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이진화 | 날짜 : 10-02-27 14:45 조회 : 1750 |
| | | '호랑이 혼을 찾아서’-이목일 전시회 관람기
이진화
2010년 1월 29일, 지리산에서 예술의 전당으로 일단의 호랑이들이 상경했다. 시베리아와 한반도를 종횡무진하다 한민족의 마음속에 조용히 잠들어 있던 호랑이가 사납고, 귀엽고,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우리 곁에 찾아온 것이다. 그 호랑이들은 이목일 화백이 그린 만 여 마리의 호랑이 중에서 간택된 서른여덟 마리의 호랑이들이다. 수년 전에 고양시 원당골의 숲속에서 태어난 백두산 호랑이, 인왕산 호랑이, 한라산 호랑이가 경인년을 맞아 지리산 호랑이들을 대동하고 올라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백두대간 어딘가에 호랑이가 살고 있다는 믿음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어떤 이들은 호랑이를 찾기 위해 증거들을 수집하고 많은 비용을 들여 추적을 하지만 그토록 갈망해도 그들의 실체와 맞닥뜨리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제 7전시실에 들어서니 한국인의 신화, 전설, 민화와 할머니의 구수한 이야기 속에 나오던 호랑이들이 21세기의 호랑이들과 춤추고, 웃고, 꿈꾸고, 탈을 쓰고 놀면서 말을 걸어왔다. 묻노니, ‘너는 누구인가?’
이목일 화백은 말한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지배한다.’, ‘호랑이를 그리되 호랑이를 그리지 마라. 호랑이를 그리지 말되 호랑이를 그려라.’ 털이 한 올 한 올 살아있는 그림부터 일필휘지 한 번의 붓놀림으로 그려진 호랑이, 마침내 몇 개의 점으로 단순화되고 상징화된 호랑이가 세상의 모든 색깔로 옷을 입고 노니는 그곳에는 보이지 않는 호랑이도 몇 마리 어슬렁대고 있었다.
예술의 전당 감윤조 미술부장은 이목일 화백의 회화적 특징을 ‘다양성’에서 찾는다. 재료에 따른 장르의 구분도 없고 수묵과 유화, 아크릴, 판화를 같이 다루기 때문이다. 표현 방식에 있어서는 구상과 추상의 절충점에 위치하며 캘리그래픽적인 요소가 두드러진다고 했다.
오래 전부터 이목일 화백의 작업에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정목일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수필가, 미술평론가)은 이미 2003년 뉴욕의 한복판에 풀어놓은 이목일의 호랑이에게 큰 박수를 보낸 바 있다. ‘첨단과 편리로 치닫는 뉴욕에 때 아닌 호랑이의 포효는 인간이 잊고 있었던 자연과 야성과 순수의 함성이었다.’라고 평을 했다.
경인년을 맞으며 예술의 전당에서 다시 호랑이들과 조우하며 정목일 이사장의 얼굴에서는 흡족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조각에서의 불각(不刻)의 미와 같이 이목일의 호랑이는 압축과 함축의 미를 보여주고 있다, 몇 개의 선으로 한민족의 기상, 한반도의 기백을 형상화시켜 혼을 불어넣은 이목일의 작업에 재삼 탄복하게 된다. 굉장히 엉뚱하게 보이는 이목일의 호랑이들이 이번에는 돌이라는 오브제와 새롭게 만났다. 돌은 수만 년의 영혼을 가진 땅의 압축물로 산의 수호신인 호랑이와 만나면서 한반도의 뼈와 살갗을 보여주고 있다.’ 같은 이름을 쓰는 의형제라서 그럴까. 문인 정목일은 화가 이목일을 어떤 평론가보다 깊이 읽어냈다.
이목일 화백의 전시회 오프닝에는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축하공연을 해주었다. 마임이스트 유진규의 몸짓, 남계 박종순의 시조창, 김미화의 경기민요, 조문희의 태평무, 서정아의 부토 퍼포먼스, 아일랜드와 모로코에서 온 외국 가수들의 노래가 이어졌다. 장르도 다르고 국적도 다른 그들의 공연은 호랑이와 묘한 조화를 이루었고, 관람객들은 눈으로 그림과 몸짓을 보고 귀로 음악을 들으며 호랑이의 움직임과 웃음소리를 세미하게 느낄 수 있었다.
첫 날 이백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간 후, 2월 11일까지 전시된 호랑이를 만난 인원은 사천여 명에 이르렀다. 그 중에서 몇 명의 관람객에게 감상을 물었더니 ‘호랑이 그림을 보며 친근감을 느꼈다.’, ‘빨간 호랑이, 파란 호랑이, 은빛 호랑이가 자유롭게 노니는 전시장에서 호랑이에 대한 고정관념을 깼다.’, ‘너무 사실적인 호랑이는 집에 걸어놓기가 부담스러운데 이목일 화백의 호랑이는 집에 한 마리 데려가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전시장에 왔다가 바로 큰 호랑이 그림을 선택하는 외국인도 있었다. 원화를 소장하고 싶지만 가격에 부담을 느끼는 이들을 위해서는 지난 연말부터 인터넷 쇼핑몰(주식회사 정주)을 통해서 판화를 판매하고 있다.
