道, 名 可名 非常名.
(2) 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
(3) 故 常無欲以 觀其妙, 常有欲以 觀其徼.
此兩者 同出而 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고 상무욕이 관기묘, 상유욕이 관기요.
차량자 동출이 이명. 동위지현.
현지우현 중묘지문.
[직역] 그러므로 항상 욕심이 없으면 (무명인 것의) 오묘함을 보지만 항상 욕심이 있으면 (유명인 것의) 운행하는 모습을 본다. 이 두 가지는 (같은 사물에서) 함께 나오지만 이름이 (무명인 것과 유명인 것으로) 서로 다르다. 이러한 원리를 신묘하다고 한다. 신묘하고도 신묘하며, 온갖 오묘함이 나오는 문이다.
[의역] 겉모습에 집착하지 않고 보면 만물에 내재된 도의 오묘함을 볼 수 있지만, 겉모습에 집착하여 보면 만물의 운행 모습만 보인다. 같은 사물을 보면서도 보이는 것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오묘한 도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겉으로 드러난 만물의 모습이다. 이 원리는 매우 신묘한데 천지의 온갖 오묘함이 이 원리에서 나온다.
[풀어서 읽기]
만물이 나고 자라는 모습은 누구나 쉽게 눈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묘한 도의 섭리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비우고서 깨달아야 한다. 같은 사물을 보면서도 경지가 낮은 사람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에 집착하지만, 경지가 높은 사람은 그 사물에 내재된 도의 오묘한 섭리를 깨닫는다. 이 신묘한 원리를 깨달으면 천하의 만물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나고 자라고 다시 소멸되는 온갖 오묘한 변화를 훤하게 꿰뚫어 볼 수 있게 된다.
《주요한자》
妙(묘할 묘, 오묘하다), 徼(돌 요, 순3행하다), 玄(검을 현, 신묘하다)
《해설》
無欲은 ‘하고자 함이 없음’인데 뒤에 나오는 觀과 연결하면 ‘보려고 함이 없음’이다.
오묘함이란 만물에 내재된 무명인 것으로서 道를 의미한다.
무욕으로 오묘함을 본다는 것은 ‘마음을 지극히 비우고 고요한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모든 만물은 각자 그 근본으로 되돌아감을 알게 되었다(致虛極守靜篤 萬物竝作 吾以觀復, 16장)’는 내용과 같은 맥락이다.
有欲은 하고자 함이 있는 것이므로 억지로 보려고 하는 것이고, 그러면 겉으로 드러난 모습밖에 볼 수가 없는 것이다.
常이 두 번 나오는데 수식하는 구절이 無欲과 有欲인지 아니면 ‘無欲以 觀其妙’와 ‘有欲以 觀其徼’ 구절 전체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내용상으로 보면 후자인 것으로 보인다.
妙는 ‘오묘하다’로 번역한다.
그러나 玄은 독특한 표현이라서 그 어감을 살릴 수 있는 마땅한 단어가 없다.
국어사전에도 없는 ‘가믈하다’라는 신조어를 사용하는 해설서도 있지만, 여기서는 편의상 ‘신묘하다’ 또는 ‘신기하고 오묘하다’ 정도로 번역한다.
《기존해석》
[김경수] 그러므로 영원한 무는 심원함을 보려고 하고, 영원한 유는 밝음을 보려고 한다. 이 둘은 본래 같은 것으로서, 나올 때에 이름을 달리한 것이다. 그 같은 것을 일컬어 현이라고 한다. 현묘하고도 또 현묘하니, 일체의 미묘한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 문과 같구나!
[이석명/백서본] 그러므로 늘 욕심이 없으면 도의 신비를 보고, 늘 욕심이 있으면 도의 언저리만 보네. 이 둘은 같은 곳에서 나왔으니, 이름만 달리할 뿐이네. 도는 가물하고 또 가물하니, 뭇 미묘한 것의 본원이네.
