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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스데반 황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3:1-3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바울은 12장에서 다양한 성령의 은사들을 언급한 후, 이제 13장에서 그 은사들이 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교훈합니다. 즉, 하나님께 영광도 되지 않고 교회에 유익도 되지 않으며 심지어 그 은사를 나타내는 신자 자신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도 시대에는 오늘날의 교회가 누리지 못하는 여러 성령의 은사들이 주어졌습니다. 그 이유는 아직 정경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초대 교회 신자들에게 구약으로부터 복음이 강력하게 증거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회에 허락된 매우 특이하고 다양한 은사들로 인해 초대 교회 성도들은 구약에 담긴 복음을 알 수 있었을 뿐더러 영광의 주 예수께서 성령을 통해 알려주시는 계시 또는 예언 등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 나타난 성령의 은사들은 그들로 복음에 주의를 집중시키게 하며 확고한 믿음을 갖게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영광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주님을 머리로 하는 교회를 마음에 두도록 인도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특별한 은사들이 나타나면서 인간의 부패한 죄성으로 인한 부작용도 생겨났는데, 그것은 은사를 가진 자들 사이에서 불건전한 경쟁이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어떤 특별 은사를 더 선호하며 그것을 교회 전반에 퍼뜨리려는 시도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성령의 은사를 악용하는 죄성 때문에 교회에 많은 분열과 다툼이 생겨났습니다. 이에 바울은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전 12:31) 하였습니다. 여기서 더욱 큰 은사는 복수형으로 표현되었기에 '은사들'이며 그 '은사들'은 예언의 은사처럼 교회에 덕을 세우는 은사들을 말합니다. 하지만 가장 '좋은 길'은 모든 은사를 사용하는 동기와 목적으로서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모든 은사를 교회의 덕을 세우도록 만드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가장 귀한 은혜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모든 영적 은사를 능가하는 복음의 은혜이며 모든 은사를 주관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이제 1절을 보니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방언"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방언은 고린도 교회에 나타난 수많은 은사들 중에 사람들 앞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은사였습니다. 바울은 방언은 "사람의 방언"도 있고 "천사의 방언"도 있다고 말합니다. 이미 제가 언급한 것처럼 성령의 '은사'로서의 방언은 구속사적 사건인 성령 강림과 병행된 사도행전 2장의 방언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물론 '방언'의 속성은 같습니다. 하지만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은 성령의 공식적인 강림을 알리는 사건으로서 특이할 수 밖에 없었고, 그후 25년이 지난 후에 이미 교회 가운데 임재하신 성령의 은사로 나타난 방언은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주어진 수많은 은사들 중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아무튼 바울은 사람의 방언이든 천사의 방언이든 어떤 사람이 방언의 은사를 가지고 있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를 꽹과리가 된다고 말합니다.
즉, 신자의 마음에 사랑의 동기가 없거나 사랑을 목표로 하지 않는 상태에서 방언의 은사를 나타내는 것은 아무런 영적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오직 사랑만이 성령께서 주신 은사를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사랑이 없이 방언의 은사를 나타낸다면 그것은 단지 자기 자신을 높이려는 계산된 이기심과 위선의 표현일 뿐입니다. 따라서 사랑없는 방언 말함은 그저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 소리입니다. 당시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는 이교도 예배의 전형적인 특징이었습니다. 그것은 시끄러운 소리가 반복되는 공허한 현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반복되는 시끄러운 소리에 관심을 가지고 모일 수는 있지만 그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든, 그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든 사실상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오히려 자칫 악령들기 일쑤입니다.
바울은 또한 고린도 교회에 가장 인기 있던 은사 중 하나인 예언의 은사도 언급합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2절).
초대 교회에서 예언의 은사는 그 당시 구약 성경 밖에 없는 상황에서 구약 선지자들의 본을 따라 복음을 가르치던 은사였습니다. 따라서 복음에 따른 교훈과 회개 등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사랑이 없다면 그 예언의 은사 역시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사실, 성령의 모든 은사는 사랑 없이는 아무런 가치도, 소용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알려주는 어마어마한 교훈입니다.
왜 그러합니까? 사랑이 동기가 되지 못하거나 목적이 되지 못하면 결국 거룩한 성령의 은사들을 내 영광과 내 허영심과 나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가 작은 문제가 아닌 이유는 복음의 근본 정신과 대치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은사를 사랑에 의해 사랑을 통해 사랑을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면 자신과 교회에 유익은커녕, 죄와 마귀에게 사용되어 교회를 분열시키고,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땅바닥에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심지어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합니다(3절). 이는 사랑이 없으면 결국 교회에 유익을 줄 수 없기 때문이요, 오직 자기 영광과 자기 명예를 위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부패요, 죄악의 뿌리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거룩한 은사들이 죄를 위해 사용된다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없으니 자신에게나 교회에게나 하나님께 아무런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오, 사랑만이 우리가 받은 모든 성령의 은사를 주관해야 합니다. 사랑이 우리의 봉사와 섬김과 순종을 주관해야 합니다. 즉, 사랑이 동기가 되어야 하고 사랑이 목적이 되어야 하고, 모든 은사들은 사랑을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한 율법사가 우리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습니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마 22:36).