이목일 화백은 중앙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일본 창형 미술학교와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수학했다. 그가 그림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은 부친의 확고한 교육적 소신 때문이었다. 동네방네 뛰어다니며 유별나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어린 아들을 보고 ‘앞으로는 일인일기(一人一技)의 시대가 오니 너는 열심히 그림만 그려라.’ 하면서 서울과 동경으로 과감하게 유학을 보냈다고 한다. 십 남매나 되는 자녀들 중에서 한 아이의 특별한 재능을 발견하고 아낌없이 후원을 해준 아버지를 그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언젠가 아버지께서 ‘너는 예순 살이 되면 큰 빛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예견을 하셨다는데 올해로 이목일 화백의 나이가 우리 나이로 예순 살이 된다. 그는 인생의 고비마다 그 말씀을 되새겼다고 한다.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화가로서 평생 외길을 가되 결코 돌아서지 말라는 가르침이 아니었을까. 그는 아버지의 말씀대로 평생 전업작가의 길을 가고 있고, 그것은 같은 길을 가는 동료 화가와 후배들마저 불가사의하게 생각하는 점이다. 글만 써서 생활을 하는 문인이 많지 않듯 그림만 그리며 사는 화가도 드물다. 계산상으로 스물 세 번의 개인전과 수십 번에 이르는 그룹전을 해낸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유난히 사람을 좋아하고 여행을 즐기는 그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거침없이 전국을 돌아다닌다. 그를 아끼는 지인들은 언제 그림을 그리나 걱정을 하지만 그는 개인전을 통해 매번 그의 존재를 확인시키고 있다. 전시회를 하지 않으면 작가가 아니라는 그의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
오랜 세월 가까이에서 그를 보아온 후배 작가 최영관(철 조각가)은 이목일 화백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건강이 놀랍다고 했다. 그림에 몰두할 때는 몇날 며칠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옷을 벗어 던진 채 작업을 하는데 이 화백이 말하는 건강의 비법은 좋은 물과 공기를 마시며 사는 것이다.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며 새롭게 태어난 지리산 호랑이들은 그가 지리산에 들어 자연과 하나가 되었기에 마침내 탄생이 가능했으리라 짐작이 된다.
전시회가 끝나는 날 한가람 갤러리에 찾아가서 그림을 내리고 있는 이목일 화백과 다시 만났다. 호랑이 그림에 그렇게까지 미친 진짜 이유가 무엇이고, 앞으로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속내를 솔직하게 드러내며 말문을 열었다.
‘그림은 곧 시간이며 그 시간은 칼날과 같다. 열등감, 그리움, 외로움을 시간의 칼날로 저며 내는 고통을 견디고 넘어서야 비로소 내가 된다. 만 마리의 호랑이는 시간의 칼날 앞에 제물로 바쳐진 내 비루한 삶이 거듭나기를 비는 몸부림이었다. 그림을 그릴 수 없을 만큼 힘들고 가난하고 피폐할 때 호랑이들이 나를 찾아왔다. 두려움을 생명으로 바꾸고 싶었기에 어떤 우려와 비난 앞에서도 붓을 놓을 수가 없었다. 꿈, 내 꿈은 그냥 작가다. 그리고 고향 함양에 예술학교를 만들려는 제 이의 꿈을 가지고 있다. 제도권 학교가 아니고 대안학교 또는 의숙(義塾)이라고 할까. 예술적 재능이 있지만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남녀노소가 대상이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동기? 거기에는 아픈 비밀이 있다.’
감기로 잔뜩 목이 쉰 그와의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누구에게나 말 못할 아픔은 있는 법, 그 마저도 시간의 칼날에 저며져서 그림으로 태어나기를 바라며 이목일 화백의 눈을 닮은 지리산 호랑이를 다시 한 번 돌아보았다. 그 순간, 태어났으나 소지(燒紙)가 되어 하늘로 올라간 수천 마리의 호랑이들과 불현듯 눈이 마주친 듯하다. |
| 이진화 | 10-02-27 14:47 | | 쓰고 나서 떠오르는 몇 잎의 생각들
15-6년 전인가, 숲속의 비닐 하우스와 난방도 안 되는 황량한 마을 회관에서 작업을 하는 이목일 화백을 만났다. 그 당시 이 화백의 순진무구함과 열정 그 밖의 재미있는 개성 때문에 많은 문우들이 즐겨 그의 화실을 찾았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벽에 걸린 아주 작은 청바지, 끈이 달린 그 바지는 아들인 승훈이가 그림을 그릴 때 입었던 작업복이라고 했다. 물감이 잔뜩 묻은 오버롤 청바지는 그 자체가 작품이었다.