[임채우/왕필] 그러므로 항상 무욕으로 그 미묘함을 바라보고, 항상 유욕으로 그 돌아감을 본다. 이 둘은 같이 나왔으되 이름이 다를 뿐 같이 현묘하다고 일컬으니, 현묘하고 또 현묘해서 모든 신묘함이 나오는 문이 된다.
[김용옥] 그러므로 늘 욕심이 없으면 그 묘함을 보고 늘 욕심이 있으면 그 가장자리만 본다. 그런데 이 둘은 같은 것이다. 사람의 앎으로 나와서 이름만 달리했을 뿐이다. 그 같음을 가믈타고 한다. 가믈고 또 가믈토다! 뭇 묘함이 모두 그 문에서 나오는도다!
[최진석] 언제나 무를 가지고는 세계의 오묘한 영역을 나타내려 하고, 언제나 유를 가지고는 구체적으로 보이는 영역을 나타내려 한다. 이 둘은 같이 나와 있지만 이름을 달리하는데, 같이 있다는 그것을 현묘하다고 한다. 현묘하고도 현묘하구나. 이것이 바로 온갖 것들이 들락거리는 문이로다.
첫댓글 해석글에서
무욕으로 오묘함을 본다는 것은... ‘마음을 지극히 비우고 고요한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모든 만물은 각자 그 근본으로 되돌아감을 알게 되었다
(致虛極守靜篤 萬物竝作 吾以觀復, 16장)’ 부분이...
모든 만물은 상호작용으로 생겨나고 다시 근본으로 되돌아간다?...
만물의 生과滅을 뜻하는가요?
인간으로 본다면 生과死를 뜻할까요?
아니면 인간은 마음을 고요히해서 本性을 찾아간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까요?
노자는 다 좋은 데 사람을 가르치는 데는 좀 성의가 없어요.
사람들이 어차피 못알아 들을테니 하고 싶은 이야기 다하고 간듯한 느낌입니다.
그래서 틀린말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 보통사람들이 알수없는 부분을 이야기 해놔서
후학들이 공부하기 너무 어렵게 해놨어요. 그래도 아쉬우니 할 수 없죠.
그리고 이런 류의 이야기를 들을때 딱 와닿지 않는 해설은 전부다 틀린 해설이라고 생각해야 해요.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억지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반드시 망합니다 ㅎㅎㅎㅎㅎ
네~^^
위의 한자 문구는 언어와 욕망이라는 두가지 테마입니다. 그 이외의 표현은 전부 패스하시면 됩니다.
언어는 사물을 본질을 표현하지 못해요. 그래서 언어를 통해서 배우려는 시도는 망합니다.
도를 도라 이름하지만, 도라고 부르면 그것은 이미 도가 아니다 라는 말과
사랑을 사랑이라 이름하지만, 사랑이라고 하면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라는 말인데 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르키지만, 그것을 직접 집어서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가르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만 본다고 하는 표현을 하죠.
이것은 언어의 한계점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것은 언어에 휘둘리고 있는 것을 지적하는 말입니다.
문이라고 하지만, 실제의 문은 어떻게 생겼는지 사진을 보기전에는 알수가 없죠.
다음은 언어와 인식의 관계입니다.
무엇인가를 관찰을 할때 우리는 이름을 머릿속에서 떠올립니다. 나무를 보고서 나무라는 이름을 붙이죠.
이름을 붙이면 이미 관찰을 안합니다. 실재로 해보세요.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계속 관찰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종교인들에게 네이머 라고 부르면 대단한 치욕입니다.
저를 보고서 올빼미라고 생각하는 순간 머릿속에서는 과거의 올빼미에 대한 이미지를 소환하는 겁니다.
더이상 새롭게 변한 올빼미를 관찰할 기회를 잃어 버리는거죠.
그래서 어떤 종교인들은 언어를 일체 금하기도 합니다.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요.