그러자 우리 주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사랑이 동기가 아니고 사랑이 과정이 아니며 사랑이 목표가 아니면 아무리 큰 희생을 치르더라도 결국 자신을 위한 이기심에서 나온 것이기에 하나님께 칭찬을 얻거나 주의 공동체에 유익을 주거나 자신이 예수님을 닮는 최고의 복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사랑 없이 성령의 은사들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그 은사들이 주어진 본래의 목적을 무산시키는 것이고 결국 교회와 자신과 하나님께 아무런 유익을 끼치지 못하니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헛수고라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의 이 말씀은 성령의 은사들은 반드시 성령의 뜻에 따라 사용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뜻은 오직 예수님을 주로 높이고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1, 7).
하지만 만일 성령의 은사들을 사용하여 자기의 육체, 곧 죄성을 채우려고 사용한다면 그것은 결국 썩을 것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8).
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만이 가장 소중하며 사랑만이 영원합니다. 그러면 사랑은 어떻게 우리 안에 이루어집니까? 먼저, 사랑은 하나님의 주권과 권위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시기까지 사랑하신 것을 아는데서 우리 마음은 사랑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그리고 그분들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행하시고 이루시며, 지금 우리에게 어떤 마음을 갖고 계신지를 알 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따라서 받은 사랑이 없으니 그 사랑을 교회 공동체의 형제들에게 나눌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요일 3:10).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
그러므로 사랑없이 은사를 나타내는 것, 사랑없이 봉사하는 것, 사랑없이 희생하는 것 등, 모든 것이 결국 헛되고 거짓된 위선일 뿐이며 계명을 어기는 상태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따라서 사랑이 없다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분을 의지하고 따름으로 주와 연합한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과 하나가 됩니다. 이때 그리스도의 마음은 사랑 그 자체요 사랑이 흘러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광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한다면 사랑없이 성령의 은사를 사용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오, 여러분!
부패한 우리 인간들은 매우 간교해서 얼마든지 자기 편을 만들기 위해 봉사를 하고 재능을 나타내고 심지어 성령의 은사마저 희생시킬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영웅이라는 칭찬을 들으려고 이교도에서처럼 온 몸을 불에 태울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의롭고 대단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얼마든지 더 많은 선행을 행할 수 있습니다. 간교하고 부패한 인간은 사탄처럼 얼마든지 자신의 영광을 위해 의의 일꾼처럼 자신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고후 11:14-15).
그러므로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시끄러운 소리만 낼 뿐이고, 그 누구에게도 영원한 의미있는 선한 효력을 내지 못하며, 심지어 자신에게도 아무런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오,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지 못하면 그 어떤 재능도, 은사도, 우리가 가진 그 어떤 것도 결국 헛된 것을 마치고 맙니다. 그러므로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지 않으려면 모든 동기가 우리 주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감사하며 그분들을 사랑하는데서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을 아는 것은 오직 십자가 속량을 바로 알 때 가능합니다. 그리고 부활하여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받아 사방으로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생의 삶이요, 그 영생에서 나오는 사랑으로 우리는 모든 것을 주의 영광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2-3).
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이 전부이며 사랑만이 영원합니다. 그 외 나머지 모든 것은 사랑을 위한 도구이며 과정입니다. 이 원리 속에서 바울은 성령 은사의 사용 원칙을 알려준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 생활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종교의 모습과 선이라는 포장 속에서 사랑없이 많은 일들과 희생과 심지어 성령의 은사까지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위선이 타락한 우리 인간 속에 숨어있는 가장 무서운 죄성인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잃고 서로 다투는 어리석은 갈라디아 교회에도 같은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 5:13-15).
오, 여러분!
복음의 모든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딤전 1:5)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오는 사랑을 우리의 신앙의 삶에 이루어가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은 신앙의 목적을 잃은 삶으로서 율법의 정신에서 벗어난 그릇된 신앙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을 알수록 우리는 계명을 지키게 되고 계명을 알수록 우리는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더욱 율법의 강령인 사랑을 이루어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거룩함과 사랑은 반드시 함께 갈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이를 위해 나머지 모든 선한 것들은 도구로서 풍성하게 쓰여야 합니다.
바울은 사랑의 15가지 속성을 나열하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참 신앙 안에 있는지를 점검할 수 있도록 도우면서 우리로 믿음 안에서 바른 목표, 곧 사랑을 이루도록 할 것입니다.
우리 주께서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우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엡 3:17-1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교회]