요리가 전문이며 특별요리라고 뚝~딱 해서 내놓은 찐감자 몇 알...ㅎㅎㅎ 아마도 그날 양식은 그것 뿐이었으리라. 가끔은 붕어 먹여 키운 닭요리를 했다며 사발통문을 돌렸다.
지난 15-6년, 그가 말하는 그리움, 외로움, 괴로움과 즐거움이 뭔지 금 밖에 서서 지켜 보았고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갖는 사랑, 염려, 분노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끝까지 믿는 것은 그의 그림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사랑이다. 또한 외로울 때 하늘에 뜬 달빛을 끌어들이거나(그의 호는 인월당引月堂 이다), 호박덩이를 품에 안고 덩굴손을 입에 문 채 잠든다는 그의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다. | |
| | 임재문 | 10-02-28 03:36 | | 어흥! 호랑이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작가회 회원 여러분! 백호의 해에 운수대통하시기를 바랍니다. ㅎㅎㅎㅎ | |
| | 이진화 | 10-03-03 01:33 | | 임재문 선생님, 호랑이와 같이 용맹하고 활기찬 경인년 보내세요. 총회 때 뵙겠습니다. (^_^* | |
| | 이언주 | 10-03-02 13:45 | |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지배한다" 오늘의 '화두'를 찾았습니다. | |
| | 이진화 | 10-03-03 01:37 | | 우리 이언주 선생님은 작가회에서 가장 젊은 분이지만 내공이 매우 깊으십니다. 포근하던 날씨가 다시 추워졌어요. 다음 주에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요. ^^ | |
| | 박영보 | 10-03-02 17:27 | | 예술의 전당안에서 함께 서성거리고 있는듯한 저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 같습니다. | |
| | 이진화 | 10-03-03 01:39 | | 박영보 선생님, 요즈음 우리나라에는 좋은 전시회와 공연이 많이 열리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더러 갤러리에 가시는지요. 한국 호랑이 한 마리 미국에 데려다 키우시지요. ㅎㅎ.. | |
| | 박원명화 | 10-03-02 21:51 | | 호랑이에 얽힌 전설들이 금방이라도 그림속에서 뛰어 나올 것 같은 착각이 들었던 그날의 기억들을 다시 한 번 되뇌여봅니다. 오랜 옛날부터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동물인데다가 이화백님의 예술적 감각을 호랑이의 익살스런 표정에서 감상하였답니다. 좋은 글 올려 주시어 감사합니다.^^ | |
| | 이진화 | 10-03-03 01:46 | | 박원명화 선생님, 함께 본 그림이라 실감이 나시지요.^^ 그림 뿐 아니라 글도 다작에서 명작이 나온다는 말이 새삼 떠오릅니다. 고호는 말년에 거의 매일 한 점씩의 유화를 그렸다고 하더군요. 총회 준비로 수고가 많으십니다. 그 날 뵙죠. (^_^* | |
| | 김자인 | 10-03-03 18:31 | | 언제인가 정목일 이사장님 글에서 이목일 화백에 대한 글을 읽은적이 있는데 이름이 같아서 우정이 두터워진 사이라고 하시더군요. 이진화 선생님과도 친분이 두터우시군요. 예술의 전당 호랑이 그림이 한 눈에 다 보이는 현장감이 느껴지는 글 잘 쓰셨습니다. | |
| | 이진화 | 10-03-05 23:38 | | 김자인 선생님, 그림이건, 음악이건, 무용이건 결국 모든 예술 작품의 뿌리에는 이야기(문학)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늘 온유한 성품을 가지셨는데 올해는 호랑이와 같이 힘차고 활기 넘치는 한 해 보내세요. | |
| | 임병문 | 10-03-05 15:54 | | 이진화선생님, 특히 올해들어 자주 나타나는 호랑이 그림들, 그저 세월에 때맞춤한 것들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며 넘겼지만 정작 선생님의 글을 보면서 그림에 담겨져 분출되는 그린 이의 마음을 보는 듯 했습니다. 그리움과 외로움, 그리고 괴로움과 즐거움, 그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고 보이는 것은 정작 그것들이 녹아 있는 그림일 듯 싶습니다. 선생님의 몇 잎 생각처럼 인월당, 그속에는 그의 온갖 것들이 무구한 채 그림으로 승화된 것 같습니다. 그 좋은 그림보시고 그것들의 마음 또한 헤아려오셨으니 경인년 시작의 나들이 치고는 참으로 상서롭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올 한 해, 운세마다 대통하옵소서. | |
| | 이진화 | 10-03-05 23:44 | | 임병문 선생님, 이화백님과의 대화를 통해 화가나 문인이나 시간의 칼날 앞에서 저며지는 과정이 없으면 좋은 작품을 남길 수 없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경인년 한 해 좋은 작품 많이 쓰시고 하는 일마다 행운이 깃드시길 바랍니다. | |
| | 김창식 | 10-03-18 14:49 | | 호랑이의용맹스런 모습도 그렇거니와 심혼을 뒤흔들고 가슴을 진탕하는 포효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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