褪於日光則爲歷史, 染於月色則爲神話
(퇴어일광즉위역사, 염어월색즉위신화 )사마천의 사기에 나온 말로
소설가 이병주선생이 대하소설 ‘산하’ 서문에 인용하여 회자되는 말입니다.
- 태양은 객관적인 역사를 만들고 달은 주관적인 신화를 만든다 -
그러나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역사도 신화도 되지 못한 제국의 후예들이 있습니다.
2005년 7월 20일 오후 4시20분 인천국제공항.
도쿄 나리타 발 대한항공편에 실린 한 남자의 시신이 내려지고 있었다.
몰려든 보도진과 유가족들이 이 광경을 지켜봤다.
시신은 곧 빈청이 마련된 창덕궁 낙선재로 옮겨졌다.
이날 저녁 각 방송사 뉴스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세손'의 운구 소식을 일제히 보도했다.
이구,
고종 황제의 손자이자 영왕 이은의 아들이다.
나흘 전 도쿄 아카사카호텔에서 시신이 발견되었다.
향년 74세, 사인은 심장마비로 추정했다.
대한제국의 황세손이 타국 일본에서 떠돌다 생을 마쳐야 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2007년 7월 16일 창덕궁 낙선재에서 쏟아져 내리는 장대비 속에 이구의 대상제
(大祥祭=삼년상을 마치고 탈상함을 알리는 제사)를,
300여명의 전주 이씨 종친들이 치루었다는 기사를 마지막으로 이제 더 이상 황실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100년 전,
인천항에서 훗날 이구를 낳게 될 영왕 이은이 한 일본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운명은 이미 100여 년전 아버지 영왕이 일본에 볼모로 가면서 정해진 것이었을까
- 일본인은 요시히토 황태자(123대 재위 1912~1926) <- 제 1차 대전. 관동대지진. 강점기 무단정치
- 전쟁광 히로히토(124대 재위 1926~1989) <- 만주사변. 중일전쟁. 인도차이나 침공. 태평양전쟁. 제 2차 세계대전.
- 메이지(명치 122대 재위 1867~1912) <- 청. 러일전쟁. 한일병합. 명성왕후 시해. 고종황제 독살(설)
"과거가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그 과거가 역사가 되든 신화로 물들든, 하나의 사실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기까지는
적어도 100년이라는 시간이 요구된다고 사학자들은 말한다.
우리에게도 100년을 기다려야 했던 거대한 '과거'가 있다.
그 전까지의 역사가 지녔던 관성을 철저히 무너뜨린 수렁이자,
들추어내기 힘든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우리의 근대사.
우리의 아픈 역사 대한제국의 후예들,
가파르게 굽이친 한반도 근현대 100년사의 발화점이자 심장부인 대한제국 황실이다.
조선후기 영.정조의 짧은 문예부흥기를 지나 23대 순조에 이르러 외척 안동김씨의 섭정으로
국운이 기울기 시작했다.
24대 헌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강화도령 철종을 허수아비 임금으로 앉혀놓고
안동김씨의 실정으로 인한 삼정의 문란은 극에 달했다.
25대 철종도 후사 없이 일찍 죽었다.
이번에는 풍향조씨인 조대비가 실권을 장악 흥선대원군과 손을 잡았다.
세계열강의 각축전에서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며느리 민비와의 세력다툼으로 국운은 일본으로 넘어갔다.
26대 고종황제는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도 기울어가는 나라를 바로잡으려 눈물겨운 노력을 했지만,
일본에 의해 강제 퇴위당해 1907년 아들 순종에게 양위 했다.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병으로 망국의 한을 품고 지내다가 1919년 68세에 일제의 독살설속에
의문의 세상을 떠났다.
27대 조선왕조 마지막 임금 순종황제(융희)는 이미 일본에 나라가 넘어간 상태에서 즉위했다.
어릴 때 누군가 타 넣은 아편커피로 사경을 헤메다 겨우 살아나 평생 병치례를 했다.
22세 어머니 민비가 일본인에 의해 시해 당했다.
32세에는 을사조약으로 나라가 일본으로 넘어갔다.
34세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나 3년 후 한일병합으로 나라 없는 왕이 되었다.
어머니 시해에 이어 아버님 고종황제는 독살되었다.
동생들까지 일본에 볼모로 가 이름만 왕이었지 인간으로서 온갖 오욕의 한 많은 일생이었다.
이왕으로 불리며 16년간 낙선재에서 쓸쓸히 지내다 1926년 4월 25일 53세로 승하했다.
철종이후 조선왕실은 대한제국으로 이어져 고종 - 순종 534년(1392 ~1926)으로 끝을 맺었다.
대한제국(大韓帝國) : 고종(광무)황제가 1897년 10월 대한제국 수립을 선포했다.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까지 13년간 조선을 잇는 한반도 마지막 군주국이자
최초의 근대국가이다. '대한제국을 계승'하는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거쳐
광복 후 현재의 '대한민국' 국호로 이어지고 있다.
1915년 덕수궁 인정전에서 찍은 황실 가족사진
10세에 일본에 볼모로 간 영왕이 잠시 귀국했다.
의왕(1877년생), 순종 황제, 고종의 외동딸 덕혜옹주(1912년생), 영왕(1897년생),
고종, 순종 비 순원효황후, 의왕 비 덕인당 김비, 의왕의 큰아들 이건(1909년생)
일본에 의한 내정간섭과 외교권 박탈 합병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1910년 합병조약 이전에 이미 조선왕실은 망했다고 보아야 한다.
마지막엔 대한제국 황실이 되었지만 결국 풍비박산으로 멸했다.
일본의 식민지가 되니 왕실의 멸망뿐 아니라 나라가 亡하고 국민이 滅했다.
36년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이 되었으나,
조선왕실 아니 대한제국 황실이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망한지 100년도 넘어 이제는 잊혀진 황실 사라진 황손이 되었다.
영왕 이은과 두 조국을 섬겨야 했던 왕비 이방자,
의왕 이강과 덕혜옹주, 영왕의 아들 이구,
거기에 민갑완과 이구의 전 부인 줄리아 뮬록,
황적에 올랐던 의왕 이강의 두 아들 이건과 이우,
그리고 황적에 오르지 못한 그의 숱한 후손들.
민갑완은 10세 어린 나이에 영왕 이은의 간택단자를 받았다는 이유로 평생을 수절한 ‘한의 여인’이다.
조선과 일본 황족의 정략결혼, 일선융화 정책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
그녀가 감내한 세월은 대한제국 황실 그 누구의 삶보다 장중하고 애절한 역사가 서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