이렇게 언어는 과거의 이미지 이기 때문에 새로운 관찰을 방해합니다. 마음공부 백날해도 말로 설명하고 앉아 있으면 소용이 없게 됩니다. 아 이것은 분노 , 이것은 질투 , 이것은 공포, 이렇게 이름을 붙이면, 시시각각 변화하는 마음의 움직임을 놓치게 됩니다. 분노라는 이름의 이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어마어마한 비밀이 숨어 있을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무명으로 즉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사물을 잘 관찰하게 되고
그때에는 하늘과 땅의 이치가 보이기 시작하는것이고
유명 즉 이름을 붙인다는것은 이세상 모든 물질이 머리속에서 태어나게 하는 엄마와 같은 것이라고 하겠죠.
@올빼미 이름이나 가치 ,판단, 혹은 욕망이라고 하는것이 전부다 머리속에서는 같은 것입니다.
전부다 과거의 것들이죠. 이러한 과거의 것들을 욕망이라고 이름한 것이교.
이러한 과거의 것 즉 쉽게 말하면 욕망이라는 것에 항상 압도 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올바른 관찰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묘한 이세상의 이치를 볼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름을 붙여서 억지로 관찰을 하면, 똑같은 것인데도, 얼음에서 물로 물에서 수증기로 계속 돌아가야 겠죠. 본질을 놓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이치가 오묘하다고 감탄하는 상황입니다.
@올빼미 이렇게 긴 설명을 저렇게 짧은 말로 표현하다니.
한자는 정말 파워풀한 문자입니다. 감탄해요.
@올빼미 선생님 항상 친절한 가르침 고맙습니다~^^
명확히 정리되는 느낌입니다
@지포반 빨리 말해봐욧
노자 도덕경은 수많은 학자들이 나름대로 해석을 해서
책도 많이 나와있지요.
인향만리님도 내면의 정신세계에 관심이 많습니다
떠오르는것은 현무경( 玄武經)
甑山이 직접 쓴 秘意가 담긴 그림과 글입니다
그런데 우리기술로 만든 玄武 4탄도 미사일 800km 탄두중량 2톤
이 개발성공 했다고 합니다
관통능력 정밀도를 높혀서 북한의 지하기지를 타격하는것을
목표로...
이름이 공교롭게 같으니 누가 현무4탄도 미사일이라 지었을까요?
검색해서 우리국방의 기술이 어느만큼인지 찿아보세요
우리의 국방력 제고는 결국 미사일 사거리 제한 해제와 비대칭전력 무기를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와 SLBM이겠지요~
거친 설명이지만 쉽게 비유를 하면
신발을 신발이라는 이름으로 안불러도 신발의 쓰임은 발을 편하게 하기 위해 발에 신는것
즉 이름에 현혹되지 말라
신발이 라는 이름이 가방이 됐든 망아지가 됐든 결국 발을 편하게 하는 용도라는 뜻.
다만 신발이라는 말을 씀으로 현실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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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는 그 이름을 )를 도라고 해도 좋겠지만(그 이름이) 꼭(항상) 도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어떤)이름으로 (어떤 것의)이름을 삼을 수는 있지만 꼭(항상) 그 이름이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름을 붙이기 전에는 천지의 시작이니 따질 수 없고(우리가)이름을 붙이면 만물의 모태로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니 이름을 붙이기 전(도의 이전)에는 (천지지시의) 묘함을 보아야 하지만<※묘함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이름을 붙인 후(도의 이후)에야 그것의 요(실상계의 모습)를 파악할 수 있느니라.
이 두 가지는 똑같은 것인데다르게 보이는 것은 그 이름뿐이니(도 이전의 세계와 도 이후의 세계가)검기는 마찬가지여서이것도 검고 저것도 검은 것이니< 도와 도 이전의 무엇은 같은 것이니라>도는 모든 묘함이 나오는 문이니(지금부터 그것을 말하려 하느니라)
본문 한자 해석글 고맙습니다~
직역인듯한데 명확하게 이해됩니다^^
도덕경 공부를 깊이 하신것 같으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